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5화 〉세상에 나쁜 용은 없어용
“그러니까. 이 여자가 나무에 걸려 있었더라고?”
“그런 거다.”
“…혼자서?”
“아, 그런 거다니까?”
놈은 계속 같은 말을 하게 하는 것이 짜증 난다는 듯 미간까지 찌푸려가며 말을 이었다.
“인간. 혹시 이 몸 없는 동안 머리라도 다친 거다? 다시 돌아오게 이 몸이 때려주는 거다?”
“….”
이 놈이?
요즘 말 좀 얌전하게 한다 싶더니 좀 풀어주자 바로 기어오르는 엠창룡.
“….”
요즘 들어 세상에 처음부터 나쁜 용은 없다고 생각하게 된 나였기에 이럴 땐 바로바로 훈육해주는 것이 나를 위해….
나아가 용 본인을 위해서도 좋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지만,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여기선 말을 아끼어 그녀가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정체불명의여성에게 집중하고자 했다.
“으으…. 뭐지? 가, 갑자기 목 뒤에 소름이 돋는 거다.”
“시끄럽고. 뒤로 좀 돌아봐.”
“응? 이, 이렇게?”
“흠….”
초면의 상대.
볼 것 못 보일 것 다 보이는 새하얀 엉덩이를 마주하기도 민망하던 차다.
놓친 것이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필라피스에게 뒤로 돌라고 말하자, 그녀의 등 줄기에 시체처럼 축 늘어져 있는 금발 여성의 상반신이 드러났다.
“…이거 살아 있는 건 맞지?”
“숨 쉬는 거 보고 데려온 거다.”
확실히 갈비뼈 쪽의 살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 보였다.
“역시 특별한 건 없어 보이는데….”
그런 말을 내뱉어 보지만, 알고 있다.
특별한 것이 없어 보이는 것이 가장 이상한 일이라고.
대체 그녀는 무엇을 위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홀로 나무 위에 묶여 있었단 말인가?
나는 다시금 올라오는 편두통에 관자놀이를 엄지로 꾹꾹 눌러가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것도 없는 적막한 숲에서는 가끔 작은 곤충인지 짐승인지가 내는 사그락사그락 소리가 들려 올 뿐이었다.
“일단 거기쯤에 내려봐.”
“응.”
바로 대답한 필라피스는 자신의 어깨에 짊어진 여성을 끌어당기듯 내려.
조심스럽게 바닥에 눕혀 놓았다.
“흠.”
“응? 뭐다?”
“아니. 잘하고 있다고.”
“…뭔가 요즘 계속 바보 취급당하고 있는 거 같은 거다.”
자각하고 있었나?
아니. 그래도 제법 의외이긴 했다.
솔직히 내가 아는 엠창룡이라면 바로 바닥에 내동댕이칠 줄 알았는데.
나름 환자랍시고 저렇게까지 배려해 주는 걸 보니, 나도 모르게 기특한 마음이 샘솟을 정도였다.
“그럼. 어디….”
나는 실례를 무릅쓰고 고개를 숙여 눕힌 여성을 몸을 바라보았다.
며칠 굶은 듯 야위어 보이긴 했지만, 그럼에도 적당한 군살과 근육이 빠지지 않은 전사의 몸이었다.
거기다 이 많은 상처 모험가인가?
오랜 시간이 지나, 다 아물어 흉진 상처는 제외하고 생각하자 남은 것은 묶여서 생긴 눌린듯한 멍울 자국 정도였다.
그 외 긁힌듯한 잔 상처들이 보이긴 했지만, 딱히 심각한 상처나 그럴듯한 흔적은 발견되지 않는군.
“음…이건?”
다만 이렇게 정면을 보고 있으니. 배꼽 아래쪽에 붉은색 무언가로 야구공보다 조금 큰 크기의 그림이 그려져 있는 것이 보였는데.
꽤 아래쪽까지 이어져 있었으나….
솔직히 내가 본다고 알 수 있을 리 없고.
“….”
앞에서 여성의 형상을 한 용이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데.
의식도 없는 여성의 그곳을 너무 쳐다보기도 뭐해서 “에흠.”하고 헛기침을 한 후 고개를 돌렸다.
“흥미롭군.”
