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2화 〉062. (62/138)



〈 62화 〉062.

“지역 스캐닝이 자동으로 된다고?!”

더 이상 이동 중에 100미터 즈음마다 스캔을 할 필요가 없다. 트럭 타고  때는 스캔하랴 주변 경계하랴 얼마나 고생했던가.

‘그건 그렇고, 이 지역의 고대에 이런 아티팩트가 있었다니....’

생각으로도 도우미와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니, 굳이 입을 열어 물어볼 필요가 없어졌다.

최강혁은 곧 자신의 궁금증을 해결했다.
이곳의 고대 유적에 모셔져있던 건 맞지만, 이곳에서 만들어진  아니라고 했다.

‘아... 우리처럼 외부인이 들어와 남겨놓고 간 거구나.’

그것은 아주 오랜 옛날에, 다른 세상에서 넘어왔던 이가 사용하던 도구라고 했다.

이후 그는 이 지역에서 높은 자리에 올랐고, 그의 사후엔 그가 지니고 있던 것들이 일종의 신물처럼 모셔졌다고.

‘유감이네. 그동안 자격을 얻은 사람이 없어서.’

유적의 벽화를 생각해보면 당시에도 인간에 준하는 지성체들이 존재했던 것 같았다.
그런데 그런 이들 중에서 마스터 권한을 물려받은 이가 없다는   이상했다.

‘최소 자격이라는 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그런 걸 통과하다니 더 이상하잖아.’

그런 생각을 하던 최강혁은 이어서 다른 추측을 더했다.

‘만약 내가 아니었다면?’

다른 사람이 그가 했던 것처럼 그 조각들을 모았다면...  사람이 자격을 얻지 않았을까?

도우미는 최소 자격이 뭔지 설명해주지 않았지만, 왠지 그럴 가능성이 커보였다.

‘쉬운 일은 아니었지. 마지막엔  마나도 일부 집어넣었으니까.’

그동안 겪은 고생들을 생각해본 그는 지금 그가 얻은 것이 그 일에 대한 보상이라 여기기로 했다.

‘고작 1년 조금 넘게 개고생한 거 치곤 너무 과한 보상일 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어쩔 거야?’

마스터 권한은 그가 죽지 않는 이상 바뀌지 않는다고 했다. 잃어버리거나 빼앗길 걱정도 없는 것이다.

최강혁은 적당한 곳에 앉아서 불을 피웠다.
왠지 도우미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대강 알아보는 것만 해도  오래 걸릴  같아서, 오늘은 이곳에서 밤을 보낼 생각이었다.

‘아주 밀폐된 공간은 아니야. 위쪽 어딘가에 공기 구멍이 있으니까 불을 피워도 문제는 없겠지.’

그렇게 작은 모닥불 옆에 앉아 쉬던 그는 이어지던 도우미의 설명을 멈추고 직전에 표시된 부분을 다시 읽어보았다.

‘처리속도?’

처리속도 향상과 호환성의 보완을 위해, 전자기기나 연산도구를 ‘흡수’하면 도움이 된다고 했다.

그의 인벤토리 안에서 예시로 든 것들은 각종 개인 단말기와 타블렛에서부터, 와일더 클랜의 아지트에서 챙겨온 자잘한 디지털 기기 등이 있었다.

‘기계를 흡수해서 능력을 올린다는 거구나.’

지금도 대단한데 능력이  올라가면 뭐가 좋을까 했더니, 같은 작업을 하더라도 마나 소모량이 줄어들고 동시에 더 많은 작업을  빠르게 수행할 수 있다고 했다.

‘흡수한다고 완전히 사라지는 것도 아니구나.’

흡수의 개념이 그가 지닌 스킬과는 달랐다. 분해해서 가져가는 게 아니라, 완제품으로 잠시 몸에 담는 느낌이었다.

