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4화 〉마을이에용 (14/190)



〈 14화 〉마을이에용

이제 와 말하기도 새삼스럽지만, 탈리아씨는 무척이나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산들바람에 살랑이는 푸른 머리카락과 잔잔한 호수처럼 보는 이의 마음을 차분하고 맑게 해주는 진한 파랑의 눈동자가 돋보이는 미모도 그러했지만, 달라붙는 수녀복에 드러난 몸매 또한 상당하여서 옆에서 걷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숨을 참고 그녀를 바라보게 될 정도였다.

특히나 뒤에서 드러난 자태는 정말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매력적이었는데. 정말 신기하고 환장하겠는 것은 그녀의 매력이 밤이 깊어 갈수록 더욱더 깊어져 갔다는 것이었다.

평소처럼 살랑거리는 머리카락과 흔들림 없이 차분한 푸른 눈동자는 집 밖으로 새어 나오는 불빛을 받고 어두운 하늘에 빛나는 별처럼 빛이나, 커다란 사파이어처럼 반짝일 정도였고.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임에도 백옥처럼 하얗던 피부는 내리쬐는 달빛이라도 흡수하는 건지 은은하게 비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마치 태어나서부터 달의 마력이라도 지니고 태어난 사람인 것처럼.

두근두근─

덕분에 나는 이러한 캄캄한 야밤에 그녀의 향기를 따라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그녀의 집으로 향하고 있는 나는 쉴 새 없이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가 그녀에게 들려지지는 않을까 걱정해야 할 정도였다.

“괜찮으세요? 혹시 아까 아용님에게 맞으신 게…. 아용님이 들어간 가방이라도 잠깐 제가 들까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이게 편합니다. 정말로요.”

잠을 자던 아용이를 살짝 깨우자  크고 묵직한 꼬리가 날려와 뺨을 한 대 맞긴 했지만, 다시 작은 용의 형태로 돌아가 주어 다행이었다.
덕분에 가방을 살짝 앞으로 메어 피가 쏠린 하반신을 숨기며 자연스레 걸을  있었으니까.

“힘드시면 언제든지 말씀해주세요.”
“네,네!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저랑 자용씨 사이인걸요?”
“네? 아, 네! 그렇죠….”

꿀꺽. 하고 마른침을 삼켰다.

역시 이거 각인가?

나는 조용히 고개 숙여 생각했다.
각이다. 이건 아다의 시선으로 봐도 그러한 각이 아닐 수가 없지 않은가.

아무리 수녀님이라 해도 평범한 성인 남녀.
내가 그녀에게 느끼는 호감이 말할 필요도 없고 그녀에게서 나에게로 느껴지는 호감 또한 어쩐지 그닥 나쁜 것 같지는 않다고 확신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하나부터 열까지 챙겨주시며, 나처럼 수상쩍은 사람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숨겨 주시어, 끝내 집에까지 초대하시지는 않으실 테니 말이다.

물론. 신을 모시는 신분.
내가 먼저 그녀에게 손을 댈 생각은 없지만….

만약 그녀가 그러한 신호로 예상되는 사인을 주신다면, 거부할 생각 없이 당장에 넘어가 드리고자 생각했던 것이었다!

“아, 저기 길목만 넘으면 진짜 끝이에요.”
“정말요?”
“네 직선으로 가서 바로 코앞이거든요.”

그리하여 계속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그녀를 따라 걷는 주이었는데.

“그럼, 여기서부터는 간략한 지도를 그려드릴게요.”

말씀하신 길목을 넘자, 함께 가는 줄 알았던 탈라이씨는 작은 종이와 깃펜을 꺼내 드시고는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설마 혼자 먼저  있으라는 뜻인가?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네? 같이 가시는  아닌가요?”
“저는 근처에…먼저 오전 일의 보고를 하러 가야 할 것 같아서요. 열려있을 것 같지만, 혹시 모르니 열쇠도 드릴게요.”
“아….”

나는 아차 싶었다.
확실히 오늘 수행한 임무는 나에게 손해 없는 이득을 주었지만, 탈리아씨와 그녀의 의뢰인에게는 실패라 봐도 무방한…안 좋은 결과만이 남은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죄송해요. 제가 눈치 없이, 너무 신이 났던  같아요.”
“아니에요. 이미 오래전에 벌어진 일이었고…덕분에 저도 좋은 시간을 보냈으니까요. 자용씨가 없었더라면 임무를 마치고 이렇게 웃지 못했을 거예요.”

