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화 〉던전이에용 (3/190)



〈 3화 〉던전이에용

[이 제안에는 시간제한이 걸려 있다는 소리다.]

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위에서 내려보는 듯한 히죽거리면서도 차분하고 침착한 말투.
그것은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현재 상황과 전혀 관련이 없는 제삼자의 목소리라 해도 믿을 정도라….

‘쯧….’

[…음?]

나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유야 이것저것 따질 수 있겠으나, 일단은 없는 반항 정신도 절로 생길 법한 말투여서일까?
해방된 지 얼마나 됐다고 또 목줄이 채워져 끌려다니는 듯한 감각을 맛보고 싶지 않음도 컸다.

[뭘 고민할 필요가 있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대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어차피 하나뿐일 텐데.]

굳이 혀를 차는 소리를 생각하여 보낸 것이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위대하신 세계의 용은 나를 짓뭉개다 싶은 말투로 말을 보내왔다.
뻔히 보이는 유치한 도발이지만…좀 빡친다.

‘….’

[빨리 이 몸을 해방하라 인간…. 이러는 동안에도 갑작스레 그대의 몸이 터져버릴  있는 것….]

‘…어쩌라고 관심 없으니까 그만 좀 거들먹거려. 이 건방진 도마뱀 새끼야.’

[…뭐, 뭐라고?]

‘잘 들었잖아. 이렇게 머릿속으로 직접 전해지는데. 설마 잘못 들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

갑작스럽게 변한나의 태도에 놈은 잠시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내며 신음하더니, 다시금 목소리를 흘려보냈다.

[…실성한 게냐?지금 그대를 살려 줄 수 있는 것은 존재는  몸뿐인 것을 잊은 건가?]

위에서 내려보는 듯한 그 건방진 태도는 여전하다만, 그 목소리에서는 숨길 없는 당혹감마저 느껴지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빌면 넓은 마음으로 용서하여 줄 터이니. 용서를 빌고어서 이 몸을 해방할지어다. 그리하면….]

‘미안하지만, 알아서 해라. 난 그냥 이대로 죽을 거니까.’

[아니. 그게 무슨….]

죽기로 결심하고 뛰어내린 시점에서 생에 대한 미련은 크게 없었다.
살아 고생이란 고생은 실컷 하였고 자유를 얻고 나간다고 해도 그리 순탄하게 흘러가진 않을 것임이 분명하였다.

변변찮은 능력 하나 없는 검은 머리의 노예 출신.
필시 마을에 들어가도 제대로  대우는 못 받겠지….

그렇다고 숲에 들어가 혼자 살아갈 자신도없다.

지극히 평범한 신체 능력을 갖춘 내가 검으로 나무를 베어 가르는 놈들이 넘치는 곳에서 도적질하며 산다는 것도 무리가 있었다.

범죄도 능력이 있어야 가능한 세상이니까.

그렇다면 여기서 살아 밖으로 나가는 것이 오히려 더 큰 고통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막말로 나가자마자 다른 누군가의 노예가 되어 죽여달라 애원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이미 한 번 경험했기에 그러한 암울한 미래는 손에 잡힐 듯 선명하였다.

‘…그러니까 난 여기서 죽을 생각이라고.’

[허….]

나의 결론에 용은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찼지만….

[인간…정말로 이해한 것인가? 그대에게는 전혀 손해가 없는 일이라고? 생에 대한 욕구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닐 터다.]

결국, 아쉽다는 듯 나를 설득하려 들었다.
당연했다. 지금 내가 이대로 죽어버리면 녀석은 다시금 누가 언제 올지도 모르는 이 어두컴컴한 동굴 아래 갇히고 말 테니….
그래. 처음부터 급한 것은 내가 아닌 놈이었어야 하는 것이다.

‘생의 욕구? 죽었다고 생각하고 뛰어내린 시점부터 그런 거 없어졌어. 지금이 편해.’

[거, 거짓말하지 마라!]

