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8화 〉잠시 휴식이에용 (98/190)



〈 98화 〉잠시 휴식이에용

“죄송합니다아아! 제제제발 보고만은! 그것만은…!”
“어허! 매달리지 말고 놓으라니까? 놓고 가서 네 상사…길드 마스터나 불러와!”
“아아아안돼요! 아직 대출금도 못 갚았단 말이예요오오…!”
“그러니까 왜…아니. 됐고 어서 길마나….”
“으아! 죄송해요오오! 죄송해요오오옷!”

양심이 터져버린 귀쟁이의 인성질에 ‘길드에 보고할까?’ 같은 주제로 옥신각신….
아니. 일방적으로 두드리기를 잠시 결국, 처음에 약속했던 4실버를 그대로 받기로 합의함과 동시에 약간의 추가적인 서포트를 받는 조건으로 용서해주기로 했다.

“흑…흐윽….”
“그만 울고 빨리 서명이나 해라.”
“저, 저는…모험가 박자용님께….”
“피스야. 너는  옆에서 적는 거로  사기안 치는지 잘 보고.”
“알았는 거다!”
“으흑…. 기사니임….”
“으음. 그, 그게….”

서포트 내용은 임무 난이도에 상관없이 내 마음대로 퀘스트를 받을  있는 권한 1회.
매달 한 번 정도는 먹음직스러운 퀘스트를 가지고 기다리고 있을 것. …이었다.

위법행위를 눈감아 주는 것치고는 정말 별거 없는 조건이아닌가?
녀석도 그걸 아니. 징징거리기는 해도  불만은 없이 계약서를 작성해 나갔다.

“으음…그, 그러니까. 확실히 상호 합의 본 내용임이 틀림없군요. 근데  제가…?”

그리고 뜬금없이 계약서의 입회자가 된 기사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으로 길드의 이야기는 일단락되었다.





“그러면 이제 본국으로 돌아가시는 건가요?”
“응? 금 언니님. 떠나는 거다?”
“으음…그게 그러니까. 저도 원래는 바로 돌아갈 예정이었습니다만….”

길드에 나와 헤어지기 전에 이것이 마지막인가 싶어 말씀을 드렸더니.
기사님은 잠시 고민하시며 말끝을 흐리셨다.

“조금 더 계실 예정이신가요?”

특사 신분에 사상자도 나오는 바람에 여간 불편하신  아닐 텐데.
꼭 남을 만하신 중요한 이유가 있는 것일까? 싶어 여쭈었더니 그녀는 뜻밖에도 시원스레 답해주었다.

“예. 동료의 원한도 있고…아무래도 사라진 흡혈귀를 그대로 두기는 찜찜해서요.”
“아.”

동료의 죽음. 심각한 굶주림.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못했던 3일.
보통 이러한 경험 중 하나만 해도 상당한 트라우마로 남을 법도 한데.
그녀는  모두를 경험하고도 보는 이가 감탄할 정도의 의젓한 태도로 말씀하셨다.

이래서 기사 기사 하는구나.
좀 감탄했다.

“그럼 동료분들도 다 같이?”
“아뇨. 저만입니다.”
“네? 혼자서요?”
“로드니는 당분간 활동이 불가능할 것 같고. 한스는 로드니를 안전하게 데려가기 위해 동행을 부탁하려고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혼자서는 좀 힘드시지 않을까요?”

걱정스러운 맘에 묻자.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괜찮습니다. 완전 혼자는 아니고. 전에 같이 일했던 사람들을 부를 예정이라서요. 안 그래도 어제 여관에 도착하자마자. 편지를 써 보내둔 상태입니다.”
“그렇군요.”
“네. 아, 생각해보니 마침 그들도 여러분과 같은 창천교의 소속이네요. 혹시 서로 아시는 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럴 지도요.”

나는 쓴웃음을 지며 말했다.
물론 그럴 리는 없었다. 실제로 나는 창천교인도 아니었으니까.
탈리아씨라면 모를까.

“혹시 도울 일 있으면 말하는 거다!”
“오. 꽤 기특한데?”

상당히 친해졌기 때문일까?
시키지도 않았는데 필라피스가 먼저 그리 말해 조금 놀랐다.
정말 인성 부분에서 날이 갈수록 눈부신 발전이다 싶었다.

그냥 단순히 먹이로 길든 것일지도 모르지만.

“피스님이 그렇게 말씀해주시면 너무 든든하군요.”
“우헤헤!”

말씀과 다르게 마치 귀여운 동생을 다루듯 필라피스의 머리를 쓰다듬는 기사님을 보고 있자니  훈훈해 보이고 좋았다.

바로 요 며칠 전 필라피스가 철갑을 낀 주먹으로 안면 강타를 날려 기사님의 얼굴이 아직도 조금 부어있지만 않았어도 조금 더 훈훈하지 않았을까?

“으흠…. 그럼 저는 다시 길드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또 무슨 일이 생기기 전에 살아 돌아왔다고 보고도 해야 하니까요. 의뢰 보상은 아까 보았던 엘프에게 맡겨놓으면 되겠지요?”
“네. 부탁드리겠습니다.”

사실. 녀석의 인성이 좀 불안하긴 했지만, 항상 길드에 상주하는 녀석만큼 연락책으로 쉽게 쓸 수 있는 사람도 없었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놈이라도 설마 고작 몇 실버 때문에 자기 약점을 또 늘리진 않을 테니 말이다.



길드를 떠나, 의뢰주에게 향하기 전.
한  더 들려야  장소가 있었다.
바로 대장간이었다.

“어서 오시오. 최소 3일은  걸린다더니 생각보다 빨리 오셨군.”
“네. 생각보다도 일이 일찍 끝나서요.”

