〈 38화 〉038.
‘오늘까지 치면 일주일인가.’
나무 한 그루를 베어내는 데 들어간 시간.
오늘 다 못하면 일주일도 넘기게 된다.
‘해야지.’
아직 해가 질 시간까지는 많이 남아있었다.
그쪽으로 건너간 그는 마치 모래시계의 중간부분처럼 가운데만 조금 남아있는 나무의 절단면에 섰다.
“도끼를 쓸 수 있으면 좀 더 빠르게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시끄러워서 곤란하니까.”
그가 꺼내든 것은 톱과 정, 그리고 가죽을 씌운나무망치였다. 나름대로 조용히 작업하기 위해 이것 저것 해보다 정착한 도구들이었다.
‘이쪽으로 유도해야겠지?’
나무를 쓰러뜨릴 방향을 정해야 한다.
벌목을 마치면 그에게 소유권이 올 테니 루팅이 가능해지겠지만, 이 거대하고 무거운 나무는 그가 가진 인벤토리로 감당할 수가 없었다.
‘흡수를 하거나, 아니면 통째로 넘겨야겠지.’
얼마나 받을 수 있을지는 일단 해봐야 안다.
어쩌면 트럭보다 못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형편 없이 적게 주지는 않을 것 같았다.
‘몬스터는 안 보이고... 냄새도 없고.’
주변을 거듭 살핀 후.
그는 천천히 신중하게 작업을 이어갔다.
어쩌면 오늘 안에 못할 수도 있겠다고 여겼지만, 생각보다 금방 되었다.
우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한쪽으로 넘어가기 시작해서 더 이상 안쪽을 깎을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방향은 제대로 유도했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얼른 그곳에서 벗어나 거리를 벌렸다.
곧 그의 등 뒤에서 거목이 쓰러지며 산이 무너지는 듯한 소리가 터져나왔다.
그쪽을 돌아보지 않고 움직인 최강혁은 얼른 미리 준비해두었던 다른 나무의 내부 공간에 몸을 숨겼다.
‘궁금해서 와볼 녀석들이 많을 거야. 적어도 하루 정도는 여기 있어야 할 것 같은데.’
과연 얼마나 받을 수 있을지 궁금하긴 했지만, 지금은 객기를 부릴 때가 아니었다.
그는 인벤토리에 넣었던 사슴벌레의 속살을 루팅으로 섭취하고 나서 조용히 휴식을 취했다.
***
예상했던 것보다 여파가 더 컸다.
큰 소리가 났으니 근처에 사는 놈들이 와볼 거라고 짐작은 했지만, 이 정도 까지는 아니었다.
‘이거, 못 나가겠는데.’
당장 근방에서 들려오는 수많은 소리들.
괴성과 비명, 둔탁한 타격음과 뭔가가 나가 떨어지는 소리.
‘내가 죄인이네.’
평화롭던 숲에 분란을 일으킨 꼴인가.
그럭저럭 하루면 될 것 같더니, 패싸움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며칠째 이어지고 있었다.
‘피냄새가 여기까지 풍길 정도면....’
그럭저럭 조용해진 건 닷새가 지난 후였다.
조심조심 숨어있던 나무 틈새를 열고 나온 그는 당장 지상을 내려다보고 질린 얼굴을 했다.
‘독가스라도 풀어놓은 꼴이네.’
끔찍한 광경이었다.
그 종류를 파악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많은 몬스터들이 저 아래에 죽어있었다.
멀리서 보자 마자 도망쳐야 했던 맹수들도 더러 섞여있었는데, 뜯어먹힌 듯 훼손된 것도 있었고 상대적으로 멀쩡해보이는 것도 있었다.
‘내려가도 되나?’
인벤토리에서 나무토막 하나를 꺼낸 그는 멀찍이 떨어진 바닥을 향해 던져보았다.
터억, 하고 나름 큰 소리가 울려퍼졌지만 아무런 움직임도 볼 수 없었다.
‘나무는... 이야.’
그저 위로 올려다보기만 했던 나무 하나가 옆으로 쓰러져있는 걸 보니, 그 밑둥에서 베어낸 게 아닌데도 불구하고 무척이나 거대했다.
‘저러니 다들 몰려왔지.’
나름 빈 곳으로 쓰러뜨렸다고 생각했는데, 옆으로 쓰러진 나무가 그쪽에 있던 나무 두 그루를 덮여 부러뜨린 것 같았다.
도합 세 그루가 쓰러지고, 그 뒤쪽으로 여러 나무들이 더 꺾여있었다.
‘그래도 걸리면서 힘이 줄어들었나. 저쪽은 꺾이긴 했어도 쓰러지진 않았네.’
바로 내려가는 대신, 그는 주변 나무들을 빙 둘러 이동하며 지상의 상황을 좀 더 자세히 살폈다.
혹시나 살아 움직이는 놈들이 있는지 자세히 보았지만, 얼핏 눈에 띄는 건 잔치라도 열린 것처럼 바글거리는 개미떼 뿐이었다.
‘이상하네. 청소부 놈들이 안 보여.’
