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9화 〉사실 S급이에용
“인간도 끝난 거다?”
마지막 하나 남은 스켈레톤의 목뼈를 턱째로 밟아 부신 후, 조용히 어깨를 풀던 필라피스가 물어 왔다.
“그래.”
나는 손에 전해진 불쾌한 감각에 찝찝함을 곱씹으며 대답했다.
“…이 사람 살아있는 거 맞지?”
“적어도 시체 냄새는 안 나는 거다. …이제 피 냄새는 조금 나지만.”
녀석이 코를 킁킁거리며 말했다.
“후….”
나는 낮게 한숨을 쉬었다.
정당방위였긴 하나, 어지간히도 씁쓸한 기분이었다.
무리도 아니지. 또 다리…그것도 이번엔 내가 직접 부러트리게 됐으니.
뭐, 어쩌겠는가. 그래도 할 건 하는 거지.
“저기요? 혹시 정신 차렸다거나….”
“….”
“역시 그런 건 아니시겠죠…?”
먼저 의식확인부터 시도해 보았으나, 아무래도 큰 충격을 받아 그대로 기절해버린 듯했다.
…적어도 겉보기로는 말이다.
“설마 여기서 갑자기 일어나서 물거나 공격하는 건 아니겠지?”
“글쎄? 일어났는지 뻗은 건지는 모르겠는 거다.”
“흠. 이 사람한테는 미안하지만, 꽤 찝찝한데….””
이거 공포 영화에서 자주 보이는 클리셰 아닌가?
이렇게 쓰러진 사람한테 다가가면 갑자기 일어나서 물어뜯는 거.
큰일이었다. 만약 살아있는 사람이면 어서 응급 처치를 해야 할 테지만…솔직히 말해 섣부르게 다가서긴 두려웠다.
“흠.”
그렇게 잠시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때였다.
“에잇!”
“응? 아니. 야! 위험….”
필라피스가 그런 나를 앞서나가 행동에 나선 것은.
“얍!”
녀석이 내가 말릴 틈도 없이 사뿐히 날아올라, 아직도 칼을 쥐고 있는 쓰러진 거구의 손목을 짓밟은 것이었다.
“오.”
자칫 위험할 수도 있었으나, 그 행동력에 나는 작게 감탄했다.
완벽한 제압법이라 보기에는 어려웠지만, 꽤 성공적인 제압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일단 철 가면을 쓰고 있으니 이는 못 쓸 테고 칼…아니. 한 손만 못 쓰면 설령 갑자기 일어나 습격한다고 해도그리 무섭지는….
우직─!
그것은 착지와 함께 들린 또 다른…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였다.
“엥?”
“아….”
“윽….”
각기 다른 두 가지…아니. 세 가지의 짧은 목소리가 흐르고 이어─쓰러진 줄 알았던 거구가 황급히 자신의 몸을 일으켰다.
“─!”
팔을 밟힌 상태에서 겨우 몸을 반쯤 일으켜 내지른 목소리.
분명 남성의 그것이었지만, 금발의 성기사님이 처음 입을 열었을 때와 마찬가지….
아니. 그 이상으로 완전히 뭉개지는 듯한 쉰 소리였다.
“아…. 그게 그러니까…. 미안한…거다?”
“끄….”
그리고 그와 동시에 누가 들어도 고통에 찬 비명처럼 들리기도 했다.
“으….”
“어버버….”
잠시 이어진 마치 칠판을 긁는 듯한 소리를 듣듯 소름 끼치는 비명에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크게 당황하고 말았고….
“우, 우랴앗!”
“야, 야. 피, 피스 너….”
이어 행동하지 말아야 할 놈이 다시 행동하고 말았다.
뻐억─.
“끅….”
완벽하게도 먹혀든 안면 킥.
마침내 남자의 몸은 비틀거리듯 쓰러져…일어나지 않았다.
이번에도 순식간에 일어난 급발진이었다.
“….”
“….”
잠시 사람이라도 죽은 듯….
아니. 정말 죽었을지도 모르는 침묵이 이어졌다.
“호….”
마침내 숨이 막힐 것 같은 정적을 깬 필라피스는 고의로 여기사를 팼을 때와는 다른, 정말 자신도 모르게 나온 폭력이었다는 듯.
핏기가 싹 가신 표정으로 땀까지 삐질삐질 흘려가며, 나를 돌아보았다.
“저, 전력으로 때려버렸을지도…?”
“아….”
안타까운 신음이 내 목구멍에서 흘러나오고.
놈은 꼬리까지 말아가며 되물었다.
“이, 이거 혹시 조오금…문제가 되는 부분인 거다?”
“아니길…. 빈다만….”
너를 위해.
무엇보다 나를 위해서도.
“후우….”
나는 작게 한숨을 쉬고생각했다.
엠창룡의 장점이자 단점인 행동력을 막기 위해 목줄이 필요할지도….
그것도 입마개랑 함께 말이다.
