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0화 〉트롤은 어디에나 있어용 (60/190)



〈 60화 〉트롤은 어디에나 있어용

“태초에 프레이야님이 있었습니다.”
“하아….”

결국, 열열한 유일광명교 신자인 오린은 해가  때까지도 내 곁을 떨어지지 않으며, 한참이나 자신의 말을 이어 나갔다.

“광명의 여신이자 자애의 여신이신 프레이야님은 지상의 모든 지성체를 평등이 여기시어….”
“아 진짜 화내기 전에 좀 닥치라고요….”

귀에 딱지 앉겠네.
보통 메이저한 종교에서는 이렇게까지 포교를  하지 않나?

“형제님 격해지셔도 괜찮습니다! 프레이야님은 모든 죄를 용서해주시니까요.”
“돌겠네. 진짜.”

온갖 욕설과 핍박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말을 이어 나가는 오린을 보며 진작 날붙이를 들이밀어 쫓아낼  후회했다.

아주 조금 전에 있었던 트러블 때문에 안 그래도 분위기 곱창 났는데 뭔 말만 하면 사람 죽이려 드는 미친놈으로 보이고 싶진 않았기 때문에 참았더니, 타이밍을 놓쳐  지경까지 와버린 게 문제였다.

시발. 이게 다 그 양아치 새끼 때문이야.
다음번에 보면 칼빵은 아니더라도 죽빵은 꼭 먹여  테다.

“그래서 여신님은말씀하셨습니다.”
“으아아아!”

그 여신과의 일대일 면담을  10분만 해보면 바로 머리 밀고 속세를 떠날 텐데.

수 세기간 이루어진 세뇌 활동에 좋다고 속아 그녀의 복음을 전하는 드워프를 보고 있자니 어쩐지 안타까운 기분도 들었지만, 그 이상으로 딱한 건 그런 안타까운 존재에게 고문받고 있는 나였다.

“계속해 말씀드렸듯 여신님은 저희를 위해 자신을 스스로 희생하시어….”
“워…. 아저씨 그만 좀 하세요. 거의 죽이려고 하시네.”

그렇게 그의 말을 한 귀로 흘리며 걷고 있을 때였다.
정말 그야말로 한 줄기 광명처럼,또 다른 누군가가 우리 사이에 끼어들어 말했다.

“저도 광명교 신자지만, 그렇게까지 하시면 들어올 사람도 도망치겠어요.”

명랑한목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금발의 젊은 남자아이가 해맑게 웃으며 우리를 보고 있었다.

“음? …너는?”
“제 이름은 칼이라고 합니다. 이것도 인연이니 잘 부탁드려요.”

칼. 이름값답게.
장비라고는 칼 한 자루 달랑 들고 호기롭게 등장한 이 젊은 친구는 젊다. …라는 말이 부족할 정도로 어려 보이는 청년보다는 소년에 가까운 앳된 외모를  남자였다.

이렇게 어린 나이에 모험가라는 3D 극한직업을 선택할 정도라니.
분명 무언가 사정이 있겠지만, 세상이 세상이다 보니 그렇게 특별한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흠. 방해가 들어왔군요. 나중에 다시 말씀드리러 오겠습니다.”
“또 올 거면 그땐 진짜 준비 단단히 하고 오시는 게 좋을 겁니다. 진짭니다. 경고했습니다.”
“그럼 다음에….”

소름 끼치게 무서운 소리를 하며 떨어지는 오린에게 선전포고하듯 경고했더니, 그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우리와 떨어져 뒤쪽에서 걷기 시작했다.

“다음에? 저 인간 지금 다음이라고 했어?”
“네 했어요. 완전히 찍히셨네요. 대체 뭐 하셨어요?”
“아니. 집히는 거 아무것도 없는데….”

 오싹하기까지 한 오린의 스토킹에 칼도 이상한  느꼈는지.
역으로 내게 그런 질문을 던졌으나, 진짜로 집히는 것이 전혀 없는 것이었다.

“어쨌든  인간을 쫓아줘서 고마워.”
“뭘요. 헤헤 사실 계속 말을 붙이고 싶었거든요.”
“나한테?”
“네! 제가 이국에 관심이 많아서요.”

척 봐도 붙임성 좋아 보이는 칼 소년은 나에게 이것저것 질문했다.
고향. 가족. 미신. 등등.

“아, 그러면 바다를 건너오신 건가요?”
“그렇지. 매일 하루 사냥해서 하루 먹고 살다 죽을 거 같았는데 어느 날 선박이 와서 그대로 태워달라고 했거든  여기도 비슷하긴 하지만, 그래도 나름 만족하면서 살아가는 중이야.”

사실대로 말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어 조금 성가시긴 했지만, 눈을 반짝이며 물어보는 것이 딱 봐도 순수한 호기심에 비롯된 질문인 것 같아서 나는 최대한그가 좋아할 만한 대답을 지어내 주었다.

“와! 진짜 바다를 넘어서 오셨구나!”