평소대로라면 개미들보다 더 바글거려야 할 녀석들이 보이지 않았다.
‘저쪽 싸움도 컸었지.’
어쩌면 벌목 이전에 벌어졌던, 숲 저편의 싸움 뒷정리가 아직 끝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워낙 큰 싸움이라, 청소부들도 같이 휘말려 피해를 입었을 수도 있고.
‘그러면 얼른 움직여야지.’
조심조심 지상으로 내려간 그는 멜빵을 걸고 오른손으로 쥔 소총을 이리 저리 겨누며 경계하면서도, 왼손으로 사체들을 접촉하며 스캔과 교환을 멈추지 않았다.
-인벤토리 3칸을 획득하였습니다.
-인벤토리 2칸을 획득하였습니다.
-인벤토리 7칸을....
거듭 이어진 시스템 알림이 어느덧 조금씩 줄어들 즈음, 그 일대에 자리하던 짐승과 몬스터의 사체들도 그만큼 사라졌다.
‘고기도 좀 챙겼고.’
개중에 곰을 닮은 커다란 녀석이 하나 있어서 스캔해보니 먹을 수 있는 종류였다.
가죽도 쓸모가 있어보여서, 돌을 채우는 데 쓰고 난 후 비워두었던 특수 칸 2번에 넣어두었다.
‘6백 킬로그램이 넘어가네.’
나머지 사체들도 저마다 쓸모가 있을 것 같았지만, 당장 챙길 수 없다면 얼른 치워버리는 게 낫기에 바로바로 시스템에 넘겼다.
‘흡수가 되는구나.’
현장을 정리하는 과정에 그가 벌목한 나무를 지나가게 된 최강혁은 그 껍질 한쪽에 손을 얹어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다 흡수하고 처리하려면 하루 종일 해도 안 되겠지.’
역시, 그것도 시스템에 넘기는 게 좋을 것 같았다. 하여 확인해보니, 지금 것을 넘기면 182칸을 주겠다고 했다.
‘애매하네.’
일주일로 나누면 하루에 20칸을 조금 넘게 번 걸까. 어쩌다 같이 쓰러진 것들까지 처분하면 더 많아지겠지만.
‘그래도 사체들을 처리한 것 못지 않게 많이 받는 건 맞아.’
몬스터 사냥의 위험성과 난이도를 생각해보면, 그저 시간만 투자해서 얻는 성과로는 대단한 수준이라 할 수도 있다.
‘휴우.’
쓰러져있던 거목이 고스란히 사라졌다.
그 곳곳의 틈새에 터전을 삼으려 했었는지, 작은 짐승과 벌레들이 화들짝 놀라 이리 저리 달아다는 모습이 보였다.
최강혁은 계속 움직였다.
비슷하게 쓰러져있던 다른 두 그루의 나무를 처분한 그는 그 과정에 부러지고 떨어져나온 수많은 가지들이 사라지지 않고 바닥에 남아있는 것을 보았다.
‘나무가 필요하면 이것들을 주워가면 되겠구나.’
지금은 넣을 곳이 없었기에, 챙길 수 있는 만큼만 챙기고 돌아섰다.
-키킥, 키키킥!
그 때, 멀리서 숲을 훑고 지나가는 바람결에 희미한 소리가 섞여 들려왔다.
‘오긴 오는구나.’
청소부들임을 직감한 그는 얼른 로프를 매어둔 나무로 달려갔다.
‘허탕 치게 만들어서 유감이야.’
그래도 아주 허탕은 아닐 것이다.
인벤토리 1칸도 못 받을 만큼 자잘한 것들은 그냥 두기도 했으니까.
그는 서둘러 거처로 향했다.
얻은 것들이 많아서, 정리를 해야 했다.
‘시스템 알림도 많이 쌓인 것 같은데. 제대로 확인을 못했어.’
제법 익숙해진 몸놀림.
금방 거처가 있는 나무 근처에 도달했지만, 곧장 그쪽으로 가지는 않았다.
‘아무도 없지?’
그 주위를 한 바퀴 돌며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고 나서야 거처 나무로 향한 그는 오늘 하루도 무사히 돌아왔음을 감사히 여겼다.
“어디 보자. 인벤토리... 대박이네.”
거목 세 그루에 몬스터와 짐승들을 넘겨 얻은 인벤토리가 도합 8백 칸이 넘어갔다.
기존에 갖고 있던 것과 합치면 얼추 2천 칸에 가까운 숫자였다.
‘마나 회복 속도가... 역시 느려졌어.’
그래도 회복이 되긴 한다는 건 다행이었다.
자연회복이 안 되면 외부에서 수시로 마나를 확보해 공급해야 할 테니.
‘일단 인벤토리 획득 알림은 다 치우고....’
누적되어있던 시스템 메시지를 능숙하게 추려낸 그는 그 사이에 끼어있어서 미처 보지 못했던 몇 가지 알림을 찾아냈다.
‘흡수 스킬 단계가 올랐다고? 아까 나무 팔기 전에 조금 해보면서 올라갔나?’
