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64화 〉264편. 난 약속은 지킨다. (264/330)



〈 264화 〉264편. 난 약속은 지킨다.

264편. 난 약속은 지킨다.

로자리나 호는 일부러 자재 일부를 흩뿌리며 팻 함부르크 호 쪽으로 다가갔다. 그 슬레이브 운송선은 어렵지 않게 로자리나 호를 발견했다.

로자리나 호를 발견한 팻 함부르크 호의 선장-실베스터 줄리앙은 기뻐했다. 선의에서 우러나온 기쁨만은 아니었다. 실종됐던 로자리나 호에는 사례금까지 걸려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실종자의 가족들이 돈을 모아 마련한 사례금이었다.

실베스터 역시 이윤을 제1목적으로 생각하는 슬레이브 상인 중 하나였다. 사례금이 없었다면 이 정도로 기뻐하진 않았을 터였다.

“아아, 여긴 팻 함부르크 호! 팻 함부르크 호! 로자리나 호를 발견했다! 들리나? 로자리나 호가 살아 있었다! 기적이 일어났다!”

실베스터 줄리앙은 탐사 본부에 급히 연락을 취하게 했다. 하지만 오퍼레이터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실베스터 선장에게 말했다.

“저기, 선장님. 지금 통신이 안 되는 뎁쇼?”

“뭬야?”

“노이즈가 너무 많이 낍니다. 장비가 고장 난 건 아닌 것 같은데……. 아무래도 이쪽은 벗어난 뒤에 다시 연락해봐야 할 것 같은디요?”

팻 함부르크 호 주변에 흩뿌려진 채프 때문이었다. 로자리나 호의 피해를 위장하기 위해 방출했던 자재에 리는 함선간 통신을 방해하기 위한 채프를 섞어 넣었던 것이다.

실베스터는 의아했지만 로자리나 호를 구출하는 게 우선이라고 판단했다. 팻 함부르크 호가 로자리나 호에 도킹했다.

양쪽 배의 선장끼리 인사하고 승객들의 무사함을 확인한 것까진 분위기가 좋았다. 하지만 다음 순간, 로자리나 호에서 일거에 전투 슬레이브들이 돌격해 들어왔다.

“뭐야, 이 병신 새끼들이!”

실베스터가 놀라며 외쳤다.

“우릴 물로 봤겠다? 다 죽여 버려!”

슬레이브 헌터 급은 아니더라도, 슬레이브 상인들 역시 험한 일이라면 질리게 겪었다. 그들의 상품을 노리는 우주 해적들과 싸우며 상품을 지키는 상인들도 한 둘이 아니었다. 따라서 팻 함부르크 호에도 다양한 방어 시스템이 갖춰져 있었다.

돌격해 들어갔던 로자리나 호의 전투 슬레이브들은 그 방어 시스템에 학살당했다. 하지만 그것은 1진일 뿐이었다. 리는 로자리나 호에서 포획한 승무원, 승객들을 개조해 만든 전투 슬레이브들을 먼저 보냈던 것이다. 그들의 몸뚱이로, 생명으로, 적의 예봉을 둔화시키라며.

로자리나 호 쪽에서의 공격을 막아냈다고 실베스터 일행이 안심했을 때, 그들의 병력이 지쳤을 때, 마침내 리의 주력 부대가 돌파를 개시했다. 샤를과 스페이스 마린들이었다.

팻 함부르크 호의 백병 요원들은 그 가열한 돌파를 견디지 못했다. 전투 슬레이브들의 시체 위에 또 다른 시체들이 포개어 쌓였다.

그렇게 도킹 지점의 혈전에 시선을 끌어놓고, 팻 함부르크 호의 운명을 결정지은 것은 레임이었다.

소형 전투 로봇 스파이디와 한 몸이 된 레임은 전투 구역을 우회하여 순식간에 기관실로 잠입했다. 레이저 커터로 벽 자체를 잘라낸 뒤 들어가 시스템 자체를 해킹했다.

레임은 우주선 인공 지능 관련 지식이 없었다. 하지만 낡은 운송선인 팻 함부르크 호의 시스템은 다행히 스파이디의 기본 해킹 프로그램만으로 돌파가 가능했다.

기관실의 메인 시스템을 장악하자 팻 함부르크 호 자체가 넘어온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방호벽을 닫아 블록끼리 격리하고 수면 가스가 살포되었다.

