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화 〉숲이에용
“후우….”
그렇게 잠시 숨을 고르시던 수녀님은 겨우 몸을 일으키시어 상황을 살피셨다.
“…저희 지금 살아있는 건가요?”
“그 질문 조금 전에도 하셨어요. …정말 괜찮으신 거죠?”
“아, 죄송해요. 그냥…아직 조금 혼란스러워서요.”
“그럴 만도 하죠. 뼈가 부러지지 않은 게 기적인데요.”
“하하. 몸이 좀 튼튼한 것이 유일한 장점이라….”
수녀님은 주먹으로 자신의 어깨를 툭툭 때리시며 말씀하셨다.
거의 교통사고 직후의 상태에 이토록 멀쩡하신 걸 보면 ‘좀 튼튼하다.’ 할 수준은 아득히 초월하지 않았나 싶지만….
“저보단…형제님은 괜찮으세요? 다치신 곳은?”
“수녀님 덕분에요. 감사합니다.”
“아, 아뇨. 제가 지켜드린다고 하고 계속 도움만 받은걸요.정말 형제님이 안 계셨다면 어떻게 됐을지….”
기적이고 뭐고 이렇게 상냥하신 수녀님이 큰 문제 없다고 하시니 그걸로 됐다 싶었다.
“아, 수녀님! 그래도 혹시 나중에 갑자기 아파질 수도 있으니 지금 가능하시면 ‘기적’이라도 사용해보시다가 마을에 가셔서 본격적으로 진찰을 받아보시는 게….”
“….”
“응? 수녀님?”
적당한 조치를 말씀드린 것뿐인데.
내 말을 들은 수녀님은 어쩐지 우물쭈물한 느낌으로 손가락을 비비 꼬시며 침묵하시다가 마침내 기어서 들어가는 듯한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여셨다.
“저, 저는 못…써요.”
“아, 혹시 자신 없으셔서? 그, 그래도 아예 하지 않으시는 것보다는 나을….”
“아, 아니…그게 아니라!”
수녀님은 고개를 들고 말씀하시다가 이내 고개를 푹 숙이고는 다시금 중얼거리다시피 말씀을 이어가셨다.
“그러니까…요. 저, 저는 정말 아예 전혀…기, 기적 자체를…못 써서….”
“네? 전혀요?”
“으…서, 성직자인데 이상하지요?”
“흠. 듣고 보니 그렇군. 기적을 못 사용하는 성전사라니 마법을 못 쓰는 마법사가 아닌가?”
“야!”
“뭐? 왜? 이 몸이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니거늘.”
아용이의 터져버린 혐성으로 인해 수녀님의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우리가 무신경하게 콤플렉스를 건드리고 만 것일까?
“으…. 마, 말씀하신 게 맞아요…. 사실 창천교 시험도 언니가 억지로 합격시켜준 거라….실제 저는 자격도 없고…흑….”
“아….”
말씀하신 것이 사실이라면 이해할 만도 했다.
여기서 말하는 ‘기적’이란 성직자들이 사용하는 ‘신성술’을 말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신성술…. 그러니까 기초부터는 간단한 ‘치유’의 기적부터 심화 단계에서는 ‘뇌격’ 같은 전격에 관련된 공격 기술까지도 있었는데….
이 세상에는 다양한 종교가 존재하는 만큼 다양한 기적도 존재지만, 그 중심이 되는 신성술의 기초 뼈대는 같아, 성직자라 이름 댈 수 있느냐는 이 기적을 사용할 수 있느냐 없느냐로 구분 지어진다고 봐도 무방했기 때문이었다.
“…응? 뭐냐 계속 기분나쁘게.”
“…아니.”
그러니 비록 아용이가 무신경하게 날리긴 했지만, 그것을 조금 자신 없는 수준도 아닌 전혀 사용치 못할 수준이라면….
실제 사람들 사이에서 마법을 못 쓰는 마법사 취급을 당해도 전혀 이상치 않기 때문이었다.
