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화 〉사실 S급이에용
“저쪽입니다. 이제 이 너머에 그 사악한 피조물이 보일…아. 죄송합니다. 여기가 아니군요. 조금 더 가야겠습니다.”
“저 인간 진짜 괜찮은 거다?”
“…묻지 마. 슬슬 나도 불안하니까.”
뭐. 조금 불안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나는 계속 로드니가 가이드를 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실수가 잦긴 한데…. 아직까진 큰 문제가 없었고….
무엇보다 작은 실수에 비해 얻는 것은 컸기 때문이었다.
“분명, 저 부근에는 정찰병이 있었을 겁니다.”
“어? 이번에는 진짜인 거다.”
“오. 대박.”
이렇다 보니 가끔 헤매는 정도야 우스울 수준일 수밖에 덕분에 우리는 꽤 오랜 시간을 이동하였지만, 첫 번째 전투 이후 별다른 전투 없이도 유적의 코앞까지 다가온 상태였다.
물론. 여전히 중요한 순간에 정보가 틀리거나, 아니면 아직 매료를 당해 연기를 하고 있을 가능성.
최악의 경우, 본인이 타락하여 적에게 충성했을 가능성 또한 염두에 두고는 있지만, 일단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볼 일이었다.
정보가 틀리는 부분이야 어쩔 수 없는 거고.
나머지 두 개는 지금 의심해봐야 별수 없는 문제니까.
“좋아. 그럼 이번에도 피해서 돌아가자.”
“엥? 또 인거다? 흐잉….”
눈앞의 적을 몇 번이나 지나쳤을까?
필라피스가 노골적인 표정으로 실망을 들어냈으나, 안타깝게도 선택지를 줄 수는 없었다.
사령술사가 별 도움이 안 되는 약한 스켈레톤들을 이렇게 사방에 풀어 놓은 이유는 침입자를 제거하는 파수꾼 역할을 기대하기보다는 그 자체를 경보기로 쓸 생각을 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좋을 테니 말이다.
놈이 생각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든 눈앞에서 흔들리는 뼈다귀를 물어, 함정에 빠지는 것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그러니까. 남은 사람은 두 명이 맞나요?”
“네. 한 명은 반대편에서 저처럼 숨어 적 정찰대와 같이 있을 겁니다. 마찬가지로 세뇌당한 상태지만 가는 길에 회수하면 될 것입니다.”
따라서 그가 이런 대답을 준 것은 고마운 일이었다.
“그래도 다른 한 명은 바로 구할 수 있겠네요.”
“네. 그녀의 무사를 기원할 뿐입니다.”
굳이 또 다른 한 명에 대한 정보는 묻지 않았다.
‘내 앞에서 시스터 루네를….’
금발의 여기사가 말했던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만약 그녀뿐만 아니고 그 또한 그 현장을 목격했다면….
“….”
나는 조용히 걸음을 재촉하였다.
이미 잃어버린 것을 돌아보기보다는 눈앞에 있는 가능성을 따라가는 것이 훨씬 나은 일일 테니까.
“후…. 거의 다 온 거 같은데요?”
“…그런 거 같군요. 유적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로드니는 내 등에 매달려서 말했다.
그저 업혀있기만 했는데도 그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는 것이 영 좋다고 말하기 어려운 상태인 듯했다.
상처와 탈진. 재수 없으면 감염까지 의심되는 상태였으니….
“저는 지금은 별 도움이 되지 않을 테니, 여기서부터는 저를 두고 가시지요.”
“…괜찮으시겠습니까? 이런 곳에 홀로?”
그의 말은 존중해주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걸어 다니는 시체가 나오는 장소에 사람을 두고 가려니 영 양심에 찔려, 다시 한번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면 발목을 잡을 테니까요.”
로드니는 그리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눈에는 지금도 아슬아슬해 보이는 환자라 보기 어려운 확고한 빛 같은 것이 엿보이는 것 같았다.
“흐암. 그러면 묻고 가면 되는 거다? 거기 대머리 빨리 내려놓는 거다.”
“대, 대머리….”
“….”
하여간 언제 어디서나 한결같은 녀석이다.
“여기. 여기가 좋다!”
그래도 필라피스 나름대로 생각해주는 것은 있었는지, 녀석은 우리의 대화를 듣고 먼저 적절한 위치를 확보해 놓은 상태였다.
“자…내립니다.”
큰 바위와 나무도 있고 그를 덮을 잔가지도 많아 보이니.
내가 봐도 썩 괜찮은 위치라 생각되어, 나는 필라피스가 선정한 자리 위로 로드니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네. 으읏…여기까지 도와주셔서 감…으흑.”
부러진 다리와 팔의 통증 때문인지 그는 이를 씹으며 신음을 삼켰다.
“그럼 우리는 가볼게요. 저희가 올 때까지 조용히 하시고요.잘 아시겠지만, 절대 소리 내서는 안 됩니다.”