실베스터 줄리앙 선장을 비롯한 브리지의 모두가 의식을 잃었다. 팻 함부르크 호 역시 로자리나 호와 마찬가지로 리 일행의 소유가 되었다. 그 안에 탔던 인간들까지 전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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팻 함부르크 승무원들에겐 로자리나 호에 탔던 자들보다 더욱 비참한 운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리는 그들의 정신을 장악할 만한 약물을 더 이상 갖고 있지 않았다. 그렇다고 다시 FTU 호와 노바 함대를 불러 세뇌기를 돌릴 수도 없었다.

언제 우주 폭풍이 불어 닥칠지 모를 중간 지대에서 또 다시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쪽으로 아만다들을 부를 시간 역시 부족했다.

그러니, 웬만해선 포로들을 사용할 수 없었다. 그리고 사용할 수 없으니 제거해야 했다.

팻 함부르크 호가 피랍된 평행 우주 카헨타는 다른 운송선의 왕래가 잦은 곳이었다. 점거에 성공했다고 우물거릴 틈이 없었다. 리는 행동을 서둘렀다. 다른 자들의 눈에 띄기 전에 작전을 마무리 지어야 했다.

로자리나 호와 팻 함부르크 호 사이의 교환이 진행됐다.

쓸 만한 인적 자원들은 팻 함부르크 호로 옮겨갔다. 후에 인질용으로 팔아치울 잠재운 학생들과 상품용 섹스 슬레이브로 세뇌된 인원들 그리고 리가 원래 데려온 부하들이었다.

폐기해야 할 인적 자원들은 로자리나 호에 쑤셔 넣었다. 시체가 된 전투 슬레이브들이나 팻 함부르크 호의 기존 승무원들이었다.

단, 팻 함부르크 호의 선장인 실베스터 줄리앙만큼은 살려두었다. 평행 우주 웨르마인의 심사단을 통과하려면 본래부터 그들과 안면이 있는 실베스터의 존재가 필요했다.

정신 개조를 통한 충성을 확보하지 못하는 대신, 실베스터의 가슴엔 폭탄이 부착되었다. 리의 명령을 듣지 않고 딴 마음을 품을 경우, 주변의 피해 없이 실베스터의 심장만 깨끗이 날아갈 터였다. 사라 크림슨을 협박할 때 젖가슴에 붙였던, 그런 종류의 폭탄이었다.

폭탄이 붙은 것은 실베스터 줄리앙의 몸뿐만이 아니었다. 로자리나 호 곳곳에도 폭탄이 설치되었다.

“폭파.”

“폭파 개시!”

리의 명령이 떨어진 직후, 로자리나 호는 화려한 폭발광에 휩싸였다. 리 일행이 옮겨 탄 팻 함부르크 호가 위험 반경에서 벗어난 뒤의 일이었다.

여행에 부푼 꿈을 안고 수많은 학생들이 올랐던 유람선-로자리나 호는 그렇게 산산조각 났다. 학생들의 꿈과 인생은, 그들의 미래는, 그보다 먼저 산산조각 났었지만.

로자리나 호의 폭발광을 뒤로 하고서 팻 함부르크 호는 평행 우주 카헨타를 떠났다. 그들의 목표는 드디어, 평행 우주 웨르마인이었다. 로메리카 제국 제7집단군 우주의 주요 에너지 생산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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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표준 시각 오전 7시경. 팻 함부르크 호는 평행 우주 웨르마인에서 점프 아웃 했다.

행성 출입 심사단은 어렵지 않게 통과할 수 있었다. 실베스터 줄리앙 선장은 이미 웨르마인 측과 여러 번 채광용 슬레이브 거래를 한 사이였다. 심사관은 형식적인 확인 절차만 거치고서 바로 통과 허락을 내렸다. 리의 예측대로였다.

웨르마인의 심사관은 실베스터가 그날따라 식은땀을 많이 흘리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했다. 실베스터의 가슴팍이 약간 불룩하게 튀어나왔다는 사실도.

팻 함부르크 호는 웨르마인의 우주항에 착륙했다. 지구로 치면 아프리카 대륙에 해당하는 곳에 위치한 우주항이었다.

“이 다음엔 보통 어떻게 하나, 실베스터 선장?”

