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8화 〉098.
“이쪽부터는 구입이 가능하신 유물들이 있으니, 관심있게 보아주세요!”
근처에 있던 가이드가 사람 좋게 소리쳤다.
엘리사벳과 비슷한 느낌의 여성이었는데, 아마도 전직이 따로 있었는지 신체 단련 수준이 일반인은 아니었다.
“구입 가능한 유물이라는 건, 재현된 종류구나.”
“원본을 팔지는 않겠죠.”
에밀리아가 웃었다.
그러면 유물이 아니지 않나 싶었지만, 나름 상술도 끼어있는 거겠지 생각했다.
“당신이 찾는 건 안 보여요?”
“음. 다른 층도 더 볼까.”
위층으로 올라갔다.
유물이라는 게, 진짜 유물도 있다는 걸 새로 알게 되었다. 정체 모를 뼈다귀나 화석 같은 것도 다른 세상에서 건너온다는 것이다.
‘이쪽은 진짜 박물관 같네.’
의문의 뼛조각, 의문의 화석 이라고 하지만 그에게는 아니었다. 스캔을 해보면 그 주인이 나왔다.
전체 형상까지는 아니지만, 경우에 따라선 제대로 된 이름까지 나오기도 했다.
‘알려주고 싶은데, 근거가 없으니.’
고향에서 온 유물도 발견했다.
분명 지구의 것이었다.
[유물 악기]
-소리가 나지 않음.
-고장이 난 것으로 보인다.
일렉트릭 기타였다.
앰프에 연결하지 못하니 제대로 된 소리가 나올 리 없겠지.
‘그래도 악기인 건 용케 알아냈네.’
유물 학자라는 이들이 나름 실력이 있는 모양이다. 에밀리아에게 고향의 악기라고 말해주니,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소리가 안 난대요. 고장이 맞아요?”
“연결해야 하는 다른 부품이 있거든. 그게 없으면 원래 소리가 안 나와.”
“원래 소리는 어때요?”
“음... 강렬하지.”
“궁금해요.”
“나중에 들려줄게.”
“악기가 있어요?”
“없긴 한데, 영상하고 소리는 있어.”
“아....”
그녀는 최강혁이 가진 마법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서 계속 구경하다 멈춘 곳.
다른 이들도 많이 머물러있는 부스가 있었으니, 다름아닌 ‘배’와 관련된 전용 대형 부스였다.
“배도 유물이었어?”
“네. 전체는 아니고요.”
일부만 건너왔다고 했다.
그것을 오랫동안 연구하고 발전시켜서, 지금의 비행선박으로 구현해냈다고.
그 시작점에 대한 자료와 더불어, 원본을 그대로 복제한 당시의 유물과 부품들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음. 형태만 복제한 건가.’
혹시나 해서 스캔을 해보았지만, 단지 쇳덩어리일 뿐이었다.
마법 장치는 나름대로 마나 회로라고 할 만한 것들이 같이 스캔되는데, 지금 것들은 그게 없었다.
다만, 아내가 열심히 그리고 있던 것이 역시 배의 심장이 맞았다는 건 새삼 알 수 있었다.
‘저렇게 생겼구나. 생각보다 훨씬 크네.’
사람보다 커다란, 대략 지름 2미터의 금속 구체가 모형으로 세워져있었다.
그 겉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선과 기호, 각종 문양들이 가득했다.
‘이게 최초로 건너온 배의 심장이라는 거구나. 지구 물건은 확실히 아닌 것 같은데.’
대체 뭘 어떻게 하면 그 무겁고 커다란 배를 하늘에 띄울 수 있는 걸까. 그런 게 존재하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만약 그것을 지구로 가져간다면, 그곳에서도 같은 효과를 보여줄 수 있을까?
그곳은 더 대단한 것들이 많이 돌아다니지만, 그래도 이건 공기오염은 안 시킬 것 같은데.
“이곳은 참여 가능한 부스입니다! 관심 있는 유물을 직접 만져보세요.”
그런 곳도 있었나.
가이드의 소개를 듣고 가보니 나름 흥미로운 것들이 많았다.
“상상한 색깔을 그대로 구현해주는 펜입니다. 잉크 대신 마나를 소모합니다. 이쪽으로... 초소형 마나 배터리를 넣을 수 있죠.”
“연료가 필요 없는 발화장치입니다. 다만 사용자의 마나를 연료로 삼기 때문에, 오래 켜고 계시면 피곤해질 수 있으니 주의해주세요.”
“주변의 먼지를 자동으로 모아 고체화시켜주는 돌입니다. 접촉할 경우 효과가 훨씬 강해지니, 입고 계신 옷 위로 가볍게 스치듯이 문질러보세요. 깨끗해질 겁니다.”
“물을 연료로 사용하는 램프입니다.”
“체온을 올려주는 반지입니다.”
조금 약팔이 비슷한 느낌의 유물도 끼어있었지만, 사기는 아니었다. 진짜로 착용하는 순간부터 몸에 열기가 느껴졌다.
‘재료가 어렵진 않네.’