그렇기에 놈은 작은 거절한 마디에도 눈에 띄게 강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기억과 감정을 읽는 놈이니 내가 이 상황을 즐기고 있음을 잘 알고 있을 텐데….
아마 그조차 신경 쓰지 않을 만큼 급해진 것이리라.

[지, 지금 고통에 적응했다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바보 같은…. 설령 그렇다 해도 그것조차 이 몸의 마력 탓인 걸 모르겠나?]

‘…환경조차 변화시킬 정도로 강렬한 마력이 흘러넘치고 있다고 했던가? 이런 동굴은 간단하게 채울 정도로?’

[그렇다! 연약한 필멸자에 불과한 그대를 반불사로 만들 정도로 말이다.]

내 질문의 의도를 어떻게 이해한 것인지….
놈은 격렬히 동의하며 말을 이어 보내왔다.

[…하지만 말했듯 이는 터무니 없이 불안정해. 지금 당장에라도 그대의 몸에 흘러 들어간 이 몸의 마력이 역류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때는 여태까지 체납했던 모든 고통이 이자까지 더해 견뎌야 할 것이다. 그대가 그런 고통을 견딜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가? 전신이 갈려 나가는 고통이 더해져도?]

‘뭐 무섭지만….’

[…그렇다면!]

한차례 숨을 돌리듯 생각하며, 이제는 감각조차 사라진 왼손을 생각하였다.
나는 지금  조각을 쥐고 있을까? 아니면 놓치고 말았을까?

‘어쩔 수 없지.’

[…음?]

정말로 악한 것은 수녀님들을 속여 미끼로 쓴 놈들….
직접적으로 행한 것도 아니고 자각도 없으며, 그럴 의도조차 없던 존재에게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은 단순한 화풀이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넌 이 세상을 삼키기 위해 태어난 용이라며?  하나 살자고 고작 배고프단 이유로 세상 하나 씹창 낼뻔하고 아직도  버릇 못 고친 놈을 풀어주면 되겠어?’

[…고작? …인간 따위가 감히 용의…이 몸의 기원을 고작이라고?]

…하지만 그것이면 충분했다.
정황상 저 위에서 보았던, 그 비정상적일 정도로 거대한 도마뱀들은 녀석의 영향을 받았음이 분명하지 않은가?

딱히 복수하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얼씨구나 하며 척 보기에도 수상쩍은 녀석은 제안을 수락하고 싶진 않았다.
수녀님도 이것을 원하실 테고….

[버러지 같은 인간 놈….  쓰레기 같은 새끼야!]

‘아, 깜짝이야. 왜 갑자기 큰 소리고 지랄이야?’

[제길!제기랄!  하필 이런 녀석한테 걸려서…!]

별거 아닌 작은 도발이었음에도 녀석은 자신의 감정을숨길 생각조차 하지 않고 그 분노를 여실히도 드러내었다.

세계의 용이라고까지 자칭하던 존재가 나 같은 인간에게 걸려 아무것도 할 수 없으려니 답답하고 분한 것이겠지.

[기필코그대를 찢어 삼키고 마리라. 죽어서까지 씻기지 않고 영혼에 새겨질 고통을 줄 것이다! 이 몸이 못할 것 같은가?]

‘어.  수 있으면 진작 했겠지.’

[이 시발…! 개 같네! 진짜!]

‘점점 성격 나오는데?’

[─!]

너무 흥분한 탓인가?
차마 표현하기 어려운 요상한 노이즈 같은 것을 보내온 놈은 그렇게 한참을 욕과 증오를 퍼붓더니 이내 제풀에 지친 듯 씩씩거리다 다시금 말을 보내왔다.

[…뭐 됐다. 고작 이따위 존재에게 이 몸이 열을 낼 수는 없지.]

‘계속 진심으로 열 내고 있었으면서….’

확실히 뻔뻔한 만큼은 세계급인 녀석이었다.

[…흥.]

녀석은 내 말은 철저히 무시하기로 작정했는지.
콧소리로 일축하고는 여유로운 태도로 말을 전달해나갔다.

[어차피 그대가 그리 비협력적으로 나온다면 이 몸 또한 매달릴 생각은 없다는 뜻이다.]