뭐 나야, 그녀가 없었으면 진작에 죽은 목숨이었고 옆에서 그녀의 고결한 인성을 보아 온지라, 솔직히 성직자라 뻗대는 어중이떠중이들보다는 그녀 쪽이 훨씬 성직자에 가깝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으으….”
적어도 본인에게는 그러한 생각이 들지 않는 듯 수녀님은 그렇게 고개를 푹 숙이시며 한참을 울적이셨다.
“수녀님!”
“네?”
“자, 자기소개라도 할까요?”
“…예?”
계속 울적하시다가 이내 무릎까지 감싸 안으시며 본격적으로 우울해하는 수녀님을 보니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 그리 입을 열었다.
“그…이미 여기 아용이랑은 제대로 인사하신 것 같지만, 실제 사선을 함께 넘은 건 저잖아요. 적어도 통성명은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요.”
“….”
“무, 물론. 수녀님이 괜찮다고 하시면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
수녀님은 물방울이 맺힌 푸른 보석 같은 눈동자로 나와 내가 내민 손을 멍하니 쳐다보셨을 뿐이었다.
순간 생긴 정적, 혹시 실수한 것이 아닌지 긴장되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그렇네요. 생각해보면 저희 아직 서로의 이름도 모르고 있는 상태였죠?”
마침내 ‘쿡쿡’ 웃으시며 고운 미소를 보여주신 수녀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며, 내가 내민 손을 잡아주셨기 때문이었다.
“아마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제 이름은 탈리아, 탈리아 필드에요.”
안쪽은 굳은살로 인하여 조금 거칠지만, 부드럽고 따스한 손의 감촉이 그대로 내 손에 전해졌다.
기분 탓일까? 어쩐지 코끝에서 달콤한 향기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형제님?”
“아, 실례…읏.”
나는 그대로 손에 힘을 실어 그녀의 몸을 일으켜 세워주며 말을 이었다.
정면에 선 둘. 그녀에게서 받았으니, 이제 내쪽에 주어야 할 차례인 셈이었다.
“제 이름은….”
이름이라….
그러고 보니 스스로 자신의 이름을 말해 본 것이 얼마 만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놈들은 단 한 번도 나를 이름으로 불러주지 않았고 계속해, ‘야’…혹은 ‘너’ 정도로 불렀었지.
성이나 내 이름을 외치는 날에는 심한 매질까지 당한 적이 있을 정도였다.
“제 이름은…자용입니다.”
그래서였을까?
특이한 이름이다 보니 나 자신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이름이었는데.
오래간만에 입에 담으려니 어쩐지 조금 그립고도 간질간질한….
그런 어색한 느낌이 드는 것은….
“자용씨…. 자용님. 자용….”
잠시 감성적인 기분이 되어 고개를 내린 내가 그러한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와 고개를 올려보니, 수녀님…아니. 탈리아씨가 그렇게 몇 번이나 내 이름을 입에 담으시며 되새기고 계시는 모습이 보였다.
“수…탈리아씨?”
“…앗!”
이름을 말씀드리자 깜짝 놀라시며, 손을 풀고 멀어지시는 탈리아씨는 어쩐지 크게 당황한 느낌으로 입을 여셨다.
“아…자, 자용씨! 그, 그게 특이한 이름이셔서 잊지 않으려고요.”
“뭐 제 이름이 좀 특이하긴 하죠.”
“아, 아니 그, 그렇다고 결코 나쁘다는 건 아니고요!”
탈리아씨는 횡설수설하며 말씀을 이어가셨다.
그리고 우리는 잠시 숨을 돌리고 쉬다가 이동하기로하였다.
물론. 괴물이 두 마리나 나온 숲에서 그대로 휴식을 취한다는 것이 상당히 위험할 수도 있지만, 다치고 지친 몸을 휴식도 없이 굴리다 적을 만나는 것보단 나으니까.
“…그럼 역시 아용이의 옷은 수녀님이 입혀 주신 건가요?”
