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8화 〉048. (48/138)



〈 48화 〉048.

“아....”

그런데, 마나통이 커지니까 간도 같이 커진 걸까? 슬그머니 다른 욕심이 고개를 들었다.

‘왕이 가지 말라고 할 정도면, 그만큼 위험하다는 이야기일 텐데.’

돌아다니면 적잖은 것들을 챙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운이 좋다면 왕급은 아니어도 50센티미터 급의 핵은 더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흐음.”

하지만 그런 욕심은 다시금 가라앉았다.
당장이 아니어도, 핵 같은 것들은 어떤 식으로든 기회가 닿으면 얻을 수 있었다.

‘결국 누군가가 먹을 테니까.’

인연이 닿는다면 또 얻을  있겠지.
아니면   없고.
애초에 지금 간다고 해서 무조건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나저나... 왕을 치료해준 게, 이런 식으로 돌아올 줄이야.’

그는 과거의 구원에 대한 보답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아마도 왕의 생각은 달랐던 모양이다.

‘마나가 이렇게 빨리 차면, 일반 인벤토리를 계속 찍어내는 것도 좋겠어.’

마나통을 꽉 채우는  멍청한 짓이다.
계속해서 소모하고 회복하다보면 자연적으로 최대량이 늘어나기도 하기에, 어떤 식으로든 소모는 해야 했다.
그러니 적당히 찰 때마다 일반 인벤토리를 만들어내는 것도 좋은 소모 방법이 될 것이다.

‘새 조합식들도 괜찮아보이고.’

‘맹독 생성’이라는 신규 스킬이 생긴 터라, 혹시 기존 스킬과의 조합이 어떨까 이것 저것 연결해보기도 했다.
그 중에서 눈에 띄는   가지였다.

[신체 강화] + [맹독 생성] = [독 저항력]
[스캐닝] + [맹독 생성] = [독성 분석]
[흡수] + [맹독 생성] = [독성 흡수]
[조합] + [맹독 생성] = [독액 제조]


‘독 저항력’은 말 그대로의 의미인 것 같았다. 위험한 세상이니만큼, 어떻게 보면 필수라고 할 수 있었다.

‘막 나중가면 만독불침 같은 것도 가능할까.’

‘독성 분석’은 여러 방향에 사용할 수 있을 만한 스킬이었다.
  한 가지는 중독된 대상의 상태나 어떤 독에 중독되었는지를 분석하는 것.
  가지는 타겟 대상을 중독시키기 위해 어느 정도의 맹독이 필요한지를 계산하는 것.

‘만들어진 독약의 수준을 분석하는 것도 가능하구나. 이것도 쓸만하겠는데.’

‘독성 흡수’ 는 살짝 애매한 스킬이었다.
중독된 대상으로부터, 혹은 만들어진 독을 흡수하는 개념이라는데 그 과정에 최강혁이 중독되는 모양이었다.

‘루팅 같은  아니라 흡수라서 그렇구나. 루팅은 따로 조합식이 안 뜨던데.’

굳이 그런 걸  일이 있을까 싶었지만, ‘독 저항력’과 함께 활용하면 의외로 쓸모가 있을 법도 했다.

‘나한테는 문제 없을 수준의 독이라면, 누군가에게서 빨아내는 정도로  수는 있겠구나.’

근데 그런 상황을 대비해 칸 하나를 배정해야 한다는 건  아닌 듯 보였다. 고개를 저은 그는 ‘독액 제조’ 스킬을 확인했다.

‘이건 미리 독액을 만드는 거구나.’

다른 재료들과 조합하여,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일반적인 독을 만드는 개념인 모양이었다.  다만 그것 역시 당장은 크게  일이 없을 것 같았다.

‘음... 독이라.’

 비겁한 이미지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효과가 확실하다면 배제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상대가 인간이 아니라 몬스터라면 굳이 비겁하다는 이야기를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굉장히 이기적인 태도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현실이 그렇다.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그 때였다.
또 약장수가 광고를 보냈나 해서, 시큰둥한 얼굴로 메시지함을 열어본 최강혁이 멍하니 눈만 껌벅였다.

[당신은 무엇을 원하십니까?]


“이건 또 무슨 컨셉이야.”

눌러보니, 약장수의 메시지와는 다른 방식의 내용이 이어졌다.

[당신이 10살 때 원한 것은?]

안에 적힌 내용은 짧았다.
하지만  아래로 뭔가 입력하는 칸이 있었다.

‘10살 때라.’

상대의 장단에 맞춰줄 필요가 있을까 싶었지만, 그래도 왠지 옛날 생각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평범한 가족.”

대충 꾸며낸 말이 아니었다.
그 시절의 그가 가장 원했던 건, 남들처럼 평범하고 평화로운 가족이었다.

“음? 음성 인식 같은 건가.”

그의 대답이 고스란히 입력된 것을 본 최강혁은 메시지가 저절로 다음 단계로 넘어가자 헛웃음을 흘렸다.

‘뭐하자는 건데.’


