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7화 〉97편. 밤하늘의 함대전. (97/330)



〈 97화 〉97편. 밤하늘의 함대전.

97편. 밤하늘의 함대전.

딥블루씨 왕립군은 자국 시민들의 안전을 걱정하며 싸워야 했다. 하지만 리는 자신의 생존에만 집중하면 그만이었다. 그것 역시 이 전력차에서 리가 취할 수 있는 유리한 점 중 하나였다.

스페이스 디스트로이어와 경비 셔틀들의 포격이 모두 빗나갔던 것은 아니었다. 합금탄 몇 십 발이 FTU 호를 두드렸다.

하지만 리가 때맞춰 전개한 전방 배리어는 풀 차지 상태로 굳건히 합금탄을 버텨냈다. 측면 장갑 또한 마스터 자코미오의 손길이 어린 하이-플래타늄 소재였기에 직격이 아닌 이상 튕겨낼 수 있었다.

문제는 머신건보다는 유도 미사일 쪽이었다. FTU 호가 고속 기동으로 포격 좌표를 흐트러뜨린 와중에도 유도 미사일들은 자체적으로 목표를 재계산하여 궤도를 바꿔 왔다.

하지만 리가 명령하기에 앞서 멜리나가 적절한 조치를 취했다. FTU 호에서 채프가 흩뿌려졌고 그 미끼에 교란된 유도 미사일들이 엉뚱한 곳에서 폭발을 일으켰다. 교란되지 않은 소수의 것들은 FTU 호의 머신건 난사로 공중에서 요격했다.

선장 및 선단 지휘관으로서 리의 역할은 소소한 대응이 아니라 전체적인 전술을 결정하는 것이었다. 리는 전방으로 돌격해 나간 FTU 호를 그대로 적 함대 사이로 파고들게 만들었다.

“미, 미친?!”

왕립군 스페이스 디스트로이어의 함장이 FTU 호의 저돌적인 기동을 맞이하며 얼굴 근육을 뒤틀었다. 소형 우주선 한 척으로 자신들의 함대를 중앙돌파 할 기세라니! 이런 비상식적인 움직임을 보일 줄은 미처 예측하지 못했다.

함장은 판단했었다. FTU 호가 궁극적으로는 상대적으로 덩치가 더 큰 디스트로이어 급인 그린로즈 호 뒤쪽으로 은폐하리라고. 그린로즈 호를 방패삼아 사선에서 비낀 뒤 원거리 저격을 해올 것이라고.

그것이 정상이었다. 그것이 정상이어야 했다. 그래서 함장은 자신이 지휘하는 스페이스 디스트로이어는 물론 다른 프리깃들 역시 제2차 타격은 그린로즈 호 쪽에 집중시키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리의 고속 돌파가 판을 뒤흔들었다. 왕립군 측은 그린로즈 호를 신경 쓰다가 FTU 호에게 먼저 당할지 모르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왕립군 측이 서둘러 탄막을 치려고 했다. 하지만 상대의 움직임에 대응하여 움직인 쪽과 처음부터 작정하고 움직인 쪽은 반응 속도에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그아아아아아아앙-!!!

포격하는 대신 배의 온 힘을 전진에만 집중시킨 덕분에 FTU 호는 왕립군의 스페이스 디스트로이어와 두 척의 프리깃 사이에 끼어드는 데 성공했다. 이제 FTU 호는 양쪽이 모두 적이었다. 하지만 왕립군 측은 FTU 호 너머에 아군의 우주선이 있어 조준이 몇 배 더 힘들어져 버렸다.

현재까지는 모든 것이 계산대로였다. 그 짜릿함을 만끽하는 대신 리가 목소리를 높였다.

“전 포문 개방! 발포!”

퓨퓨퓨퓨퓨퓨퓨퓻!!!

FTU 호에서 머신건과 레이저 라이플, 유도 미사일 등등이 일제발사 되었다. 왕립군의 디스트로이어와 프리깃들의 측면 장갑에 깊은 생채기를 내며 FTU 호는 거듭 전진했다.

그가가가가가가가가가각!!!

근거리 포격을 주고받는 동안 FTU 호 역시 본격적인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브리지가 흔들리고 스크린에서 번쩍이는 섬광이 튀었다. 외부 장갑 일부가 벗겨지며 폭발이 일어나 선체가 뒤뚱거렸다.