“네! 사실 고아원에 기증됐던 옷인데…귀족분이 쓰시던 옷이 섞여왔는지, 너무나도 화려해서요.”
“기증할 때 너무 화려해도 안 되나요?”
“아이들끼리 싸움이 날 수 있거든요.”
“아…확실히 나눠 쓰다 보니 하나만 유독 화려하면 그럴 수도 있겠군요.”
“아무래도 그렇지요. 거기다 애들이 입기에는 좀 어른스러운 복장이기도 하고요.”
“흐음….”
나는 그리 대화하면서도 슬금슬금 수녀님의 뒤쪽을 보았다.
우리가 이렇게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도 수녀님 뒤쪽에서는 터벅터벅 이동하여 걷는 아용이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
말없이 걸으며 곧바로 정면에있는 탈리아씨가 곤죽을 만들어 죽인 도마뱀으로 향하고 있는 녀석…. 비록 사체지만, 자신의 마력으로 커진 괴물에 흥미가 생긴 것일까?
“하암….”
대체 뭘 하려는 것인지 궁금해서 조금 집중해 보던 순간이었다.
녀석은 자신의 작은 입술을 벌리더니….
꿀꺽.
“….”
“혀, 형제님? 갑자기 왜 그러세요?”
“아뇨. 눈이 따가워서요. 먼지가 들어갔나 봐요. 잠시만요….”
방금 본 건 잊자.
아무 일도 없었고말고.
역시 대화란 상대방의 얼굴을 보고해야 하는 법이지.
당연한 예절을 깨달은 나는 뒤에서 벌어지는 일을 멀리하기 위해 최대한 시야각을 좁혀 수녀님과 눈을 맞추며, 조금 전 했던 대화를 이어나갔다.
“아…무슨 말 했더라?”
“옷이요?”
“그래요! 주신 옷. 그래도 꽤 비싼 거 같은데 제가 어떻게 사례라도 드려야….”
“아, 아니에요! 어차피 재활용해야 할까 고민하다 놔둔 것이 창고에 섞여 들어간 거 같은데…. 오늘 이렇게 타이밍 좋게 발견한 것도 그렇고 이 모든 것이 필라피스님의 뜻인 거 같아요. 사례를 받으면 오히려 제가 벌을 받을 것으로요?”
“아니. 그래도….”
나는 말끝을 흐리다가, 이제는 정말 만지면 만지는 대로 쫙쫙 찢어지는 수준에 들어선 내 옷을 쥐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저거 하나면 모를까…. 제가 입을 옷까지 준비해주셨다는데. 그냥 받을 수는 없죠.”
“아무리 그래도 그런 차림으로 마을로 가시면 곤란하실 테니까요. 처음부터 일이 끝나면 드리고자 했던 거니 너무 신경 쓰지 마셔요.”
탈리아씨가 싱긋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그리고 말씀드린 대로 좀 성인 남성이 입을 만한 옷은 좀 한정된 복장이라…마음에 안 드실 수도….”
“아뇨. 아뇨. 그럴 리가요. 지금 저는 알몸으로 다니는 게 더 나을 수준인데요.”
아닌 게 아니라 정말 그랬다. 방금 쥐었던 거로 다시금 찢어져 이제는 살을 가리는 부분 보다 내놓고 있는 부분이 더 많을 정도였다.
“아, 그러면 제가 마을가서 식사라도 살게요.”
“네? 정말 안 그러셔도 되는데….”
“어차피저희도 가자마자 밥부터 먹을 거라서요. 이 정도라도 하게 해주세요.”
해봤자 탈리아씨에게 받은 2실버를 쓸 예정이라 보답이 되겠는가 싶긴 했지만, 그래도 이대로 받기만 해서는 너무 죄송스럽기에 몇 번 더 말씀드리자.
“…알겠어요.”
탈리아씨는 결국 졌다는 듯이 수줍게 미소를 지으시며 고개를 끄덕여 주셨다.
