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0화 〉세상에 나쁜 용은 없어용 (80/190)



〈 80화 〉세상에 나쁜 용은 없어용

“…여기요.”

고작 몇십  남짓한 시간에 폭삭 늙어버린 1등급 접수 조무사가 간략한 지도와 설명을 적어 전해 주었다.

본래라면 게시판에 붙어있는 양피지를 가져와 창구 쪽에서 교환하는 작업을 거처야 하지만, 이것은 몰래 빼돌린 의뢰서기 때문인지.

내가 보는 앞에서 직접 지도와 책자를 보며, 양식을 새로 만들어주었는데 생각보다 빠르고 깔끔한 것이 의외였다.

“…왜, 왜 그런 눈으로 보시죠?”
“아니. 솔직히 불안했는데. 제법 잘하는구나 싶어서.”
“….”

나의 갑작스러운 칭찬에 그녀는 일순 불쾌하다는 듯이 눈을 찡그리고 귀를 쫑긋해가며 나를 보았지만, 이내 칭찬받은 것 자체는 썩 나쁘진 않았던 듯 자신이 늘어놓은 도구들을 정리하며 말했다.

“기존에 있었던 걸 재탕하기만 하면 되니까요. 껌이죠.”
“흠. 그래. 그렇구나. …재수 없어.”
“뭐예요?”

좀 괜히 칭찬했다 싶어 나도 모르게 본심이 튀어나왔다.

“아니. 진짜 잘한다고.”
“으….”

엘프는  말이 자신을 놀리는 것처럼 느껴졌는지.
분한 마음에 이를 갈았지만, 생각보다 놀란 것은 사실이었다.

그전까지는 성격도 능력도 글러 먹은 싸이코 폐급인 줄 알았거든.

“뭐, 뭐죠 그 눈은…? 그래도 일단 시험을 쳐서 들어온 거거든요?”

그런 내 시선이 기분 나빴는지 엘프는 작게항의했지만, 어찌하랴.
보여주는 대로 생각하게 되는 것을….

솔직히 길드에서 인성검사만 제대로 했어도 그대가 있을 자리는 없었을 것이었다.




일이 정해졌으면, 언제나 그에 따른 준비를 해야 하는 법.

길드에서 나온 우리는 우선 창천교로 돌아왔다.
이번 퀘스트는 목표까지 적당한 거리가 있어 식량 등을 확실히 챙길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말로 괜찮으신가요?”
“물론이죠. 멀어서 그렇지. 금방 끝내고 올 만한 일이니까요.”
“흐~음.”

다만 탈리아씨가 걱정할 수 있으니 퀘스트의 대한 자세한 얘기는 하지 않았다.
거금을  수 있는…실종자가 발생한 퀘스트라고 말하면, 탈리아씨는 이를 반대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피스씨도요?”
“당연한 거다!”
“음. 역시 너무 걱정되는데 저는 너무 오래 마을을 비울 수도 없고….”

저기요? 그거 수녀님이 모시는 여신이거든요?
같은 이름에 신화 속 인상착의도 같다면서 어떻게 이렇게  치의 의심도 없이 몰라보는지 궁금할 정도였다.

“걱정할 필요 없는 거다. 진짜 괜찮다!”

우리가 함께 퀘스트를 떠난다는 말에 탈리아씨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우리를 살펴주셨지만, 나는 둘째치고. 필라피스 본인의 의지가 확고했다.

요 며칠 탈리아씨를 따라 고아원에 봉사하며, 어지간히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모양이었다.

아무리 어린애들은 어른보다 민감하고 느끼는 것이 많다 싶지만, 그녀가 프로 모험가들도 속이는 인식 저하의 반지를 차고 있다고 생각하면 꽤 대단한 일이었다.

“자, 작은 인간들은 인제 영원히 안녕인 거다. 헤, 헤헤….”

아무리 힘도 능지도 잃어 땅으로 떨어진 용이라지만, 그래도 산과  사이를 뛰어넘어 싸우던 존재를 이 지경으로 만들다니….
이세계 초딩들 너무 무서운 거다.

“뭐…. 아용님이 있으니 큰일은 없으리라 생각하지만, 그래도 피스씨도 자용씨도 상처가 나은지 얼마  됐으니 조심하시고요. 아! 혹시 모르니까 성수랑 가벼운 상처약도 좀 챙겨드릴게요.”
“네. 그래 주시면 좋지요.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탈리아씨.”

성수의 미심쩍은 효능은 둘째치고 상처에 바르는 약은 아무리 싸도 꽤 가격이 있는 부분이라 상당히 감사한 부분이었다.
바로 손을 뻗어 그녀가 전해 준 상처약을 잡으려던 순간이었다.

“잠깐.”

갑자기 탈리아씨가 다른  손을 뻗어 내 손목을 잡으신 것은.

“으응? 타, 탈리아씨?”

