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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6화 〉잠시 휴식이에용 (96/190)



〈 96화 〉잠시 휴식이에용

“뭐?”
“못 들었어? 네 파트너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물었는데?”

이데노아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나는 말문이 막혔다.
몸을 움찔거릴 때마다 바닥의 사각거리는 모래의 감촉이 느껴졌다.
맛없는 수프를 무제한 제공하는 것으로 어필하는 싸구려 여관이긴 하지만 이런 식으로대충 정리해놓는 곳은 아니었을 텐데.

꿈. 이곳으로 초대한 듯한 이데노아 본인도 인정했다시피.
역시 이곳은 꿈속이었다.

평소라면 들어서면서부터 알아챘을 텐데.
너무 피곤해서였을까? 언제 어디서부터 꿈속에 들어왔는지 헷갈리는…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

 바닥에 떨어진 모래에서 눈을 올려 그녀, 이데노아의 손끝이 보았다.
하얀 백옥으로 다듬어진, 날카로운 은장도처럼 매끄럽게 뻗어 나온 그녀의 손가락.
며칠  내 목을 떨어트릴 뻔했던 그 손가락들은 그때처럼 가지런히 아름답게 나의 목을 향해 있었다.

“…잠깐.”
“응?”
“진지한 와중에 미안한데…. 꿈에서 사람을 죽일  있는 거야?”
“그야 물론. …불가능하지.”

…이 녹용이?

그리 말한 이데노아는 자연스럽게 손을 거두어 자신이 앉아 있었던 소파에 다시 등을 기대어 앉았다.

“그래도 다음부터 그런 질문을 할 때는 조심하는 게 좋아. 꿈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어머니 용의 가호를 많이 받은 다른 용이나 아예 꿈속에 사는 다른 종족도 있거든.”

내가 그녀를 향해 천천히 걸어가자, 이데노아가 의자에 앉아 나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시선은 내가 자신의 맞은편에 있는 의자에 앉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

다시 한번 하프를 잡은 이데노아가 현을 튕겼다.
높고낮은음을 각각 한 번씩.

“여전히 조심성이 없구나. 인간.”
“꿈에서는 못 죽인다며?”
“물론이지. 그렇지만 그런 태도가 네게 도움이 될까? 네 앞에 있는 것은 용이야. 그것도 방금 너를 죽이기 위해 왔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던 용이지. 긴장감이 너무 없지 않아?”
“…지금  죽일  없다면 내가 뭘 두려워해야  필요가 있지?”

현실에서 죽이려 했다가 물러난 상대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이런 소리를 던지는 것을 보고 있자니 조금 짜증이 오른다.

“두려움이 없더라…마치 진짜 용이나 할 법한 말이군. 더할 나위 없이 어리석은 대답이야. ‘인간’.”

띠리링─.

내 직접적인 도발에 그녀는 이번에도 하프를 튕겼다.
이번에는 높은음만으로 이루어진 음색이었다.

“확실히 나는 꿈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만큼 어머니와 깊은 관계를 맺지 못했지. 그렇지만, 현실에서도 유효한 수단은 많지 않을까?”
“아용이가 있어도?”

이데노아는 아용이를 본 순간, 그 즉시 꼬리를 말고 자신의 패배를 인정했었다.

이것은 의도한 도발이다.
이데노아는 무표정한 그 얼굴에 살짝 미소까지 보여가며 말했다.

“흠…. 너를 둘러싼 환경을 둘째치고 나는 너 개인은 꽤 마음에 들어. 그러니 넓은 마음으로 우리 친애하는 ‘인간’님에게 가벼운 충고 하나 해주기로 하지.”

그리 말하는 그녀의 눈동자는 야생 동물의 그것처럼 세로로 세워진 동공을 하고 있었다.

“조심성이 없는 건 단지 어리석은 실수지. 하지만 용을 향한 도발은 단순한 어리석음을 넘어 멍청한 짓이야 인간. 지금 여기 있는  내가 아닌 다른 용이었으면 정신이 나가 도시를 불태웠을지도 모르는 것이니까.”
“….”

너무나도 현실성이 없어 보이는 담담한 말투에 나는 할 말을 잃고 침묵했다.

“아무래도 내가 한 말이 너에게 작은 오해를 준 모양이구나.”

그러나 이데노아는 이를 좀 다르게 여긴 모양이었다.

“확실히 나는 세상에서 제일…아니.  번째로 약한 용이라 했지.”

자기 입으로 그리 말한 것을 보면, 어쩌면 다시 한번.
내가 도발을 한 것이라 여긴 것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것이 내가 용이 아니라는 뜻은 아니란다.”

이데노아가 그리 말하며 다시 한번 하프의 현을 튕긴 순간이었다.

“…?”

