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0화 〉60편. 큐어 머신 속에서. (60/330)



〈 60화 〉60편. 큐어 머신 속에서.

60편. 큐어 머신 속에서.

“나도 인간이야.”

유키가 눈썹을 살짝 찡그렸다. 리는 건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일부는.”

안드로이드 식 강화 신체를 선택하지 않은 이유는 또 있었다. 인간의 수준을 초월한 힘을 가지고 있다면 그 관리 또한 평범함의 범주를 벗어난 것이 필요할 터였다. 자칫하면 기계 신체를 유지하기 위해 유키의 조직에게 밑지고 들어갈 가능성이 있었다.

수동적이고 피지배적인 위치가 되길 리는 원하지 않았다. 죽기보다 싫었다. 따라서 정말 그런 관계가 된다면, 리는 유키의 조직까지 장악하기 위해 나서야 할 터였다.

감히 자신을 지배하려 한 유키를 세뇌기에 넣고 싶어질 터였다. 유키의 뇌를 마음껏 주무르고 싶다는 충동을 억누르기 힘들 것 같았다.

그건 너무나 많은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미래였다. 그리고 리는 세뇌당하지 않았기에 생생한 팔딱임을 갖고 있는 유키의 뇌를 굳이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최소한 아직까지는.

리의 선택에는 그런 고려들이 담겨 있었다. 그래서 100퍼센트 유기물로 이뤄졌지만 상대적으로 평범한 육체를 선택했다.

“당신의 선택은 존중할게. 하지만 이건 알아둬야 해.”

유키가 경고했다.

“근육과 지방 비율이라든지, 기본적인 건 당신 지금 몸대로 최대한 맞춰줄 거야. 하지만 유기물로 이뤄진 이상 본질적으론 갓 태어난 아기의 신체와 다를 바가 없어. 그 몸에 익숙해지려면 다시 시작한다는 기분으로 단련을 해야 해.”

“…….”

“그럴 바엔 기계적인 도움을 받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그건 내가 신경 쓸 문제다.”

유키가 한숨을 쉬었다. 뭔가를 혼자 중얼거렸지만 리에겐 잘 들리지 않았다. 유키는 치료 기술자들에게 수술을 준비하게 했다.

큐어 머신이 묵직한 작동음을 내며 돌아갔다.

“집도를 맡은 데키무스라고 합니다.”

치료진 중 가장 선임으로 보이는 중년 남자가 리에게 자신을 소개했다. 테키무스가 리와 유키에게 앞으로의 수술에 대해 설명했다.

리의 몸에서 뇌를 적출하는 것 자체는 1시간 내로 완료될 터였다. 그렇게 적출된 뇌는 바이오 용액이 담긴 생명유지 박스로 이동할 터였다. 그 박스를 아만다가 지키고 있기로 했다.

하지만 리의 뇌와 결합할 새로운 육체를 마련하는 것이 더 까다로웠다. 최대한 거부 반응이 적으면서도 리의 현재 몸과 유사한 유기체여야 했다. 그 육체를 합성하고 양생하는 데엔 최소 6시간이 필요하다고 닥터 데키무스는 계산했다.

리를 위한 몸을 조합하기 위해 50여 명의 인간이 재료로 쓰일 예정이었다. 화이트 오로치 호에 수감되어 있던 자들이었다. 리는 그 자들의 출신에 대해 딱히 캐묻지 않았다. 조직의 배신자 혹은 빚을 갚지 못해 끌려온 자들……. 이유는 다양할 터였다.

몸이 다 만들어지면 그 몸과 뇌를 재결합하는 데 다시 1시간이 필요했다. 수술 총 예정시간은 그렇게 약 8시간이었다.

데키무스가 말했다.

“그럼 리 님. 장비를 모두 내려두시고 큐어 머신으로 들어가 주시겠습니까? 의복을 제거하는 것까지 이후엔 머신이 알아서 할 것입니다.”

“그 전에.”

리는 닥터 데키무스가 아닌 흑발의 미녀를 돌아보았다.

“내가 너희를 100퍼센트 신뢰할 수 없다는 건 이해할 거다, 유키.”

“그래서 당신 보디가드한테 바로 뇌를 넘기겠다고 했잖아.”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정말 나와 앞으로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면…… 아만다에게 몸을 맡겨라.”