[당신이 20살 때 원한 것은?]

내가 20살이 넘었는지 아닌지 어떻게 알아? 같은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의 인적사항을 열람한 곳에서 보낸 것일 테니, 그런 것들을 활용한 거겠지 싶었다.

‘그나저나, 20살이라....’

많은 것들이 떠올랐다.
군생활도 생각났지만, ‘빠른 전역’ 같은 것을 떠올리지는 않았다.

‘군시절은 나름 즐거웠어. 좋은 사람들이 많았고... 미래에 대한 걱정을 할 필요도 없었지.’

그래도 말뚝을 박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웃으며 고개를 흔든 그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가족.”

평범한 가족이 아니었다.
그저, 가족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맞아. 가족이 있었으면 했었지.’

어머니는 어렸을 적 사라졌고, 아버지는 그의 학창시절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스무살의 그에겐 무슨 일을 하는지 몰라도 매일 새벽에 들어오는 누나와 점점 줄어들어 어느새 원룸이 되어버린 집. 우편함에 쌓여가는 대출 상환 독촉장 정도가 일상이었다.

‘평범하지 않더라도, 그냥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던  같아.’

중얼거리다 다시금 앞을 보니, 어느새 메시지가 다음 단계로 넘어가있었다.

[지금 당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추상적이었다.
아주 쉽게 답할 수도, 너무나 어려워서 답하지 못할 수도 있는 질문.
최강혁은 메시지창을 그대로 띄워둔 채 한참을 바라보았다.

“가족.”

그리고, 어느 순간 그의 입이 열렸다.

“행복한 가족.”

원하는 것을 물었다.
이루고 싶은 것을 묻는 게 아니었다. 그러니까... 이제는 이룰 수 없게  것이라도 괜찮지 않을까.

“누나가 행복하면 좋겠어. 그리고 나도.”

나도 행복하고 싶다.
최강혁은 그렇게 생각하는 자신이 왠지 조금 찌질하게 느껴져서 슬쩍 웃음이 나왔다.

[행복한 가족을 원하시는군요?]
[지금의 가족은 의미가 없는 수준이니까요!]
[그렇다면....]

‘글투가  짜증나네. 뜸도 너무 들이고.’

그런 생각을 할 즈음, 갑자기 메시지 창 속에서 폭죽과 불꽃놀이를 연상케하는 시각 효과가 터져나왔다.

파팡팡-!

[당신의 소원을 이루어드립니다!]
[이세계에서 새로운 인연을!]
[행복한 인생을!]
[현재 무료 상담 이벤트 중입니다!]


“.......”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던 최강혁은 이내 허탈한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뭘 기대한 거야.’

김이 팍 샜다.
메시지는 지금도 온갖 찬란한 효과와 함께 거듭 ‘이세계’  ‘새로운 인연’, ‘행복한 인생’ 따위의 문구를 강조하고 있었다.

‘아니 근데, 왜 이세계야?’

지금의 가족이 의미가 없는 수준이라는 건 좀 짜증나긴 해도 딱히 부정할  없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걸 ‘이세계’까지 가서 찾아야 하는 거냐고.

가만 보니 지구에선 행복한 가족을 만들 수 없을 거라고 놀리는 것 같아서, 솔직히 조금 화가 났다.

“삭제버튼이....”

최강혁은 여전히 열려있던 메시지를 그대로 지워버렸다. 차라리 약장수의 광고메일이었다면 이렇게 허탈하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하던 거나 마무리짓자.’

특수 인벤토리의 마지막 칸을 최대로 업그레이드했다.
이미 그렇게 하면 다음 단계로 올라간다는  알고 있었지만, 어떤 식으로 바뀔지까지는 알지 못했다.

‘무게가 늘어나면 좋겠는데. 이제 10톤도 애매해졌어.’

앞으로도 이번  같은 대규모 전쟁이 벌어질 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그래도 만일의 상황에 준비가 되어있는 편이 좋지 않을까.

“음...?”

그렇게 생각하던 최강혁은 이어진 시스템 안내 메시지를 찬찬히 읽어보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건  묘하네.”

일단 슬롯 5개는 변함이 없었다.
대신 무게 제한이 20톤 까지 해제되었고, 1톤을 올리려면 일반 인벤토리 500칸 씩을 사용해야 한다고 했다.

‘5백칸은  너무하긴 하지만, 그래도 뭐.’

그보다 눈에 띄는 건 ‘갯수 제한 해제’ 였다.
기존의 최대 업그레이드 상태에서 10개까지 넣을 수 있었는데, 그 조건이 아예 사라졌다.

‘갯수하고 상관 없이 무조건 10톤까지 채울 수 있다는 거잖아. 업그레이드하면 20톤까지고.’

이건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따라서 고급 인벤토리보다 훨씬 대단하다고 볼 수 있었다.

‘부피가 크고 가벼운 것들은 특수 칸에 쌓고, 상대적으로 작고 무거운 것들은 일반이나 고급 칸에 넣으면 되겠어.’