최강혁은 그곳에 있는 유물들을 모두 스캔했다. 당장 그의 인벤토리에서 만들 수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있었다.
이곳 사람들이 기겁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유물들을 조합스킬로 섞는 것도 어느 정도까진 가능해보였다.
‘작동 여부도 미리 알 수 있으니까.’
지금 당장 가능한 건 배터리 기능을 빼고 자체 충전으로 바꾼 형식의 ‘무잉크 펜’ 이었다.
여러가지 필요한 재료는 이미 그의 인벤토리에 있었기에, 도우미에게 지정하여 제작을 시작했다.
‘좀 무거우려나.’
아내가 그림을 그리니까 필요해보였다.
손에 잉크가 묻어있는 걸 자주 보았으니.
‘혹시 무거우면, 크기를 더 작게 만들어봐야지. 마법사니까 마나 저장량이 적어도 그때 그때 충전하면 되잖아.’
그런 생각이 든 김에, 아예 더 작은 모델을 새로 지정하여 동시 제작을 하기로 했다.
“이쪽부터는 아직 용도가 불분명한 유물들이 전시되어있습니다. 직접 만져보시는 건 불가능하다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다른 층으로 올라가니, 지키는 이들의 숫자부터 달랐다.
아직 정체가 확인되지 않은 유물들이라는데, 이 도시 근방에서 수집된 것들이라고 했다.
‘저게 왜 여기 있어.’
그곳에서 고향의 물건을 또 보았다.
아마도 배터리가 방전되었을, 충전식 전동드라이버의 몸체였다.
굳이 스캔할 필요는 없었다.
저것보다 상위 모델을 이미 캠프에서 스캔해두었으니까.
‘음... 그래도 하지 뭐.’
거리가 조금 떨어져있어도 스캔은 가능하니, 일단 해두었다.
‘그나저나, 총알은 없네.’
역시, 이런 곳에 있을 만한 건 아닌 모양이다.
어쩌면 큰 도시가 아니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만약 유물로 건너왔다고 해도 오래 되어 변질될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너무 크게 기대하지는 말아야겠어.’
결국 원하는 걸 얻지는 못했다.
하지만, 나름 얻어가는 게 많았다.
이런 저런 유물들의 스캔 데이터도 확보했고, 관람 자체도 좋은 경험이었다.
다른 도시에도 비슷한 유물 상점들이 있다고 했다. 도시마다 특색이 다르니, 그런 곳들을 방문하려고 돌아다니는 이들도 있다고.
특히 선착장이 있는 도시의 경우, 그런 지역 특화된 관광명소들로 외부 방문객들을 유치하며 돈을 번다는 모양이다.
“좀 쉬었다 갈까.”
다들 젊으니 여전히 쌩쌩한 모습이었지만, 그래도 근처에 주스 가게가 있으니 그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그는 본격적으로 용병 서류를 분류했다.
‘실패율이 50퍼센트 이상 되는 경우 제외.’
-32명이 제외되었습니다.
‘20명 이상 동원된 의뢰만 수행한 경우 제외.’
-52명이 제외되었습니다.
‘의뢰 도중 이탈한 건수가 3건 이상 되는 경우 제외.’
-102명이 제외되었습니다.
‘뭐? 왜 그렇게 많아. 다시 취소하고... 5건 이상 되는 경우 제외.’
-71명이 제외되었습니다.
‘원래 그렇게 중간 이탈을 많이 하나? 평균 이탈 숫자가 어떻게 돼?’
-평균 5.4건입니다.
‘음.’
위험한 의뢰들이거나, 아니면 중간에 위험한 일이 터져서 해산된 경우도 이탈로 치는 걸까. 생각보다 건수가 많았다.
‘그래도, 주로 이탈하는 사람들이 많이 하는 건 맞는 것 같네.’
분석 데이터를 훑어본 그는 해당 기준을 제외하지는 않았다.
‘의뢰주와 마찰을 빚은 경우 제외.’
-37명이 제외되었습니다.
그렇게 계속해서 조건을 걸고 털어냈다.
3백명대였던 인원이 줄고 줄어 1백 안쪽까지 들어갔고, 거기서 몇 번 더 털어내니 70명까지 줄었다.
‘부상 이력 없는 경우 제외.’
-32명이 제외되었습니다.
이건 좀 고민했다.
실력이 좋아서 안 다친 것일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빼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털어낸 대로라면 위험한 의뢰가 분명 끼어있을 텐데, 거기서 혼자만 다치지 않았다는 건 결국 뒤로 피해있었거나 남들을 방패삼았다는 뜻이니까.
“비약이 심할 수도 있어. 그게 현명했다고 볼수도 있고. 그래도, 그런 사람들을 고용하고 싶진 않아.”
“당신 생각도 일리가 있어요.”
분류 내역은 주욱 일행과 공유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가 어떻게 서류를 모두 확보하고 그것을 머릿속으로 분류하는 건지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이미 놀랄 만한 일을 충분히 겪고 있는 터라 그리 이상하게 여기진 않았다.
“혹시, 검은 이빨과 관련된 의뢰를 수행한 경우만 따로 추릴 수도 있지 않을까요?”