“……?”

“아만다가 네 목에 커터를 댈 수 있게 허용해주길 바란다.”

“……!”

“아만다가 나에 대한 수술을 지켜볼 거다. 그리고 하나라도 의심쩍은 부분이 발견되면 네 목숨을 거둘 거다. 아만다는 내 본대와 정기적으로 연락을 하게 되어 있지. 그 연락이 끊어진다면 내 생사와 상관없이 네 배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어. 나에겐 그럴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내가 허풍을 싫어한다는 건 네가 가장 잘 알고 있을 거다.”

“난 당신 적이 아니야. 그렇게까지 해야겠어?”

“친구라고 할 수도 없지, 아직은. 이 수술이 무사히 끝난다면 그 시점에서부터 상호 협력 계약을 맺은 것이라 보겠다.”

“조금 실망인데? 당신, 못 본 사이에 간이 오그라든 거야?”

“용기와 만용을 헷갈릴 만큼 어리석진 않아. 그럴 바엔 오명을 쓰는 게 낫다. 다른 꿍꿍이가 없다면 네 목을 아만다의 커터에 맡겨도 두렵지 않겠지. 너야말로 소심함과는 거리가 먼 여자 아니었나?”

“…….”

“나로선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유키. 머리를 뜯었다가 다시 붙여야 하는 꼴인 나로서는 말이야. 상대가 네가 아니었다면 애초에 이곳까지 오지도 않았어. 그래도 나와 협력을 원하나? 거절한다면 우리의 대화는 여기서 끝이다. 돌아가겠다.”

“유키 아가씨.”

그때, 침묵을 지키던 키리토모가 입을 열었다.

“주제도 모르고 저런 요구를 하는 자를 계속 용인하시겠습니까?”

드라이아이스로 만든 칼날만큼이나 예리하고 냉랭한 목소리였다.

“허락해주십시오. 저 자에게 더 이상 수술이 필요 없도록 만들겠습니다.”

리가 키리토모를 응시했다. 아만다가 신경을 곤두세웠다. 하지만 유키가 먼저 움직였다. 유키는 섬세한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키리토모가 처녀에게 몸을 굽혔다.

짝!

유키가 사내의 따귀를 때렸다. 키리토모의 뺨에 빨간 손자국이 남았다.

짝! 짝!

손등으로, 다시 손바닥으로. 유키는 키리토모를 연달아 때렸다. 키리토모는 유키의 손찌검을 묵묵히 견뎌냈다.

“내 얼굴에 먹칠 하지 마. 짖으라고 할 때만 짖으렴.”

“죄송합니다, 아가씨.”

키리토모의 입가에 피가 배어나왔다. 따귀를 맞을 때 치아가 입술을 찌른 모양이었다. 유키는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주었다.

“닦아.”

키리토모는 유키의 손수건을 받았다. 보물을 대하는 듯한 태도였다.

명령에 따른 키리토모가 피가 묻은 손수건을 유키에게 돌려주려고 했다. 하지만 유키는 리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버려.”

“……네, 아가씨.”

“미안해, 리. 실례했어. 세뇌 안 당한 것들은 가끔 자기 의견을 내고 싶어서 못 견디나 봐. 너무 단조로운 건 별로라서 천연상태로 뒀더니만. 부디 내 건방진 보디가드를 용서해줘.”

“네 보디가드다. 처분도 네 일이야. 그래서 제안을 받아들이겠나, 말겠나? 내 관심사는 그것뿐이야.”

“……알겠어. 당신 말대로 할게.”

“이해해주니 고맙군. ……아만다.”

“저는 준비됐습니다, 리 님.”

아만다가 글라디우스 나이프를 꺼내들었다. 유키는 나이프의 예리한 날을 보고 눈썹을 찡그렸다. 하지만 곧 태연한 표정으로 키리토모의 곁을 떠났다.

“유키 아가씨…….”

키리토모가 신음했다. 하지만 아까의 체벌이 효과가 있었는지 그 이상 주제넘게 나서지는 않았다.

유키가 걸음을 멈췄다. 글라디우스 나이프를 뽑아든 아만다에게 몸을 맡기기 전에 유키는 리에게 말했다.

