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6화 〉106.
“.......”
그런데, 다시 보니 이상하긴 했다.
비슷하긴 했지만 차림새가 달랐다.
그리고, 언뜻 맡았던 약간의 땀냄새가 물냄새와 비누냄새로 바뀌어있었다.
“나중에 설명해줄게.”
남편은 그렇게 얼버무렸다.
혹시 정령술이라도 배운 걸까 궁금했지만, 에밀리아는 일단 하던 일을 마저 이어갔다.
그 때, 엘리사벳이 막사 안으로 들어왔다.
“영주성의 병사들이 주변을 돌고 있습니다. 사람들을 확인하고 있는 것 같은데, 정작 자기들도 뭘 확인해야 하는지 모르는 눈치더군요.”
“그렇겠지.”
최강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성벽 바깥은 신분패가 없어도 올 수 있는 곳이다. 온갖 인물들이 모여드는 만큼, 그 중에서 누가 수상한 자인지 파악하는 건 애초에 불가능하다.
“험상궂게 생기면 일단 잡아가는 것 같더군요.”
“...흠. 신분패가 있으면 괜찮겠지?”
“아마 그럴 겁니다. 명분이 없으니까요. 성문 안쪽도 아니고.”
아직은 아침이 오지 않았지만, 다들 주변의 소란 때문인지 깨어나있었다.
“좀 시끄럽긴 하네.”
그는 막사 안쪽 벽 가까이에 얇은 나무판자 같은 것들을 여럿 세워 박았다.
그리 대단한 차이는 없었지만, 그래도 외부의 소음과 새벽의 냉기가 조금은 막히는 것 같았다.
“뭐. 기왕 다들 일어난 것 같으니까... 궁금하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다들 그렇다고 했다.
스토브 주위에 의자를 놓고 앉았다.
갓 끓여진 차와 쿠키를 먹는 중에, 최강혁은 간밤에 있었던 일들을 적당히 간추려 설명해주었다.
“마법사들이었다고요?”
“전부 다는 아니고, 열 몇 명 있었어.”
“그런 용병집단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 없었습니다.”
“그렇겠지. 자기들도 용병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더라고. 등록같은 것도 안 한 모양이고.”
그의 말대로라면 주변이 시끄러운 게 당연했다. 무려 도시의 지배자가 가둬놓은 죄수들을 탈출시킨 거니까.
“그래서 말인데, 적어도 이틀에서 사흘 정도는 여기에 머무는 게 좋겠어. 나는 볼일이 있어서 오늘 들어갔다 나오긴 해야겠지만.”
“그게 좋겠어요. 생필품도 어제 샀고.”
에밀리아도 동의했다.
성 밖이야 잠시 소란스러운 정도지만, 도시 안쪽은 그야말로 장난이 아닐 테니.
“그럼 그렇게 하고.”
이야기를 정리했다.
헤인즈를 데리고 막사를 나왔다.
“추가 말씀입니까?”
“비슷한 면적으로 더 얻을 수 있을까 해서요. 바로 옆이 비어있던데요.”
“그야 문제 없지요.”
캠프 관리 상단에 추가 요금을 지불했다.
옆으로 더 넓힌 공간에 막사 한 동을 더 지어, 실내 수련장으로 꾸몄다.
‘외부에 보이기 애매한 것들이 많으니.’
그가 주로 사용하는 훈련기구는 이쪽에 없는 것이 많았다.
보여주더라도 크게 문제될 건 아니겠지만, 이런 저런 이들이 궁금해거나 물어보는 건 번거로웠다.
“번갈아서 와.”
“알겠습니다. 일단 저부터입니까?”
헤인즈와 엘리사벳을 번갈아 불렀다.
사실 전투 기술의 이론 쪽이야 오히려 엘리사벳이 더 낫다고 봐야한다.
그러나 적어도 그들의 신체, 즉 골격과 근육, 각종 관절과 인대 등등의 정확한 상태를 파악하고 동작을 교정해주는 일은 이곳에서 그만이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날이 밝았다.