칼 소년은 특히나 배를 탔다는 말에 반응했는데….
아무래도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는 것이 꿈인 모양이었다.

“바다를 건너오는 동안 아무 일도 없었나요? 거대한 심해 생명체라거나! 갑작스러운 폭풍우라거나! 수수께끼의 열병 같은!”
“음. 아쉽게도 아무것도…. 중간에 조금 날씨가 안 좋아지긴 했는데 워낙 커다란 선박에 잘 숙련된 선원들이어서 별문제 없이 땅에 내릴 수 있었지.”

배는 학창 시절. 수학여행  때나 타본 것이 전부인 나는 적당히 둘러대며 말했다.

“흠. 그렇구나. 그러면….”

칼은 이를 별말 없이 받아드리며 추가적인 질문을 몇 번  던졌다.
나는 그에게 받은 질문을 적당히 흥미롭게 꾸며 들려주었다.

퀘스트 중에 갑자기 옆에서 와! 와! 거리는 아이가 생긴 것이 묘한 느낌이긴 했지만, 어차피 그냥 걷자니 심심한 길이고….
관심 없는 종교 얘기를 계속해 중얼거리는 남자와 함께하는 것보다는 억천배 나았으니,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아, 이것 좀 드실래요?”
“응? 이게 뭔데?”
“아내가 만들어 준 건데. 단 과일에 전분을 감싸 구운 과자예요.”

아, 그렇구나. 싶다가 묘한 단어를 들은 것 같아 반응했다.

“아내라고? 너 결혼했냐?”
“네. 아직 신혼이지만요.”
“….”

척 보기에 중딩 많아 봐야 고등학생처럼 생긴 남자애가 환히 웃으며 말하는데.
뭐라 말하기 어려운 괴리감을 느꼈으나, 생각해보면 이것도 원래 이런 세상이었지 싶어 별말 않기로 했다.

“그래. 뭐…고맙게 잘 먹을게.”

나는 감사히 그가 내민 주머니에 있던 하얀 과자를 꺼내어 물었다.
마침 오래 걷기도 했으니. 달짝지근한 것이 마렵던 참이었다.
과자는  소년…아니. 품절된 유부남 칼이 말했던 것처럼.
전분 반죽에 산딸기나 머루 같은 과일을 으깨어 넣고 만든 가벼운 간식이었다.

식감은 떡 같기도 하고. 단물이 금방 빠지는 껌을 씹는 듯한 느낌도 들어 나쁘진 않았지만, 이 단물이라는 것이 정말 달다기보다는 시큼한 맛에 가까워 조금 아쉬웠다.

“야. 진짜 맛있다.”
“그래요? 더 있으니까 더 드세요.”
“진짜? 고마워!”

그러나 요 이틀 건식과 잡탕 수프로만 배를 채운 데다가 아침도 굶고 행군하는 나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영양분이었기에 사양하지 않고 그가 주는 족족 다 먹어 치웠다.
먹을  있을 때 먹어 두지 않으면 생존하기가 어려운 야생 같은 세상이니까.

“도착했군. 다들 모이게.”

그렇게 뒤쪽에서 과자를 먹으며 걷는데 선두에 있던 매슈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드디어 집결지에 도착한 것이었다.




집결지는 숲 안쪽에 있었다.
나무를 베거나 뽑아 바닥을 평평히 다져놓은 공터, 중앙에는 군대에서나 볼 법한 24인용 텐트쯤 연상되는 임시 천막과 마차들이 줄지어 있었는데.
아마 길드 쪽에서 대여해준 물건이지 싶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길드의 요청으로 불러 모인 것인지라, 우리처럼 저랭크는 몰라도 고등급 모험가는 개인적인 공간도 지원해주며, 극진히 대접해준다고 듣기는 했는데….

실제로 보니  차이가 어마 무시하여. ‘꼬우시면 랭크 올리세요.’ …라는 길드의 뜻이 그대로 전해지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럼 조장을 불러오겠네. 자신의 부주의로 발생하는 불이득은 길드에서 책임져 주지 않으니 되도록 얌전히 대기하고 있게.”

매슈는 우리를 정렬시킨 후에 이동하였다.

조장.  대표.
역시 B등급이나 B등급으로 승급 예정인 유망주일까?

내 평생 보았던 최고등급이 C등급이었기 때문에 B등급을 다는 괴물이 어떤 사람일지는 궁금하곤 했었다.

소문으로 들으면 B등급 정도 되면 나무를 맨손으로 부러트린다거나 바위도 부신다거나 하는 말이 많았는데.
물론. 소문이 다 사실이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아니  굴뚝에 연기 나는 것이 아니니, 적어도 인간의 수준을 뛰어넘는 괴물 수준의 영역인 건 확실하지 싶었다.

“B등급이라. 듣기로는 원소를 다루는 마법사는 C 등급부터 시작한다던데. 혹시 마법사일까요? 마법사면 편할 텐데.”

칼이 흥미로운  말했다.

“글쎄? 마법사라….”