추후에라도 필요할 경우 도로 꺼낼 수도 있다고 하고, 타블렛의 경우 흡수된 상태에서도 그 안에 들어있는 컨텐츠나 어플, 저장해둔 정보를 열람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 외에 완전 흡수라는 방식도 있다고 하는데, 굳이 그쪽으로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이게 더 좋은데?’

시험삼아 그가 지니고 있던 타블렛을 흡수시켜본 그는 이어서 시야 한쪽에 띄운 타블렛 화면을 보며 생각했다.

훨씬 큰 화면으로  수도 있고, 터치가 아니라 생각으로도 원하는 동작을 수행할  있었다.

‘화면 크기도 마음대로 변환이 가능해지고... 불투명이나 반투명 같은 것도 설정으로 바꿀  있고. 이거, 드라마  때 좋겠구나.’

마치 개인 영화관처럼 와이드화면으로 큼직하게 확대할 수도 있었다. 조금이지만, 화질이 보정되는 것 같기도 했다.
심지어, 그가 원한다면 그의 눈만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눈에도 보여줄 수 있다고 했다.

‘외부 노출은 마나 소모가 늘어나는 거군.’

흥미로운 기능들이 많았다.
아직은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감이 잘 안 잡히는 것들도 있었지만, 굉장한 도구인 것만은 분명했다.

‘어디 보자... 인벤토리에 있는 타블렛이... 뭐 이렇게 많아?’

와일더 클랜 아지트에서 되는 대로 쓸어담은 것들  타블렛이나 휴대폰, 단말기 같은 것들이 무척 많았다.

그냥 다 흡수시켰더니, 도우미가 추가로 행할 수 있는 것들을 알려주었다.

‘데이터 통합 관리... 어, 단말기에 코인이 있었어? 이건 내쪽으로 몰아주면 좋지.’

분명 개인의 단말기에는 나름대로 보안장치가 있을 텐데, 녀석이 흡수하면 그런 것들을 무력화할 수 있다고 했다.

‘스캐닝하고 연계하는 거였구나.’

그리고 최강혁은 그것이 도우미의 고유 능력은 아니라, 지금 그가 지니고 있는 스킬들을 활용한 연계 능력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마스터의 능력을 공유해서, 시너지 같은 걸 일으키는 거였어. 정말 좋아.’

아무튼 그의 단말기로 몰아넣은 코인의 액수가 상당했다. 그걸 쓸 일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당연히 없는 것보단 나았다.

‘다른 타블렛에 있는 자료들이... 이건 누구 거야?’

야동만 한가득인 타블렛도 있었지만, 그건 양호한 수준이었다.
누군가의 타블렛엔 아마도 그 주인이 죽인 것으로 보이는 이들의 사진들이 폴더별로 정리되어있었다.

‘뭐 이런 미친 놈이....’

죽은이의 이름과 대략적인 소속, 죽은 장소가 폴더명이었다.  안에 들어있는 건 죽기 전의 모습과 죽고 나서의 모습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미쳤다는 생각 밖에 안 들었다. 이런 걸 수집하는 것도 그렇고, 애초에 이것을 위해서 사람들을 죽인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이런 걸 싸이코패스라고 하던가.

‘지우진 말아야지.’

이 또한 나름의 증거가 되어줄 것이다.
어쩌면 고향에 있을 가족들이 그들의 죽음을 알지 못할 수도 있고.

‘평생을 기다리는 것보다, 차라리 일찍 슬퍼하는 게 낫잖아.’

그는 어설픈 동정이나 희망고문을 싫어했다.
자료를 잘 두기로 한 그는  외에도 자잘한 것들을 정리하고 쓸모 없을 만한 것들도 일단은 남겨두었다.

‘이런 것도 있었구나.’

개중에는 지도 파일도 있었다.
와일더클랜 내부에서 사용하는 것으로 보였다.

손으로 그린 거라서 실제 지형과 차이가 있을 것 같지만, 그래도 산을 경험한 그는 대충 어디가 어디인지 알아볼 수 있었다.