그래도 이번에야말로 완벽하게 무력화된 것은 사실이었다.
남자에게 접근한 나는 먼저 투구를 벗겼다.
“으….”
까무잡잡한 대머리의 남자가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코뼈가 완전히 무너지기는 했지만, 다행히도 숨을 쉬고 있는 듯했다.
며칠이나 굶은 듯 깡마른 얼굴은 두고 온 금발의 여기사님과 같다.
그냥 언데드와 함께하는 적일 가능성도 생각해 두었는데, 불행인지 다행인지역시나 세뇌당한 모험가 중 하나였던 모양이다.
지능적으로 나무를 타 칼을 휘두르게 하는 정도로까지 세뇌할 수 있다니.
흡혈귀는 내 생각보다도 더 강한 괴물인지도….
“어디 보자….”
“괘, 괜찮은 거다? 나한테 직접 덤벼들지 않은 사람을 죽이면 나중에언니님한테 혼나는 거다인데….”
그래서 그리 뭐 마려운 개처럼 쩔쩔매고 있었구나?
난 또 양심이라도 생겨서 그런 건 줄 알았지.
“조용히 해 봐. …일단 집중하게.”
“으, 응!”
일단 잡생각을 접고 남자의 상처를 살펴보니….
무너져 내린 코 아래로 피가 흐르고 얼굴이 부어올랐지만 그래도 목숨에 지장은 없는지.
여전히 입으로는 작은 신음이 이어지고 있었다.
찌그러진 철 가면이 그 기능을 충실히 이행해준 탓이었다.
“내가 전문가는 아니지만…. 목뼈도 괜찮은 거 같네.”
생각보다 튼튼한 양반이라 다행이었다.
하긴 얼마나 튼튼한지 내 방패를 살짝 휘게 만들 정도였으니까.
아…. 어차피 때릴 거면 좀 더빨리 때릴걸.
가격이 비싼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내 수준의 선에서는 꽤 비싼 값을 주고 산 놈인데.
내가 낸 건 아니어도 새로 사다시피 한 가격을 수리비로 소모해놓고 벌써 이렇게 찌그러지고 긁힌 모습을 보니 가슴이 아팠다.
기왕 망치를 들고 있으니 되돌려 주기 전에 이걸로 좀 펴봐야지 생각하며, 나는 필라피스를 불렀다.
“내가 아까 챙기라던 붕대 좀 줘 볼래? 그 하얀 거.”
“응! 여기 있는 거다.”
나는 남자의 가죽 튜닉을 벗겨 내려다 영 힘들어 남자의 칼을 쥐고 부러진 팔과 다리 부근의 가죽을 잘라내었다.
물론 통가죽 말고 정확히 말하면 관절부 부근의 이어붙인 줄을 자른 거지만 말이다.
“후….”
어쨌건 그리 벗겨내어 상처를 확인하니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팔은 그렇다 치고 내가 때린 다리 부근에서 가죽 갑옷 밖으로 피가 새어 나와.
전번처럼 날카롭게 부서진 뼈가 살가죽을 뚫고 나온 것이 아닌가 걱정했으나, 다행히도 예상보다 심각한 상처는 아닌 듯해 보였기 때문이다.
피도 남자의 피부가 찢어져 흘러나왔을 뿐이니까.
정확히 안쪽이 어찌 된 지는 봐야 아는 거지만….
아,물론…. 팔다리뼈는 모두 확실히 부러졌더라.
덕분에 남자가 일어나면 죽을 만큼 아파하겠지만, 그래도 이 정도로 끝난 것이 어디겠는가?
“이, 이런 자세로 조, 죄송, 합니다. 저, 저는 로, 드니 라고 합니다.”
자리를 조금 옮겨, 잠시 대기하자.
마침내 눈을 뜬 남자 ‘로드니’가 자신을 소개했다.
물론. 이 음울하기나마 척 보기에는 멀쩡해 보이는 자기소개의 뒷면에는 다시금 지옥 같은 비명과 비속어가 오페라처럼 올렸었다는 사실이 깔려 있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신사적으로 자신을 소개하려 팔까지 가슴 쪽에 올려 자신을 소개하는 그 태도를 보면 모든 것을 잊고 손뼉을 쳐주고 싶을 정도였다.
“몸은 좀 괜찮으세요?”
“으…목과 폐가 타는 것 같군요. …콜록!”
비상용으로 가져온 물을 두 통 다 마셔놓고도 팔다리나 머리보단 목과 폐가 아프다니….
혹시 폐렴 등에 감염된 것이 아닐까 싶었다.
“일단 동료분이 기다리시니. 그쪽으로 돌아가죠.”
동료인 금발 성기사에게데려가면 치유의 기적으로 완치는 못 하더라도 편해질 것이라, 생각하여 제안했으나. 로드니는 고개를 저으며 이를 거절했다.
“제안은 감사…하지만, 저, 저 같은 것에 시간을 쓰기보단…이, 이 앞에 다른 동료가….”