때마침 들려온 목소리는 사람을 차분하게 해주는 산들바람 같은 목소리였다.
“흥미롭다고? 난 머리가 깨질 거 같은데.”
“그런가? 제법 재미있는 상황이 아닌가.”
우리를 태워준 초록의 용, 이데노아가 우리의 곁으로 다가와 입을 연 것이었다.
생각보다 한참 걸렸군.
그녀의 본 모습은 아용이는커녕.
그보다 작은 필라피스보다도 작은 크기였지만, 그럼에도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치고는 너무나도 커다란 용이었기에.
용에서 인간으로 변한 후, 그 중심에서 나와 걷는 것이 꽤 노동이다 싶어 보이긴 했다.
워낙 본인이 천천히 걸어온 탓도 있지만….
“음. 역시나 재미있어.”
그녀의 짙은 에메랄드 같은 눈동자에는 뭔지 모를 것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 엿보이는 듯했는데 워낙 바르고 정갈한 외모를가진 용이다 보니 제법 지적인 분위기를 풍겨 보였다.
“야….”
“응? 뭐지?”
“…일단 옷 좀 입는 게 어때?”
…여전히 나체로 있는 것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솔직히 무슨 짓을 당했을지 모르는 의식이 없는 여성을 두고 이런 생각을 하는 것에 큰 죄악감을 느끼긴 했지만, 양옆에 홀딱 벗은 여성 둘이 있으니 반응하지 않으려 노력해도 여간 참기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음부를 드러낸 체 정면으로 쓰러진 여자야.
의식이 없는 상태니 그렇다 치지만, 이데노아의 경우에는 가까이서 들여다본다고 한쪽 무릎을구부리고 앉아 있으려니….
정말 대놓고 보이는 것이 좀…그러했다.
“내 옷은 네가 들고 있잖아.”
“아….”
생각해보니. 진짜 그렇네요?
눈앞에서 벌어진 사건에 정신을 집중했던 터라 내가 그녀의 옷을 정리했던 사실을 깜빡하고 있었다.
하다못해 양손에 신발까지 들고 있으면서 말이다.
“…자 여기.”
“감사하지.”
감사를 받긴 했지만, 찝찝했다. 나름 도와주려고 옷을 정리해 둔 건데.
그녀가 알몸으로 걸었던 거리를 생각하면 차라리 그 자리에 그대로 놔두는 것이 더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흐음….”
그녀는 받아둔 옷가지를 들고 입었다.
속옷부터 겉옷 순서로.
“저기….”
“응? 또 왜 그러지?”
“민망한 부탁인데. 아래쪽부터 입어주면 안 될까?”
하반신은 여전히 그대로 드러낸 채.
“난 원래 이렇게 입는다만….”
“내가 눈 둘 곳이 없어서 그렇다만….”
“응? 아까 전부터 인간을 조사할 때는 아무렇지도 않더니 지금 용인 나를 보고서야 얼굴을 붉힌 건가? 역시 너는…?”
“아니. 지금 너는 인간 형태거든?”
“알고 있다. 재미없는 사실이지만.”
자꾸 그쪽으로 몰고 가고 싶은 모양인데.
다시 말하지만 나는 오직, 인간의 형태만 가능한 것이다.
“….”
“….”
그리고 말하는 동안 손 좀 멈추지 말고 빨리 좀 입어다오.
…이 녹용아.
“음…으응.”
“…너 지금 뭐 하냐?”
“오, 옷을 입고 있다만.”
“그걸 입고 있다고 봐도 될까?그냥 옷을 걸고 있는 거 아니고?”
녹용. 그래…. 녹용이었다.
나는 그제야 내가 그녀의 뿔을 보고 간과하고 있던 것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용. 뿔에 걸리는 바람에 옷을 한 벌 입는 것도 한참이 걸리는 것이었다!
정말 환장할 노릇이군.
아용이도필라피스도 상의를 입는데 적잖은 어려움이 있지만, 큰 뿔에 어떻게든 걸쳐서 밀어 넣으면, 결국에들어가는 것에 반하여 그녀의 뿔은 정말 나뭇가지처럼 솟아나 있다 보니 넣으려 할 때마다 다른 부분이 걸리며 들어가는 것을 힘껏 방해하고 있었다.