잠시 눈을 깜빡한 사이.
나는의자에 앉아,  하늘을 보고 있었다.

“여긴?”

아니. 보고 있다는 표현은 다를지도 모르겠다.
떨어지지 않고. 찬 기운도 느껴지지 않으며, 의자째로 마치 캄캄한 무중력 속에 버려진 것처럼. 나는 어두 컴컴한 하늘 어딘가에 떠 있는 상태였으니까.
어디를 보아도 똑같아 보이는 밤하늘의 달빛이 향하는 곳을 쫓아, 바닥을 내려보자.
그곳에는….

작은 도시가 있었다.

늦은 밤. 얼핏 보이는 반짝이는 작은 불빛이 없었더라면 그것이 도시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새워진 성벽의 형태와 크고 작은 건물의 배치를 보니.
저곳은 내가 조금 전까지 있던 성도. 로덴을 지도로 보았던 형태와 비슷해 보인다고 생각했다.

이건…대체 뭐지?

대체 무엇을 보여주려는 것일까?
그런 작은 의문이 들었던 순간이었다.

마치 표면에 작은 새싹이 자라고 있을 법한 연초록색 비늘을 한 용이…사슴이나 순록이 연상될만한 뿔을 높이 들고서 도시 근처로 날아 살포시 내려와 앉았다.
덩치와 비교해. 마치 나비가 내려앉은 듯한 가볍고도 우아한 동작이었다.



이어 녀석의 뿔이 달빛을 머금은 것처럼 은은한 하얀 빛을 머금어 빛나기 시작했고.
마침내 입을 벌리고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불태워 가기 시작한다.

이어지는 광경은 아비규환이었다.

마치 세상의 종말과도 같은 풍경.

비명과 폭음 가득하고 순식간에 불타기 시작한 마을에서 그들은 아무런 저항도 할 생각 못 한  도망치고 도망치다 죽어갔다.

피와 불. 비명과 파괴. 끔찍한 광경이 이어졌다.
많은 고통을 머릿속에 담고 싶지 않아 나는 눈을 감는다.
하지만  소리는 여전히  귀를 파고든다.

비명. 끔찍한 비명이.

“그만.”

마침내 내 입 밖으로 나온 목소리에 소리가 멈추었다.
고요한 정적에 조심스레 눈을 떠보자, 나는 다시 여관에 앉아 있었다.
눈앞에서는 이데노아가 다시 그윽한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렇게 무섭게 노려보지 마. 실제로 뭐가 있었던 것도 아니잖아? 네가 말한 것처럼 이곳은 단순히 꿈일 뿐이니.”
“….”
“흠. 오히려 앞으로의 인생에 도움이 될 작은 조언을  만큼. 감사해줬으면 하는데 말이지.”
“…감사라고?”

그녀의 말과 옅은 미소에 속이 울렁거렸다.
정신을 차리기 위해 주먹을 꽉 쥐어 손톱을 살에 박아 넣었다.
꿈이지만, 방금 보여주었던 환상과 다르게 이곳에서는 고통이 있다.
말은 그러했지만, 그녀는 이곳에서 나를 죽일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후….”

이명이 들려오는 귀 주변을 만지며, 가볍게 심호흡을 한 후, 조금 침착해진 기분으로 다시 녀석을 보았다.

“하려던 말이…뭐였지?”
“네 파트너를 믿느냐 질문했었지.”

처음으로 돌아와 질문.
파트너. 아용이를 말하는 것이겠지 싶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망설임은 없었지만, 그녀가 원하는 정답인지는 모르겠다.

“흠.”

이데노아는 그저 그렇게 낮게 신음 후 다시 하프를 튕길 뿐이었다.
이번에는 낮은음으로 두 번.

“그거 의미가 있는 거야?”
“마음대로 생각해.”

애매한 답이군.
나는 머리를 긁적거리며 되물었다.

“내가 아용이를 믿냐 물어본 건?”
“….”

여기선 침묵이라고?
질문의 방향을 바꿔보자.

“…내가 죽으면 아용이가 자유로워질 거라던데.”
“알아.”

조심스럽게 물어보지만, 놈의 태도는 변함이 없었다.

“설마 그걸 원한다거나?”
“그럴 리가, 그녀의 해방은 세상의 종말인걸. 프레이야가 안 말해줬어?”
“…말해줬지.”
“그렇지? 그런 걸 원할 용은…몇 없지.”

…있긴 하다는 것인가?

그녀가 다시 하프를 튕긴다.
다시 낮은 음색으로  번.

 선율이 완전히 사라지길 기다렸다가 나는 다시 입을 연다.

“근데도 날 죽이고 싶다고?”
“그럴지도 모르지.”
“왜?”
“이대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두고 사느니. 그녀를 완전히 풀어 공공의 적으로 만들고 모든 용을 단합시킨다면 이길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 또한 들기 때문이지.”
“….”
“프레이야는 죽어도 반대한다만….”

