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화 〉알고 싶어용
[…크크.]
처음 놈이 흘리는 웃음소리를 들었을 때, 그녀는 단순히 용이 울부짖는 소리를 착각한 것이리라 생각했다.
아니. 단순히 그렇게 믿고 싶었던 것일지도.
[…크크큭. 역시 너무나도 나약하군.]
하지만 아니었다.
조금 더 정신을 차리고 들어본 녀석의 목소리는 여전히 너무나도 뚜렷한 언어의 형태를 하고 있었으니까.
못이 박히는 것처럼 머릿속에 박혀 울려 퍼지는 목소리.
내가 미친 것일까?
어쩌면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환청을 듣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녀는 자신을 의심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전까지 그녀가 아는 용이란 지능이 없는 조금 위험한 야생 동물에 지나지 않았기에 때문이었다.
사람을 짓밟고 비웃는 용이라니….
어쩌면 오늘 하루, 잃어버린 것이 너무 많아서 자신의 머리가 이상해진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오늘 그 용에게손을 잃고 눈을 잃었으며 그보다도 훨씬 소중한 것도 잃어버렸으니….
[광명의 용제여…. 보고 있는가? 이제 지상에 있는 것들로는 내 ‘근원’을 채워 줄 수 없다.]
용이 말했다. 허공에 대고 이곳에 없는 누군가를 향해, 자신의 분노를 토해내고 있었다.
[동족과 싸우는 것도 금하고 강자는 봉인하고…. 그렇다면 나는 이 끓어오르는 투쟁심을…. 갈증을 어찌 채우라는 말인가.]
비웃음은 이내 짜증으로 이어 흐느끼므로 변해가고 있었다.
[….]
마침내 용이 본격적으로 흐느끼기 시작하고 그녀는 경악했다.
그녀의 소중한 것을 모조리 씹어 삼킨 그 입으로 어찌 그다지도 슬피 운단 말인가.
어째서 세상에는 이토록 악한 생명체가 존재하는 것일까?
“바…시….”
[응?]
경악과 통증이 통제할 수 없을 정도의 분노로 바뀌는 시간은 짧았다.
슬픈 것도 고통도 울고 싶은 것조차 전부나였는데.
어째서 저 용은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고 저리도 슬픈 듯 눈물을 흘린단 말인가?
“듯…이….”
알고 싶었다.
알고 싶지 않았다.
오직 그 존재를 증오한다.
[사, 살아 있는 건가? 고작해야 인간이?]
조금이라도 오래 살려면 이대로 죽은 척을 해야 했다.
하지만 슬픔과 통증과 분노로 마비된 뇌가 움직이면 안 되는 몸을…입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이게 하고 있었다.
“반, 드시….”
그녀는 아직 남아 있는 왼손으로 땅을 긁어, 용에게 접근했다.
손톱이 빠지고 손가락 끝에서 올라온 핏방울이.
잘린 팔에서 쏟아지는 피가 그녀가 기어 온 바닥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네, 놈을….”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하나 남은 눈동자로 더 확실하게 더 가까이서 그 용의 모습을 새기기 위해….
숨이 붙어있는 한, 평생을 그릴 용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선명히 머릿속에 남기기 위해.
“죽이…겠…다.”
[…그런가.]
용이 말했다. 피처럼 붉은 비늘로 덮인 용이.
방금까지 울고 있던 그 입에서 건조하고 덤덤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주 작긴 하나, 너는 이 몸에 상처를 입힌 인간이군. 그래. 그렇군. 살아남은 것인가….]
잠시 멈추어 생각하던 붉은 용은 날개를 펴며 말했다.
[널 살려주마.]
“널…죽이겠다.”
[그래.]
그리고 그녀는 다시 한번 자신의 증오를 쏟아내었다.
실제로 뭘 할 수 있는 것은 아닌. 형태가 없는 공허한 증오였다.
비참하고 서글펐으나.
“반듯이…죽, 여…주겠….”
오직 그것만이 그녀에게 남은 유일한 선택지였기에.
그녀는 최선을 다해 용에 대한 증오를 내뱉었다.
[어디 한 번 해보는 것이 좋다. 인간.]
돌아온 것은 다시 건조한 말이었다.
흥미조차 보이지 않는 아주 담백한 말.
그녀를 살려준 것은 정말로 그저 이 순간의 변덕에 지나지 않는다는 듯.
용은 날아 떠났고 그녀는 다시는 그 용을 볼 수 없었다.
“….”
마차 안에서 묘한 정적이 흘렀다.
얼마나 지났을까?
유르겐은 잠시 안 좋은 기억이라도 떠올린 듯, 등을 기대어 숨을 삼키고는.
“…역시 한 대 태워도 될까?”
그렇게 말하며 책상 위에 올려두었던 연초를 하나를 들어 보였다.
