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34화 〉134. (134/138)



〈 134화 〉134.

아머 캠프라고 했다.
 캠프 이름이 방어구인가 했는데, 진짜로 방어구를 제작하는 기업이 소유주라고 했다.

“단순 후원이나 지원이 아니라....”
“예. 기업이 자체적으로 캠프를 운영합니다. 방어구를 만들어서 여기 저기 팔죠.”
“그게 팔려요?”
“필요하니까요.”
“아니요. 굳이 거기 물건을 살 필요가 있나 해서요. 악담은 아닙니다만.”

전투 장비를 만드는 곳이야 그 외에도 있다고 알고 있다.
그가 처음 있던 곳에도 전문적이진 않지만 관련 기업이 있었고, 심지어 레드 캠프에서도 조잡하지만 방탄복 같은 걸 만들어서 판다고 했었으니까.

“품질이, 성능이 다릅니다.”

남자는 화를 내거나 하지 않고, 자랑스레 말했다. 실제로 이번 전투에서 사망자가 거의 나오지 않은 것은 그들이 착용한 방어구 덕분이 맞긴 했다.

“이게  뚫렸네요.”
“그렇죠.”

심지어 저격수가 쏜 총알이 헤드기어를 직격했음에도 뚫지 못했다.
계속 사용하지는 못할 상태가 되었지만, 목숨을 지켜주었으니 제 역할은  했다.

“우리는 몬스터 부산물과 특수 합금을 적절히 배합합니다. 고유 레시피가 있죠.”
“얼핏 들어본 것 같네요.”

몬스터 부산물에 대한 연구는 계속 진행되는 중이라 했다. 어제까지 없던 것들이 오늘 나올 수도 있다고.

“하지만, 레시피를 탐낸 게 아니라....”
“저 분을 노린 거죠.”

아머 캠프의 병력 책임자는 겹겹이 둘러쳐진 방어선 안쪽, 두려움에 가득한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는 몇 명의 사람들을 가리켰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본국으로 향하고 있던 아머 캠프의 연구원들이라고 했다.

“아머캠프의 비밀 공장이 있습니다. 그쪽에는 간이 설비만 있고, 사람을 옮기는 연결 설비는 없어요.”
“그런 걸 저한테 말해줘도 됩니까?”
“누구 덕분에 살아남았는지 정도는 아니까요. 그리고....”

남자는 의미심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복면을 쓰고 계시지만, 누구신지도 짐작은 하고 있습니다.”
“괜히 썼네요. 더워서 짜증나는데.”

복면을 벗었다.
이쪽을 보던 이들이 저마다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얼핏 그가 아는 별명과, 알지 못하는 별명도 들렸다.

“제가 게이는 아닙니다.”

어디서 이상한 소문이 퍼진 걸까.
그런 소리가  곳을 쳐다보니, 몇 사람이 후다닥 고개를 돌렸다.

“사라 때문일 겁니다. 그녀의 구애를 외면하셨다는 소문이 있더군요.”
“사라 레드우드를 아십니까?”
“물론이죠. 우리 캠프와 거래중이니까요. 모기업의 후원을 받고 있기도 하고요.”

이제 보니 토벌대와 연관이 있는 캠프였던 모양이다. 그런 이들을 토벌대 깃발 달고 공격했으니, 그게 말이 되나.

“최근 비슷한 일이 많이 벌어집니다. 깃발이나 완장은 위조하기 쉬우니까요.”

다른 캠프로 위장하거나 토벌대, 혹은 와일더로 꾸며서 약탈이나 테러를 벌인다는 이야기.

“윗선은 다들 연결되어있다고 들었는데요.”
“연결이야 되어있지요. 아주 가느다란 끈으로 말입니다.”

상호간의 이익을 위해선 협력하지만, 물밑에서 벌어지는 자잘한 다툼은 방치하는 것이 그들의 정책이라고 남자는 말했다.

“어설픈 평화나 불가침조약이 지구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아니까요.”
“어설픈 평화라....”
“누군가에겐 혜택을 주었겠지만, 누군가에겐 아니었던 거죠. 이곳 같은 개척지역은 그런 식의 소모적인 평화가 필요하지 않기에 메리트가 있다고 봅니다.”