이데노아는 그리 말하며 아쉽다는 듯 잠시 두 눈을 감고 있다가 떴다.
마치 위에 있는 누군가를 생각하는 듯이….

“거기다 내가그녀를 끔찍이도 싫어하고 그녀는 너를 끔찍이도 아끼니까.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이런 어린아이 같은 감정도  안에 확실히 있는 듯하다.”
“싫어한다고?”
“어떻게 좋아할 수 있지? 이래 보여도 나를 움직이는 감정은 동족애다. 탐구욕이 아니라면….”
“…둘 중 정확히 뭔데?”
“모른다. 둘 다 나를 지배하는 강한 욕구니까. 어쩌면 정말 둘 다 내 기원일지도모르지. 앞으로도 계속 탐구해나갈 생각이다.”
“욕구….”

기원. 프레이야는 자신의 기원이 ‘자애’라 했었다.
하지만, 이데노아는 이를 동족애라 명확히 분류했다.

비슷하면서도 명확한 이 차이.
그렇기에 그녀, 이데노아는 위험한 용이었다.

“그런데 그게 개인적으로 아용이를 싫어하는 이유와 관련 있어? 단순히 위험하다고 생각해서 그런 거면 모를까. 아용이도 용이잖아?”

이데노아는 내 말에 초록색 눈동자를 사슴처럼 동그랗게 뜨며 입을 열었다.

“놀랍군.”
“응?”
“그렇게 말했는데. 설마 하나도 안 듣고 바로 이렇게 경솔하게 말할 줄이야….”
“….”
“울디미르 알레 알테로카가 너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면 골백번은 죽었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녀는 그리 말하며 등받이에 목을 묻고 의자에 몸을 맡겼고 몸을 기대며 나는 삐걱거리는 소리에 나는 나도 모르게 흠칫하고 말았다.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정말 도시를 불태우거나 하지는 않을 거야. 프레이야가 아끼는 도시니까.”
“….”
“나에겐 그녀의 깃털 하나 보다도 가치가 없는 곳일지라도 말이지.”

그녀는 그 점은 확실히 했다.
명확한 경고였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와 답해주자면 그건 용이 아니야. 결코, 용일 수가 없지.”
“처음은 그렇다고 들었어. 하지만….”

‘그럴 수 있는 용은 존재하지 않아요.’

프레이야 대화했던 사실로 그녀가  중에서도 이질적인 존재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지금의 아용이는 용이었다.

프레이야도. 필라피스도.
그렇게 그녀를 인정하지 않았는가.

“아니. 여기서 하지만은 없어. ‘그건’ 절대로 용이   없다.”

그러나 이데노아는 다시 한번 부정한다.
이견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듯. 너무나도 확고한 어투였다.

“과거. 울디미르. ‘흑용제’는 확실히 나를 제외한 모든 용이 혐오하는 존재였다. 같은 용을 죽이고 억압하고 멈출 수 없는 파괴 충동으로 세상을 멸망시켜 가던 존재였고 지금은 네가 아용이라 부르는 그 존재에게 먹혀사라졌지. 그리고 그녀는 그 힘을 받아 용의 형태와 영혼을 얻었다.”
“그렇다면….”
“하지만 그게 어떻게 용이라 할 수 있지?”

“이해가 안 가나?” 이데노아는 짙은 초록색 눈동자를 빛내며 말했다.

“인간. 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해봐라. 넌 사람을 먹고 사람이 되었다고 주장하는 괴물을 사랑할 수 있을까? 같은 인간이라 말할 수 있을까? 그 괴물이 인간을 보며 배고파 침을 뚝뚝 흘리는 것을 보면서도?”
“아니. 아용이가 용을 삼킨다고는….”
“말한 적 없나? 그건 영원한 굶주림을 가진 존재다. 욕망을 어느 정도 채워줄 만한 존재라는 것은 ‘학습’했을 테니. 필시 달콤한 유혹일 텐데 말이야.”
“….”
“…그녀는 너한테 생각보다도 많은 것을 숨기고 있는 모양이군.”
“꼭 그렇지는….”
“어떻게 확신하지? 애초에 넌 그것이 정확히 뭔지도 모르잖아?”

이데노아의 말에 나는 이를 씹었다. 분명 꿈일 텐데.
어금니 안쪽에서 치아가 부서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
“네 표정을 보니. 지금 다시 처음과 똑같은 질문을 던지고 싶어지는군.”

이데노아가 말했다.
다시 한번 옅은 미소를 보이며.

“넌 지금  파트너를 어떻게 생각하지? 그녀를 믿나?”

그렇게 물어 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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