아침 식사를 한 후에 그곳을 나섰다.
‘열렸네?’
폐쇄되었던 성문이 다시 열려있었다.
입장을 위해 기다리는 이들 사이에서 ‘선착장 공사가 재개되었다’ 라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도적들이 일부 탈출했고, 나머지는 배 위에서 죽었다고.
‘잘 정리된 건가.’
건설 현장이 정상화되었으니 성문을 다시 개방한 것 같다는데, 병사들의 분위기를 슬쩍 살펴보니 그런 이유만으로 이러는 건 아닌 듯 했다.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은데.’
퇴로를 열어주고 유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아직 성 안에 잔당들이 남아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아닐까.
‘나한텐 잘 됐지.’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건 상대적으로 수월한 편이었다. 신분패를 보여주고, 서명을 했다.
“도시 방문 목적.”
“아. 경매장 방문도 있고, 선착장 현장에서 지인을 만나기로 했습니다.”
“선착장?”
“예. 인부로 일하고 있다더군요.”
“인부라... 알겠소.”
조금 관심을 끈 것 같긴 한데, 당장 트집을 잡을 정도는 아닌지 그대로 보내주었다.
‘어디 보자.’
일단은 경매장부터 찾아갔다.
사실 워낙 많은 곳을 돌아다닌 탓에 가는 길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지만, 도우미가 네비게이션이 되어주었다.
“217골드요?”
“예. 입찰자가 좀 있었습니다.”
거대 곰가죽이 첫 경매에서 낙찰되었다.
몬스터의 핵은 아마 지금 경매 진행 중일 거라고 이어서 알려주었다.
‘너무 일찍 왔나.’
다 끝났을 줄 알고 온 건데, 좀 기다려야 할 모양이다. 차 대접을 받으며 앉아있으니, 대략 30분 쯤 후에 담당자가 찾아왔다.
“어떻게 됐습니까?”
“당연히 낙찰되었습니다.”
낙찰 가격은 642골드.
감정사가 이야기했던 ‘520에서 550’보다 훨씬 높은 가격이라 의아했는데, 경쟁이 붙어서 그렇게 되었다고 했다.
“작은 것들을 모은 것보다, 더 큰 한 덩어리가 효율이 좋거든요. 클수록 가격이 올라가죠.”
“그렇군요.”
큰 것도 몇 개 만들어두는 게 좋을까.
어차피 시간 나는 대로 계속 작업하면 크기는 추가로 키울 수 있으니까. 구별 안 되는 모양이고.
‘워....’
그렇게 곰가죽과 몬스터 핵을 합쳐 859골드의 낙찰대금이 확정되었다.
경매장에 수수료를 떼어주고 나니, 결과적으로 그가 손에 쥔 돈은 687골드 2실버였다.
“다음에도 좋은 상품이 생기시면 꼭 저희 경매장을 이용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예. 고생하셨습니다.”
낙찰과 거래 관련 서류를 작성하고, 한 부를 넘겨받았다.
금화가 묵직하게 담긴 고급스런 천주머니.
고스란히 인벤토리에 집어넣은 그는 어제 저녁에 갔었던 과일주스 상점에 들러, 식구들이 마실 주스를 산 후에 선착장 공사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중간에 방향을 틀었다.
이어서 이리 저리 돌아다녔는데, 마지막에 들른 곳은 마법 상점이었다.
아내와 다른 이들에게 줄만한 물건이 있을까 구경해보려던 생각이었지만, 사실은 다른 이유가 더 있었다.
‘몇 명이야?’
-세 명입니다. 두 명이 8시방향, 한 명은 4시 방향입니다.
‘같은 소속이 아닌 것 같다고?’
-서로의 존재를 모를 가능성이 있어보입니다.
‘두쪽 다 나를 따라오는 중이라 이거지.’
-예.
어디서 꼬리라도 잡힌 걸까.