“그건 그렇고…. 그렇게 계속 서 계셔도 정말 괜찮으세요?”
“네? 아….뭔가 갑자기 아프지가 않아서요.”
그래도 뭐가 나올지 모르는 숲이다 보니, 여전히 힘들어 보이시는 탈리아씨를 앉게 해드리고 내가 미어캣처럼 서서 나름의 경계를 계속하고 있었던 차였는데.
“그렇지만 그렇게 피도 많이 났는데…어머! 자용씨…피, 피가 장난 아니잖아요!”
이렇게 반응하실까 봐 일부러 반대편으로 숨기고 있던…. 피가 잔뜩 흐르다 이제는 완전히 멈추어 갈색이 된 나의 바지와 신을 보신 탈리아씨가 기겁하시며 소리치셨다.
“요란하게 피만 많이 난 거 같아요. 정말 하나도 안 아파서….”
“그럴 리가 있겠어요! 어서 앉아 보세요.”
나는 그녀의 말대로 앉았다. 이어 수녀님은 자신의 무릎을 손바닥으로 ‘팡팡!’ 치시더니 “여기에 다리를 올려두세요.” 말씀하셨다.
“수녀님 옷이 더러워질 텐….”
“머뭇거리지 마시고 빨리요!”
넵.
내가 머뭇거리며 다리를 뻗자, 손을 뻗어 자신의 쪽으로 확 당겨간 수녀님이 신을 벗이고 무릎이 보일 때까지 옷을 찢고는 자신의 수통을 꺼내어 남은 물을 천천히 쏟아부으며, 말라붙은 피를 씻겨주었다.
“….”
다리 위로 차가운 물이 기분 좋게 흐른다.
“읏….”
“조금만 참으세요.”
아니. 아픈 게 아니라 맨손으로 살살 씻겨주시는 게 어쩐지 간지러워서 그런 건데….
지금 새삼 생각하는 거지만, 정말 하나도 안 아프긴 했다.
뭐지? 다리가 부어 있거나 마비된 것도 아닌데. 이 정도 피로 이렇게 멀쩡하다고?
“음…?”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나의 다리를 천천히 살피시던 수녀님이 낮게 신음하시며 말씀하셨다.
“사, 상처가…없어?”
“네?”
“상처가…없는데요?”
“….”
땅겨오는 허리를 숙여서 살펴보니 탈리아씨의 말대로였다.
피가 흘러 굳은 흔적은 여실한데, 어딜 봐도 찢어진 흔적이나 피가 새어 나온 흔적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뒤쪽이나 아래쪽도 마찬가지…. 더 위쪽에서 나온 상처…일리는 없을 거 같은데요.”
“네. 묻은 피도 없고 통증도 전혀 없어요.”
“너, 너무 예리하게 베인 상처라 봉합됐나?”
도마뱀한테 긁힌 건데 그럴 리가요.
“….”
그렇게 우리가 한참을 내 상처를 두고 침묵하고 있을 때였다.
꿀꺽. 하고 침을 삼키신 탈리아씨가 조심스레 그 입을 여셨다.
“이 치유력에 그 힘…. 여, 역시 두 분은….”
“네?”
“아, 아니…. 사실 불편해하실까 봐 말은 하지 않았지만, 아용님이 마지막에 블루보어를 쓰러트리는 모습까지는 보고 정신을 잃었거든요.”
혼란스러워서 안 물어보시는 줄 알았는데.
설마 보고 계셨던 것일 줄이야….
“미, 믿기 어려운 광경이었지만, 착각일 수도 있어서 잠자코 있었는데…지, 지금 눈앞에서의 기적…여, 역시 두 분의 정체는 필라피스님의….”
“….”
갑자기 또 이상하게 결론 내 생각하기 시작한 탈리아씨에게 어떻게든 변명하기 위해 입을 열려던 그 순간이었다.
“그대. 잠깐 이쪽으로 오라.”