“당신이야말로 날 인질로 삼았다고 경우 없는 짓을 할 생각은 마. 그러지 않을 거라고 믿지만, 만약 정도(正道)에서 벗어난다면……. 비록 내가 죽더라도 내 부하들은 조직을 지키는 걸 우선할 거야.”

“안다.”

리의 대답을 듣고서 유키는 어깨에 힘을 뺐다. 아만다가 유키를 감쌌다.

아만다나 유키나 리의 기준으론 A플러스 급 외모를 가진 미녀들이었다. 그 두 사람이 함께 붙은 모습은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유키의 미려한 목을 겨눈 아만다의 예리한 나이프만 제외한다면.

유키와 아만다의 상태를 확인하고 리는 홀스터를 풀었다. 그리고 아만다가 언제라도 집어서 쓸 수 있는 위치에 자신의 무기를 내려놓았다.

“저쪽 큐어 머신입니다.”

닥터 데키무스의 안내를 받으며 리가 보조 워킹 머신을 움직였다. 기계 팔이 다가왔다. 정교하고도 부드럽게 리의 몸을 잡더니, 보조 워킹 머신으로부터 리를 들어올렸다.

기계 팔은 리를 복잡한 장치가 달려 있는 큐어 머신에 넣었다. 투명한 캡슐 벽이 닫혔다. 기계 팔들이 리가 입고 있던 의복을 손상 없이 벗겨냈다.

그 일련의 과정들이 리의 뇌 깊숙이 남아 있는 불쾌한 잠재의식을 건드렸다. 로메리카 제국군의 세뇌기에 끌려갔을 때도 아마 이랬을 터였다.

당장이라도 큐어 머신이든 뭐든 캡슐을 박살내고 싶었다. 기계 팔을 뜯어내고 이곳의 모두를 전부 죽여 버리고 싶었다. 그 욕구를 리는 있는 힘껏 억눌렀다.

과거로 인한 동요 때문에 미래의 가능성을 망칠 수는 없었다. 리의 이성과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는 일이었다.

아만다를 믿어야 했다. 그린로즈 호와 FTU 호에 남아 있는 슬레이브들을 믿어야 했다. 그 슬레이브들을 세뇌한 자신의 실력을 믿어야 했다. 지금의 리로선 그것이 최선이었다.

푸슉!

주사바늘이 목에 꽂히자마자 수면제를 주사했다. 리는 현기증을 느꼈다. 호흡기가 입에 연결 되었다.

큐어 머신의 기계 촉수들 중 합금 톱니가 달려 있는 것들이 보였다. 저 합금 톱니가 돌아가며 리의 머리를 열면 다른 촉수들이 그 안의 뇌를 혈관과 신경을 손상시키지 않고 꺼낼 터였다.

시야가 더욱 흐려졌다. 그러더니 급속히 깜깜해졌다. 리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큐어 머신에 가득 차기 시작하는 걸쭉한 바이오 용액이었다.

…….
…….
…….

리의 옛 육체에서 뇌가 적출되는 동안, 아만다는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수술 과정은 그로테스크했다. 코즈믹 무비 중 고어 장르에서 주로 나올 법한 모습들이 큐어 머신 속에서 끊임없이 펼쳐졌다.

바이오 용액이 리가 뿜어낸 선혈 때문에 불투명한 핏빛으로 변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새로운 용액이 순환되고 리에게 혈액이 보충되었다. 두개골이 열리고, 뇌가 혈관 및 신경과 함께 끌어올려지는 모습이 선명히 드러났다.

유키가 낮은 신음을 흘렸다. 목을 겨누고 있는 아만다의 글라디우스 나이프 때문이 아니었다. 유키의 신경은 큐어 머신 속, 온갖 기계 촉수에 둘러싸인 리에게 쏠려 있었다.

아는 사람의 머리통이 뽑혀 나오는 광경은 비위에 좋지 않았다. 조직의 인체 개조 수술에 익숙한 유키였지만 타인이 재료인 것과 자신이 호감을 품고 있는 남자가 재료인 경우는 역시 달랐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유키의 불안한 시선을 느꼈는지, 치료 기술자들을 지휘하며 수술 과정을 통제하던 데키무스가 말했다.

“현재까지 순조롭습니다. 저 남자, 아주 강하군요. 생명력을 타고난 듯합니다.”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