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6화 〉116편. 행성의 분위기.
116편. 행성의 분위기.
아만다는 자신이 받은 메시지를 리에게 전달했다. 리가 고개를 끄덕인 뒤 휴대용 단말기를 통해 말했다.
“보안대는 그럴지 몰라도, 문제가 생기면 바로 군함이 출동할 거다. 딥블루씨 때와 마찬가지로 말이야. 위성에도 군 기지는 있는 모양이니까.”
“주의하겠습니다. 그리고…… 딱히 입국세를 요구하진 않았습니다만.”
세뇌 기술과는 별개로 높은 세금으로 악명 높은 브레이눔이었다. 그러다 보니, 아만다는 경비대 함선이 메시지를 전달한 것 외엔 별다른 요구를 하지 않고 떠난 것이 내심 의아했던 모양이었다.
“행성 내부에서 뜯어가겠지. 이곳에서 자칫 문제가 발생했다간 아무래도 우리 쪽이 더 유리할 테니까. 몸 사리는 것만큼은 최고 수준의 보안관들이시군.”
“조심하십시오, 주인님.”
“그건 날 건드리는 놈들이 들어야 할 말이겠지.”
…….
…….
…….
오후 12시 55분이 됐다. 이다 크비슬링은 일러줬던 모든 준비를 마치고 도크의 셔틀 곁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노아가 잠들어 있는 수면 캡슐은 운송 로봇에 실린 채였다. 사람이 들어 운반하기엔 일손이 애매했기에 운송 로봇까지 데려가기로 결정했다. 리는 수면 캡슐의 상태를 다시 한 번 살폈다. 완벽했다.
물자 역시 빠진 것이 없었다. 이다가 맹해 보이는 것은 겉모습일 뿐, 처녀의 내실은 탄탄하다는 증거였다.
“잘 했다.”
“아…… 네!”
리의 말을 듣고서 이다가 환하게 웃었다. 성적 발표 때 마음을 졸이던 학생이 선생님의 칭찬을 들었을 때의 표정 같았다.
“그럼 오르지.”
리가 손짓했다. 뒤편에 선 건장한 체구의 남자들이 기계처럼 고개를 숙여 명령 접수를 표시했다.
이들이 리가 이번 방문에 선발한 보디가드 슬레이브들이었다. 19세인 칼 하인츠, 21세인 유석, 22세인 케이시였다.
리가 조종석에 앉고 이다 크비슬링은 옆자리에서 벨트를 맸다. 세 명의 보디가드 슬레이브들은 노아가 든 수면 캡슐과 더불어 그보다 뒤쪽에 머물렀다.
쿠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도크의 해치가 열렸고, 셔틀의 후방 노즐에서 빛과 열이 뿜어져 나왔다.
오후 1시 정각. 어미 곁을 떠나는 치어처럼 소형 셔틀이 FTU호로부터 발진했다. 저 멀리서 푸르게 빛나는 행성-브레이눔을 향해서.
…….
…….
…….
행성 썩딕의 경비대를 피해 불시착했던 것과는 달리, 행성 브레이눔에서는 공인된 항로를 통해 대기권에 진입했다.
리 일행이 탄 소형 셔틀은 브레이눔의 우주항에 무사히 착륙했다. 셔틀을 우주항의 도크에 안착시킨 뒤 리와 이다 크비슬링 그리고 보디가드 슬레이브들은 출입국 사무소의 통관 절차를 거쳤다.
가지고 온 물건에 대한 신고서를 내야 했다. 하지만 신고서를 받을 뿐 딱히 검문을 철저히 하진 않았다. 스캐너는 고성능 폭약의 존재만 따져볼 뿐이었다.
그 모든 과정이 끝나자 브레이눔 행정부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통관 공무원이 데스크를 손가락으로 톡톡 쳤다. 다른 쪽 손으로는 디스플레이를 가리키며.
디스플레이 안에는 리 일행의 수와 물품의 무게에 따른 입국세가 표시되어 있었다. 각종 스페이스 네트워크를 통해 어느 정도 정보를 모아두지 않았다면, 그 금액만 보고도 리는 격노할 수밖에 없었을 터였다.
웬만한 행성의 일주일치 체류 비용을 단순히 브레이눔의 대지에 발을 디뎠다는 이유만으로 지불해야 했다. 더욱 끔찍한 사실은 브레이눔 내부의 물가는 이 입국세 이상으로 비싸리란 점이었다.
