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0화 〉130.
“후....”
머리가 아프다.
근래들어 숙면을 취해본 적이 없어서일까.
아니면 그저 스트레스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면, 지금도 손에서 떼지 못하는 커피 때문일까.
“좆같네.”
사라 레드우드.
그녀는 들고 있던 머그컵을 기울여, 아주 소중한 것을 마시듯 조금씩 입안으로 흘려넣었다.
‘더러운 자식들.’
독이 든 성배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모두의 의지와 역량으로 커버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간과했어.’
인간의 욕심을.
그런 인간이 뭉친 집단이라면 욕심도 증폭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줄타기는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윗선이 꼬였다.
아니. 원래부터 꼬여있었다.
그걸 너무 늦게 알았다.
토벌대는 처음부터 와일더 클랜의 대항마가 아니었다. 단지 정부와의 협상에서 좋은 조건을 차지하기 위한 구색 중 하나에 불과했다.
그들의 스폰서였던 기업집단은, 각국 정부와 교통정리가 어느 정도 되기 시작하자 발을 빼기 시작했다.
심지어 와일더 클랜 쪽으로도 일부 지분을 얻었으니, 더 이상 토벌대는 효용가치가 없어진 것이라 말하는 이도 있었다.
물론 모두가 떠난 건 아니었다.
나름대로 그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지원해주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와일더 클랜에 대항하거나 막아내라는 것이 아니라, 단지 양쪽의 견제 상황에서 더 많은 것들을 팔 수 있기 때문이었다.
각종 무기.
소모성 보급품.
그리고, 가장 비싸면서도 잘 팔리는 ‘안전’.
“잠은 좀 주무셨습니까?”
막사에 들어선 부하의 물음에, 그녀는 예전처럼 대충 그렇다고 대답하지 않았다.
누가 보아도 며칠 밤을 새운 꼬라지라, 어떻게 대답하든 알아서 받아들일 테니.
“그냥 하던 일이나 계속 할 걸 그랬지?”
“왜 또 그러십니까. 좋아서 나온 사람이 어디 있다고.”
“하긴.”
다들 어느 정도는 몰려있던 상황.
토벌대에 자의로 들어온 이는 거의 없었다.
“고든 그 새끼가 제일 나쁜 새끼야.”
“또 왜요. 뭐가 안 맞습니까?”
“뭐가 안 맞는 게 아니야. 맞는 게 없다니까.”
고든.
그녀의 상관이었던 남자.
하지만 지금은 토벌대를 떠나 본국으로 돌아갔다. 기업집단에 좋은 조건으로 스카웃되었다고 들었다.
빌어먹을 인간.
이쪽 일은 개판쳐놓고, 업적으로 포장해서 본인 몸값만 올린 것이다.
물자 상황부터 인원 상태까지.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된 게 없었다.
덕분에 망가질 대로 망가진 이 불쌍한 집단을 물려받은 그녀는 처음부터 하나 하나 다시 확인해서 정리해야 했다.
“확실히 말해둘게. 내가 본국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면, 그 새낄 내 손으로 죽일 거야.”
“손으로요?”
“그래. 총이나 칼이 아니라, 손으로 죽여버릴 거라고. 이 손으로.”
“어디까지 하셨어요? 제가 이어서 정리할 테니, 조금이라도 주무세요.”
“너는 뭐 얼마나 잤다고.”
“그래도 대장보단 낫잖아요. 누가 봐도.”
“시발....”
언제 감았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머리카락.
벅벅 긁으며 랩탑을 넘겨준 그녀는 문득 막사 밖에서 달려오는 발소리에 그쪽을 보았다.
“누가 쳐들어오기라도 해?”
안 그래도 누군갈 쏴죽이고 싶은 상황이다.
적이라도 들어왔다면 오히려 잘 되었다며 거치된 총을 바라볼 때, 그녀의 귀에 들려온 이야기가 있었다.
“뭐가 어떻게 됐다고?”
“와일더 클랜이요. 우리가 모니터링하던 곳 중 하나가... 박살났어요.”
“그 박살의 정의를 내려봐. 아니지. 그거, 접속 되지?”