흡수 쪽에 파생 스킬이 새로 생겼다고 해서 확인해보니, ‘마나 흡수’ 라는 명칭이었다.
‘접촉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 거리까진 흡수가 된다고? 단계가 오르면 거리도 늘어나는구나.’
하지만 그 부분은 기존 흡수스킬의 단계가 올라가서 생긴 것 같았다.
정작 마나 흡수 쪽 스킬 설명을 보니, 다소 추상적이어서 감이 잘 안 왔다.
‘자연의 마나를 흡수할 수 있다는 게 무슨 말이지? 자연에 마나가 있는 건 알고 있지만.’
혹시 공기 중의 마나도 흡수할 수 있다는 걸까. 궁금해서 해보니, 아주 미량이지만 정말로 흡수가 되었다.
“으음.”
하지만 패시브 스킬이 아니어서, 필요할 때마다 직접 의식해서 활용해야 하는 것 같았다.
‘휴식할 때 틈틈이 하면 되려나.’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공기의 마나만이 아니라, 일반적인 자연의 마나를 흡수할 수 있다는 것 같아서 이것 저것 해보니 그야말로 놀라웠다.
‘물에서도 흡수하고....’
심지어 예전에는 불가능했던, 벌목하지 않은 나무에서도 마나를 흡수하는게 가능했다.
‘살아있는 대상인데도 된다고?’
이건 뭐 흡성대법인가 뭔가 하는, 옛날 중국 영화 같은 데서 나오는 그런 거 아닌가.
‘나무는 뭔가 다른 건가.’
어쩌면 하나의 생명체가 아니라 그저 자연이라는 카테고리에 묶어놓은 것 아닐까 싶기도 했다.
아니면 정말로, 살아있는 대상의 마나를 갈취하는 개념일 수도 있고.
아무튼 지금 그가 있는 나무의 내벽에 손을 얹고 흡수를 해보니, 그곳으로 조금씩 들어오는 마나가 느껴졌다.
‘무척 느리긴 하지만, 쓸모는 있겠어.’
그렇게 마나를 잃은 부분의 나무가 조금 푸석푸석해진 느낌이었다. 그런 특성을 활용하면 멀쩡한 나무에 구멍을 뚫거나 하는 일도 더 쉬워질듯했다.
‘...이젠 정말 벌목 뿐이야!’
사흘에 한 그루만 넘어뜨려도 하루에 50칸 이상을 벌 수 있다. 이 거대한 숲에서 나무 조금 없앤다고 티가 날 것 같지도 않고.
‘지금 있는 일반 인벤토리가... 1,872개구나.’
그 중에서 150칸을 떼어냈다.
50칸은 1번 특수칸을 업그레이드했고, 100칸은 마찬가지로 2번 칸에 부었다.
[특수 인벤토리 내역]
-1- 499.7kg (282.3kg+217.4kg) / 1,500kg
-2- 755.7kg (623.3kg+132.4kg) / 1,500kg
-3- 898.2kg / 1,000kg
-4- 0kg / 1,000kg
‘다음 번 업그레이드는 50이 아니라 100씩 따지는구나.’
1번과 2번 칸은 이제 2종류를 1.5톤까지 넣을 수 있지만, 거기서 더 나아가 3종류를 넣고 싶다면 100칸을 써야 한다.
또한 무게까지 올리려면 또 100칸을 써서 500킬로그램을 추가할 수 있으니, 2백칸을 쓰면 3종류에 2톤까지 채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차라리 새로 만드는 게 낫잖아.’
기존 칸을 업그레이드하는 게 아니라, 2백칸을 별도로 쓰면 2종류를 1.5톤까지 넣을 수 있는 칸을 추가로 만들 수 있는데.
‘냄새가 나는데?’
지금의 방식을 보니, 특수 인벤토리의 슬롯 숫자가 한정되어있는 것 아닐까 싶었다.
‘아무튼, 그건 됐고.’
다른 시스템 메시지는 평범했다.
일단 신체 강화 단계가 올라갔다는 메시지가 있었는데, 그건 원래 수시로 뜨는 거였다.
‘체내 마나 최대치가 또 올랐고.’
그것 역시 올라갈 때마다 나오는 알림이었다. 그래도 새삼 처음에 비해서 최대치가 꽤 많이 오르긴 했다.
[체내 마나]
412 / 624
아마 처음이 130대였던 것 같은데, 그 시절과 비교하면 거의 5배에 달하는 숫자였다.
다만 인벤토리가 점점 커질수록 그걸 감당해야 하는 양도 많아져서, 실질 체감은 적은 편이었다.
‘음? 이건 뭐지.’
평범한 메시지들을 이쪽 저쪽으로 치워내던 그는 안쪽에 묻혀있던 알림 하나를 발견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귀하의 인적사항이 열람되었습니다.
‘열람?’
뭔소리야.
최강혁은 해당 메시지를 선택해 세부 설명을 띄웠지만, 별다른 내용이 없었다.
그저 누군가가 그의 인적사항을 열람했고, 그 대가를 지불했다는 이야기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