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화 〉90편. 난 자선 사업가가 아니야.
90편. 난 자선 사업가가 아니야.
안토니오가 무거운 목소리로 설명해 나갔다. 리는 빈속에 시가를 피워 니코틴으로 뇌를 활성화시키며 상대의 말을 들었다.
안토니오는 본래 아버지인 마스터 자코미오와 마찬가지로 조선 장인이었다. 하지만 소피아 납치 사건 때 입은 치명상 때문에 사무실 근무로 전환했었다.
당시, 조선소는 돈 칼리오네란 자가 대표로 있는 사장단에게 인수된 상태였다. 돈 칼리오네는 안토니오를 해고하는 대신 접수처장으로 임명했다.
“접수처에서 일한 지 아직 1년이 안 됐을 무렵……. 갑자기 혼수상태에 빠졌던 적이 있었지. 깨어났을 땐 돈 칼리오네 씨가 운영하는 병원이었네. 의사가 그러더군. 그때 입었던 치명상이 부작용을 일으켰다고.”
“그래서?”
“그 이후였어. 아버님과 나는 점점 트러블을 일으키기 시작했네.”
안토니오는 조선소의 일원이라면 사장단의 수익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장인으로서의 자존심을 유지하던 예전이었다면 상상조차 하기 힘든 변화였다. 문제는 안토니오 자신이 그런 변화를 알면서도 그것이 당연하다고 인지했다는 점이었다.
마스터 자코미오는 당연히 아들의 변화를 변절로 받아들였다. 아버지의 경멸을 받으면서도 안토니오는 바꾼 마음을 꺾지 않았다. 가족들과 사이가 멀어질수록 더욱 사장단 측에 충성했다.
안토니오는 어느 때보다 열성적으로 사장단을 위해, 특히 돈 칼리오네를 위해 일했다. 조선 장인과 조선공들의 배당 비율을 줄이고 경영진이 가져가는 몫을 늘리는 개편에도 적극 찬성했다.
안토니오가 변했다며 예전의 동료들이 수군거렸다. 그러든 말든, 안토니오는 조선소를 발전시키기 위해선 사장단이 더 큰 수익을 얻어야 하며, 그렇게 이끄는 것이 자신을 계속 일하게 해준 돈 칼리오네에게 보답하는 길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한 달 전. 아버님과 난 여태껏 싸웠던 것 중 가장 크게 언쟁을 벌였었네. 그러다 흥분하신 아버님이 내 얼굴에 주먹을 날리시더군.”
리는 마음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다혈질인 마스터 자코미오라면 충분히 그럴 만 했다.
안토니오는 40대, 마스터 자코미오는 60대였다. 하지만 자코미오는 워낙 덩치가 좋았고 안토니오가 과거의 부상 때문에 몸을 잘 쓰지 못하는 상태였다.
마스터 자코미오의 펀치는 예상보다 훨씬 제대로 꽂혔다고 했다. 때린 마스터 자코미오 쪽이 당황했을 만큼.
안토니오는 넘어지면서 바닥에 머리를 세게 부딪쳤다. 예전처럼 기절해서 병원에 실려 가진 않았지만 그 후였다. 이틀이나 3일 간격으로 몇 시간 동안 진한 회의감이 몰려왔던 것은.
그 회의감이 몰려오는 순간만큼, 안토니오는 돈 칼리오네에게 이렇게까지 충성하는 자기 자신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회의감의 지속시간이 끝나면, 후회했던 것이 꿈처럼 느껴졌고 다시 원래의 생활로 돌아갔다.
하지만 회의감은 또 들었다. 그땐 조선소에 충성하는 자신의 모습이 꿈처럼 느껴졌다.
“한 달 내내 이러길 반복했네. 마치 내 머릿속에 두 명의 내가 사는 기분이야. 더는 견딜 수가 없네.”
“…….”
그러던 참에 리가 나타났다.
오늘 리를 처음 봤을 땐 화가 치밀기만 했었다. 겨우 딸년을 구출해준 것으로 조선소의, 사장님들의 이득을 강탈하려는 적이라는 생각만이 안토니오의 뇌를 가득 메웠었다.