갑작스레 구원투수로 말을 걸어온 아용이.
나는 옳다구나 하고 일어나 “잠깐만요!” 하고 말씀을 드리고 그녀에게 뛰어갔다.
“무슨 말 하려는 지 몰라도최고의 타이밍이었어!”
“….”
조금 생각할 시간을 벌었다는 생각에 그리 칭찬했더니, 정작 이를 듣는 아용이의 표정은 그다지 좋지 못한 것이었다.
“왜 그래?”
“계약의 부작용이다. 생각보다 힘의 소모가 심하군. 지금도 계속 빠르게 빠져나가는 중이다.”
“뭐?”
심장을 반이나 준 데다가 그 커다란 도마뱀을 날려 보내버리고, 또 오늘 하루만 커다란 용의 힘을 두 번이나 쓴 듯하니까 그럴 수 있다 싶었다.
“…너 혹시 죽어?”
“실없는 소리 마라. 그리 간단히 죽었으면…보, 봉인되지도 않았을 터다. 다만, 아무래도 그냥 자는 정도로는 부족하겠다 싶은 것이다.”
“…부족하다고?”
힘이 부족해 하루 대부분을 잠으로 소모한다던 과거 살아있는 모든 이들의 적이었던 용이 이런 말을 하니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어머? 여기 있던 블루보어가? 여기가 아니었나?”
때마침 등 뒤에서 들려오는 탈리아씨의 목소리.
녀석이 커다란 사체를 단숨에 사라지게 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혹시…부족한 힘을 채우기 위해 무언가를 먹어야 한다고 말한다면 어쩌지?
“이 몸은…지금부터 절전모드에 들어가야겠다.”
“뭔…뭔 모드?”
그리고 나온 것은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
잠시 벙찐 나는 “설마 계속해 한순간도 깨지 않고 잠을 잘 거라는 소리는 아니겠지?” 물었으나, 녀석은 이 또한 부정했다.
“마, 말 그대로 에너지 소모를 좀 줄일…생각…자는 동안….”
아용이는 계속해 고개를 떨구는가 싶더니, 이내 휘청거리며 말을 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정말 피곤한 모양이었다.
아니.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절전모드는 뭔지?
설마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서 잔다는 얘기는 아니겠지? 그 커다란?
아무리 그래도 그런 상태로 같이 다니기는 무리가 아닌가….
“뒤…설명…알아서…잘…부탁….”
하지만 그러한 나의 걱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제 몸을 검은 연기 같은 것으로 휘감기 시작했다. 그래 마치 처음 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처럼 말이다.
“야, 야! 잠깐만! 여기서 그렇게 변하면 어떻게 하라고! 그걸 어떻게 설명하면 좋은데! 야 눈! 눈 떠봐!”
“….”
아용이는 대답하지 않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검은 연기가 마침내 녀석을 가득 채우고…사라지며, 다시금 모습을 드러낸 녀석은 확실히 검은 비늘을 가진 용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자용씨? 아용님은요?”
잠시 뒤. 한참이 지나도 오지 않는 나를 향해 온 탈리아씨는내 말에 믿을 수 없다는 듯 손에 들고 계시던 수통을 떨어트리며 말했다.
“예?”
“아니. 그게 그러니까….”
녀석은 대충 둘러대라고 하긴 했지만,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삐약!”
“….”
내 품에 안긴 작고 검은 것이 꿈틀거리며 고개를 내밀어 보였다.
…에라 모르겠다.
나는 결국 모든 걸 포기하고 녀석을 보이며 말했다.
“저…. 그게 사실은…이 찰떡같은 게? 아용이…거든요?”
“이 몸! 이 몸!”
품에 안을 수 있을 법한 작은 크기의 형태로 자신의 등에 달린 날개를 연신 파닥거리며 말하는 그 용의 목소리는….
평소의 그것보다 훨씬 혀짧고 어린아이 같은 목소리긴 했지만, 틀림없이 아용이의 목소리와 일치했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