엘리사벳이 이야기했다.
“그건 벌써 해두었어. 15명 있고, 제외된 인원 중에는 21명.”
“15명이라....”
흥미로운 건, 그 15명이 모두 한 용병단 소속이라는 점이었다.
그러고도 ‘20명 이상 동원된 의뢰만 수행한 경우 제외’ 라는 조건에서 제외되지 않았다는 건, 해당 인원만으로 의뢰를 수행하고 있다는 뜻이었고.
“10명에서 20명 정도의 규모라면 그럭저럭 자주 보입니다. 보통은 소수로 쪼개서 의뢰를 다니기도 하지만, 의뢰비를 깎더라도 한 덩어리로 가는 경우가 더 많죠.”
아직 이름값이 떨어지는 이들의 경우, 그렇게 숫자를 늘려서 성공률을 올리는 식으로 명성을 쌓아간다는 모양이었다.
“어떤 의뢰였는지 알 수 있습니까?”
“검은 발톱이 주 목적이었던 건 아닌 모양이야. 단순 상행 호위였는데, 중간에 습격을 받았던 것 같아.”
의뢰 결과가 실패로 적혀있지 않은 것을 보면 처치했든 방어했든 상단을 지켜낸 건 분명해보인다.
“일단 이 15명 용병단을 염두에 둘게.”
“그게 좋겠습니다.”
“나머지는 가서 직접 보면 되겠고.”
***
낮에 왔다 그냥 갔던 손님이 다시 왔다고 하니, 마침 바쁘던 사무소 담당자는 그때 응대했던 직원을 대신 보냈다.
“어서 오십시오!”
1골드의 효과가 아직 남아있던 걸까.
한껏 공손하게 안내한 직원은 부탁하지도 않은 차를 내오기도 했다.
“이름과 나이를 기억하십니까? 적어주시면 더 빨리 찾아 호출할 수 있습니다.”
“이름이라. 급수 같은 것도?”
“아. 그게 있으면 더 좋죠.”
그러고보니, 비슷한 이름이 많았다.
하여 다 털어내고 남은 30명 정도의 용병을 적어주고, 이어서 15명 규모 용병단을 별도로 적었다.
“아, 참. 그리고 지정 호출의 경우엔 한 명당 방문 수고비로 1실버를 주셔야 합니다.”
“그건 알고 있었어요.”
에밀리아가 주머니를 열어 해당 금액을 지불하니, 직원이 얼른 받고 수령증을 적어 건네었다.
“경우에 따라선 오래 걸릴 수도 있습니다. 언제까지 기다리실 수 있을까요?”
“해가 지기 전 정도면 될 것 같은데요. 그 이후에도 안 오면 별 수 없고.”
“그렇게 전달하겠습니다.”
다시금 공손하게 인사한 직원이 물러났다.
문 밖에서 후다닥 달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돈이 좋긴 좋아.”
푸훗.
뜬금 없는 그의 말에 아내가 웃음을 터뜨렸다.
“괜찮으면, 같이 가실 거예요?”
“그래야지. 괜찮으면.”
해가 질때까진 시간이 좀 남아있었다.
저녁식사를 해야 할 것 같지만, 그럴 필요는 없었다. 그는 인벤토리에서 뭔가를 하나씩 꺼내어 일행에게 나눠주었다.
“맛있을거야. 아마도.”
기름종이에 쌓여있는 바게트 샌드위치였다.
고향의 것과 아주 같지는 않지만, 이쪽에서 얻은 재료로 비슷하게 구현해보았다.
‘오다가 시장을 들른 건 좋은 선택이었어.’
조미료와 향신료를 종류별로 소량씩 구매했다. 한 종류만 그만큼 사면 주인이 화를 냈을 것 같은데, 전체 가격을 따지면 나름 되어서인지 방긋방긋 웃었다.
‘소량씩 샀는데도 가격이 상당했지. 역시 향신료야.’
식당 음식이 싱거운 것도 이해가 된다.
소금이 아주 비싼 건 아니지만, 그래도 아무렇게나 넣어 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아무튼 그렇게 구입한 것들은 현재 그의 인벤토리에서 ‘복사’중이었다. 지금 꺼내 나눠준 것들에도 적절하게 쓰였고.
“이거, 다 먹을 수 있을까요?”
“그러게....”
조금 과장하면 팔뚝 길이의 빵.
세로로 갈라진 빵 사이에 듬뿍 채워진 채소와 고기, 향긋한 소스.
그렇게 우려하던 루시아와 베티가 오히려 제일 먼저 다 먹었다. 그 다음이 헤인즈였다.
“이거....”
“팔아도 되겠지?”
“예.”
“나중에, 생각해보고.”
정 할 게 없으면 음식점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긴 하다.
이런 식으로 만들어 팔면 자리 차지를 안 할 테니, 회전율도 좋을 테고.
‘가성비가 문제지. 비싸면 안 팔릴 거야.’
그렇게 다들 식사를 마쳤다.
그 때 가장 먼저 도착한 용병들이 있었다.
다름아닌, 그들이 15명 용병단이라고 칭하고 있던 ‘붉은 도마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