“음…. 저희도 도와드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보시다시피 저희도 딱 두 명뿐이라서요.”
거기에 전에 있던 장소에서 마주한 스켈레톤도 전부 부쉈다.
그 말은 놈들을 조종하던 술사에게 위치가 들켰다는 뜻이었고 사령술을 쓰는 것으로 추정되는 흡혈귀가 직접 나타날 수도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애초에 정찰 목적이라 이 앞을 계속 가야 하는 건지도 고민이 되던 참이었다.
매정한 이야기지만, 결과적으로 실종자를 두 사람이나 구했으니 성과가 없는 것도 아니었고 나와 내 동료들을 위험에 빠트리면서까지 앞으로 나가고 싶지는 않았다.
“흐, 흡혈귀를 걱정하는것이라면 걱정하지 마십시오. 녀석은…으, 저곳엔 없으니까요.”
“네?”
“전 조종당하기는 했지만…. 으, 의식이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불경한 것의 힘은 ‘매료’고…저는 조, 조종당했다고는 하나 저의 의지로 놈의 명을 받고 이곳을 수호하던 것이었습니다.”
“…수호라면?”
“예, 예. 그렇습니다. 놈은 떠나면서 저에게 이곳을 수호하라고 명했습니다. 그 말에 먹지도 자지도 않고 이 구역을 지켰으니…. 으…정말 위대한 불꽃의 신을 모시는 자로서 너무나도 부끄럽군요.”
로드니는 그리 말을 마치고 다시 몇 번 마른기침을 콜록거렸다.
그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혀 흐르고 있었다.
“떠난 건 확실한가요?”
“네…. 이틀 전 놈은 그리 말하며 자신의 추잡한 소환, 물들을…대부분 데리고 갔으니 아마 당분간은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의 마지막 말은 자기 자신에게 너무 희망적인 관점에서 이루어진 말이 아닌가 생각했지만, 나는 그러한 생각을 전하는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오오…가, 감사…. 감사합니다. 정말…감사합니다.”
로드니는 이렇게 연신 감사의 인사를 전했지만, 솔직히 말해 감사를 해야 할 사람은 오히려 나였다.
그의 정보가 사실이라면 나는 여전히 퀘스트를 수행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무려. 은화 7개짜리 퀘스트를 말이다.
“그 흡혈귀는 어떤 지팡이를 들고 있었는데…그것으로 해골 병사를 늘리는 것 같더군요.”
“그리고 지금 그 지팡이를 들고 있는 건, 놈이 소환한 스켈레톤 메이지이고요?”
“그렇습니다. 놈만 쓰러트리면 이 일 때의 해골들은 전부 가야 할 장소로 돌아갈 겁니다. 하지만 조심하십시오. 그 불쌍한 노예에게 의지는 없지만, 안에 품고 있는 사악한 힘은 제 주인 못지않으니까요.”
“…참고하겠습니다.”
경계에 나갔던 필라피스가 돌아오고 우리는 다시 유적으로 향했다.
“왜 이 몸이 울디…용을….”
내가 로드니를 업어야 했기 때문에 자연스레 아용이가 든 가방은 피스에게 넘겼다.
전에는 끔찍하게 싫다고 하더니.
투덜거리기는 해도 거절하지 않고 받아주어 다행이었다.
아직도 서로 말은 잘 안 하지만, 그래도 드문드문 얼굴도장이 찍히며 미운 정이라도 든 모양인가?
당분간은 계속 같이 다닐 계획이니 이 기회에 좀 친해졌으면 좋겠군.
그나저나 스켈레톤 메이지라….
까다로울 것 같았다.
사실상 보스가 흡혈귀에서 스켈레톤 메이지로 바뀐 것뿐 아닌가?
물론. 난이도는 상당히 내려갔음이 분명하겠지만, ‘메이지’라는 이름이붙은 해골답게 마법을 쓰는 상대인 만큼 여전히 껄끄러운 느낌이었다.
성직자들은 번개를 뿜던데 얘네들은 막 불 뿜고 그러는 건가?
마법사는 워낙 특이한 존재라, 나는 이 세상에 오고 나서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마법을 본 적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 제…쿨럭. 기억이 맞는다면 이 앞에는 정찰대가 있을 겁니다.”
“그럼 돌아가는 게 낫겠군요.”
덕분에 조금 걱정되었으나, 그에 반해 발걸음은 생각보단 가벼웠다.
로드니는 근 사흘 동안, 이 숲에 있어서 그런지, 나름 지리도 빠삭하고 적들의 위치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 그러니까…이쪽, 아니. 저쪽입니다. 아, 아니네요.역시 저쪽이군요.”
“….”
뭐. 그 역시 사람이고 컨디션도 안 좋은 만큼 가끔 실수를 저지르긴 했지만 말이다.
“역시 이쪽인가…?”
“….”
그가 가이드를 해주는 지금은 그저 결정적인 순간 큰 실수가 없기만을 바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