하지만 퇴근 시간이 지나서까지 조선소의 잔업을 처리하다가 회의감의 시간이 찾아왔다. 안토니오는 경악했다. 아내 없이 애지중지 키워온 소피아를 구해준 은인에게 그 정도로 막 대한 스스로에게. 어느새 조선소 사장단의 노골적인 개가 되어버린 자신에게.
“이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상대는 자네뿐이라고 생각했네. 이 행성의 외부인으로서 딥블루씨와 관련이 그나마 적으니까. 거기에 더해 자네는 슬레이브 헌터로서 세뇌의 전문가라고 했었잖나.”
안토니오는 자신이 감시당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최대한 모습을 숨긴 채 조선소를 빠져 나와 이곳에 왔다. 리의 숙소에 대한 정보는 마스터 자코미오의 작업실에서 확보할 수 있었다고 했다.
오전에 봤을 때와는 전혀 다른 안토니오의 간절한 표정을 바라보며 리는 시가를 다시 빨았다. 시각을 확인했다. 오후 7시 18분경이었다. 저녁 식사가 담긴 룸서비스가 오기까진 약 12분 정도가 남아 있었다.
“그래서, 내게 바라는 게 뭐지?”
“내가 정말 세뇌를 당했는지 알아봐주게. 그리고 만약 세뇌를 당한 게 맞다면 부디 날 원래대로 되돌려줬으면 좋겠네.”
“후…….”
리가 한숨과 더불어 짙은 시가 연기를 흘려보냈다.
“내가 왜?”
“리……!”
“그래주면 우주선을 전부 무상으로 개조해줄 수 있나? 아니면 조선소의 지분이라도 줄 수 있나?”
“그건……불가능하네. 조선소는 내 소유가 아니니까. 우리 힘으로는 무리야. 그리고 아버님이 이미 굉장히 할인을 해주셨다고 알고 있네. 아마 수당을 전부 포기한 결정이셨겠지.”
“난 자선사업가가 아니야. 당신이 무슨 일을 당했든 관심 없어. 내게 이득이 없는 한. 개인적인 불행에는 유감을 표하지. 그럼 슬슬 가주겠나?”
“개인적인 불행?”
안토니오가 콧잔등을 실룩였다. 눈에까지 이어진 흉터가 더욱 두드러졌다.
리는 마스터 자코미오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안토니오가 10대였고 자코미오가 30대이던 예전, 지역의 유명한 조직폭력단이 조선소를 강탈하려고 습격했다고 했다.
그때 그들 부자(父子)는 만신창이가 되면서까지 조직폭력단과 싸워 조선소를 지켜냈다. 마스터 자코미오와 안토니오의 온몸에 난 흉터는 그 싸움의 흔적이었다. 자신들의 조선소를 잃지 않기 위해 생명을 걸었던 용기와 열정의 증거였다.
그랬던 그들의 조선소는 이제 돈 칼리오네를 필두로 한 외부의 사장단에게 병합되었다. 등을 맞대고 전우처럼 싸웠던 아버지와 아들은 등을 돌리고 주먹다짐까지 했다.
리는 그 변화에 인생사의 아이러니를 느꼈다. 하지만 그런 감정과 비즈니스는 별개였다. 안토니오의 문제에 더 개입할 합리적인 이유가 없었다. 리로선 호텔에서 섹스 슬레이브들과 즐기며 지내다가 3일 뒤 우주선을 찾아 행성 딥블루씨를 떠나는 게 최선이었다.
“틀렸네, 리.”
안토니오가 말했다.
“내 개인적인 문제만이 아니야. 난 이 음모가…… 조선소 전체에 걸쳐 일어나는 중이라고 의심하네. 모든 조선소 직원, 조선공, 조선 장인들을 대상으로.”
“……!”
“아주 조금씩, 천천히. 하지만 치명적으로 말일세. 그리고 자네의 방문이 그 음모를 가속시켰겠지.”
“…….”
“이미 돈 칼리오네와 사장단 귀에 들어갔을 거야. 아버님이 이번에도 자네의 편의를 봐줬다는 건. 내 반대에도 불구하고 말일세. 이젠 아버님까지 놈들의 확실한 통제에 두려고 하겠지. 정말 내가 걱정하는 그 일이 아버님에게도 일어난다면? 그렇게 변해버린 아버님이 개조를 맡은 자네의 우주선이라고 무사할 성 싶은가?”