고개를 올리고 마주친 수녀님의 하늘색 눈동자가 생기 없이 어두운 느낌이어서 나도 모르게 흠칫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하고 만다.

“….”

탈리아씨는 그런 나를 보며 말없이 생긋 웃고는 아주 천천히 입을 여시어 말씀하셨다.

“…그리고 설마 저번처럼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다른 곳부터 들리시진 않으시겠죠?”
“네? 아~ 무, 물론이죠. 돌아오면 무조건 교회부터 와서 보고할게요!”
“…진짜요?”
“네, 네에….저기 죄, 죄송한데. 손 좀 풀어주시면…좀 아프고 계속 정리 중이거든요.”
“….”

마침내 탈리아씨가 손을 놔주시어. 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하던 정리를 마무리했다.

탈리아씨가 저렇게 강한 말투로 말씀하시는 경우는 참 드문데 첫 일을 하고 나서, 여관에 묵다 바로 다른 퀘스트를 나간 것이 그녀에게는 상당히 좋지 않게 받아들여진 모양이었다.

확실히 말도 없이 빠져나가 그대로 며칠 동안이나 들어오지않았으니 걱정하는 쪽에서 보면 그럴 만도 했지만….

그래도 요즘 들어 이렇게 계속 신세 지는 것도 점점 어떨까? 싶어지는 것이었다.
단순히 미안한 마음이 드는  말고도 왠지 창천교에서 자면 여러 가지 의미로 개운하면서도 피곤한 요상한 느낌이 들어서….

아마 창천교에서만 자면 아랫도리가 끈적하게 깨어나는 게 원인  하나이지 싶은데….
대체  매번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지도 의문이었다.

왜 진짜 이곳에서 묵으면?
혹시 터가 안 좋은 건가? 교회가?

이 세상에 있는지 모르겠지만, 돈을 좀 만지게 되면 무당부터 찾아봐야 할지도….
그래. 돈을 벌면….

“대충 먹을 거랑 방한용품. 그리고…음. 됐겠지? 일단 이거 매봐.”
“윽….”

미리 사둔 건조식품과 물…. 그리고 약간의 장비들을 커다란 가방에 쑤셔 넣어 필라피스에게 걸어주었더니 녀석은 불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마치 싫어하는 강아지나 고양이에게 억지로 의류를 입힐 때 나오는 표정 같았다.

“그대. 설마  몸을 짐꾼으로 쓸 생각인가?”
“왜 싫어?”
“시, 싫은 건 아니다만…그, 그래도이 몸은 창천의…위대한…푸른.”
“어. 물론 알고 있지 그럼 짐 좀 잘 부탁하고?”
“으….”

놈의 불평은 적당히 무시하고 빠트린 것이 없나점검했다.
울상을 짓긴 했지만, 아마 저 정도는 그다지 무겁게 느껴지지도 않을 것이었다.

그냥 답답해서 그렇겠지.

가방이 좀 커서 푸르스름한 꼬리가 약간 눌리는 것이 문제인 듯싶었다.
적당히 벌면 개선책을 생각해주자.

그래. 성공적으로 벌면 말이지….

“후…. 피스야. 1인분까지는 기대도   테니 0.7 인분까지만…아니지. 아까 길드에서 0.2인 했다고 쳐줄 테니까. 0.5 인분까지만 하자. 알았지?”
“으, 응? 왜 그러냐 인간. 갑자기 눈이 무서운데….”
“그냥 알았다고 해!”
“…아, 알겠다는 거다.”
“더 크게!  맑게! 더 자신 있게! 끝은 힘찬 함성으로!”
“아, 알았다아아!”
“좋아!”

나는 필라피스의 어깨를 잡고 몇 번이나 되물었다.
녀석에게는 많은 투자를 했기 때문에 제발 평타만 쳐주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제발….








“음? 자네인가?”
“네.  장비랑 추가로 부탁드렸던 건…다됐죠?”
“물론이지. 나를 뭐로 보고 그런 걱정을 하시오?”

마지막으로 들린 곳은 대장간이었다.

여전히 무뚝뚝한 양반이었지만, 사부가 빚을 다 갚아 주시고 수리비까지 지원해주어 매출 상승에 큰 영향을 주었기 때문인지.
표정만은 전보다 환영해주는 분위기였다.

“자 여기 수리 완료…아니. 새로 만든 자네의 창이오.”

그가 그리 말한 것은 창대가 완전히 박살 나고 창날도 트롤의 몸에 박혀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사실. 아저씨가 장인 정신으로 박아 넣은 작은 장식이나 손잡이 부분 등을 제외하면, 정말로 완전 새로운 무기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와. 감사합니다. 손에 딱 맞네요.”

나는 작게나마 감사를 전했다.
공장에서 찍어내는 것도 아니고. 완전 똑같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나름 익숙해졌다고 시작한 창인데 이렇게 비슷하게나마 돌아와 좋았다.