덕분에 벗을 때는 쉽게 벗더니….
“아…거긴 그냥 당기면 안 되냐?”
“안돼! 세게 당기면 옷 찢어지잖아! …좋아하는 옷이다. 부탁이니 당기지 말아줘.”
“….”
입을 때는 정말 보는 사람 답답해서 정신 나갈 수준의 착의 쇼를 보여주고 있었다.
“어쩔 수 없다. 신체적인 문제이니.”
마침내 한 장을 다 껴입은 그녀가 말했고 나는 할 말이 없어 침묵했다.
확실히 옷에 팔을 넣어, 머리를 흔들고. 허리를 흔들고 그러다 안되면 엉덩이까지 흔들어가며 겨우 옷에 자신을 밀어 넣고 있는 모습을 보니, 그녀의 신체적 문제는 장애에 가깝다 할 수 있는 심각한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아니. 너 진짜 평소에도 그렇게 입어?”
“그렇다. 문제라도?”
“저거 진짜야?”
“인간. 암만 그래도 용끼리 옷 갈아입는 걸 보여주지는 않는 거다.”
아. 그건 그렇겠군.
나와 필라피스가 대화하는 사이, 그녀는 말없이 자신의 또 다른 상의를 집어 들고 있었다.
왜 팬티 한 장 안 걸치고 이 악물고 상의부터 입는 건가 싶었는데….
아마도 힘든 것부터 먼저 끝내놓고 나중에 쉬운 걸 처리하는 타입이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힘들면 그냥 단추로 잠그는 셔츠 한 장만 입으면 되잖아. 뭐 그렇게 껴입었어?”
“…이지.”
“뭐?”
다시 한번 이데노아는 하반신을 훤히 드러낸 상태로 몸을 구불거리며 말했지만, 옷에 입이 눌린 탓인지 잘 들리지 않아 되물었다.
“당연히 패션이지. 이 두 개를 같이 입어야 이쁘다.”
“….”
아, 그냥 듣지 말걸.
“으….”
그때였다. 아래쪽에서 짧은 신음이 난 것은 때마침 무의식 상태였던 알몸의 여성이 정신을 차린 것이었다.
“괜찮으세요?”
“여, 여힌…?”
여기는…이라 묻고 싶었던 것일까?
며칠 동안 물 한 모금 안 먹인 것인지.
그녀의 입에서는 너무나도 쉬어버린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고 눈꺼풀은 하얗게 굳어, 제대로 눈조차 뜨지 못하는 상태였다.
“…피스야.”
“응?”
“이분 데리고 우리 가방에 가서 물 좀 마시게 해줄래?”
“알았는 거다!”
아무래도 대화를 듣는 것은 그다음에 해야겠지.
“잠깐 기다리는 거다?”
“….”
필라피스는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하는 그녀를 천천히 두 손으로 올려 우리의 가방이 있는 쪽으로 데려갔는데 이번에도 꽤 조심스러움이 보이는 움직임이여 의외였다.
아픈 사람을 상대해서 그런 건가?
“후….”
일단 이걸로 한 턴 벌었다.
난 이 와중에 다시 급한 일을 처리해야 할 차례였다.
“야! 빨리 좀 입어!”
“하고 있다만….”
“도와줄 테니까. 빨리!”
아무리 그래도 이딴 모습을 보일 수는 없으니 일단 그녀가 완벽하게 눈을 뜨기 전에 이 녹용 녀를 완벽하게 착의시켜야 할 때였다.
“상의는 건드리지 마라. 한정판이란 말이다.”
“주문도 많아!”
제정신이 아닌 선택 같지만, 이미 제정신이 아닌 일은 충분히 겪고도 남은 후였다.
거기다 본인이 이쪽을 입혀달라 말한 거잖아?
나는 아무런 죄악감 없이 그녀의 팬티를 집어 들었다.
“….”
전부터 생각했지만, 정말 신기한 감촉이었다.
뭐가 신기하냐면 이 세계에서 속옷만큼은 원래 있던 세계와 그것과 그다지 차이가 없는 질감과 세련된 디자인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속옷이 중세부터 이렇게 탄력 좋고 질 좋게 개발됐나?
