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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화 〉31편. 정액을 짜는 취미는 없소. (31/330)



〈 31화 〉31편. 정액을 짜는 취미는 없소.

31편. 정액을 짜는 취미는 없소.

멜리나가 샤프란 호에서 단숨에 내려 리가 있는 곳까지 달려왔다. 그리고 온힘을 다해 리를 껴안았다.

격한 포옹에 리는 또 피를 흘리고 말았고  멜리나의 제복 어깨에 선명한 붉은 자국이 남았다. 하지만 멜리나는 아랑곳 않고 자신의 뺨을 리의 얼굴에 비볐다.

“걱정했어요! 주인님이 너무 걱정돼서 견딜 수 없었어요! 하지만 주인님께서 함을 지키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에……!”

여인은 흐느끼며 점점 더 파고들었다. 리가 멜리나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알고 있다. 고생 많았다.”

그제야 멜리나는 리가 입은 무균복에 번진 피와 주인님의 해쓱한 얼굴을 확인했다.

“어, 어떡하면 좋죠? 제가 뭘 해야 주인님을…….”

“호들갑 떨지 않아도 된다. 당분간은 안 죽으니.”

리는 멜리나를 진정시키고 분류 작업을 지시했다.

3번 도크에는 리가 충격봉으로 기절시켰던 군단병과 정비사들, 그리고 샤프란 호의 발포로 죽어버린 시체들이 즐비했다. 기절한 병력들 중에서도 샤프란 호와 진압군의 전투에 휘말리는 바람에 결국 목숨을 잃은 자들이 있을 터였다.

멜리나에게 지시한 것은 그런 시체와 생존자들의 분류였다. 시체는 소각로에 처넣어 녹여버리고 생존자는 더욱 확실히 수면 가스로 재운 뒤 수감시키는 작업이었다. 지루하지만 중요했다.

“주인님.”

아만다의 통신이 들어왔다.

“행성 썩딕 경비대 소속 우주선이 레이더에 확인되었습니다. 하지만 스텔스 배리어 덕분에 당분간은 포착되지 않을 듯합니다.”

“그렇겠지.”

“아울러 평행 우주 도약 준비가 끝났습니다. 지시하신대로 10-10-4-6 구역을 향해 점프하겠습니다. 또한 기술부 부장의 생존을 확인했습니다. 트뤼그베 크비슬링 박사입니다.”

리가 기다리던 소식이었다.

“닥터 트뤼그베인가. ……남자 이름이군?”

“네. 31세 남성입니다. 현재 각성제 주사 후 결박, 세뇌실로 이송 중입니다.”

“알겠다. 평행 우주 도약을 서두르도록. 나는 세뇌실로 가겠다.”

리는 아만다와의 통신을 끊었다.

“멜리나. 작업이 끝나면 브리지로 와서 보고해라.”

“네, 주인님. 맡겨주세요.”

…….
…….
…….

리는 세뇌실로 가는 동안에 그린로즈 호 전체를 울리는 진동을 느낄 수 있었다. 평행 우주 도약이 개시된 것 같았다.

처음엔 웅웅거리는 수준이었던 진동은 곧 격한 움직임으로 돌변했다. 리는 보조 워킹 머신을 재빨리 조작해 균형을 잡았다.

세뇌실에 도착하자 아만다가 조치한 대로 기술부 부장이 있었다. 세뇌실의 기계 팔이 재료를 결박한 상태였다.

리가 남자의 이름을 불렀다.

“닥터 트뤼그베.”

“으…… 우우…….”

트뤼그베 크비슬링 박사는 수면 가스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서서히 의식을 되찾기 시작했다. 각성제의 효과가 본격적으로 발휘되고 있었다.

트뤼그베 크비슬링 박사는 곱상한 체격을 가지고 있었다. 아만다는 닥터 트뤼그베가 31세라고 보고했었다. 하지만 적어도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20대 중반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트뤼그베 박사의 머리카락은 살짝 붉은기가 도는 갈색이었다. 턱선이 부드럽고 눈망울이 컸다. 이목구비의 비율이 좋긴 했지만 두드러지진 않았다. 멀리서보면 남자라는 사실도 잘 모를 정도였다.

작은 키에다가 팔 다리도 가는 편이라 그런 착각을 더 불러 일으켰다. 미청년이었다. 리가 아만다의 보고를 미리 듣지 않았다면 상대를 보이시한 여자라고 생각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별난 녀석이군.’

트뤼그베 박사를 보며 리는 콧잔등을 찡그렸다. 겉모습은 계집애처럼 생겼지만 과연 그 속은 어떨지 궁금했다.

“으음…….”

“닥터 트뤼그베. 정신 차리시오.”

리는 보조 워킹 머신을 조작해 아직 눈을 뜨지 못하는 청년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트뤼그베 박사의 뺨을 때렸다.

철썩!

“헉!”

청년의 곱상한 볼에 붉은 상처가 생겨났다. 그 덕분에 트뤼그베 박사는 확실히 의식이 돌아왔다.

“여…… 여기는……?”

“세뇌실이오, 닥터.”

“……?!”

리는 간단히 설명했다.

로메리카 제국 소속이었던 디스트로이어 급 그린로즈 호는 자신에게 점거되었으며, 로메리카 제국이 찾기 힘든 지역까지 이미 이탈했다고 말했다. 수면 가스에 잠들었던 트뤼그베 박사에게 확인할 것이 있어 여기까지 데려왔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이젠 아무도 트뤼그베 박사를 구해줄 수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기, 기다려요. 난 그저 과학자예요!”

청년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정식 군인도 아니라고요. 민간인 신분이에요! 일시적으로 군함에 징집당하긴 했지만……!”

“쉬.”

리가 트뤼그베 박사의 말을 막았다. 더 떠들었다간 또 맞을 거라는 암시에 청년은 몸을 떨었다.

“그런 건 나한테 아무런 의미도 없소. 그저 내가 원하는 걸 얻고 싶을 뿐이오.”

“사…… 살려주세요! 난 군사작전 같은 거 아무 것도 몰라요. 제, 제발, 날 저, 저 기계에 넣지 마세요!!!”

퍽!

“하욱!”

이번엔 갈비뼈에 고통을 줬다. 청년은 날카로운 비명을 흘렸다. 목소리까지 남자치고는 꽤 높았다.

리는 건조한 시선으로 트뤼그베 박사를 응시했다.

“아니, 당신은 알고 있소. 내가 궁금한 것에 대해서.”

“흑, 흐윽…….”

“E. P. 핸드캐논의 결함이 뭔지 아는 대로 다 말하시오.”

“그, 그건…….”

“고집 부려도 소용없소. 세뇌기에 들어가면 다 불게 되겠지.”

“하…… 하지마세요!”

청년이 발버둥 쳤다. 과학자인 이상 닥터 트뤼그베는 알고 있을 터였다. 세뇌기가 얼마나 강력한지, 세뇌당한 인간의 인격이 어떻게 바뀌어버리는지.

“그러니까 그 전에 말하시오. 서로 시간을 아끼지. 나도 사내 새끼의 옷을 벗기고 정액을 흘리게 만드는 취미는 없소.”

“흐, 흐윽……! 마, 말할게요. 말할 테니까 제발 세뇌만은…….”

“생각해 보지. 솔직하게 말한다면.”

“입자 누출이에요! 그 캐논의 부작용은!”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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