말하고 생각해보니.
이러니저러니 해도 나도 ‘마법사’라는 인종과는 엮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노예 시절에도 얼핏 멀리서 고깔모자를 쓴 마녀들이 스쳐 지나가는 건 보긴했어도 실제로 샘슨 파티에 마법사가 들어온 적은 없었으니까.

마법사 자체가 워낙 희소한 인간들이어서 마도구나 마력 자체를 이용한 물건 술법, 마찬가지로 특이하지만, 비교적 흔한 성직자들이 사용하는 기적 등은 보았어도 정작 순수한 마법을 사용하는 것은 한 번도  적이 없는 것이었다.

뚝뚝.

그때였다.
저 멀리서 매슈가 마차의 문을 두들기며 안에 있는 누군가를 부르는 것이 보였다.

“….”

일순 모두가 조용해진 것은 착각이 아닐 테지.
묘한 정적 속에서 우리는 과연 저 마차에서 내려올 존재가 어떤 존재인가? 에 대한 호기심으로 모두 하나가 됐음을 느꼈다.

“….”

그리고 마침내 마차의 문을 열고 나온 사람은 은빛 판금 갑옷으로 전신을 무장한 기사였다.

“…크다.”

누군가 속삭였다.
확실히 그 말대로 첫인상은 그저 거인이라 생각될 정도였다.

 그래도 마차를 열고 허리를 숙이며 내려오는데, 그 몸짓에 맞는  플레이트 아머를 전신에 두르고 있으니, 사람이라기보다는 마치 그러한 형태를  로봇을 보는 것 같았다.

발이 닿을 때마다 마차의 계단이 심상찮게 삐걱거려, 그 한 명의 무게로 마차가 뒤집히는 것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고.

“아이언 베어다.”
“아, 아이언 베어라고? 지, 진짜?”

 뒤에서 누군가 속삭이고 그 이름을 들은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아마 유명인인 듯했다.
나는 누군지 모르겠지만….

“야. 저게 누구냐?”
“…진짜 몰라요?”

내가 이를 몰라 중얼거리자, 옆에 있던 칼은 놀란 토끼 눈을 하며 물었다.

“이 도시 최고의 모험가  하난데!”
“…그래?”

처음 듣는데….
나는 다시 그를 보았다.
은색 판금 갑옷, 곰의 형태로 조각된 투구가 우리 쪽을 잠시 향하고 있었다.

“아이언 베어님이 지금 날 보셨어!”
“아냐. 바보야! 숲 뒤쪽에 트롤들을 노려보신 거야!”

뒤쪽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렸는데.
그들이 열광하는 것도 이해할  싶었다.

확실히 저런  입고 저렇게 태연하게 걸을 정도니….
저 주먹으로  대만 쳐도 웬만한 괴물들은 일격에 해치울  있으리라.

과연 이쯤 되니 단순한모험가를 넘어….
뭔가 대 영웅적인 오라가 느껴지는 것이었다.

“….”

그는 우리를 쓱 돌아본 뒤, 마차 뒤쪽에 세워둔 자신의 무기를 꺼내어 잡아 들고 우리 쪽으로 걸어왔다.

저거 창이야?

그자가 손에 쥔 것은. 문뜩 나도 모르게 그렇게 생각하게 될 정도로 특이한 것이었다.

손으로 잡기 위한 봉과 날이 붙은 머리.
…기본적인 형태는 확실히 창이다.

하지만 일단 그 머리가 과연 저걸 창이라 불러야 할지 싶은 거대하고 투박한 형태를 하고 있었는데 마치 거대한 대검을 억지로 연결해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배기보다는 패거나 부시고 찢는 것에 적합해 보이는 그 무기는 창대 윗부분에 살짝 휘어진 총기의 손잡이 같은 막대기가 달려 있었는데, 그자는 그러한 무기의 형태를 이용하여 튀어나온 손잡이를 어깨에 걸어 놓고 아랫부분은 한 손으로 지탱하며 걸었다.

2M도 넘어 보이는 거구가 그러한 자세로 걸어오니.
그 높이가 하나의 거대한 나무와도 같아 보이더라.

하지만 깜짝 놀라긴 일렀다.

그…아니. 그녀는 허리춤까지 오는 붉고 짧은 어깨 망토를 두르고 있었는데특이하게도 그 망토는 등 뒤가 아닌, 오른쪽 어깨 부분 쪽으로 내려와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

바람에 날리는 망토를 보니 그 이유는 충분히 설명되었다.

붉은 망토 아래.
존재하고 있어야 할 그녀의 손이 보이지 않았다.

철갑에 가려져서  모르겠지만, 아마 오른쪽 눈도 보이지 않겠지.
외팔의 외눈.

“유르겐…오거히트?”

최근 대장간에서 마주친 사람의 이름을 말해보자.
옆자리에 있던 칼은 시큰둥하게 중얼거렸다.

“에이. 역시 아시잖아요.”

나는 그제야 자리에서 내려오던 그녀가 누구를 보고 있던 것인지 깨달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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