하지만 행성 브레이눔을 선택한 것은 리였다. 비싼 값을 치르는 만큼 브레이눔의 세뇌 기술자들 역시 돈값을 하리라 믿는 수밖에 없었다.
통관을 마친 리는 우주항 로비로 들어섰다. 각양각색의 여행자들이 로비를 오가고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은 비슷한 화물을 가지고 있었다. 합금으로 만들어진 수면 캡슐이었다.
수면 캡슐 안에 들어 있는 것은 물론 재료들일 터였다. 리는 실감할 수 있었다. 이곳이 세뇌 기술이 너무 발달한 나머지, 세뇌 자체가 하나의 비즈니스가 되어 버린 행성이란 사실을.
“경계심을 늦추지 마라.”
“알겠습니다, 주인님.”
리가 주의를 환기하자 보디가드 슬레이브들이 즉답했다. 실제로 보디가드 슬레이브들은 전후좌우를 날카로운 시선으로 살폈다. 그러면서 돌발 상황이 발생할 경우 즉각 대응할 수 있도록 근육을 긴장시켰다.
칼 하인츠와 유석은 사주경계를 주로 했다. 케이시의 임무는 노아가 들어 있는 수면 캡슐을 지키는 것이었다.
리는 방문할 세뇌 연구소를 선정할 필요를 느꼈다. 브레이눔의 연구소에 대해선 스페이스 네트워크를 통해 검색해보긴 했다. 하지만 예상대로 쓸 만한 정보는 얻을 수 없었다.
다들 공유하기 싫어했다. 자신이 정말 효과를 본 세뇌 연구소에 대해서. 어떤 특정한 연구소가 일처리를 잘 한다고 소문이 나면 그곳으로 의뢰인이 몰릴 터였다. 그렇게 되면 작업 처리 속도가 느려지며 가격은 높아질 터였다.
정보업자 레밍턴에게 물어보는 방법이 있긴 했다. 하지만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에 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첫째, 세뇌는 리의 전문 영역이기도 했다. 자신의 영역에 대해서 정보업자의 자문을 구한다는 것은 리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그리고 둘째 이유. 레밍턴은 현재 리가 의뢰했던 제너럴 코레아누스에 대한 사실을 로메리카 제국의 주요 데이터베이스에서 해킹하느라 바쁠 터였다. 그런 레밍턴에게 추가적인 부담을 주기도, 그에 따라 빚을 지기도 싫었다.
리는 세뇌 연구소를 고르기 위해서 기준선을 세우기로 했다.
세뇌 기술을 상품으로 내세우는 행성 브레이눔이니 마치 다른 행성에서 관광명소를 안내하는 것처럼 세뇌 연구소에 대한 소개도 있을 터였다. 그것이 아마 행성 브레이눔의 표준적인 연구소 수준일 터였다. 혹은, 브레이눔 행정부에서 의뢰자를 호구로 만들려는 수준이거나.
어찌됐든 리의 입장에선 그 표준적인 연구소보다 좀 더 나은 곳이 필요했다. 기준선부터 시작해 발품을 뛰며 알아보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리는 일행을 이끌고 우주항의 안내 데스크에 도착했다.
“뭐요?”
허연 턱수염을 기른 안내원은 이마에 주름을 만들며 그렇게 물었다. 예의 바른 태도와는 몇 천 광년 동떨어져 있었다. 리 역시 사교성과는 거리가 먼 건조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세뇌 연구소를 소개 받고 싶…….”
탕! 타타탕!
리의 말을 자르며 총성이 들렸다. 그리고 비명이 터졌다.
우주항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로비의 여행객들은 누군가는 바닥에 엎드리고 누군가를 자신의 무기를 뽑아들었고 누군가는 엄폐했다.
리는 무기를 뽑아든 쪽이었다. 보디가드 슬레이브들도 마찬가지였다. 보디가드 슬레이브들은 리와 이다, 수면 캡슐을 에워싸며 라이플을 사방으로 겨눴다. 하지만 아직 발포는 하지 않았다. 리도 방아쇠에 손만 댔다.
더 이상 총성이 이어지지 않았다. 다만 우주항 로비 한쪽에 쓰러진 인간이 하나 생겼을 뿐이었다.