“네 문을 살짝 열어도 되죠?”
“그럼…. 편하다면 얼마든지.”
유르겐은 다시 익숙한 동작으로 연초에 불을 붙이고 첫 모금을 빨았다.
연기가 자신의 안에 충분히 스며들도록.
길고도 깊게….
“후우….”
유르겐이 폐 깊숙한곳에 넣어놨던 연기를 내뿜어내자, 마차는 금세 뿌연 연기로 가득했다.
“…콜록.”
“역시 매운가?”
“아뇨. 신경 쓰지 마세요. 익숙하니까.”
“…감사하지.”
비흡연자이긴 하지만, 본래의 세상에서 사회생활 등의 경험으로 담배 연기에는 어느 정도 내성이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이 세상의 연초는 조금 더 독한 모양이었다.
나는 그녀가 처음 제안한 대로 마차의 문을 열고 그 앞에 섰다.
달빛을 머금은 차가운 밤바람이 마차의 창문과 출입문 사이를 오가며 독한 연초의 향을 흐릿한 것으로 바꾸어 주고 있었다.
“그래서…. 용이라고요?”
“그래. 용이네.”
“그것도 진짜…용이요?”
“역시 못 믿겠나?”
“….”
“이상한 소리라 생각하는 것이 정상이지. …읏.”
작게 혀를 찬 그녀가 연초를 입에 문 채 다시 한번.
그곳에 존재하지 않는 오른손을 쓸어내렸다.
“아, 미안하군. 정말 오래전 일인데. 아직도 가끔 아파서.”
“….”
유르겐은 식은땀까지 흘리며 말했다.
정말로 없어진 팔에서고통을 느끼는 것처럼 선명한 표정이었다.
“후….”
유르겐이 떨리는 손으로 연초 잡아.
다시 한번 폐에 담긴 연기를 내뱉고 말을 이었다.
“물론. 상상이 잘 가지 않겠지. 비싸고 위험하긴 하지만, 인류사에 용이란 생각보다 친근한 존재일 테니.”
“아무래도 그렇지요?”
사실. 나는 잘 모르는 분야였기에 대충 대답했다.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용은 기껏해야. 축제때나 볼 수 있는 희귀한 동물 수준의 인식이 있다는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우리가 용인 줄 알았던 그것들은 전부 커다란 도마뱀에 불과해.”
유르겐은 조심히 말을 이어나갔다.
“….”
…그녀가 떨고 있다.
마치 든든한 성채 같던 그녀의 몸이 지금은 한없이도 작게 보이는 것 같았다.
“난 진짜를 봤어. 아주 크고 강력하고…. 말을 했지.”
“말을요?”
“그래. 공기가 떨리는 신기한 느낌이었지만, 분명 녀석이 한 말, 언어였다. 그것도 우리랑 같은 언어를 사용하더군.”
“….”
음. 나도 확신했다. 그녀는 확실히 용을 알고 있었다.
당연히 긴 시간 봉인된 아용이는 아니었고. 인간에게 호의를 가진 프레이야도 아니었으며, 필라피스는…뭐 일단 아니라고 믿고 싶다.
17마리나 있다고 했으니 내가 모르는 용 중 하나겠지.
…아마도.
“그…손도 그때?”
“아, 그래…. 맞다. 손도 여기 눈도 그보다도 더 소중한 것도 잃었지. 그 용에게….”
“….”
“정신 나간 소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나?”
“아, 아뇨.”
“하하…. 그렇게 신경을 써 주는 척할 필요 없네.”
진짜 아닌데.
그녀가 시무룩하게 하는 말을 듣고 있자니, 묘하게 가슴이 따끔거리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후련하군.”
“네?”
“이런 얘기를 누군가에게 꺼내는 것도 오래간만이다. 처음에는 다들 나보고 미쳤다고 해서 수도원에 입원할뻔했지. 뭔가.”
“하하….”
그녀는 가볍게 이야기했지만, 차마 웃지 못할 이야기였다.
오랜 시간 아무도 자신을 믿어주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그래서 그녀는 침묵하여 천천히 홀로 복수의 칼을 갈았던 것이리라.
두꺼운 갑옷과 커다란 무기로 자신을 숨기며, 철저하게….
“믿지 않아서겠지만, 자네의 반응은 상당이 태연해서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네.”
“그렇게 느끼주시면 다행이네요.”
다만….
“…근데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해주시는 것도 제 눈동자 때문인가요?”
“그렇지. 왜일까? 그 눈동자를 보니 갑자기 해주고 싶어졌어.”
“….”
“이야기하다 보면 명확한 이유가 생각날 줄 알았는데….”
언뜻 들으면 부담스러울 정도의 호의로 들렸지만, 왜일까?
나는 그녀가 그렇게 말할 때마다 목이 간지러운 듯한 오싹함만을 느낀다.