‘…음?’

[비록 그대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상태다만, 고작 몇 초 후에 죽을지. 아니면 몇 분, 며칠이걸릴지. 몇 달이나 몇  후가 될지는  몸조차 모르는 것이다.]

‘….’

[아, 이제 좀 감이 오는가?]

녀석은 히스테릭하게 키득거리며 말했다.

[그래. 그대는 고작해야 인간. 아무것도 느낄 수 없이 침묵이라는 고통 속에서 버텨봐야 얼마나 버틸  있겠는가? 영겁과도 같이 느껴질 하루. 평범한 인간이라면 단 며칠도  되어 미쳐버릴 터…. 이 몸이 굳이 나서서 고통을 주려  필요조차 없는 것이지.]

‘점점 말하는 삼류 악당 같아지는데?’

[다, 닥치…에잇! 처음과 반대로 그쪽에서의 연결만 살리고 이쪽은 끊겠다! 진심으로 사죄하여  몸을 해방할 생각이 들거든. 언제든지 말하도록!]

‘그럴 리….’

[…끊는다!]

거짓이 아니었던 것인지.
그 말을 뒤로하여 무언가가 끊어진 것처럼 머릿속에서 ‘뚝─’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

남은 것은 정적과 배속을 마구잡이로 헤집는 듯한 고통.
녀석이 말한 것처럼 찰나가 영겁처럼 길게 느껴지는 고요한 침묵 속에서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다.





물론. 정말로 일주일이 지났는가는  수 없었다.
시간의 흐름을 판별할 수 있는 수단은 오직 체감시간뿐이었으니까.

다만 시간이 꽤 지난 것은 확실했다.
적어도  몸의 모든 감각이 사라질 정도로는 말이다.

“….”

다만 육체의 감각이 없는 것치고는 정신 만큼은 여전히 놀라울 정도로 뚜렷하였는데.
워낙 할 것도 없고 감각조차 없으니 자연스레 시간을 세게 될 정도였다.

1분은 60초. 60분은 3,600초.
그리고 24시간은 86,400초….
이렇게 적어도 세 번을 넘겼으니까….
음…시발.

관두자.

 아직도 나의 정신은 더할 나위 없이 선명한 것일까….
놈의 힘이  육체처럼 정신 또한 유지해주는 것일까?

차라리 미쳐버렸다면 편했을 텐데.
본인조차 의도하지 않은 상황이라 했으니 자의는 아니겠다만 참으로 도움이 되는 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들었냐? 넌 진짜 도움 안 되는 놈이야….’

[….]

이런 생각을 하는 스스로가 끔찍하다만, 알게 모르게 느껴지는 녀석의 존재가 꽤 크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와 같은 고통을 누군가 오래전부터 받아왔고 지금도 받고 있으며, 내가 간 후에도 계속되리란 사실에 큰 위안을 얻게 되는 것이었다.

불쌍하다고?
아니. 스톡홀롬 증후군도 아니고 내가 지금 누구 때문에  모양 요 꼴로 이러고 있는데….

다만 계속하여 용의 존재를 가까이서 느껴왔기 때문일까?
문뜩 이러한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대로 내가 죽으면 이 용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말이다.

적어도 3일 이상. 체감상 일주일 이상.
오차 범위도 3일이라 계산하였을 때 작게 잡아 4일에 높게 잡아 10일….

이 정도로 시간이 흘렀으나 아무런 소식조차 없는 것으로 보아, 너무 위험한 곳이라 판단한 길드 측에서 출입을 금한 상태로 영원히 봉인할 생각일지도 몰랐다.

그리고 용의 고통 또한 영원하겠지….

수도에서도 충분히 활약할 정도의 강한 모험가가 굳이 이런 외진 곳까지 와서 이곳에 봉인된 용을 끝장내주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

아, 지금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드디어 정신이 나가기 시작한 건가?
어쩌면 이게 그 도마뱀 놈의 의도일지도….