세상에 이토록 선한 사람이 또 있을까?
돌아오면 내  최선을 다해 위로해드리리다.

그렇게 그녀에게서 간략한 지도와 열쇠를 받은 나는 먼저 그녀의 집에 들어가, 약간의 로맨틱한 준비라도 해놓을까 생각하며 걸음을 서둘렀던 것이었다.





“여, 여기 맞나? 생각보다 크네….”

주말에는 교회처럼 운영하는 곳이라 하셨으니, 교회치고는 작은 건물일지도 싶긴 했지만, 경비병의 반응을 보니 교회로 운영해도 찾아오는 신도가 적을  같은데….

“마을 하나에 교인이 다섯 명이라….”

자연스레 분수대에 두고 온 분홍 머리 수녀 아가씨가 생각났다.
설마 아직도 거기서 나를 기다리고 있지는 않겠지?

에이…. 사람이 바보도 아니고.
10분 만에 온다고 했는데 벌써 한 시간은 가볍게 지났으니 그럴 리가 없겠지.

그래도 혹시 모르니 앞으로도 만나지 않게 조심하자.

탈리아씨가 나를 집회 같은 곳에 강제로 참여시킬 사람은 아니지만,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에는 최대한 죽은  지낼 예정이었다.

최대한 아무도 만나지 않고 간단한 일로 여행비만이라도 적당히 벌어서, 빠르게 이 마을을 떠야지.

이곳에 있는 이상.
진정한 의미에 자유는 손에 넣을 수 없을 테니까.

“그럼…실례하겠습니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은 나는 탈리아씨가 주신 열쇠를 넣어, 굳게 닫혀있던 문을 조심스레 열어 보였다.

“오….”

그러자 의의로 가정집 같은 분위기에 안쪽이 나타나 나를 반겨 주었다.
주말쯤에 창천교인끼리 모여, ‘하하 호호.’하고 즐겁게 보낸다 생각하니 역시 창천교가 마이너해서 그렇지 무난하게 좋은 종교가 아닌가 생각될 정도였다.

물론. 가입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나는 독실한 무교니까.

“이차….”
“쿠울….”

대충 선반이 있는 곳에 작은 용이 코를 고는 소리가 들려오는 가죽 가방을 내려놓고 허리를 이리저리 움직였다.
잦은 피로가 누적되어 피곤한 기분은 들었지만, 그래도 사람처럼 커지면 30kg은 가볍게 넘을 듯한 아용이를 업고 종일 돌아다닌 것치고는 묘하게 몸이 가벼웠다.

“이것도 용의 심장 때문인가?”

나는 아용이가 들어 있는 가방을 보았다.
딱히 내가 의도한 계약은 아니었지만, 결국 녀석이 많은  희생하여 나에게 많은 것을 해주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덜컥─

잠시 그러한 묘함에 조금 감상적인 기분이 되어 있을 때였다.

“거기 누구 왔어? 왔으면 좀 말을 하고 들어…응?”

바로 옆에 있던 문이 열리며, 방금 샤워를 끝마치고 이제 막 물기를 다 닦고 나온 듯한 여성이 등장한 것은….

“….”

매서운 초록색 눈동자에서 흘러나오는 야성미 때문일까?
마치 숫사자의 갈기가 생각나는…정리되지 않은 듯한 느낌의 짙은 황금빛 산발이 인상적인 여자였다.

크고 작은 흉터가 많긴 하지만, 흉터를 빼놓고 보면 깨끗하고 아름다운 몸매, 탈리아씨와 비교해도 꿀리지 않고 이겨 먹을 수준의 커다란 가슴.

“야….”
“예, 예?”

그녀의 크고 아름다운 특정 부위에 정신이 팔려, 고개를 숙이고 있던 나는 위에서 들려온 벼락같은 목소리에 얼빠진 태도로 고개를 올려 보였다.

“옷, 입고 올 거다.”

조금 허스키하지만, 아름다운 목소리였다.

“진짜 뒤지기 싫으면. 그 자리 그 상태로 유지하고 있어라.”
“….”

당장에라도 나를 찢어 죽일 듯 으르렁거리는 것이 매우, 상당히 아쉽긴 했어도….