“이 서늘하고 묵직한 감각 며칠만인지….”
“자자. 계속 혼자 헛소리 말고 어서 이 방패나 차보시오.”
“아, 방패도 괜찮네요. 딱 좋아요. 가죽이 좀 뻑뻑하지만….”
“그야 당연하지.아무리 급해도 가죽 벨트를 잘라 방패를 버리는 사람이 어디 있소? 덕분에 안쪽을 파내어 새로 넣느냐 고생깨나 했소이다.”
“아, 그건 워낙 급해서…죄송합니다.”
“흥. 됐소. 그만큼 확실히 받았으니.”

 그래도 엘프치고는 좋은 사람이긴 했다.
잔소리 없이 받은 만큼은 확실히 해주니까.
왜 사범님이 이 많은 대장장이 중에  헬창엘프 아저씨를 고른지 알  같았다.

“흠…그리고 마지막으로 자네가 새로 부탁한 이건데….  아가씨가 맞소?”
“네.”
“확실히 허벅지와 팔뚝 근육이 있는 것이 그럴듯해 보이긴 하지만….”

헬창 엘프는 멀리서 신기한 듯 둘러보고 있는 필라피스를 보며 중얼거렸다.
확실히 자세나 어쩐지 모르게 느껴지는 맹한 느낌이 무투가로는 보이지 않기 때문인 듯했다.
상관없지만, 어차피 진짜 무투가도 아니고.

“피스야. 이리 와봐.”
“응?  부르는 거다?”
“일단 와서 손 좀 보여줘 봐.”

나는 멀리서 놀고 있던 녀석을 불러 대장장이 아저씨한테 전해 받은 건틀릿을 끼워 주었다.
내가 차고 다니는 방어용 철갑과는 다르게 손목까지만 닿는, 너클에 가까운 물건이었다.

“흠? 이건 이 몸의 것인가?”
“그래. 말했잖아. 너한테 투자 많이 했다고.”

용이었던 녀석이 무기나 그런 것을 다뤄 봤을 리는 없고.
초보자용으로 둔기나 무난한 검으로 사줄까 했지만, 생각해보면 창공에서 날 받아내고도 다리만 조금 부러지고 끝날 정도로 단단한 몸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육체를 사용하는 것에는 익숙하지 않을까? …싶어 준비한 물건이었다.
아용이도 틈만 나면 발이 먼저 나가곤 하니까 말이다.

“흠….”
“어때?”

필라피스는 자신의 손에 덮인 철갑을 이리저리 둘러보더니.
두 주먹을 맞대어 캉! 캉! 소리가 나도록 두어 번 부딪혀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진 않을 지도?”

엄청나게 만족한다는  아니었지만….
나에게 있어서도 나쁘진않은 대답이었다.
답답해서 싫다고 생떼 부리지나 않을까 걱정했으니까.

“다 끝난 것이오?”
“아, 잠시만요.”

모든 준비를 마치고. 이제 막 떠나려는데.
 봐도 누가 쓰던 무기로 보이는 망치가 눈에 들어왔다.
이번에도 주인 잃은 무기구나 싶었다.

“음….”
“응? 뭐  부탁할  있소? 뜸 들이지 말고 바로 말해보시오.”
“아저씨. 죄송한데.  창 두고 갈 테니 여기 있는  망치 좀 빌려주시면 안 돼요?”
“…가치는 비슷하니, 그렇게 하시오. 다만 돌아와서 흠집 난 만큼 값은 치러야  것이오. 파손이 심하면 그대로 교환할 것이고.”
“네. 감사합니다.”

그냥 한 번 던져본 말이었는데 받아 주실 줄이야.
 감사한 배려였기에 나는 바로 창을 두고 그 자리에 있던 적당한 크기의 쇠망치를 쥐었다.

머리는 꼭 돈가스 만들 때 쓰는 고기 다지는 망치 같은데.
크기는 공사 현장에서 쓰는 오함마와 비슷한 녀석이었다.

“그대랑 잘 어울리는군.”
“네. 정말로 묵직한  손에  맞네요.”

사부 밑에서 창을 배우고 있으니.
창이 있는 것이더 좋긴 하지만, 구멍이 송송 뚫려 통풍이 잘되는 갈비뼈를 가진 인체모형을 상대로는 창보다는 이런 망치가 쓸모 있을 것이었다.

“또 오시오.”
“네. 감사합니다. 잘 쓰고 돌려 드릴게요.”
“그냥 그대로 사 가리라 기대하고 있소.”

이런 일이 또 있을지도 모르니 적당한 부수입이 있으면 그것도 괜찮지.

나는 다시 한번 대장장이 아저씨에게 인사를 드린 후 밖으로 나왔다.

정말 모든 준비를 끝마쳤으니.
본격적으로 마을 밖에 나가 퀘스트를 수행할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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