미치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이런 식으로 미치는 건 바라지 않았다.
불쌍은 개뿔. 세상을 끝장내기 직전까지 갔다, 제 주둥아리로 말하지 않았는가?

설령 그것이 자신이 어쩔 수 없는 갈증 때문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꿈인가?’

…그뒤로 다시 얼마가 지났을까?
이제는 시간을 예측하는 것조차 포기했다.

그나마 불행인지 다행인지.
최근 들어 많이 나른 해지기 시작해서….
어제는─정말로 ‘어제’인지는 모르지만─잠들어 꿈까지 꾸었을 정도였다.

‘자하…?’

그런 특이한 이름을 가진….
타는듯한 붉은 머리의 소녀와 만나게 되는 꿈이었다.
너무나 선명하여 깨는 그 순간까지 꿈이란 사실을 몰랐던 꿈.
왜 이런 꿈을 꾸었는가?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결국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

그보다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조금씩이지만  몸에 깃든 녀석의 힘이 점점 약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마력에 관하여 문외한이나 다름이 없는 나다.
거기다 육체의 감각 또한 멀어져 대체 어찌 그리 확신하느냐 물으면 대답하기는 어려웠지만, 아마도 희미해져 가는 생명이 그러하듯,  또한 자신의 생명이 끝나 가고 있음을 직감적으로 느낀 것이리란 생각이 들었다.

‘…이제 끝이군.’

그래. 나는 조만간 안식에 빠지리라.
그렇게 점점 나른 해지는 정신 속에서 조용히 다가오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시금 아무런 예고도 없이 놈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마지막 기회다.  몸을 풀어라.]

마치 수십  만에 들려오는 듯한 목소리.
나는 점점 희미해지는 정신속에서 쥐어짜는 심경으로 목소리를 건네었다.

‘…꺼져.’

[후….]

놈은 다시 한바탕 퍼부으려는  으르렁거렸으나 이내 포기한 듯, 자그마한 숨소리와 함께 말을 보내왔다.

[…이 몸이 졌다. 그대를 인정하지.]

‘….’

어딘지 모르게 지친듯한 기색이 역력해 보이는 듯한 목소리였다.

‘그럼…. 그냥 계속 조용히 있어….’

[…그럴 수는 없다.]

‘…왜?’

[그대가…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

녀석 또한 느끼고 있었을 줄은 몰랐지만….
예상대로였던 모양이다.

[하지만 아직 늦지는 않았다. 그러니 제발…. 제발 부탁한다. 이 몸을…이 나를 풀어다오.]

‘….’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세계의 용은 그리도 뻔뻔하게 자신의 말을 이어 나갔다.

[부탁한다…. 이 몸은…아니. 난, 나는 더는 버틸  없다. 결계가 약해지며 비교적 최근에 깨어나긴 했으나, 그대로 그대가 오기 전까지 얼마나 오래 깨어 있었다고 생각하는가? 제발 나를 풀어다오. 죽음으로 풀어도 좋아. 그대가 원하는 대로 좋다. 이제 아무것도 먹지 말고 영원히 굶으라 말하면 시키는 대로 하지. 풀어  직후  심장을 끄집어낸다 해도 좋다. 기꺼이 그대에게 바치도록 하마. 그것도 아니라면 적어도….]

최소한의 자존심인지.
용은 거기서 잠시 말을 흐렸지만, 결코 말을 끝내지는 않았다.

[적어도…. 적어도 가지 말아다오. 제발 부탁이다. 그대로 혼자 떠나지만은 말아다오. 이리 간절히 빌겠다. 제발. 제발….]

용은 애처롭게 빌었다.
그것이 내가 선택할 수 없는 일임은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을 텐데도….
외로움이 가슴에 난 커다란 구멍보다도 고통스러운 고독이 용조차 무릎 꿇렸다.

‘…심장이라도 바치겠다고? 내가 널 어떻게 믿어?’

[증명할…. 증명할 방법은 없다.]

‘…그러면 얘깃거리조차 되지 못하는 거지.’