“대답.”

그녀가 다시금 낮게 내뱉었다.
그 순간 그녀의 비취색 눈동자는 정말로 맹수의 그것과도 같아서….
나는 고양이 앞에선 쥐처럼 자연스레 “넵.” …하고 복종할 수밖에 없던 것이었다.




“…그래서 탈리아가?”
“…네. 그렇습니다.”

그렇게 불편한 면담이 시작되었다.
나는 그녀의 허락을 받아, 잠든 아용이가 들어 있는 가방을 방에 넣어둔 후.
그녀가 시키는 대로 식탁  의자에 앉아, 아직 이름 모를 그녀를 대면하였다.

직사각형의 커다란,  보기에도 대 가족용 식탁이었다.

“그래서 우리  애가  짝이랑 정확히 무슨 관계인데?”
“…그, 글쎄요?”
“글쎄요? 그을~쎄요?”
“아, 아니. 그게 오늘 처음 만난 사이라….”
“어허…. 그럼 자네는 지금 우리 애가 오늘 처음 본 남자를 바로 집에 데려오는…그런 애라고 말하고 싶은 건가 지금?”
“아니. 아닙니다. 어머님.”
“…누님이라고 해라. 비도 안 오는데 먼지 털리게 처맞기 싫으면.”
“넵. 누님….”

초상날 것 같은 분위기에 나는 황급히 호칭을 바꾸어 말했다.

“언제 봤다고 누님이야!”

…어쩌란 거지?

“…내 이름은 제인 필드다.”

잠시 이어진 살벌한 문답 끝에 눈앞에 있는 여성은 자신을 탈리아 씨의 언니인 ‘제인 필드’라 소개했다.

“네 생에 마지막으로 듣는 이름일 수도 있으니까 잘 기억하고.”
“….”

그녀는 여러모로 탈리아씨와 다른 사람이었다.
정신병이 있어 보이는 것도 그랬지만, 아니. 그래서인지 더욱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좋게 포장하면 언니의 책임감이라는 것일까?

매사 사근사근하고 친화적이던 동생분과는 다르게, 그녀는 초장부터 흉포하고 거칠었으며, 방어적인 태도로 나를 대하였다.

“그래서 지금 조용히 나갈래? 아니면 뒷마당에 조용히 묻힐래?”

이건 좀 너무 심하지 않은가? 싶은 수준으로….

동생이 데려온 정체불명의 외간 남성이 어지간히도 마음에 드시지 않는 모양이었다.
 같아도 탈리아씨 같은 여동생이 나 같은 놈을 데리고 오면 그야 죽이고 싶긴 하겠지만….

“…눈 안 깔아?”
“….”

그래도 역시 심하지 않나요?

민소매로 드러나는 그녀의 터질 듯한 근육과 흉터,집 안을 쓱 둘러보기만 해도 발견할 수 있는 몇몇 훈장들이 이대로면 진짜 탈리아씨가 오기 전에 파묻힐 수도 있겠구나 싶은 생각을 들게 해주었다.

“그, 그게…흑. 지, 진짜 오늘 처음 만났는데…. 제가  푼도 없어서…. 아니. 그게 돈이 있었는데요. 식당에서 그러니까…흑.”
“…응? 야, 야  우냐?”

어떻게 잘 설명하려고 했는데 목소리가 떨렸다.
2년간의 서러움과 계속된 피로가  편하게 이완되려 된 참에 예상치 못하게 찾아온 두려움으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야, 야. 그, 그만 울어.”
“흑…. 죄송…흑흑.”

이어지는 수치심 때문일까? 한 번 쏟아진 눈물은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아이 씨…미치겠네…왜, 왜 갑자기 울고 그래….”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본격적으로 눈물을 쏟기 시작하자.
제인 필드의 표정에 깊은 당혹감이 올라왔다.

그녀의 시선으로 보면 검은 머리 야만인일 내가 이렇게 대놓고 눈물을 보일 줄은 몰랐던 모양이었다. 누가 알았겠는가?

“미안. 미안. 내가 잘못했어. 그만 울어라. 응?”
“죄송….”
“아니. 죄, 죄송할 건 없고….”

제인은 그렇게 말하며 서둘러 자기 의자에서 일어나 조용히내 옆자리에 앉았다.

