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0화 〉240편. 헬멧 속의 얼굴.
240편. 헬멧 속의 얼굴.
이미 키 아란 이하 긴급 전투 함대를 로메리카 노바 령으로 보낸 유키였다. 이젠 유키 자신이 주력 함대를 거느리고 평행 우주 점프를 시작했다. 달링이 마련해 둔 새로운 보금자리를 향해서.
…….
…….
…….
“……호오.”
리는 유키가 오고 있다는 사실을 키 아란으로부터 들었다. 방어 작전이 끝난 뒤, 나이트 사쿠라 함선 내의 메디컬 시설에서 오른팔 접합 수술을 받으며.
“이곳까지의 점프 항로가 아직 안전하지 않을 텐데? 로메리카 베투스로부터 습격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호위 병력을 보내 보호해 줄 만한 여력까진 없다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대부님. 대모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정도는 본인이 알아서 하시겠다고요. 이런 것까지 도움을 받으면 대부님의 반려가 될 자격이 없다며…….”
“유키답군.”
리는 쓴웃음을 지었다.
과연, 자아가 억압된 슬레이브들과는 다른, 살아 숨 쉬는 날 것으로의 매력을 가진 여인이었다.
“그리고 지난 번 말씀하신…… 선물을 함께 가져 오신다는군요.”
“선물이라. 개봉하는 즐거움은 유키와 재회했을 때로 미뤄야겠군. ……알겠다. 쉬어라, 아란 선장. 앞으로도 해줄 일이 많으니.”
“네, 대부님!”
코레아누스임을 천명한 뒤에도 나이트 사쿠라의 인원들은 리를 여전히 대부라고 부르고 있었다. 리는 굳이 그 호칭을 수정하지 않았다.
키 아란과 함께 온 나이트 사쿠라의 병력은 그대로 로메리카 노바 령에 머물렀다. 이들은 기존의 노바군이 아닌 별동대로서 활약하게 될 터였다. 유키가 나이트 사쿠라의 주력까지 끌고서 합류하면 로메리카 노바의 전투 함선은 1천 척 이상이 될 예정이었다.
연이은 전투가 끝난 뒤 리는 휘하 슬레이브와 장병들에게 휴식을 허용했다. 하지만 그 휴식은 길 수 없었다. 제6집단군을 내버려둬선 안 됐기 때문이었다. 12, 13, 14군단이 궤멸하여 일시적인 병력 공백 상태가 나타난 지금이야말로 로메리카 베투스 제6집단군의 관할지를 집어삼킬 기회였다.
리의 접합 수술이 끝났다. 오른팔의 감각은 아직 완전하지 않았다. 하지만 리는 그 감각이 돌아오길 기다리지 않고, 평행 우주 밀리테리아로 향했다. 그곳으로 끌려간 한 남자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리는 사실, 제6집단군을 처리하는 것보다 그 남자를 만나는 쪽을 더 기대하고 있었다. 포획된 알렉산드로스 황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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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년은 밀리테리아의 사령부 건물에 수감되어 있었다. 리는 그곳에 도착하는 대로, 알렉산드로스를 자신의 집무실로 데려오라고 지시할 참이었다.
하지만 FTU 호가 밀리테리아에 점프 아웃한 뒤에도, 리는 사령부 건물로 직행할 수 없었다. 행성에 착륙하기 전에 긴급 통신이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제너럴. 제너럴을 만나 뵙길 청하는 자가 있습니다.”
“나를?”
보고에 따르면, 그 자가 타고 온 소형 우주선이 평행 우주 밀리테리아 인근에서 노바군 경비 선단에 발견된 것은 리가 한창 한네스 바린하리의 마지막 숨통을 조이던 때였다. 평행 우주 밀리테리아로 점프 아웃 해 온 그 우주선 쪽에서 먼저 경비 선단에 접선 신호를 보냈다.
노바군 경비대는 경악했다. 리의 지시에 따라 밀리테리아 주변을 철저히 방어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해당 우주선은 그 감시망을 뚫고서 밀리테리아로의 점프 아웃에 성공했던 것이다.