리가 시가를 깊이 빨아들였다. 재가 늘어나며 불이 타올랐다. 안토니오의 이마에서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냉방은 잘 되고 있을 텐데도.
“자네가 받기로 한 것 이상의 것을 약속할 순 없네. 내 의뢰비는 자네가 받기로 한 것을 잃지 않게 해주겠다는 것. 바로 그걸세.”
“…….”
“제정신으로 돌아온 듯한 지금 상태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알 수 없어. 아마 오늘 밤이 다 가기 전에 난 다시 돈 칼리오네 놈들의 개로 돌아가겠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네. 내 머릿속을 멋대로 바꿔놓은 게 정말인지부터 확인해야 사장단의 음모를 막을 수 있다고 보네만?”
리는 입을 다문 채 잠시 시가만을 피웠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오후 7시 27분이 되었을 때, 리가 시가를 입술에서 뗐다.
“정말 쓰레기 같은 기술자에게 맡겼나 보군. 고작 머리 좀 맞았다고 흔들릴 세뇌라면.”
“그게 더 참을 수가 없네. 내 머리를 그딴 것들이 열어봤다니, 일생일대의 모욕이야.”
안토니오의 관자놀이에 힘줄이 돋았다.
“힉, 무셔…….”
안토니오가 풍기는 살벌한 기운을 느끼고 리타가 어깨를 떨었다. 이다는 리타의 등을 문지르며 진정시켜주었다.
만약 안토니오가 몸이 성한 상태였다면 조선 장인이 아니라 용병으로 나섰어도 꽤 이름을 날렸을 터였다. 적어도 지금은 그런 기백을 풍기고 있었다.
리가 안토니오에게 말했다.
“저급한 세뇌라면 살펴보는 데에도, 해제하는 데에도 큰 수고는 필요하지 않을지 모르겠군. 당신네 조선소 도크에 정박해 둔 FTU 호로 가지. 거기 세뇌기라면 충분할 거다.”
안토니오의 표정이 밝아졌다.
“고맙네, 리!”
“내 이득을 위해서야.”
꽁초가 된 시가를 치우며 리는 건조하게 대답했다.
“그럼 일단 난 집에 돌아가지. 너무 늦으면 아버님과 소피아가 걱정할 테니까. 식사를 마친 뒤 조선소로 가겠네.”
“그 사이에 다시 인격이 바뀐다면? 차라리 마스터 자코미오에게 연락해서 아침에 들어간다고 하는 게 어때.”
리의 지적을 듣고 안토니오는 낮게 신음했다. 잠시 생각하더니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자네 생각이 맞아.”
리가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7시 30분이었다. 룸서비스가 올 때가 됐다.
“마침 시간도 됐으니 저녁을 함께 먹고 같이 떠나지.”
“괜찮겠나?”
“1인분을 더 주문하는 정도니까. 물론 지불은 당신이 해.”
“……자네답군.”
안토니오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다가 휴대용 단말기를 꺼냈다. 마스터 자코미오에게 귀가가 늦겠다는 연락을 하려는 것일 터였다.
똑똑.
그때 노크가 들렸다. 안토니오가 방에 들어올 때 했던 노크보다 경쾌했고, 곧이어 젊은 청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문하신 룸서비스입니다~”
리가 아만다와 멜리나에게 눈짓했다. 두 슬레이브는 고개를 끄덕이고 문 쪽으로 움직였다.
사격에 능한 아만다가 적절한 위치를 잡았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바로 방아쇠를 당길 수 있는 태세를 갖췄다. 하지만 핸드건을 드러내진 않았다. 무고한 호텔 종업원을 상대로 분란을 일으켜 봤자 좋을 게 없었다.
한편 멜리나는 조심스레 문의 잠금 장치를 풀었다. 문이 소리 없이 열리더니 모자를 쓴 청년이 식사가 담긴 카트를 밀며 방안으로 들어왔다.
“기다리시던 식사 나왔습니다, 고객님~”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