[함께…짧지만, 함께  고통을 나눈 그대라면 내가 얼마나 절실한지 잘 알고 있을 터다. 얼마나 죽고 싶은지 알고 있을 터다….]

‘….’

놈이 다시금 애원하였고 나는 침묵했다.
그렇게 잠시 침묵이 흐른다.

[제발…. 이렇게 부탁할테니. 제발….]

마침내 용은 흐느끼기 시작했다.

[흑…싫어…싫다…! 그대가, 그대마저 가면 이 몸은 대체 언제까지….]

그럼에도 대답하지 않자, 놈은 마침내 무너져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기 시작했다.
그저 흘러가기만 하는 시간이 세상을 삼키기 위해 태어난 용마저 무너트리고 만 것이었다.
딱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들어서는  되는 것이었다.

[흐윽…제발. 절대로 사람을 먹지 않을게요. 심장도…드릴게요. 훌쩍. 으흑…. 사실…사실 처음부터 누구도 먹고 싶지 않았는데…. 으흑…자하….]

‘….’

나는 머릿속을 비웠다. 한 소녀의 꿈을 꾸었다.
타오르는 듯한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소녀였다.
꿈의 마지막에서 그녀는 나에게 사과한다. 미안하다고 눈물을 보이며 두 손을 벌리며, 눈을 감아온다.

아냐. 미안한 건 나야. 사과해야 하는 것도 나야. 미안해. 미안해.

사과하고 싶었다.
하지만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대신 나는입을 벌렸다.
눈물이 나지만, 행동을 멈추지는 않았다.
멈출 수 없었기 때문에….

“미안해.”

[윽…흑윽…응?]

나는 무엇이 달라졌는지 모르겠지만, 녀석이 반응이 달라진 거로 보아 정말 이걸로 됐나 보다.
그저 딱 한순간만 놈을 풀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뿐인데….
마치 풀어지기 위함을 전제로 설계된 것 같은 봉인에 쓴 웃음을 삼켰다.
이 정도면 솔직히 푼 놈보다 설계한 용사가 문제가 아닌가?

[그, 그대…서, 설마…?]

‘…시끄러워.’

그래. 너무나도 시끄러웠기 때문이다.
변명하자면…그래서였다.

‘…말한 거 지킬 거라 믿는다.’

아무리 그래도 세상을 멸망시킨 변명으로는 끔찍하여, 말을 덧붙여 본다.
책임 전가까지 거듭하여 더욱더 끔찍한 인간이 되어버린 느낌이지만, 어쩔 수 없지.

솔직히 수녀님을 생각하여 조금 버티기는 하였으나, 결국 나 같은…이 세상을 원망할 수밖에 없는 놈을 이러한 상황까지 몰아넣은 이 세상의 잘못이 아닌가?

[푸, 풀린다…! 겨, 결계가 약해지고 있어!]

녀석의 목소리를 들으며….
꿈까지 포함한 이 모든 것이 녀석이 준비한 함정이었으면 어쩌지? 싶은 생각도 들었다만, 그런 것을 판단하기에는 내 정신은 너무나도 흐릿하고 약해졌다.

‘으….’

지금도 계속하여 희미해져 가고 있을 정도였으니까.
점점 더 깊게…. 흐릿하게…잠이 온다.

[아…! 그, 그대! 지금! 지금 보, 봉인 풀리는 중이니까. 기다려…! 이…! 듣고 있…? 목숨만 붙어있으면 살려 줄……까! 정신 똑바…차…고! …봐! 말 안…려?]

약속을 이행하려는 의지는 있는  같아 다행이다만, 이미 늦었다.
너도…네가  잘 알고 있을 터다.

[그대 눈 떠…라! 조금 남…까 정신을 똑바로…!]

불가능하다.
지금도 간신히 정신을 유지하고 있을 정도로 피곤하니까.
이러는 중에도 점점…졸려…와서….

[…!]

이제는 그저 노이즈로만 들려오는 용이었던 것의 다급한 외침.
머릿속이 쪼개질 것처럼 울리는 그 목소리를 끝으로….
나는 의식을 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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