‘다른 거점들이 표시되어있어.’

분명 대박자료다.
그가 직접 찾아갈 필요는 없지만, 어느 캠프에 넘기든 적잖은 값을 받을  있을 것이다.

‘좋았어.’

 외에도 많은 것들을 할  있었다.
심지어 그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들이 가능해졌다.

‘그런 게 된다고?’

도우미의 형체를 이루고 있는 금속은 시스템도 알지 못하는 것이라 했었다.
자가 복구는 어떻게 가능한 건지 궁금해서 알아보니, 그가 기대하지 않았던 활용법이 툭 튀어나왔다.

‘마나든 뭐든, 에너지원을 활용하면 원하는 물질을 만들 수 있다고?’

충분한 에너지만 공급된다면, 마치 녀석이 스스로를 고쳤듯 어떤 것이든 생성해낼 수 있다고 했다.

심지어 그가 스캔해두었지만 재료가 없어서 만들지 못하고 있던 것들도 만들 수 있다고 하니, 이거 치트키라도 얻은 거 아닌가 싶어 어안이 벙벙해졌다.

‘이게 만약 현실이 아니라 게임이라면, 저새끼 게임 좆같이 한다고 욕먹을 수준이잖아.’

그동안 고민하거나 미뤄두고 있던 많은 것들이 무의미해졌다. 당장 저격소총의 총열 부분도 완전히 동일한 재질로 추가 제작이 가능해졌다.

‘한방에 팍 찍어내는  아니구나. 하긴, 그런 것까진 기대  했어.’

천천히, 마치 3D프린터로 제작하듯 한쪽 끝에서부터 만들어가는 방식이라고 했다.
다만 흡수한 것들 덕에 처리 속도가 빨라져서, 그런 부분에서도 도움이 될 거라고.

그리고, 물질 생성에는 핵심 조건이 있었다.
만들고 싶은 것과 동일한 물질을 실제로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건 문제 없지. 이미 있는 걸 추가로 만들고 싶은 거니까.’

만들고 싶었던 것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 중에서 가장 시도해보고 싶었던 건 따로 있었다.

[작업 수행을 위한 에너지원이 필요합니다.]


‘어... 이거로 하자.’

인벤토리에 쌓여있던 각종 잡동사니들을 시스템에 넘기지 않고 녀석에게 주었다. 인벤토리  칸 늘리느니 그런 식으로 쓰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모자라면 이야기하고. 혹시 작업 중간에 에너지가 모자라면 실패하는 건가?’


[아닙니다.]
[멈췄던 작업은 언제든 이어갈 수 있고, 마스터의 의사에 따라 언제든 작업을 종료할 수도 있습니다.]


작업 예상 완료 시간은 5시간 후라고 했다.

‘좀 오래 걸리긴 하네.’

일단 주변의 바닥을 정리하고 잠자리를 만든 그는 모닥불에 고기를 굽고 물을 끓였다.

‘이게 맛있으면 말뚝 박는 게 좋을 거라고 하던데.’

팔팔 끓인 물로 전투식량을 데워먹었다.
과거보다 개선되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맛으로 먹는 종류는 아닐 텐데, 이상하게 입에 맞았다.

‘물을 끓이는 것도 가능하다고?’

[끓이는 것과는 다릅니다.]
[이미 끓고 있는 물을 별도로 저장해두신 후, 그것을 데우지 않은 물과 조합 스킬로 연결하시면 끓는 물 상태로 통합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과정에 마나가 소모됩니다.]


‘그야 조합을 할 때는 당연히 마나가 들지.’

그런 식으로 물을 끓일 수 있는 줄은 몰랐다.
그가 혼자였어도 가능한 일이라지만, 도우미가 없었으면 언제 알아냈을 지도   없는 일이었다.

‘괜히 물 끓일 때마다 눈치보면서 불 피웠잖아.’

속으로 불평하던 그는 문득 다른 것이 떠올랐다.