속옷의 역사는 공부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잘은 몰랐지만, 혹 속옷에 능통한 사람이 나보다 한발 먼저 이 세계에 오지 않았나 싶을 정도의 퀄리티였다.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만….
찰싹! 찰싹!
나는 아직도 자신의 옷가지와 씨름하는 녹용 년의 허벅지 살을 가볍게 두드렸다.
“…응? 뭐지?”
“뭐긴 뭐야. 도와주는 거지. 이쪽 다리 올려.”
“아, 그래. 고맙군.”
“….”
예상은 했지만, 정말 아무런 부끄럼 없이 대답하니 기분이 좀 묘했다.
나도 이렇게생각하고 말하며 정말 괜찮나? 싶은데.
“자.”
이데노아는 그리 간단히 말하며 자신의 다리를 번쩍 들어 보이는 것이었다.
덕분의 굳게 다물린 그녀의 꽃잎과 그 옆에 말린 핑크색 꽃봉오리가 여실히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오우야…이거 진짜 괜찮냐?
초목의 용. 이데노아의 여성성을 이 눈과 기억에 새기며, 새삼스레 그런 걱정을 했지만….
“뭐 하고 있지? 도와주는 거 아니었나?”
이어지는 그녀의 말에 정신을 차려 고개를 돌리며 그녀의 발목에 팬티를 걸어 넣었다.
그래. 이건 다른 생명체, 다른 종족….
전혀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지.
“….”
성공적으로 하얀 팬티를 발목에 걸어내리고 반대쪽을 올린 이데노아에 맞춰 몸을 움직였다.
“다리 좀만 더 내려.”
“알았다.”
바로 몇 시간 전까지 내 목을 자르고 해부하려던 년의 팬티를 입히고 있으려니.
너무 묘한 기분이었지만, 나는 애써 그러한 생각을 하지 않고 마치. 조각상을 보는 듯한 자세로 작업에 임했다.
“올린다.”
“음….”
마침내.
두 다리에 성공적으로 걸린 팬티의 끝 면에 엄지를 끼워놓고 올렸다.
“오!”
“….”
정면에서 작업했기 때문에. 다른 네 손가락은 자연스럽게 그녀의 오금을 지나, 허벅지 뒷부분을 훑었다.
“읏….”
“미안. 노, 놀랐어?”
“…난 아무 말도 안 했다.”
뭐지 잘 못 들었나?
충분히도 그럴 수 있었다.
순간적으로 살짝 대기만 했는데, 손가락 마디만큼이나 들어가는 엉덩이 살의 감촉에 정신이 팔렸기 때문이었다.
가슴은 그렇게 크진 않지만, 이 허벅지랑 엉덩이는 꽤….
“으흠….”
뿔에 걸린 옷을 빼는 것이 힘든지, 조금 거친 숨을 내뱉는 이데노아의 목소리를 뒤로 허벅지와 골반 사이에 말려 올라가 제 역할을 못해주는 그녀의 속옷을 펴주기 위해 나는 손을 뻗었다.
일단 그녀의 음핵을 가릴 듯 말 듯이 걸쳐져 있는 속옷 부분에 집게손가락과 엄지를 넣어 그녀의 엉덩이를 끌어 안 듯 가볍게 손을 돌려 펴주었다.
“아, 아직인가?”
“이제 올리기만 하면 돼.”
나는 이데노아의 재촉을 들으며, 그녀의 속옷을 올려 착의를 마무리시켰다.
속옷을 올리고. 그녀의 골반과 속옷 사이에 손가락 빼는 차.
내 손가락 마디만큼 늘어났던 팬티가 다시 허벅지에 감기며, 순간적으로 ‘딱’하고 고무줄이 살에 튕기는 소리가 난듯한 기분이 들었다.
“…됐지?”
“응? 아직 바지는 남았는데.”
“아, 아니. 일단 너희 인간들이 부적절하게 여기는 부분은 가렸으니, 나머지는 천천히 해도 괜찮잖아?”
이데노아가 바로 직전과 다른 태도로 그리 말하며, 마침내 자신을 골치 아프게 하던 겉옷 위로 머리를 꺼내었을 때였다.
“꺄악─!”
필라피스가 향했던 곳에서 귀가 찢어지는 듯한 커다란 비명이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