실베스터 줄리앙을 앞에 두고서 리가 물었다.

실베스터는 리의 눈치를 봤다. 리는 실베스터의 폭탄을 터뜨릴 수 있는 리모컨을 매만졌다. 그러자 실베스터가 신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야 부하들하고 술집에서 진탕 마시고…….”

“그건 패스.”

“그렇겠지! 내 부하들은 당신 때문에 다 뒈져버렸잖아!”

리가 리모컨을 가볍게 흔들었다.

순간 울컥했던 실베스터는 끙, 하며 입을 다물었다. 그러다가 얼마 후 다시 입을 열었다.

“……광산 담당자에게 슬레이브들을 인계하고, 그럼 그쪽이 검사하고, 돈 받고 뭐 그런 식이요. 특별한 건 없수다.”

리는 정보를 입수했던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실베스터를 재차 심문했다.

“하이퍼 우라늄 광산 안으로 들어갈 일은 없나?”

“보, 보통 나 같은 슬레이브 상인이 갈 만한 곳은 아뇨. 하이퍼 우라늄이라니, 원석에 닿았다가 뼈, 뼈 삭을 일 있어?”

“……흠.”

리는 행성 웨르마인을 탈취할 여러 방법을 고민하고 있었다. 하지만 명확한 답이 아직 떠오르지 않았다. 대강의 방향만 보일 뿐이었다.

리가 생각한 접근법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어떻게든 주요 광산의 내부로 침투, 그곳을 붕괴시켜 소요 사태를 일으키는 것이었다.

웨르마인의 총독은 광산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움직일 터였다. 그러면 병력의 공백이 발생할 터였다. 그 틈에 행성 외부의 아만다가 노바 함대를 돌격시켜 지휘부를 장악하는 방식이었다.

이 방식은 빠르고 화끈했다. 에너지 자원 확보양은 다소 줄어들어도 성공률은 평균 이상이었다.

다른 하나는 광산이 아닌, 웨르마인의 총독부 자체를 공략하는 것이었다.

향정신성 약액은 이미 다 소모했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 확보해야 할 터였다. 혹은 암시나 세뇌가 아닌 물리적인 방식으로 총독을 제압, 노바 함대를 받아들이게 해야 할 터였다.

이 방식은 느리고 은밀했다. 에너지 자원은 거의 손실 없이 확보하겠지만 성공률은 평균 이하였다.

‘흠…….’

리는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잠시 후, 마음을 정했다. 광산 내부로 침투해 들어가기로. 행성 웨르마인 전체가 비상이 걸릴 만한 사태를 터뜨린 뒤, 행성을 직접 공격하여 점거하겠노라고.

리는 실베스터 선장에게 말했다.

“당신은 이제부터 날 후안이라고 대하도록. 당신의 부선장 정도가 좋겠군.”

리는 실베스터가 광산에서 해야 할 일들을 알려주었다. 실베스터는 감히 리를 거스르지 못했다. 리의 클릭 한 번에 그의 목숨이 달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실베스터는 삶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사내였다.

“저, 정말…… 그렇게만 하면 이 폭탄을 떼 주는 거요?”

“물론이지. 난 약속은 지킨다.”

리는 실베스터를 다독였다.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실베스터가 그렇게 믿게 하는 게 중요했다.

레임은 팻 함부르크 호에 남기로 했다. 스파이디를 탔을 때 진정한 전투력을 발휘하는 레임이었다. 하지만 광산까지 소형 전투 로봇을 가져갈 수는 없을 터였다. 레임은 팻 함부르크 호에 남는 편이 더 낫다고 리는 판단했다.

위기 상황이 닥치면 레임에게 단말기 통신으로 연락하기로 했다. 그러면 레임과 스페이스 마린들이 즉각 광산에 돌입해 올 터였다. 리가 생각한 것들을 실행하기 전까진 그런 전면전은 되도록 피해야겠지만.

샤를과 주요한 스페이스 마린 몇은, 채굴용 슬레이브로 위장했다. 위장이라고 해도 얼마 동안은 가혹한 대우를 받아야 할 터였다. 저 중에 인명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은 있었다.

하지만 리는 샤를을 믿었다. 다른 슬레이브들이 전부 죽더라도 샤를만은 생존할 것임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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