휴식용으로 설치된 벤치에 앉았다.
주스 하나를 꺼내 마시며, 시야 한쪽에 스크린을 띄웠다. 그를 미행하고 있는 이들의 외모와 차림새가 고스란히 찍혀있었다.
‘이쪽은 뒷골목 사람들인 것 같은데.’
간밤에 그쪽을 들쑤시고 다녔으니, 누군가의 눈에 띄었어도 이상할 일은 아니다.
그들은 돌아다니던 그가 벤치에 앉아버리니 더 쫓지 못하고, 그저 구경꾼들인 것처럼 근처의 부스를 적당히 배회하는 중이었다.
반면, 나머지 한 사람은 좀 특이했다.
‘애잖아.’
성인과 엇비슷한 키를 갖고는 있지만, 그 골격이나 외모를 보면 잘해봐야 헤인즈 정도 될 나이였다.
‘헤인즈는 너무 삭았지.’
소년.
아무리 잘 쳐줘도 청년까진 아닌 녀석은 다른 두 미행자와 달리 쭈뼛거리면서도 그가 앉은 벤치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몰래 쫓는 게 아니었나본데.’
그쪽을 보니, 녀석이 어깨를 움츠렸다.
‘영양 상태가 안 좋군.’
차림새는 평범했다.
하지만 이쪽에서 평범한 수준은 그리 좋은 상태가 아니라고 할 수 있었다.
“나한테 용건이 있나?”
“...마법사, 맞으시죠?”
“그건 왜 궁금해하지?”
녀석은 세 걸음 앞 정도에 멈춘 채로 뭔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 즈음, 도우미가 녀석이 어디서부터 따라온 건지 분석 결과를 보여주었다.
‘주스 가게 근처? 아... 인벤토리에 넣는 걸 본 건가.’
그랬다면 마법사라고 생각할 법도 했다.
하지만, 그래서 뭘 어쩌라는 걸까.
‘재촉하거나 겁주면 도망갈 것 같은데.’
일단 무슨 일인지 들어보기로 했다.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니, 한참을 머뭇거리던 소년이 닫혔던 입을 떼었다.
“동생이 있어요. ...아.”
옆자리를 턱짓하는 그의 모습에 하던 말을 멈춘 소년은 조심조심 그곳에 가서 앉았다.
“어려서부터 허약했거든요.”
“듣고 있다.”
“그... 얼마 전부터 이상한 일이 생겼어요.”
가만히 들어주었다.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었다.
하지만, 짐작가는 바는 있었다.
마법사일 것 같다는 이유로 그를 따라온 이유도 알 것 같았다.
“일단 한 가지 말하자면, 난 마법사가 아니다.”
“아....”
“하지만, 내 아내가 마법사지.”
“......?”
그가 한 마디 할 때마다 소년의 표정이 지옥과 천국을 오갔다.
그렇게까지 기뻐할 일인가 싶었는데, 이어진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동안 누구도 소년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지 않았다는 모양이었다.
“그러면, 아버지 소식은 거기서 끝난 거고?”
“네. 다들 돌아가셨을 거라고....”
미등록 용병.
용병단이나 상단의 예비 인력으로 분류되는, 흔히 이야기하면 짐꾼.
소년의 아버지는 짧게는 몇 주, 길면 몇 달만에 한번씩 집에 돌아왔다고 했다.
하지만 몇 년전 어머니가 다른 남자와 달아나버렸고, 이후로는 소년이 집안의 가장처럼 되었다고.
‘어디서 비슷한 이야기를 들어본 것 같은데... 시발. 나잖아.’
주정뱅이 아버지도 아니고, 동생이 아니라 누나지만... 이어진 이야기는 왠지 동질감 비슷한 게 느껴졌다.
‘하긴. 이쪽 세상은 고아들이 많다고 했으니.’
그럴 만한 세상 아닌가.
전쟁이 있고, 괴물들이 돌아다니는데.