“아, 알겠습니다. 정말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할지. 꼭…무사히 돌아오십시오.”
“….”
나는 내 팔을 붙잡고 말하는 로드니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마지막으로 그가 보이지 않도록 주변의 나뭇가지를 긁어 덮어준 후, 필라피스에게서 아용이를 받은 다음 이동했다.
누군가가 말했듯 놈들을 본디 자신들이 있어야 할 곳으로 되돌려 줄 차례였다.
덤으로 주인 없이 방황하는 7 실버도 내 주머니 속으로 넣어주고….
로드니가 마지막으로 넘겨준 정보를 따라, 숲을 완전히 빠져나오자.
지도로 계속 보아왔던, 이제는 오는 이 없는 버려진 유적이 우리를 반겼다.
“오.”
그런 소리가 나도 모르게 튀어나올 정도로.
흙과 돌로 빚어진, 버려진 신전은 생각보다도 크고 웅장한 형태를 하고 있었다.
물론 관리를 받지 못하여 초목이 덮이고군데군데 부서지기는 했지만, 오히려 그러한 점 때문에 인간에게 버려져 자연을 품은 그 건축물이 더욱 신비스러움을 띄는 것 같았다.
“설마…저기 안에 있는 건 아니겠지?”
외견은 그렇다 치고 금이 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모습을 하고 있어 굳이 안으로 들어가고 싶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킁킁…. 좀 다른 뼈 냄새가 나는 거다. 정확히 어떻게 다른 건지는 모르겠지만….”
주변의 무너진 기둥들의 뒤편을 이용하여 건물에 조금 다가서자, 다시금 필라피스가 코를 움찔거리며 말했다.
“방향은 알 수 있겠어?”
“음…. 너무 비슷한 냄새가 숲 전체에 퍼져있어서…정확한 위치까지 아는 건 무리인 거다.”
“그렇군.”
나는 바로 수긍했다.
정확한 위치를 찾기 어렵다는 것은 숲에 처음 들어설 때도 한 번 들었던 말이었으니까.
이번에는 조금 다른 냄새라기에 약간 기대했지만…역시였던 모양이다.
“뭐. 그래도 잘했어.”
“응? 이, 인간 오늘 계속 징그럽게 왜, 왜 그러는 거다…? 슬슬 무…무서운 거다.”
조금 전까지 꼿꼿이 새우던 꼬리를 축 내리며 말하는 거 보니 단순히 부끄러워서 그런 게 아니고 진심으로 기분 나쁜 모양이었다.
엠창룡 같으니….
“후…됐다. 마법 싸는 해골이나 계속 찾자.”
“응? 으, 응!”
기껏 꼭꼭 숨겨두었던 칭찬 보따리를 풀어줬더니 이렇게 돌아오다니 넌 당분간 칭찬 없을 줄 알아라.
정확히 어디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필라피스 덕분에 적어도 이 장소 어딘가에 녀석이 숨어 있다는 사실은 확신할 수 있었기에.
나는 우선 범위를 좁힐 생각으로 크게 유적 한 바퀴를 돌았다.
예상은 이러고 결국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해서 불평을 내뱉으며 유적의 안쪽으로 들어가게 되는 그런 결말을 생각해두고 있었으나….
“저, 저건 거다? 근데 저 녀석 저기서 뭐 하는 거다?”
“…글쎄다.”
놀랍게도 우리는 생각보다도 쉽게 녀석을 찾을 수 있었다.
아니. 사실 찾았다고 말하기도 어렵지.
그도 그럴 것이 열심히 찾을 예정이던 놈은 유적과 유적 사이의 뻥 뚫린 공터에서 마치 허수아비처럼 멍하니 서서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달그락─. 달그락─.
퍽. 여유로워 보일 정도였다.
…언데드가 일광욕?
당연하지만, 함정일 것이다.
자신감 있게 대놓고 저러니 걸려줄 수밖에 없는 함정.
“….”
나는 일단 피스에게 조용히 대기하고 있을 것을 지시한 후.
다시금 몸을 숙이고 무너진 건물과 기둥 사이를 기어, 천천히 녀석에게로 이동했다.
“으….”
확실히 로드니가 의식이 없는 피조물이라고 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나름 메이지라는 타이틀을 가진 녀석이 하염없이 허공을 올려다보며 뭔지 모를 소리를 내는 것을 보니.
안심되기는커녕, 마음속에 자리 잡은 불안감만 커졌다.
“으어….”
게다가 녀석의 목소리가 들릴 정도로 가까이 왔는데.
지금까지도 녀석의 호위할 병력의 ‘호’자도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함정이다.
나는 여기서 다시금 확신했다.
로드니를 구하며 스켈레톤을 쓰러트렸고 술사인 녀석이 그를 모를 리가 없었으니까.
