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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4화 〉외전 2편. 금빛 머리카락의 그 처녀. (2) (324/330)



〈 324화 〉외전 2편. 금빛 머리카락의 그 처녀. (2)

외전 2-2.

“저는…… 센추리온 닉 쿠퍼의 손으로 전통을 부수는 모습을, 그것도 저 때문에 그렇게 하시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그걸 보느니 몇 번이고 죽음을 택하겠습니다.”

처녀를 응시하던 닉 쿠퍼가 긴 탄식을 터뜨렸다.

“미안하다, 아만다 대원. 내가 생각이 짧았다. 네 말이 옳아.”

“명령을 거두어 주시겠습니까?”

“그래. 집정황제 폐하에 대한 충성심을 걸고 맹세하겠다.”

황제에 대한 충성심이 걸린 맹세는 로메리카 제국에서 그 어떤 법보다 강력한 공적, 사적 구속력을 발휘하는 말이었다.

“그러니…… 너도 그쯤 해 둬.”

“알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센추리온.”

아만다가 글라디우스 나이프를 수납했다. 언제 빼들었냐는 듯 수납 동작 역시 번개 같았다.

“역시 넌 대단해. 외모도 아름답지만 그 고결한 마음이 훨씬 더 아름답다.”

닉 쿠퍼가 고개를 내두르며 말했다.

“그래서 널 좋아하지만.”

“…….”

“아이러니하군. 내가 좋아하는 네 그 마음씨 때문에 널 지킬 수 없게 되었으니.”

“제 몸은 제가 지킬 수 있습니다, 센추리온.”

“그만 물러가라. 작전 때 보지.”

아만다가 경례를 올렸다. 처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닉 쿠퍼의 집무실을 나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

“아만다 대원.”

집무실 문손잡이를 돌리고 나가려는 처녀의 이름을 청년이 불렀다.

“이번 작전이 끝나면…… 네게 꼭 할 말이 있어. 그러니까, 절대 죽으면 안 돼.”

닉 쿠퍼는 용맹한 특수전대의 리더답지 않게, 그렇게 말할 때 아만다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청년의 귀가 붉어져 있었다.

아만다는 그런 닉 쿠퍼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처녀가 나간 뒤 문이 닫혔다. 닉 쿠퍼는 호흡을 크게 하며 의자에 몸을 뉘었다.

…….
…….
…….

약 1시간 뒤, 로메리카 제국 강습 전투 양륙함 댄들라이언 31호가 목표―소형 우주선 FTU 호를 강습 사정거리에 포착했다.

닉 쿠퍼를 선두로 특수전대 행동대원들은 전부 보호구와 하이퍼 블레이드 그리고 실드를 갖췄다. 그런데 돌입 해치로 가기 위해 대원들과 복도를 걸어가던 닉 쿠퍼의 눈에, 창백한 표정으로 경례를 올리는 여군 하나가 눈에 띄었다.

닉 쿠퍼는 상대의 명찰을 확인했다. 그리고 처녀의 이름을 불렀다.

“유 노아 대원.”

“넷! 센추리온!”

군기가 잔뜩 들어가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노아는 닉 쿠퍼 부대에 배치된 지 얼마 되지 않은 햇병아리나 마찬가지였다.

닉 쿠퍼는 노아가 강습 전투 양륙함 댄들라이언 31호 안에 남아 대기를 명령 받은 백업 팀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자신이 그렇게 지시했었다.

선발대의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그때서야 백업 팀이 목표로 돌입하게 될 터였다. 선발대는 1군, 백업 팀은 2군인 셈이었다.

특수전대에 배치된 지 얼마 안 된 풋내기가 바로 1군에 들 수는 없었다. 닉 쿠퍼는 노아 대원에게서 어떤 자질을 발견했고, 노아가 경험과 실력을 좀 더 키우기 전까지는 백업 팀에 계속 배치할 생각이었다. 신병을 선발대에 바로 넣었다간 더 성장도 못 해보고 죽어버릴 터였다.

물론 어떤 병사는 죽음이 코앞에 있는 전장을 경험해야만 비로소 성장하곤 했다. 노아 대원 역시 그런 타입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닉 쿠퍼는 모험을 싫어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래서 보다 일반적인 확률에 따라 판단했다.