만약 로메리카 베투스 측의 공격용 우주선이라든지, 자폭 테러의 목적이 있다든지 그랬을 경우. 리가 최전선에 있는 동안 후방이 무방비하게 드러난 꼴이었다.
하지만 우주선 쪽에서 먼저 접선 신호를 보낸 것으로 보아 기습 의도를 갖고 있진 않은 듯했다. 경비 선단이 접근하자 정체불명의 우주선은 무장해제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요구했다.
“긴히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제너럴 코레아누스에게 직접. ……이쪽을 의심하는 건 이해해. 하지만 이 요청을 그쪽 선에서 함부로 무시한다면, 로메리카 노바는 결국 반란자들만의 잔치로 끝나게 될 거야.”
꺼림칙한 말이었다.
노바군 경비대는 일단 방심하지 않고 우주선을 포위했다. 밀리테리아의 대기권 안으로 들이지 않고 행성 바깥쪽에서 억류해 뒀다. 그리고 얼마 후 리가 밀리테리아에 복귀하자마자 이 사실을 알려온 것이다.
“조심하셔야 합니다, 제너럴.”
상황을 파악한 아만다가 리에게 말했다.
“암살을 위해 잔꾀를 부리는 중일지도 모릅니다. 굳이 제너럴께서 직접 만나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희들이 먼저 확인해보겠습니다.”
“흠……. 그럴지도.”
리는 시가에 불을 붙였다. 연기를 뻐끔거리며 생각하다가, 보고해 온 간부급 슬레이브에게 물었다.
“그 침입자, 자기가 누군지 밝히지는 않았나?”
“이름을 밝히진 않았습니다만, 단말기를 통해 이런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제너럴이 보시면 아실 거라며…….”
리는 슬레이브가 건네준 것을 받아들고 확인했다.
“후후후…….”
“……?”
리의 입가가 곡선을 그렸다. 아만다는 리의 웃음소리를 듣고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당장 만나야겠다. 안내해라.”
“네, 제너럴!”
“아만다. 너는 내 곁을 지켜라. 걱정하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만.”
“……알겠습니다.”
억류되어 있는 소형 우주선 쪽으로 FTU 호가 접근했다. 리는 상대에게 통보했다. 만나되, FTU 호 안에서 만나겠노라고.
아만다가 리에게 물었다. 통보 직후, 상대의 답을 기다리는 동안.
“만약 저들이 거부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자기들 쪽으로 건너오라 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 아마 그러진 않을 거다. 내가 생각하는 자가 맞다면.”
답이 왔다. 리의 예측대로였다. 상대는 순순히 FTU 호로 가겠노라 밝혔다.
…….
…….
…….
얼마 후, 도킹한 소형 우주선으로부터 방문자가 건너왔다.
여성이었다. 아름다운 몸매를 과시하기라도 하듯, 살갗에 달라붙는 스페이스 슈트를 입고 있었다.
독특한 것은 얼굴이 드러나지 않는 헬멧을 쓰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마치 리가 공석에서 가면을 쓰는 것처럼. 그래서 나이나 분위기도 감안할 수 없었다.
리에게로의 접근을 허용하기 전에, 아만다가 이끄는 호위병들이 직접 그 여자를 검문했다. 검문을 통해선 특별한 암살 무기가 발견되지 않았다.
“…….”
의아함을 느끼면서도 아만다는 리의 지시를 철저히 이행했다. 리가 기다리고 있는 기함내 집무실로 여성을 안내했다.
리는 가면을 벗고 있었다. 아만다와 여성이 들어오자 집무실 문이 닫히고, 잠금장치가 걸렸다.
“그쪽에.”
리가 여성에게 자리를 권했다. 여성은 데스크를 사이에 두고 리의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아만다는 무기를 갖춘 채 여성의 곁에 섰다. 상대가 허튼 짓을 하면 바로 반응하기 위해서였다. 정작 당사자인 리는 꽤 느긋한 표정이었다.
“오랜만이군. 그때, 물건을 교환했던 이후로.”
“…….”
리의 말에 여성은 대답하지 않았다. 헬멧을 벗지도 않은 채 묵묵히 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리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리고 물었다.