하지만 왕립군 측의 손해는 더욱 컸다. 고작 FTU 호 한 척이 대열을 흐트러뜨린 바람에 세 척의 우주선이 농락당했다. 아군을 향해 오인사격을 하기도 했다. 또한 FTU 호가 대열 사이로 들어왔기에, 왕립군의 우주선들이 경비 셔틀의 저격으로부터 FTU 호를 지켜주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되고 말았다.

비껴가며 포화를 주고받는 와중에도 FTU 호는 엔진 쪽의 후방 노즐을 당하지 않았다. 왕립군의 함대에 뛰어든 돌격 속도가 워낙 빨랐기에, 그리고 리의 목적이 처음부터 화력전이 아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현 위치를 고수하며 포격을 계속하는 대신 FTU 호는 왕립군의 함대를 관통하는 데 성공했다. 그것을 확인하자마자 리가 연이어 명령을 외쳤다.

“노즐 각도 수정! 선체 180도 반전!”

“반전 개시! 원심력에 주의하십시오!”

쿠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웃!

FTU 호의 후방 및 측면 노즐이 괴성을 질렀다. 사이드브레이크를 올리고 드리프트 하는 오토모빌처럼 FTU 호가 공중에서 미끄러지며 뱃머리를 돌렸다. 오퍼레이터의 경고가 끝나기 무섭게, 급격한 반전으로 인한 무시무시한 원심력이 선내의 모두를 덮쳐왔다.

즈우우우우우우우웅!

“크으읏!”

“이 스피드로 반전이라니! 서, 선체가……!”

이다의 걱정대로 FTU 호의 곳곳에선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스터 자코미오가 외쳤다.

“할 수 있네! 내가 만진 배다!”

왕립군 함대를 돌파한 FTU 호가 후방에서 반전 비행을 시도하던 그 순간, 그린로즈 호에서 리를 위해 엄호 사격을 해주던 슬레이브 구스타프도 본격적인 전술 기동에 들어갔다.

“그린로즈 호! 유도 미사일 1차 장전분까지 전탄 발사! 적 셔틀을 쓸어버린 뒤 포위망을 완성한다!”

1척으로 적 함대를 중앙돌파한 리의 무모함. 그 무모함을 바탕으로 냉정한 계산으로 완성해 낸 후방 반전. 거기에다 뚝심 있고 오차 없게 명령을 수행한 구스타프의 지원까지 더해졌다.

그 결과 몇 분 뒤, 딥블루씨 상공에선 보기 드문 광경이 펼쳐지게 되었다. 한 척의 프리깃 급 우주선과 한 척의 디스트로이어 급 우주선이 디스트로이어 급 우주선 1척, 프리깃 급 우주선 2척을 포위해버렸던 것이다.

상식적으론 세 척이 두 척을 포위해야 옳을 터였다. 왕립군 디스트로이어의 함장은 이 몰상식한 상황을 납득하기 힘들었다.

“썅! 썅! 썅!”

발을 구르며 눈을 부라리고 욕을 해봤지만 변하는 건 없었다. 왕립군 함대의 전방에 자리 잡은 그린로즈 호, 후방에 자리 잡은 FTU 호 사이에 끼어 신나게 포격을 얻어맞을 뿐이었다.

그린로즈 호에게 집중하기 위해 뱃머리를 유지하면 FTU 호의 맹공에 후방이 직격당할 터였다. FTU 호를 상대하기 위해 반전하자니 그린로즈 호에게 뒤를 보이게 될 터였다.

좀 더 유능한 지휘관이었다면 리가 감행한 냉정한 비상식에 맞서 자신 또한 변칙적인 방식으로 또 한 번 전황을 뒤집을 수 있었을지 몰랐다. 아직 왕립군 측의 전력이 더 앞서는 이상 그럴 만한 여력이 남아 있었다.

변칙 공격은 궁극적으로 정공법을 당해내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불리해지는 것은 리의 선단 쪽이었다. 만약 최초의 병력이 앞섰다면 리는 결코 이런 무모한 포위망을 시도하지 않았을 터였다.

하지만 리에겐 다행스럽게도, 그리고 왕립군 승무원들에겐 안타깝게도, 왕립군 스페이스 디스트로이어의 함장은 리의 변칙을 파훼할 배짱과 실력 모두 부족했다. 우왕좌왕하는 사이 골든타임이 지나갔다.