그런 상황 때문에 위기를 겪었음에도, 남자는  부분에 불만을 갖지 않는 듯 보였다.
다만 자신들의 이동 상황을 들켰다는 건 내부에 쥐가 숨어들었다는 뜻이라며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드론을 운용하는  같더군요.”
“본국에서 물자가 많이 들어옵니다. 이쪽에서도 점점 시야 사각이 줄어드는 추세죠. 통신도 그렇고 말입니다.”
“통신?”
“완전 개척은 아직 요원한 일이지만, 적어도 현재 개척된 지역 내에서는 그럭저럭 통신망이 구축되어있습니다. 심지어 서로 적대 비슷한 관계에서도 말입니다.”

남자가 이야기한 ‘가느다란 끈’ 에는 통신망이라는 의미도 있다고 했다.

“전쟁을 벌이더라도, 선전포고할 라인은 갖추고 있어야지요.”
“그렇군요.”

딱히 관심이 가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들을 구한 건 다른 일을 하다 보니 부수석으로 얻게 된 결과였다.

하지만, 적어도 토벌대와 연관이 있는 캠프라면 잘 된 일이었다. 그에게 사라 레드우드의 행방을 물었더니, 살짝 고개를 저었다.

“저도 정확한 위치는 알지 못합니다.”
“연락을 넣을 수는 있습니까?”
“전화를 연결하지는 못하지만, 공용 통신망이 있습니다. 메시지를 주고 받는 정도는 가능합니다.”
“지금도 됩니까?”
“유진!”

남자가 부하를 불렀다.
랩탑을 들고 있던 부하가 속보로 다가왔다.

“이걸 실행하시면, 이렇게 됩니다.”

그냥 이야기하는 대로 전달해줄 줄 알았는데, 남자는 군용 랩탑의 사용법을 간단하게 설명해주고는 통째로 넘겨주었다.

“이렇게 줘도 됩니까?”
“사라를 만나실 생각 아니십니까. 그쪽에 주시면 그녀가 나중에 저희에게 돌려줄 겁니다.”
“아. 그렇군요.”
“다시금 지원에 감사드립니다. 언제 시간 나시면 아머 캠프에 들러주세요. 규모가 있는 곳은 아니지만, 최강혁씨라면 언제나 환영입니다.”
“예. 고맙습니다.”

그들은 계속 이동한다고 했다.
이미 비밀 공장과는 거리가 너무 멀어져서, 오히려 캠프로 가는 게  빠르다고.

그렇게 병력이 이동했다.
겁에 질린 연구원들은 아마도 본국에 돌아가면 다신 이곳으로 오지 않으려 하지 않을까 싶었다.

‘어디 보자... 아. 일단 주변 정리 좀 해야지.’

가짜 토벌대는 도망쳤지만, 그들이 미처 챙기지 못한 것들이 현장에 남아있었다.
아머 캠프 사람들도 그것을 전리품으로 여기진 않았는지, 대부분이 그냥 남아있는 모습이었다.

“들어갈 데가 있으려나... 나무를 좀 비워둬서 다행이네.”

현장을 정리한 후, 한적한 곳에 자리를 잡고 랩탑을 열었다. 통신망으로 들어가보니, 메시지 수신과 송신 외에도 여러 자료들이 올라와있었다.

‘개별 암호가 필요하구나.’

당연히 그렇겠지.
그는 다시금 메시지 창으로 돌아와, 토벌대의 것이라고 들었던 쪽으로 짧은 내용은 전송했다.

‘근데, 여기서 진짜 되는 거야? 중계기 같은 건 못 봤는데.’

주위를 돌아보고 있을 때, 상대가 메시지를 수신했다는 표시가 떴다. 그리고 1분 정도 후, 그쪽에서 답신을 보내왔다.

‘이 좌표, 분석 가능해?’
-기존 데이터에 존재하는 방식입니다.
-지도에 표시하겠습니다.

역시나였다.
예상하고 있던 어느 곳과도 맞지 않았다.
전혀 다른 장소였다.

‘제일 가까운 건 누구야?’
-4번 다람쥐입니다.
‘다람쥐는 느리니까, 그쪽에 원숭이를 보내서 이동시키자.’
-현 위치에 대기 중인 원숭이 둘을 회수하였습니다.
‘하나는 드론 존버 쪽에... 아니다. 나중에 오지 뭐. 알았어.’