뒷골목 도적놈들은 돈만 빼앗는 게 아니고.
“그동안 뭘 해서 먹고 산 거야?”
“여기 저기서 일을 했어요. 제가 나이에 비해선 덩치가 좀 있어서....”
“나이를 속였군.”
“그, 그러진 않았어요. 단지, 그런 이유로 돈을 제대로 못 받긴 했지만요.”
“하긴. 성벽 바깥이 아니니까.”
“.......”
동생 하나 먹여살리는 건 어떻게든 하고 있었나본데, 근래 들어 벌어진 이상현상에는 감당이 안 되었던 모양이다.
주변에 마법사가 보이면 어떻게든 물어보려고 했지만, 후줄근한 차림새의 소년에게 관심을 보이는 이들은 많지 않았을 법도 하고.
“일단... 여기 있어봐라. 해결할 일이 있으니까, 정리하고 오마.”
“아.”
녀석은 그가 그대로 떠날 거라 생각했는지, 실망감을 애써 감추는 표정이었다.
최강혁은 그런 녀석에게 인벤토리에 쟁여놓고 있던 바게뜨 샌드위치 하나를 반으로 토막쳐서 꺼내주었다.
“먹고 있어.”
“......?”
“네 동생 것도 따로 있으니까, 남겨둘 생각 하지 말고 꼭꼭 씹어 먹어라. 키는 좀 커보이는데, 몸 상태가 엉망이야.”
“...고맙습니다.”
“맛있다고 막 먹지도 말고. 체하기 딱 좋은 상태던데. 이거 같이 마시고.”
주스도 한 컵 꺼내주었다.
그리고 나서 움직인 곳은 여전히 주위를 맴돌고 있던 두 미행꾼들 쪽이었다.
“뭔 용건인지 몰라도, 빨리 끝냅시다. 바빠요.”
“...히익!”
“무, 무슨 말씀이신지.”
“들켰다인지 발뺌인지, 두 분이 상의해서 하나로 통일하시든가요.”
“.......”
가까이서 보니, 이쪽도 그리 나이가 많아뵈지는 않았다. 잘해봐야 스물 안팎일까.
애초에 뒷골목에 속한 이들의 연령이 그리 높지는 않다고 했으니, 이해도 갔다.
‘범죄자들은 평균 수명이 짧다고 했지.’
속으로 생각할 때, 두 사람중에서 남자처럼 꾸미고 있던 여자가 입을 열었다.
“저, 저희는 그저....”
“심부름?”
“네.”
“목적은?”
“불러오라고 하셨어요.”
“누가?”
“콘웨이. 제이비언 콘웨이요.”
“귀족?”
“아, 아니요. 아닌가, 맞나?”
“지금은 상인입니다.”
“상인이 뒷골목 사람들하고는 무슨 관계지?”
“뒷골목이요? 아닙니다. 저희는....”
대부분의 이야기를 여자에게 맡기고 있던 남자가 뒤늦게 항변했다. 자신들은 그쪽 사람들이 아니라, 단지 상회의 잡일을 수행하는 이들이라고.
정식 직원이 되지 못하고, 그저 일이 있을 때마다 불려가거나 자잘한 심부름을 하고 돈을 받는다고 했다.
‘미등록 용병하고 비슷한 건가보네.’
비정규직에도 종류가 많은가보다.
다시금 두 사람을 살펴본 최강혁은 그들의 이야기를 그다지 믿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름은 기억해두기로 했다.
“제이비언 콘웨이. 어디로 가면 되지?”
“저희와 같이... 가시진 못하시겠군요.”
“바빠서. 장소를 알려주면, 오후에는 갈 수 있겠는데.”
“그러면....”
그들이 이런 저런 건물이나 상점 이름을 이야기했지만, 모르는 곳 뿐이었다.
결국 그가 알고 있는 곳을 기준으로 시작해 설명을 들었다. 도우미가 지도에 표시해두었으니, 찾아가는 건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