행여 노아 대원이 그런 실전형 스타일이라고 하더라도 이번 작전에서 선발대에 배치할 수는 없었다. 목표가 워낙 목표다 보니.

그 리라는 남자는 로메리카 제국의 입장에선 살아 숨 쉬는 재앙이나 마찬가지였다. 닉 쿠퍼는 목표의 본명을 가이우스 대대장에게 들었지만 애써 그걸 떠올리지 않으려 했다. 웬만한 상황에선 이름조차 불러서는 안 되는 자였다.

어쨌거나, 이 작전은 아만다처럼 노련한 행동대원까지 걱정이 될 만큼 위험했다. 이런 작전에 신병을 선발대에 투입한다면 죽으라고 명령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노아 대원은 적절히 훈련하고 경험을 쌓는다면 아만다처럼 될 가능성이 있었다. 그리고 아만다와 약간 결이 다른 매력까지 갖고 있었다.

닉 쿠퍼가 노아에게 말했다.

“왜 네가 긴장하고 있나? 적함에 돌입하는 건 우리다.”

“긴장하지 않았습니다! 센추리온과 전우들의 무사귀환을 기원할 뿐입니다!”

긴장한 게 역력한데도 애써 부정하는 것 역시 신병다운 태도였다. 닉 쿠퍼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럼 뒤를 부탁한다.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부르지.”

“맡겨주십시오!”

“가자, 대원들.”

선발대를 배웅하는 노아를 뒤로 한 채, 닉 쿠퍼는 부하들을 이끌고 돌입 해치로 걸음을 옮겼다.

…….
…….
…….

쿠쿵!

충돌 진동이 느껴졌다. 댄들라이언 31호가 목표인 FTU 호라는 소형 우주선의 함체를 들이받았다.

로메리카 제국 특수전대 행동대원들에겐 익숙한 진동이었다. 다들 고정대를 잡은 채 자세를 잘 잡고 있었다. 쓰러지는 추태를 보인 대원은 없었다.

치이이이이이이이익!!!

댄들라이언 31호가 뿜은 산화 물질이 FTU 호의 합금 함체를 녹였다. 강습 전투 양륙함은 날카로운 뱃머리를 FTU 호에 더욱 박아 넣었다.

덜컹!

돌입 해치가 열렸다. FTU 호의 함내가 훤히 드러났다. 그곳을 가리키며 닉 쿠퍼가 외쳤다.

“선발대! 돌겨어어어어억!!!!”

“우와아아아아아아!!!!”

함성을 지르는 전우들과 함께 아만다도 내달렸다. 그 누구보다 빠르고 용맹하게 적함으로 뛰어들었다.

…….
…….
…….

닉 쿠퍼 부대는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나아갔다. 작전대로였다. 계획했던 구역을 쭉쭉 점거했다.

그러나 그 사이에 닉 쿠퍼 부대의 뒤에선 격벽이 내려갔다. 그래서 그들의 퇴로를 완전히 폐쇄하고 있었다.

또한 함체 외부에선 초강력 쇼크웨이브가 발사되었다. 그것은 FTU 호에 박힌 강습 전투 양륙함 댄들라이언 31호에 명중했고, 함내에 남아 있던 소수의 승무원들과 백업 팀을 전부 기절시키고 말았다.

그런 사실을 선발대인 닉 쿠퍼 일행은 알지 못했다. 이 작전에선 시간이 생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무조건 빠르게만 돌격하고 있었다. 그래서 평소처럼 후방과 긴밀한 연계를 하지 못했다.

닉 쿠퍼는 목표가 그들의 기습을 전혀 모른다고 여겼다. 그래서 절대적인 우위를 차지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어쨌든 목표가 기습에 제대로 대응하기 전에 이 배의 브리지를 확보해야만 했다.

하지만 브리지를 지근거리에 둔 H구역에 들어섰을 때, 닉 쿠퍼는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자신이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판단했음을.

쿠쾅!

철커덕!

좁은 통로 형태인 H 구역에 닉 쿠퍼와 선발대 15명이 들어선 순간, 묵직한 소리와 더불어 후방 격벽이 폐쇄되었다. 댄들라이언 31호를 봉쇄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세, 센추리온! 퇴로가 막혔습니다!”

한나 대원이 외쳤다. 그러자 닉 쿠퍼는 눈을 부라렸다.