“그래 사탕 줄까? 사탕 하나 먹을래?”
“…흑.”

내가 최대한 눈물을 멈추려 훌쩍이자, 그녀는 그대로 일어나 어디선가작은 알사탕 하나를 손가락에 쥐고 오더니, 그대로 자기 손가락으로 내 입에 밀어 넣어 주기까지 하였다.

“앙~ 옳지. 달지?”
“흑…녜해….”

확실히 오래간만에 섭취하는 단맛…그것도 딸기 맛이었다.

“미안해 동생 내가 잘못했으니까. 그만 울어 알았지? 뚝! 자 여기다  풀고.”
“킁─.”

그녀가 코에 대준 손수건에 시키는 대로 코를 풀었다.
사실 이쯤 오면 눈물도 다 말랐지만, 옳지~ 옳지~ 당하는 게 묘하게 기분 좋아서 일부러 훌쩍였다.

새로운 취향에 눈뜬 것인가?

“괜찮아 졌어?”
“네, 네….”

다만 역시 정도껏 해야 의미가 있는 것이리라.
나는 이쯤 하여 눈물을 그치고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다시 한번 천천히 또박또박 그녀에게 설명하였다.
물론 아용이에 관한  빼고.

“후…. 그래 알았다 믿어줄게. 동생이 일하러 간다고 한 것도 들었고…. 또, 네가 입고 있는 옷도 내가 구호소에 가져다 놓은 게 확실해 보이니까.”

 이야기를 들으며 다시 내 앞으로 자리를 옮긴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더 자세한 건 탈리아가 오면 바로 확인할 수 있겠지…. 적어도 그동안은 내 집이다. 생각하고 편히 쉬도록 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짜식….”

거친 미소와 함께 그렇게 중얼거린 제인은 다시금 일어나, 컵 하나와 사과 하나를 식탁 위에 올려두었다.

“대신 한 가지만 약속해.우리 집에 묵는 동안 다른건 몰라도 우리 애들이랑은 문제가 없어야 해. 알겠지? 만약 네가 이 집에 있는 동안 우리 애들과 조금이라도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면….”

그녀가 사과를 오른손에 쥐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땐 울고 짜도 소용없이 쥐어짜─ 죽인다.”

으직, 쪼르륵─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채워지는 잔.

꿀꺽.

눈으로 보았기에 신뢰할 수 있는 순도 100%의 생사과즙이었다.

“이건 너 마셔.”
“네…. 가, 감사합니다.”

나는 두 손으로 공손히 받아든 컵을 잡고 그 안에 있는 액체를 목구멍으로 넘겼다.
공포심으로 맛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시원하고 향긋한 느낌은 들었다.

쿵쿵쿵─!

“아, 왔나? 가서 문 열어줘라.”
“네, 네 누님.”

나는 떨리는 다리로 겨우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으로 향했다.
문 쪽에서는 계속해서 ‘쿵! 쿵!’ 노크하는 소리가 끊이질 않고 있었다.

탈리아씨는 의외로 집에서는 말괄량이인가?

쾅쾅쾅─!

“자,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아무래도 그 탈리아씨라고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거세지는 두들김.
잠금장치를 풀며, 묘한 위화감의 정체를 생각했다.

“아….”

그리고 문을 여는 순간 깨달았다.

“애…들?”

제인이 말한 동생이 탈리아씨 한 명이 아니었음을….

“흑…흐앙…. 언니이! 왜 이렇게 늦게 열었….”

그리고 눈앞에 보이는 필드가의  다른 동생으로 추정되는 여자는….

“어? 너, 너는?”
“….”

분명 어디선가 본 듯한 지팡이와 옷을 든 핑크색 머리의 작은 수녀 아가씨였다.

“뭐야 너였어? …응? 근데 둘이 뭐해?”
“….”

바로 뒤에서 제인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차마 뒤돌아볼 수가 없었다.
가슴 쪽에 올려진 소녀의 손에서 작은 구리 동전 하나가 반짝였기 때문에….

“나아…지, 지금까지…. 계속, 계속…거기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

나를 알아본 그녀의 눈동자에서 보석 같은 눈물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이것이 업보인가?

울리면 쥐어짜─ 죽여버릴 거야.
바로 직전에 들었던 경고가 계속하여 머릿속의 비상 신호를 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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