몸집으로 추측하건대 1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여자애였다. 몸을 옆으로 하고 쓰러졌는데 리가 있는 쪽에선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머리가 반쯤 터져서 그곳으로부터 피와 뇌수가 흘러나왔다. 아마 즉사했을 터였다.
“아아~! 구경난 것 없수다!”
그렇게 외친 것은, 아직 화약 연기가 나고 있는 핸드건을 들고 있는 남자였다. 남자는 총구를 천장 쪽으로 향하고 두 팔을 들고 있었다. 자신이 더 이상 발포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남자에게 총을 겨눈 우주항 보안관들이 외쳤다.
“총 버려!”
남자가 보안관들의 지시에 따랐다. 그리고 죽은 여자애를 눈짓하며 말했다.
“소매치기 꼬맹이 년이요. 내 지갑을 훔쳐가려고 했지. 확인해 보쇼.”
보안관들이 움직였다. 몇은 남자를 계속 겨눴고 몇은 여자애의 시체로 움직였다. 남자의 말대로였다. 여자애는 손에 지갑을 들고 있었다. 싸늘하게 식어가면서.
“뭐야, 별 일 아니었잖아.”
지갑의 내용물을 보고, 남자의 신분증을 발견한 보안관이 코웃음을 쳤다. 보안관은 주변을 향해 손을 내저었다.
“다들! 진정하고 총 거두시오!”
소매치기 여자아이를 죽인 남자는 보안관들에게 총을 돌려받았다. 리와 보디가드 슬레이브들은 총을 홀스터에 넣었다. 이 상황에서 혼자 총을 빼들고 있었다간 다음 목표로 찍힐 터였다.
“뭐, 뭔가요, 주인님? 어떻게 된 거예요……?”
이다 크비슬링은 어깨를 움츠리고 떨고 있었다. 리와 보디가드 슬레이브들이 몸으로 형성한 바리케이드 안에서, 눈가에 눈물이 맺힌 채.
리가 이다에게 대답했다.
“어떤 여행객이 범죄자를 즉결 처분한 모양이군. 그뿐이다.”
술렁이던 로비가 보안관들과 안내원들의 지시에 따라 빠르게 정상을 되찾았다. 우주항 청소부들이 머리 터진 여자애의 시체를 치웠다. 이런 일에 익숙한지 빠르고 효율적으로 움직였다.
리는 실감할 수 있었다. 제 목숨은 제 스스로 지켜야 하는 행성 브레이눔의 분위기를.
“당신, 뭐 물어보려던 거 아니었소?”
안내원이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러자 리는 손을 내저었다.
“아니, 됐소.”
“……주인님?”
그런 리의 반응에 이다가 의아해 했다.
“계획을 바꿨다. ……저 자를 따라가지.”
리는 행성 브레이눔의 우주항이 안내해 주는 기준선 대신 다른 기준선을 골랐다. 방금 전 소매치기 소녀를 쏴 죽인 남자로.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그 남자는 우주항 출구 쪽으로 멀어지는 중이었다. 세뇌 재료 보관용 캡슐 세 개를 실은 중형 운송 로봇이 남자를 따르고 있었다.
보디가드 슬레이브들을 대동한 리와는 달리 남자는 혼자였다. 소매치기 소녀도 그 점을 만만히 여기고 남자에게 접근했을 터였다.
그러다 죽었다. 남자는 상대의 나이와 상관없이 자신의 것에 손을 댔다는 이유로 총을 뽑았고, 우주항의 아무도 다치게 하지 않은 채 소녀만을 정확히 명중시켰다.
냉혹한 판단력이었다. 침착함이 바탕이 된 실행력까지 갖췄다. 리는 남자에 대한 호감과는 별개로 상대의 실력에 합격점을 주었다.
리와 마찬가지로 운송 로봇에 합금 캡슐을 싣고 있는 것으로 보아, 남자 역시 재료의 세뇌를 위해 행성 브레이눔을 찾았을 터였다. 그런 판단력과 실행력으로 어떤 연구소를 골랐을지 한번 확인해 보고 싶었다.
“보통이 아닌 녀석이다. 미행을 눈치 못 채게 주의하도록.”
“알겠습니다.”
보디가드 슬레이브들이 대답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