“….”
나는 일단 조용히 눈을 돌려 주변을 살폈지만, 여전히 눈에 띄는 부분은 없어 보였다.
어쩔까?
시간과 함께 빛 또한 흘러가고 있고 그 뒤로 이어질 것은 칠흑 같은 어둠이다.
이번에도 역시 시간은 나에게서 등을 돌렸다는 이야기였다.
언데드에게 친화적인 어둠.
어쩌면 이곳에 없다는 흡혈귀가 도로 찾아올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려면 지금 바로.
“….”
“…!”
내 신호에 녀석은 양손을 주먹 쥐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할 수 있다.
이것은 감이지만, 이번 상대도 나를 얕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무방비한 상태로 함정을 파놓고 있을 리가 있겠는가?
나는 놈의 계략에 당당히 걸려주어 그것을 파고들 생각이었다.
“….”
나는 쓰러진 기둥을 넘어 뛰어갔다.
그것이 신호였다.
필라피스가 뛰기 시작하는 소리를 들으며, 놈에게 쉽게 닿으리라 생각하고 자신감 넘치게 망치를 들어 올린 그 순간이었다.
“이 쥐새끼들…. 드디어 나왔군.”
누군가 뱉어낸 그 말과 함께, 텅 비어있던 해골의 눈덩이에서 붉은빛이 생겨났다.
“이 몸이 평범한 소환체인지 알았는가? …안됐군.”
놈은 지팡이를 올리며 말했다.
인격이 없는 불쌍한 피조물이라더니….
딱히 그러한 느낌은 없어 보였다.
본인을 평범한 스켈레톤 메이지가 아니라 말한 것을 보면, 아마 상위 개체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후회하긴 늦었겠지.
“멈춰라─.”
그리고 언젠가 겪어 보았던 감각이 몸을 덮치며─나의 시야는 암전되었다.
숲 쪽에서 뼈마디가 절그럭거리는 듯한 소리가 하나둘씩 들려오기 시작하고 있었다.
“─.”
놈의 달그락거리는 뼈와 귀속을 파고드는듯한 웃음소리를 마지막으로 나는 의식을 잃었다.
“흐흐…. 의식을 방해한 녀석들이다. 죽음조차 자비로울 정도로 고통을 줘야지 우리의 위대한 신을 위해….”
“….”
물론. 아주 찰나의 순간만….
이번에는 대략 1초 정도…사고가 멈추지 않았나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무엇하나 변하지 않은 환경에서 망치를 휘두르려던 내 몸만 차렷 자세로 변해 있었고 나의 신호를 듣고 돌격하던 필라피스가….
“우랴앗!”
빠직─
멈추지 않고 그대로 날아올라, 무릎으로 우리를 비웃던 스켈레톤 메이지의 턱관절을 반쯤 작살 내놨기 때문이었다.
“커흐─!”
붉은 공으로 보일 정도로 펑퍼짐한 로브를 입은 인체모형은 마치 차에 치여 교통사고라도 당한 것처럼 대굴대굴 바닥을 굴러 내 앞으로 굴러왔다.
놈이 눈치채지 못하게 살짝 아래를 내려보니 척 보기에도 상당한 참사로 보였다.
“먀, 먀도 안 돼! 내 주, 주수리…?”
한참을 구른 스켈레톤메이지는 반쯤 사라진 입으로 그리 중얼거리며, 지팡이 짚어 일어나고 있었다.
믿을 수 없다는 태도에 흥분한 듯 거친 목소리였다.
“응? 거기 인간 뼈…. 이 몸에게 뭘 한 거다?”
“뭐, 뭣? 너…너흔 대체!”
…아무리 그래도 정말 단 1도 영향이 없을 줄이야.
과연 용이구나 싶었다.
“흐…아, 암흐레도 네 녀서흔 진심흐로 향대…해줄 피료가 있캣그냐.”
스켈레톤 메이지의 몸과 손에 보라색 흉흉한 기운이 모여가고 있었다.
이러한 쪽에는 문외한인 내가 보아도 상당히 위험해 보이는 사악한 기운이었다.
“음….”
그래서 나는 조용히 망치를 올렸다.
“앗!”
“크큭. 히제야 거비 나나? 네 홈 만큼은 꼬혹…쿄통을…!”
필라피스의 반응에도 놈은 망치로 내려치는 그 순간까지 내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빠직.
피스가 턱을 부수며 두개골도 반쯤 부숴놓았기 때문일까?
놈의 작은 두개골은 나의 일격으로 시원하게 부서지고 말았다.
이어 저 멀리 숲에서 기어 나오기 시작한 해골 군대 또한 ‘프사샥’ 소리를 내며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는 것이 보였다.
“…이거 진짜 이렇게 끝내도 괜찮나?”
나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거릴 정도로 너무나도 허망한 결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