방금 전 작업하던 랩탑을 돌아보자, 안 그래도 화면을 전환한 부하가 내부망에 접속했다.
새로 올라온 사진과 영상 자료들이 있어서 열람해보니, 달려와서 보고한 이의 이야기가 맞았다.
“K307 거점입니다.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졌지만, 규모 자체는 작지 않았었죠.”
“나도 기억해. 이거... 언제 찍은 거야?”
“바로 한 시간 전이요.”
“누가 이런 건지는 모르고?”
“네. 타이밍이 엇갈렸는지, 이 상태인 걸 발견했다고 보고받았습니다.”
“.......”
지금 와서 와일더클랜을 대놓고 건드릴 만한 집단은 거의 없다.
특정 캠프에서 비밀 부대를 운용중이라는 소문은 있지만, 아직 실체가 확인되진 않았다.
“이상한데. 저 거점은 외부 활동도 안 하던 곳이잖아.”
“그러고 보니 그렇군요. 우리도 우연히 찾아냈었죠. 사냥 위주로 활동하던 거점일 겁니다.”
사진과 영상을 다시 보았다.
캠프는 완전히 재건이 불가능할 만큼 박살나있었고, 바닥 곳곳엔 전투 상황을 짐작케 할 만큼 끔찍한 흔적들이 남아있었다.
“사냥 위주였다고... 맞아. 그랬었지. 분명 저 쯤에 케이지가 여럿 있지 않았어?”
“아. 저기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있긴 했습니다. 덩치 큰 곰도 가둘 수 있을 것 같았죠. 다섯 개인가 있었을 겁니다.”
“예전 자료 확인해봐.”
와일더 클랜은 약탈과 무기 밀매만 하는 집단이 아니었다. 그런 식으로 짐승이나 몬스터 사냥과 부산물 판매업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기억이 맞았다.
예전 자료에는 분명 여러 개의 커다란 철창이 자리하고 있었다. 당시 사진엔 그 안에 갇힌 짐승들도 보였다.
“산채로 넘기면 더 비싼 녀석들도 있었고.”
“그렇죠.”
그런데, 그 철창들이 보이지 않았다.
철창만이 아니라, 잔뜩 부서진 캠프 시설들 중에도 아예 없어진 것으로 짐작되는 것들이 더 있었다.
“아....”
그리고, 결정적으로 없는 게 하나 더 있었다.
그녀는 이제야 그것을 깨달은 것에, 자신의 판단력이 정상이 아니라는 걸 확실히 알았다.
“시체. 다 어디 갔어.”
“.......”
바닥의 핏자국은 분명 존재했다.
하지만 그 주인들의 모습이 없었다.
“증거 인멸 아닐까요?”
“그럴 수도 있지.”
한쪽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녀는 적당히 손을 내저으며 간이 침상으로 향했다. 이 일을 더 파고 싶지만, 왠지 지금 눕지 않으면 진짜 영원히 누워버릴 것 같았다.
“어차피 지금 조사해도 나올 거 없을 거야. 잘 지켜보고 있으면서, 놈들 움직임이나 파악해달라고 해.”
“알겠습니다. 주무십쇼.”
“모르겠다. 커피를 그렇게 들이부었는데.”
하지만, 피로가 카페인을 이겼다.
금세 드르렁 드르렁 코 고는 소리가 막사를 울렸다.
“근데, 이거 어디서 본 적 있는 것 같죠?”
잠든 대장을 돌아본 이가 랩탑 사진을 가리키며 이야기하자, 의자에 앉아있던 남자도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 오래 된 일도 아니었으니까.”
혼자서 놈들을 지워버리고 다니던 남자.
건물이고 사람이고 진짜로 지웠다.
그래서 놈들 사이에선 ‘이레이져’라고 부르는 이도 있다고 나중에 알게 되었다.
지우는 자.
시체 수집가.
네크로맨서.
이후 그를 칭하는 별명들이 이것 저것 나왔지만, 거의 시체와 관련된 종류가 많은 건 그가 떠나기 전에 공개했다던 시체들 때문이었다.
그 중에는 여기 저기 잘린 시체들을 기워붙여놓은 것도 있어서, ‘장의사’라는 별명이 추가되기도 했다.