“….”
“유르겐씨?”
그렇게 나도 모르게 목을 긁는데.
어느 순간 흡연을 멈추고. 나를 뻔히 바라보던 유르겐과 시선이 맞았다.
“잠깐, 다시 한 번만…. 이리 와줄 수 있겠나?”
“네?”
묘한 말투였다.
점잖고 상냥하지만, 속에 예리한 칼날이 숨어있는 듯한 말투.
“….”
나는 홀린 듯.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유르겐은 내가 다가가는 동안 한 번도 눈을 깜빡하지 않고 내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뭔가 오싹하고 불안한 느낌이 커지는 순간이었다.
“…앗!”
마침내 기다렸다는 듯 그녀의 커다란 팔이 휘어들어 와 나의 턱을잡아끈 것은.
“저, 저기요?”
조금 따스하게 닿는 그녀의 호흡.
방금까지 그녀가 피우던연초의 향이 그녀의 숨에 강하게 남아 있었다.
“드디어 알았다.”
그녀는 마치 계속 잊고 있던 것을 드디어 발견한 것 같은 반가움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뭐, 뭘요?”
내 턱에 감긴 그녀의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이 눈동자….”
“저 근데 유르겐씨? 죄송한데 살짝만 힘을 좀….”
“지금. ‘녀석’을 떠올리고서야 깨달았다. 그대의 눈동자는 누군가를 닮은 게 아니었어.”
힘이 실린 손에 턱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지만, 나는 더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의 빨려들어갈 것 같은 검은 눈동자에 압도당했기 때문이었다.
“…용의 눈동자를 닮았던 것이었어.”
유르겐 오거히트는 말했다.
심장을 뜯어 짜내는 듯한 떨리는 목소리로.
똑똑─
긴장된 분위기 속 흐르는 침묵을 깨워준 것은.
마차의 문 쪽에서 들리는 노크 소리였다.
“뭐지?”
“…밤이다.”
“아, 경계 때문인가?”
“아, 그래. 그거. 그 때문이니 놈을 밖으로 보내라.”
단조롭지만, 익숙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르겐은 다시 한번내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다 마침내 내 턱을 놓고는 말했다.
“실례했다. 지금 일은 좀 피곤해서 그런 거니 잊어주게, 오래간만에 안 좋은 기억을 떠올려서 그런 것 같군.”
“….”
“…동료가 부르니 그만 가도 좋네. 입는 건 홀로 할 테니 천천히 입어도…. 설마 무슨 일이야 있겠는가.”
수습하려는 것인지 어색한 미소를 흘리며 웃는 유르겐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나는 조용히 마차에서 내렸다.
“….”
마차 옆에는 조용히 팔짱을 끼고 기대어 나를 바라보는 아용이가 있었다.
우리는 작게 눈빛을 교환한 후, 조용히 아무도 없을 숲 쪽을 향해 걸었다.
“언제 나왔냐? 이제 몸은 좀 괜찮아?”
“…언제 나왔느냐고?”
어느 정도 걷었다 생각하여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용이는 그런 나를 힐끔 보더니.가볍게 한숨을 쉰 후 답했다.
“그대가 순진하게 오란다고 걸어갈 때부터지. 당장이라도 죽일듯 살기를 뿜는데 그대는 병신같이 그걸 그냥 들어가나?”
“살기라니….”
난 그런 거 못 느낀다고….
내가 무슨 무림 고수도 아니고 나에게 너무 많은 걸 기대하는 거 아니냐?
“…그거 미안하게 됐습니다.”
“쯧. 알면 됐다.”
“….”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이번만큼은 정말 아용이가 도와줘 살았다 싶었기에 조용히 받아드렸다. 뭐, 아무리 그래도 설마 그 자리에서 유르겐이 나를 해치려 했을 것이라는 생각은 안 들었지만….
“근데 그게 대체 무슨 소리지?”
“응? 뭐가?”
“내 눈이 용을 닮았다던데?”
“흠…. 그렇군. 그거야 이 몸의 계약자니…. 같은 용이라면 알아볼 수 있을 테지만….”
그러고 보니 필라피스도 내 눈을 보고 내가 아용이와 계약 관계라는 사실을 알았던가?
“그래. 녀석이 알아봤던 것처럼…. 하지만 인간이 이를 꿰뚫어 볼 줄이야….”
아용이는 턱을 괴고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조심하도록 하라. 그 여자…. 어지간히도 강한 집념이 있는 모양이니.”
“그래. 알겠어. 뭐 어차피 이제 오늘이 마지막이니…. 더 볼일도 없을 거야.”
“그런가?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창술을 배울 수 있는 조건을 클리어한 것도 아니었으니, 아마 이번 퀘스트가 끝나면 영원히 볼 일이 없을 것이다.
나는 확신을 담아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