로비로 돌아갔다.
마지막으로 도착했던 답신이 하나  있었지만,  내용은 아니었다.

“잠깐만. 이거 왜 같이 와?”

들고 있던 랩탑을 보았다.
잠깐 빌린 건데  로비에 들어오나 이상했다.

“로비까진 같이 올 수 있나? 근데, 나가면 없어지는 거 아냐.”

혹시나 해서 루팅을 해보니, 되었다.

“뭔데?”

애초에 돌려받을 생각이 없었던 건가.
재미있는 사람이네.

“뭐... 위치 추적기로 쓸 수도 있겠지.”

안 좋게 생각하면 그런 쪽으로도 의심해볼 수 있긴 하지만, 인벤토리에 넣으면 문제 없었다.

‘도착 예정 시간이 얼마나 돼?’
-현재 속도로 1시간 13분 예상합니다.
‘또 애매하네.’

슬슬 집에 다녀오려고 생각했는데, 계속 눌러앉아야 하는 건가.

‘여기서 이럴  아니라, 동굴에 가서 사람들을 안정시켜야겠다. 어차피 그쪽에서 출발해야 하니까.’

동굴에서 구한 사람들을 토벌대에 넘겨줄 생각이었다. 그들이라면 그가 할 수 없는 일들을 해줄 수 있을 것이다.

“많이 늦진 않았구나.”

늦어도 한 시간을 이야기했는데, 5분 정도 늦었다. 어둑어둑해져가던 바위산의 동굴엔 벌써부터 불청객들이 얼쩡거리는 중이었다.

캐앵!

“아차. 동물 보호.”

들개 하나를 권총으로 쏴죽인 그는 달아나는 나머지 녀석들을 그냥 보내주었다.
페널티가 없다고는 하지만, 왠지 찜찜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슬슬 준비하시죠.”
“준비요?”
“여기서 눌러사실 건 아니잖아요.”
“어디로 가게 되나요?”
“캠프? 캠프로 가나요?”
“우리 아빠는 호크 캠프에 있었어요!”

다들 시끌벅적했다.
다시금 수프 배식을 시작하자, 그제야 조금 조용해졌다.

사람들의 배를 채워준 후, 용변을 해결할 시간을 주는 동안 그는 근처에 세워져있던 와일더의 트럭들을 확인했다.

‘기름은 충분해.’

사람이 좀 많긴 하지만, 어떻게  해보면 한 대에 모두 태울  있을  같았다.

‘나머지는 일단 루팅... 오. 되네.’

 될 줄 알았는데.
그는 연료를 적당히  대에 몰아준 후, 짐칸을 비우고 난간을 강화, 높이를  올렸다.

‘오래는  가겠지만, 임시방편은 되겠어.’

높게 올린 난간 이쪽 저쪽에 강철 고리와 와이어를 고정하고,  사이에 여러 개의 해먹을 걸었다.
노약자들은 바닥에 구겨앉지 않고, 그곳에 눕도록  생각이었다.

‘이쪽으로... 변기 하나 정도 놓자. 수프만  끼를 먹었으니, 분명 필요할 거야.’

짐칸  구석에 칸막이를 막고 간이 변소를 만들었다. 배수구가 없긴 하지만, 도우미가 수시로 비워줄 테니 괜찮았다.

그렇게 준비를 마치자, 슬슬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저마다의 감정들이 느껴지는 얼굴이었지만, 그곳에 남겠다는 이는 없었다.

“노약자분들은 해먹으로 올라가세요. 옆에서 좀 도와주시면 좋겠습니다. 굳이 누울 필요는 없고요. 앉을  있는 해먹도 옆쪽에 있습니다.”

생각보다 수월하게 올라탔다.
인원을 생각해서 빠듯하다고 생각했던 건데, 다들 굶주려서 말랐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올라탄 이들에게 담요를 나눠주었다.
운전석으로 옮겨탄 그는 심호흡을 했다.

“간만인데. 되려나.”

혹시나 해서 트럭 운전을 할 수 있는 이가 있나 알아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지난 번과 달리, 오늘은 그가 운전을 해야 했다.

부르릉...

거친 시동음이 이어지고, 최강혁은 예전에 캠프에서 배웠던 대로 조심조심 운전을 시작했다.