“놈들이 별명으로 부르는 것도 이유가 있지.”
“그 이름을 말하고 싶지 않아 하더군요.”
“목격자들이 있었으니까. 일부러 살려 보낸 케이스도 있다던 것 같고.”
원초적 공포.
이름을 부르지도 못한다는 건 비틀쥬스 이야기와 비슷하지만, 그를 대하는 느낌은 부기맨 쪽에 가까웠다.
와일더 클랜 내부에선 그렇게 이름을 말할 수 없는 존재라는 식으로 별명만 돌았고, 지금은 사라졌지만 언제 다시 나타날지 모른다는 식의 괴담처럼 이어지고 있었다.
“만약 그가 돌아온 거라면....”
“글쎄. 가족들 걱정 때문에 스스로 사라진 남자야. 하지만, 어쩌면 그 가족들 때문에 다시 나타난 건지도 모르겠군.”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잖아요.”
“드러내진 않았으니까. 오히려 드러난 소문이 좋지 않고.”
“아....”
아직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만약 그가 돌아왔다고 해도, 그들이 아니라 와일더 클랜으로 간 건 좀 이상하지 않나 싶기도 하고.
“지켜보다 보면 뭐라도 나오겠지.”
현장 인원들에게 더욱 조심하라 이야기하기로 했다. 토벌대의 잠적으로 한동안 소강상태였던 구도에 큰 변수가 터진 건 분명하니까.
***
미련이 남아있었다.
생각할수록 그렇다.
가족을 버리고 떠난 어머니에 대한 원망은 여전하지만, 죽은 아버지에 대한 마음은 부정적이지만은 않았다.
일종의 스톡홀름 신드롬이라고 봐도 될까.
그를 이해하는 건 아니면서도, 어떻게든 좋은 점을 찾아보려고 노력하게 되는 건.
“끝마무리도 그 양반답게 갔어.”
왜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너무 늦게 알았다.
만약 더 일찍 알았다면 누나를 미워하지 않을 수도 있었을까. 그 사람의 상처를 보듬고 동정할 수 있었을까.
“그럴 여유가 없었던 것 같기도 하고. 지금은 잘 모르겠네.”
아니. 사실은 좀 묘했다.
누나가 망가지는 모습을 보면서도, 집을 말아먹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겪으면서도 뜯어말리거나 화를 내지 못한 이유.
사실은 본능적으로 뭔가 느낀 것 아니었을까.
그녀에게 아주 큰 일이 있었다는 것을.
입으로는 듣지 못했어도 행동이나 눈빛을 통해 알 수 있는 것들도 많으니.
‘죄책감일 수도 있지.’
모르겠다.
그저 알 수 있는 건, 뭔가 남겨놓은 것 같다는 느낌일 뿐. 그건 미련일 수도 있고, 원망일 수도 있고.
“말 그대로 앙금인 거지. 앙금.”
그렇게 중얼거린 최강혁은 가볍게 걸어가며 주변을 훑었다.
“이래저래 쿨하지 못한 남자야.”
피가 잔뜩 스며서, 원래 땅 색이 붉은 건가 착각할 정도의 대지. 하지만 땅의 색깔을 제외하곤 너무나 깨끗했다.
그리고 그곳 끄트머리.
커다란 나무아래에 등을 기댄 남자는 잔뜩 부릅뜬 눈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그를 보고 있었다.
“......!”
눈동자를 옆으로 굴렸다.
어깨에 박힌 화살의 끝이 얼핏 보였다.
아니. 화살이 아니다. 이걸 뭐라고 부르더라?
볼트. 그래, 볼트다.
이것이 꽂혔을 때,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볼트 끝에 뭔가 발라져있었을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렇게 굳어있던 동안, 이곳에 참극이 벌어졌다.
“끄으....”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독을 발랐더라도 이렇게 빨리 퍼지진 않는다.
하지만, 빨리 퍼진 만큼 빨리 풀리는 것 같기도 했다. 손끝 발끝을 시작으로 조금씩 몸이 풀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때 한 발의 볼트가 더 날아와 같은 곳에 박혔다.
푸욱!
“끄으으으악! 이 씨발새끼야아아!”