“그때와 같은 질문을 해볼까. 이젠 대답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데. 당신은 그저 정보원인가? 아니면…….”
“…….”
“……레밍턴, 본인인가.”
리의 질문을 받고도 여성은 잠시 더 침묵을 지켰다. 침묵 속의 응시가 이어졌다.
여성의 어깨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리는 상대가 한숨을 내쉬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더 이상 소꿉장난 같은 짓은 할 필요 없겠지. 할 때도 아니고.”
여성이 손을 뒤로 움직였다. 아만다가 반사적으로 글라디우스 나이프를 빼들었다. 하지만 여성은 개의치 않았다. 손놀림을 계속하여 헬멧을 만졌다.
푸쉬익-!
잠금장치가 풀리며 헬멧이 개방됐다. 여성의 맨얼굴이 드러났다. 하지만 여전히 나이는 짐작할 수 없었다. 표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
담대한 리조차 흠칫할 정도였다.
여성을 그나마 인간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은 동그랗게 뜬 두 눈밖에 없었다. 코도 입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코와 입이 있어야 할 자리에 뚫린 구멍 몇 개가 그 역할을 대신하리라 짐작하게 할 뿐이었다.
인간의 살갗이 있어야 할 자리엔 무수한 기계 촉수들이 단정하게 배열되어 있었다. 복잡한 회로처럼. 일일이 셀 수 없이 많은 촉수의 끝에서 갖가지 종류의 연결 코드가 반짝였다.
“놀랐나, 리?”
여성이 말했다. 입술을 움직이고 성대가 떨리는 방식이 아니었다. 스피커에서 통신음이 나오듯, 여성의 낭랑한 목소리는 구멍에서 바로 나왔다.
“그래, 내가 레밍턴이야. 최소한 이 시대에는 그렇게 불리고 있지.”
처음에는 변조된 음성이었다. 레밍턴과 단말기를 통해 대화를 나눴을 때처럼. 하지만 주파수를 맞춰가듯, 점차 평범한 여성의 목소리와 흡사해졌다.
리는 아만다가 글라디우스 나이프를 치우도록 손짓했다. 그리고 레밍턴의 말에서 언급된 단어를 지적했다.
“이 시대?”
“내게 몸이란 그저 옮겨 다닐 수 있는 숙주에 불과한 껍데기야. 나름 여러 시대를 살아 왔거든. 하지만 자세한 설명은 할 필요가 없겠군. 따분한 얘기들일 뿐이야. 당신에게 쓸모가 없을.”
“……그래도 나와 거래하는 자가 인간인지 아닌지 정도는 알고 싶은데.”
“걱정 마, 인간이야. 그렇게 시작했고, 지금도 반 이상은 그렇지. 적어도, 당신이 만들고 다니는 단백질 인형들보다는 훨씬 더 인간에 가깝다고 자평하는데. 자유 의지란 측면에서.”
“그럴지도 모르겠군.”
리는 담백하게 긍정했다. 그런 리에게 레밍턴이 말했다.
“그 정도만으로 잘 알아챘네?”
리는 레밍턴의 말이, 레밍턴이 건넸던 통신문의 내용을 뜻함을 깨달았다.
“세뇌기에서 탈출한 뒤 깨어난 셔틀에서, 네게 처음으로 연락했던 디지털 주소. 그건…… 웬만해선 잊기 힘들지. 뒤죽박죽이 된 머리통으로도.”
레밍턴이 웃음을 흘렸다. 웃는 표정은 없었지만, 그 소리만큼은 실제와 구분하기 힘들었다.
리가 말했다.
“혹시나 했지만 정말 본인이 직접 나섰을 줄이야. 당신의 정보망, 내 생각보다 훨씬 영세한 것 아닌가?”
“그것까지 알려줄 의무는 없겠지.”
“어쨌거나 환영한다. 로메리카의 추적을 피해서, 음, 우리는 놈들을 베투스라고 부르고 있지만…….”
“알아. 베투스 쪽에선 당신들은 노바가 아니라 반란군인 것도.”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