또한 그동안은 처리가 마땅치 않아서 적당히 처분하던 몬스터의 부산물들도 이제 개수 제한이 사라졌으니 되는 대로 모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개체 씩 계산이 되어서, 뼈 같은  많이 못 넣었지.’

크기에 비해 가치가 낮아서, 고급 인벤토리에서도 자리만 차지하는 것 같아 배제하던 것들.
하지만 이제 정말 무게가 허락하는 만큼 챙겨도 된다.

“다섯 칸을 다 20톤으로 만들려면... 2만 5천칸이 필요하네.”

갑자기 스케일이 너무 커진  아닌가 싶었지만, 그래도 장기적인 목표 하나가 생긴  같아서 나름 동기부여가 되었다.

‘일단... 지금 인벤토리 상태부터 정리를 좀 해보자. 고급 칸도 많이 늘었고, 특수칸도 재배치를 해야 할 것 같고.’

하나 하나 꺼내고 다시 루팅하는 식의 일이 아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각각의 인벤토리를 시야 가득 펼쳐놓은 최강혁은 그것들의 종류와 무게, 접근성을 고려하여 전체적으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새삼스레 예전 캠프에 있었을 때가 생각났다.

‘밤을 새워서 5칸 만들고 그랬었는데.’

어떻게든 더 많은 마나를 얻으려고, 더 많이 먹고 흡수하려 했던 기억.
잔반 수거를 도맡아 하다가, 일터가 바뀌면서 막막해졌던 기억들이 이어서 떠올랐다.

‘좋은 사람들이 많았어.’

그때를 생각해보면, 상대하기 불편한 이들만 있던 건 아니었다.
잔반 담당자도, 쓰레기장의 사수 김환수와 다른 선배들도, 고윤호나 황수찬도 다들 좋은 사람들이었다.

‘결국  사람이 문제라는 건가.’

그런 좋은 기억들을 가볍게 눌러버릴 정도로 커다랗게 자리잡은,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 이들에 대한 기억들.

‘배지현도, 양호석도 그리 다르지 않아.’

각자의 욕심에 따라 결정하고 움직이는 이들이었다. 자신의 이득을 위해 누군가를 이용하고 휘두르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느낌이었고.

‘캠프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아. 그렇다고 양호석이 사령관을 하고 있다는 그곳으로 가고 싶지도 않고.’

하지만 정말로 이곳에서 나머지 시간을 모두 채우는  좋을까에 대해선 여전히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었다.

‘내 생존을 알렸으니, 앞으로 좀 번거로운 일이 생길 것 같기도 한데 말이지.’

사라 레드우드부터 그랬다.
그녀의 인사는 ‘다음에 다시 만나요’ 였다.
또 온다는 뜻이다.

물론 그녀에게 부탁한 일들도 있으니, 적어도 한 번은 다시 만나야 하는 건 맞지만....

‘딱히 달라보이지도 않던데.’

좀 더 젊고, 매력적인 표정을 갖고 있을 뿐.
그녀의 눈웃음은 마치 남들 모르게  몸 안에 지니고 있는 금속들처럼 겉과 속이 다른 듯한 느낌을 주었다.

‘휘둘리지 않겠어.’

그 누구에게도 쉽게 이용당하지 않겠다.
그는 거듭 속으로 다짐했다.


***

“이건 또 뭔데?”

다음 날 새벽.
눈을 뜨자 마자 보이는 건 자는 동안  건가 싶은 시스템 알림이었다.
새로운 메시지가 있다고 해서 열어본 그의 얼굴이 천천히 구겨졌다.

[‘행복’하고 싶으십니까?]

‘어제 그놈들인가?’

그냥 지우려다가 멈추었다.
보지도 않고 지워버렸는데 알고 보니 다른 거였으면 후회할 일이 될 수도 있으니까.

‘메시지 수신은 따로 대가를 안 주는 건가. 그런 거라도 주면  낫겠는데.’

그렇게 메시지를 열어보니, 그 내용이 예상과 조금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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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이잖아. 미친놈들이....”

그런 것도 거래가 되는 건가.
시스템 쪽은 따로 법이나 경찰 같은 개념이 없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이어서 눈에 띄는 건 ‘행복’이라는 키워드가 도드라지게 강조되어있는 부분이었다.
마치 다른 문구를 대체해서 넣어도 될 법한 느낌인데, 잘 생각해보니 조금  것 같았다.

“이런 썅.”

어제  메일을 보냈던 놈들이 그가 했던 답변 내용을 유출시킨 게 분명했다. 그것을 토대로 또 다른 광고가 들어온 것이다.

“.......”

 짐작이 맞다는 것을, 그날에만 다섯 통의 비슷한 광고 메시지를 받아보며 확신할 수 있었다.

“이건 왜 스팸차단 기능도 없어?”

낮게 투덜거린 그는 장비를 다시 점검하며 길을 나섰다. 인벤토리에 있던 물을 대부분 써버려서, 다시금 채울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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