“당황하지 마! 어차피 우리의 목표는 한 놈이다! 브리지를 확보해서 놈의 위치를 파악하고 그 다음 놈을 포획하면 다 끝난다! 이후엔 이 우주선 전체가 우리 것이 될 텐데 뭐가 걱정이야! 전진이다! 바로 저 앞에 브리지가……!”

위이이이이이이이이잉!!!

부하들을 독려하던 닉 쿠퍼의 말이 끊어졌다. 브리지 쪽 벽면이 개방되며, 브리지와 닉 쿠퍼 부대의 사이를 가로막고 한 남자가 나타났던 것이다.

“……!”

닉 쿠퍼의 눈이 커졌다. 저 남자가 바로 목표였다. 지금은 리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슬레이브 헌터였다.

리는 이미 완전 무장을 갖춘 채였다. 방호복은 기본이고 각종 무기를 허리춤은 물론 등에 걸머지고 있었다.

특이한 사실은 로메리카 제국의 군단병들이 일반적으로 가지고 다니는 실드를 들고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대신 리는 하이퍼 블레이드를 오른쪽 손에, 왼손에는 충격봉을 들고 있었다.

닉 쿠퍼 일행을 보며 리가 말했다.

“오랜만에 한가롭게 쉬나 했더니, 날파리들이 방해하는군.”

닉 쿠퍼가 리를 노려봤다.

“레이더 교란은 완벽했을 텐데. 어떻게 기습을 알았나?”

“몰랐다.”

“……?!”

“너희들 강습함이 함체에 충돌했을 때, 마침 브리지에서 시가를 즐기고 있었거든. 그뿐이다. 잠이 안 와서 거기 있었던 바람에 대응이 빨랐지.”

닉 쿠퍼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계획은 인간이 세우고 성사는 하늘이 정한다는 지구시대의 고사가 떠올랐다.

리가 말했다.

“난 시가 타임을 방해받는 걸 너무 싫어한다. 대가를 받도록 하지.”

그러면서 리는 양손에 든 하이퍼 블레이드와 충격봉으로 닉 쿠퍼와 로메리카 제국 행동대원들을 겨냥했다.

“한꺼번에 덤벼라. 세뇌 재료가 되든 시체가 되든, 너희들 운이다.”

닉 쿠퍼는 어금니를 악물었다. 그런 센추리온을 아만다는 걱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봤다. 닉 쿠퍼는 평소보다 확연히 동요하고 있었다.

닉 쿠퍼가 외쳤다.

“제군들! 집정황제 폐하의 적이 저기에 있다! 공격!”

“와아아아아아앗!!!!!”

센추리온 닉 쿠퍼가 먼저 돌격했다. 그리고 아만다가, 한나가, 다른 행동대원들이 좁은 통로를 따라 리에게 쇄도했다.

닉 쿠퍼의 특수전대 행동대원들은 열다섯 명이었다. 반면 리는 하나였다. 그러나 H구역은 좁은 통로였다. 횡렬로 늘어설 경우 두 사람 정도가 한계였다.

병력의 우위를 최대한 이용할 수 없다는 사실은 닉 쿠퍼 역시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많은 병력 자체를 공성기인 하이퍼 램처럼 사용했다. 리를 집중 공격하며 밀어붙이려고 했다.

하지만 리는 처음의 위치를 고수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달렸다. 자신들을 향해 돌격해오는 로메리카 제국 행동대원들을 향해서. 선두에 선 닉 쿠퍼와 아만다를 향해서.

“아만다! 물러나!”

닉 쿠퍼가 처녀에게 외쳤다. 청년과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 온 아만다는 닉 쿠퍼의 의도를 깨달았다.

이번 지시는 아만다를 사적인 감정으로 보호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닉 쿠퍼가 지금부터 하려는 공격을 더욱 원활히 성공시키기 위한 과정이었다. 그렇다면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풋내기들은 실드를 공격을 막는 용도로만 쓸 줄 알았다. 그러나 닉 쿠퍼 수준의 전사에겐 실드 그 자체가 충분한 공격 무기였다. 실드의 가장자리는 날카로운 합금 재질이었고, 제대로 휘두르면 웬만큼 목이 굵은 사내라도 단숨에 죽일 수 있을 정도였다.

“타아아아앗!!!!”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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