마치 놀리기라도 하듯, 기존의 볼트와 정확히 같은 곳을 맞추었다. 두 발을 뽑아내면 아마도 구멍이 하나만 남아있을 것이다.
“벌써 풀리는 걸 보니까, 초벌을 너무 약하게 했네. 미안하다.”
“이 새끼가... 누굴 닭튀김으로... 아나....”
다시금 온몸이 굳었다.
움직일 수 있는 건 목 위쪽 뿐이었다.
“너 이새끼... 우리가 누군 줄 알고....”
“일단 말은 통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널 남겼어. 이번엔 그래도 한국사람이 있었네.”
“이번...?”
“여기가 세 번째야.”
그렇게 말한 최강혁은 무덤덤한 얼굴로 주변을 돌아보았다.
원래는 작은 야영지가 있던 이곳은 막사고 사람이고 전부 사라지고 몇 동의 철창만 남아있었다.
“명분이 좋아. 안 그래도 찜찜했는데, 와일더 클랜이면 말 다 했지. 핑계 대기 좋잖아.”
“무슨 개소리를 하는....”
“너희가 죽은 건 민간인을 약탈해서도 아니고, 살인을 저질러서도 아니야. 단지... 동물을 해쳤기 때문이지.”
짐짓 고개를 끄덕인 그는 마치 누구 보라는 듯이 이쪽 저쪽 허공을 돌아보며 뭐라 뭐라 중얼거렸다.
“...의 이름 하에 현장을 정리하며, 이는...을 위한 공익적 목적에 부합한다고 주장한다.”
“뭔 소리를 하는 거냐고!”
“너 들으라고 하는 말 아니다.”
말은 통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살려두었다더니, 대체 누구와 대화를 하고 있는 건가.
그러던 최강혁이 이어서 뭔가를 확인하더니,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역시. 완전히 풀어줘야 적용되는 것 같네.”
풀어준다고?
살짝 혹했지만, 그에게 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계명식. 알아?”
“그게 누구야?”
“모르면 죽어야지.”
“뭐? 자, 잠깐! 잠깐만!”
“알아?”
“아니. 그 이름은 모르지만....”
“그럼 뭐.”
“다른 이름! 다른 이름 물어봐!”
허리 뒤춤에서 커다란 단검을 뽑아 그의 목에 들이대는 모습이, 단순한 협박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이미 그와 함께 있었던 수많은 이들을 거리낌 없이 도륙하던 자다. 한 명 더 죽인다고 달라질 것도 없다는 태도 아닌가.
“계명식.”
“그게 누구냐고! 다른 사람!”
“양광훈.”
“.......”
“모르면....”
“다, 다른 사람!”
“아는 사람이 있긴 해?”
이어서 이런 저런 이름들이 나왔지만, 모두 모르는 사람이었다.
아는 이름이 나오긴 했는데, 그가 아는 대로 잔뜩 떠들었더니, 그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아닌데 왜 계속 듣고 있었어!”
“혹시나 해서.”
“뭐가 궁금한 지 말을 해봐. 그게 낫잖아.”
“글쎄. 딱히 궁금한 건 아니라서.”
미친놈인가?
이 피바다를 만들어놓고, 저렇게 천연덕스러울 수가 있나? 와일더 클랜에도 미친 놈들이 많지만, 이런 놈은 못 봤다.
하지만, 사실 최강혁이 아무 이름이나 대충 대고 있다는 것을 그는 전혀 알 수 없었다.
“사람 이름을 모르면, 캠프 이름은 아나?”
“캠프? 그건 내가 잘 알지. 뭐든 말해봐.”
“그린 캠프.”
“거긴 이미 없어졌잖아.”
“없어?”
“그 자리에 있긴 한데, 주인이 바뀌었어. 이름도 바뀌었지. 리프 캠프로.”
“리프?”
“이파리.”
“그린이랑 뭐가 다른데.”
“아무튼. 거기가 뭐? 뭐가 궁금해?”
“아니. 궁금한 건 아니고.”
그렇게 말한 최강혁은 사내의 어깨에 박혀있던 볼트를 하나씩 뽑아냈다.
그리곤 새로 하나를 다시 후벼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