‘어....’

물은 충분했다.
아니, 많았다.

“흐흐.”

누가 들으면 기분나쁘다고 할 법한 웃음.
그는 인벤토리 구석에 있던 빈 소총 상자를 이리 저리 만져보며 빈틈을 없애고, 내부를 매끈하게 가공한 후에 앞에 꺼내놓았다.

“이정도면 욕조지 뭐.”

도우미가 알려준 방법으로 물을 끓이고, 그렇게 펄펄 끓는 물을 급조한 욕조에 적당히 채웠다.

차가운 물을 추가로 부어 온도를 조절한 그는 걸치고 있던 것들을  벗고 조심조심 그 안에 몸을 담갔다.

“......최고야.”

목아래까지 잠길 정도 크기는 아니었지만, 그 정도로도 충분했다.
오랜 시간 누적되었던 근육의 피로가 녹아내리고, 원인 모를 두통마저 조금씩 가라앉았다.

‘워, 때좀 봐.’

물 속에서 적당히 문지른 수준임에도, 샤워만으로는 벗겨지지 않았던 오래묵은 때와 각질이 아무렇지 않게 떨어져나왔다.

‘어우, 더러운 놈아.’

최강혁은 중간 중간 루팅으로 그런 것들을 제거하여 물을 깨끗하게 했다.

물이 좀 식을 것 같으면 일부 물을 뜨거운 물로 바꿔가며 온도를 유지하니, 거의 30분이 넘도록 뜨끈한 물을 즐길 수 있었다.

‘더 있으면 녹아서 죽을 것 같아.’

적당히 하고 나가기로 했다.
다시금 정화한 물로 머리를 감고 몸을 닦아낸 그는 깨끗한 새옷으로 갈아입고 나니  없이 상쾌한 기분이 되었다.

[완성되었습니다.]

목욕도 했겠다. 기분도 좋겠다.
잠자리에 누워 꾸벅꾸벅 졸고 있던 그는 문득 시야 한쪽에 떠오른 도우미의 안내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 그거구나.’

살짝 비몽사몽해서, 보면서도 그게 뭘까 생각하고 있었지만 곧 정신을 차렸다.
그렇게 꺼낸 건 평범한 돌격소총이었다.

“.......”

그 옆에 부착된 특수장치에 마나를 넣고, 이런 저런 버튼을 누르다가 발사도 해보던 그는 결국 참지 못하고 입을 열어 소리쳤다.

“아티팩트가 복사가 된다고!”

돌격소총은 그가 원래 지니고 있던 게 맞았다.
하지만 보조장치는 아니었다. 스캔해둔 데이터대로 도우미에게 제작을 지시했을 뿐이었다.

‘내가 한 거랑 도우미랑 한 거랑 무슨 차이지?’

들어간 금속의 차이일까?
그가 알지 못하는 특수한 무언가가 내부에 들어있던 걸까?

‘하지만, 아티팩트잖아.’

아티팩터가 있어야 만들 수 있는 것 아닌가? 마나를 불어넣든 스킬을 쓰든 할 것 같은데.

‘모르겠다. 나는 모르겠어.’

그저 지금 알 수 있는 건, 그렇게 만들어진 장치가 아무 문제 없이 잘 작동된다는  뿐이었다.

‘응용... 가능할까.’

해보고 싶은 것도 생겼다.
해당 장치의 결합부위를 바꾸어, 다른 일반 소총에도 쓸  있게 할 수 있는지의 여부였다.

‘디자인은 예전에 스케치해둔  있었지.’

도우미에게 그것을 설명하고 작업의 성공 여부를 물어보니, 정확히 알 수 없다고 했다.

‘그저 지정한 대로 제작할 뿐이라는 거군.’

그래도 일단 시도해보았다.
만약 일반 소총에도 해당 장치를 부착하고 활용할  있다면, 굳이 돌격소총을 고집할 이유가 없을 테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