‘네비 띄워줘.’
-띄웠습니다.
‘뭐야. 반대쪽이야?’

주차되어있던 공간이 협소해서, 차를 돌리는 데 잠깐 애를 먹었다.
그냥 사람들을 다 내리게 한 다음에 통째로 루팅했다가 반대쪽으로 꺼낼까 고민했지만, 도우미가 있어서  문제 없었다.

-거기까지입니다.
‘좋아. 이제 중립. 됐어.’

마치 운전 교육 어플리케이션처럼, 핸들의 각도에서부터 엑셀을 언제 밟고 떼어야 하는지 자잘한 부분까지 도움을 받았다.

그렇게 바위산 아래로 내려온 후에야, 비로소 그가 기억하던 대로의 운전을 이어갈 수 있었다.


***

“그래서... 이 사람들이, 거기에 붙잡혀있었다는 거군요.”
“그렇죠.”
“나한테 데려오면, 해결해줄 거라 생각하셨고.”
“그렇죠.”

사라 레드우드는 예전 보았던 인상이 조금 남아있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많이 달라져있었다.
일단 다른 세상에서 처음 보았던 이들과 비슷한 느낌이 들 정도로 안 씻는 사람으로 보였다.

“냄새나는데요.”
“안 씻었으니까요.”
“그렇군요.”
“그게 문제가 아니라... 왜죠?”

왜 나한테 데려오면 해결해줄 거라 생각했냐고. 그녀는 물었다. 두통이 지끈거리는지 잔뜩 찌푸린 얼굴이었다.

스캔해본  상태도 가히 좋지 않았다.

“이거 좀 마셔요.”
“.......”

지금 차나 할 때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녀는 순순히 머그컵을 받았다. 예전에 그가 준 것을 마셔본 기억이 있었다. 그 냄새였다.

“후....”

너무 뜨겁지도, 미지근하지도 않은 적당한 온도였다. 호록거리며  모금 마시고 나니, 몸 안에 좋은 기운이 퍼지고 머리가 조금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좋은 사람이잖아요.”

그때 최강혁이 말했다.

“뭐가요?”
“조금 전 질문. 그 대답.”
“저는 좋은 사람이 아닌데요.”
“나보단 낫잖아요.”
“.......”
“거기서 침묵은 인정인데.”
“겸손을 떠는 성격은 아니어서요.”

그렇게 말한 그녀가 처음으로 웃었다.
어깨를 으쓱한 최강혁은 언제  마셨는지 빈 컵을 내미는 그녀에게 다른 차를 따라주었다.

“처음 맡아보는 냄새네요.”
“독을 제거해줄 겁니다.”
“중독된 기억은 없는데요.”
“이것 저것. 노폐물이나... 카페인 같은 거.”
“그런 차가 있었어요?”

카페인이 빠지면 당장 쓰러질 지도 모른다며 엄살을 떨면서도, 그녀는 순순히 받아든 차를 홀짝거렸다.

“어떻게  일인지, 말해줄  있어요?”
“뭐가요.”
“어떻게 사라진 건지. 어디서 무얼 하고 있었는지. 그런 거요.”
“말해도 안 믿을걸요.”
“믿거나 말거나. 해줄 수는 있잖아요.”
“결혼을 했어요.”
“......?”
“아내가 예뻐요.”

그렇게 말한 최강혁이 빙긋 웃었다.
사라 레드우드는 뭐라고 말을 꺼내려다가 결국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화제를 돌렸다.

“저들을 오래 보호할 수는 없어요.”
“가까운 캠프로 떠넘길까 했는데, 여러 모로 찜찜해서 말입니다.”
“그건 그렇죠. 와일더 클랜의 가족이라면, 조치하기가 애매하니까요. 저들을 모셔온 방식도 그렇고.”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그녀는 결국 고개를 저었다. 그녀가 아는 캠프로 데려가더라도 본국에서 입국을 승인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망명 개념이 되어야 할 텐데, 그 이유를 설명하려면 결국 해당 죄수들의 소속 캠프에 이야기가  거예요.”

중간에 흐지부지되고, 꼬리가 잘리고, 어쩌면 최악의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했다.

“위장 신분부터 만들어야 해요. 그게 먼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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