콰콰콰콰콰콰쾅!!!

왕립군 프리깃 한 척의 후방 노즐에서 대폭발이 일어났다. FTU 호의 합금탄이 프리깃의 엔진부를 꿰뚫었다.

부유력을 잃은 프리깃은 크게 휘청거렸다. 그러더니 측면으로 기울어지며 지상으로 추락했다. FTU 호의 브리지에서 오퍼레이터들의 환호성이 터졌다.

그린로즈 호가 무더기로 쏘아낸 유도 미사일로 인해 일대의 경비대 셔틀은 전멸했다. 그러면서도 그린로즈 호는 구스타프의 적확한 지휘에 힘입어 스페이스 디스트로이어와 스페이스 프리깃의 협공을 최대한 방어해 냈다.

리는 이때뿐이라고 판단했다. 왕립군 함대와의 전력 차이가 엇비슷해지고 아직 저들의 추가 병력이 이곳에 도달하지 않은 지금 해야만 한다고. 왕립군의 골든타임이 이미 지나갔다면 리의 골든타임은 곧 막을 내리려 하고 있었다.

리가 멜리나에게 확인했다. 반전에 성공한 직후 명령했던 것이 얼마나 수행됐는지. 그러자 땀방울이 맺힌 얼굴로 멜리나가 대답했다.

“아직 충전량은 절반입니다!”

“그 정도면 충분해! 목표, 적 디스트로이어!”

“포착 완료!”

“전방 배리어 해제! 메가 포톤 캐논 발사!”

빠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

FTU 호의 뱃머리 장갑이 개방되며 굵은 빛기둥이 튀어나갔다. 페더럴 블루 색을 띠었던 밤하늘이 일순간 낮처럼 탈색되었다.

“우,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악!!!!”

왕립군 디스트로이어 함장이 비명을 질렀다. 함장을 따르던 오퍼레이터와 승무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 비명은 곧 화염 속에 녹아들었다. 사람들의 몸뚱이와 함께. 성대가 증발하자 비명도 끊어졌다.

메가 포톤 캐논의 빛줄기가 왕립군 스페이스 디스트로이어의 꽁무니를 뚫고 뱃머리에서 튀어나왔다. 그 빛은 갈래를 치며 디스트로이어 곳곳으로 뿜어져 나왔다.

대폭발이 일어났다. 방금 전까지 스페이스 디스트로이어였던 합금덩이가 그 안에서 걸쭉해진 인간들과 더불어 산산조각으로 흩어졌다.

불덩이와 파편이 근처에 있던 왕립군의 프리깃을 덮쳤다. 프리깃의 함장은 서둘러 배리어를 전개했지만 이미 함체에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은 뒤였다.

게다가 이젠 리의 선단이 두 척, 왕립군 함대가 한 척이었다. 아군이 순식간에 학살당하는 광경을 목격한 왕립군 승무원들은 사기가 급락했고, 프리깃의 함장은 이런 부하들을 이끌고 전세를 역전시킬 자신이 없었다.

“혀, 현장 이탈하라!!!”

함장의 명령에 따라 왕립군 스페이스 프리깃은 휘청거리며 뱃머리를 돌렸다. 조타 장치가 파괴되었는지 그마저 힘들어 보였고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 함체에선 연기가 솟아올랐다.

리는 그 마지막 한 척을 격침시키는 데 무기와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메가 포톤 캐논 발사의 여파로 FTU 호의 모든 기능이 저하되어버렸기 때문이기도 했다.

“기뻐할 때가 아니다.”

리는 아직 흥분이 가시지 않은 브리지에서 무뚝뚝하게 말했다. 그리고 출력이 저하된 FTU 호 근처로 그린로즈 호를 불러와 스텔스 배리어를 전개하도록 했다.

아마 이번에야말로 왕립군의 크루저와 배틀쉽 급 우주선이 요격해 올 터였다. 지금 싸웠다간 자살행위밖에 되지 않았다. 당분간은 최대한 은밀하게 이동해야겠다고 리는 판단했다.

“주, 주인님……!”

그때, 이다가 단말기에서 눈을 떼며 말했다.

“돈 칼리오네와 사장단이 어디 있는지 밝혀냈어요. 조선소 컴퓨터를 해킹해 보니까 출입 기록이 갱신됐더라고요.”

리는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겼다.

‘이 시간에, 다시 조선소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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