당연히 퀘스트에 출발하며 빌린 무기를 돌려주고 원래 내가 사용하던 창을 받기 위함이었다만….

“빌렸던 이거…그냥 제가 구매할게요.”
“응? 내 구매를 기대한다고 말하기는 했다만, 농담이었는데 정말 괜찮겠소?”

고민 끝에. 나는 빌렸던 전투용 망치를 구매하기로 마음먹은 것이었다.

처음 그리 생각한 이유는 찌그러진 방패를 수리하기 위해 몇  두들겨 쳤더니, 모서리 부분이 떨어져 나가 약간의 흠집이 생겼기 때문이지만….

“네. 며칠 써보니 손맛이 제법 좋아서요. 사뒀다가 가끔 필요할 때 쓰려고요.”

마음에  것도 사실이었다.

“그렇군. 뭐 구매해준다니 고마울 따름이오.”

분명 가지고 있으면 언젠가는 또 쓸 일이 오리라.
보관과 관리가 쉽다는 것은 둔기에 장점  하나이니 만약을 대비한 서브 무기로 두고 다니기에도 안심이었고 가격도 저렴한 편이여 부담이 없기도 했다.

“아, 하지만 바로 들릴 때가 있어서 그런데 망치는 여기다 두고 가도 될까요? 어쩌면  오래될지도 모르지만….”
“괜찮소. 서비스로 심심하면 손잡이 부근 좀 만져드리리다.”
“그래 주시면 저야 감사하죠.”

나는 그의 제안에 감사하며 카운터 근처에 망치를 내려놓았다.

“아, 생각해 보니까. 너는 뭐 때릴 때 불편한 거 없었냐? 있으면 가기 전에 확실히 말해.”
“그럼 주먹으로 때릴 때! 손가락이 가끔 씹혀서 아픈 거다.”
“음? 잠깐 이리 와보시오. 내 바로  드리리다.”
“여기 있는 거다.”

피스가 카운터와 다가와 손을 내밀자.
그는 여러 각도에서 손을 쥐었다 펴보라고 말하며 그녀의 손에 딱 맞지 않던 철갑을 교정해나가기 시작했다.

아, 도구를 꺼내는 걸 보니  오래 걸리겠군.

심심해진 나는 조용히 대장간 안을 돌아보았다.

“음. 다음에는 검도 하나 사볼까?”
“꼄?”
“아니. 검.”
“껌!”
“…그래.  하자.”

마찬가지로 심심해서 나온 작아용은 덤이었다.
아용이도 요 며칠간 계속 가방 안에 있어 답답했다고 노래를 부르던데.
그러한 기분은 작아용도 마찬가지였는지. 마을로 돌아온 뒤로는 이렇게 사람만 조금  보인다 싶으면 바로 튀어나와 주변을 두리번거리고는 했다.

“음. 단검은 진짜  많이 사둘 필요가 있겠는데….”
“단 껌!”

그렇게 잠시 작아용과 함께 느긋한 아이 쇼핑에 집중하고 있을 때였다.

“안녕하세요?”

문이 열리며, 익숙한 얼굴이 들어 온 것은….

“오. 어서 오시오.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소?선객이 있어서.”
“네. 그러겠…. 어? 도련님?”
“마리안씨?”

사람이 다가오자 황급히 낑낑거리며 가방 안으로 들어가려는 작아용을 넣어주고.
고개를 들자. 나를 발견한 마리안씨가 단아한 걸음걸이로 나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여긴 어쩐 일이세요?”
“그야 아가씨의 심부름이지요. 맡겨둔 장비 확인차요.”

뭐…. 당연한 소리긴 했지.

“마침 만나서 다행이네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대신 그리 말하며 주머니에 있던 은화를 꺼내어 그녀에게 건넸다.

“이건…?”
“사부가  숙제요. 5실버였죠? 다 모아왔거든요.”

남은 몇 쿠퍼를 제외하면  재산이었지만, 금방 또 의뢰를 수행할 예정이고. 추가로 돈이 들어올 곳도 있어 아쉬움은 없었다.

“…벌써 5실버를 다 모으셨다고요?”

마리안이 정말로 놀란 듯 말했다.
내가 생각해도 생각보다 오래 걸리겠다 싶었던 일을 한탕, 그것도 예상보다도 빠르게 복귀하여 끝냈으니 그녀가 놀라는 것도 당연하지 싶었다.

정말 운이 좋았지.
이걸로 그 엘프에게 감사하고 싶지는 않지만 말이다.

“흠….”
“왜 그러세요?”

다만 마리안의 생각은 조금 달랐던 모양이었다.
그녀는 잠시 자신의 손에 있는 은화를 보며 낮게 신음했다.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가요?”
“아뇨. 그게 사실은…도련님이 정말 은화를 모아오실 줄 몰랐거든요.”
“네?”
“…금액이 금액이니까요.”

그녀가 무뚝뚝하게 말했고, 이는 사실이었다.
내가 밥을 많이 축낸다는 이유로 받은 숙제였지만, 이 도시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부담스러워 할만한 큰 금액이기는 했으니까.

“역시. 도련님은 정말로 어느 유복한 집안의 자제분이신 건….”
“아뇨. 그건 아닌데.”
“그렇지요? 그렇게 안 보이긴 하셨어요. 밥도 많이 드시고….”
“….”
“그러면 뭘까요?”
“네?”
“이렇게까지 하면서 아가씨에게 꼭 배우고 싶은 이유가 있을까요?”

가면 아래서 여전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무감정한 목소리로 그녀가 질문한다.

“사실. 이번 숙제는 제가 아가씨께 부탁드린 거예요.”
“그렇군요.”
“…알고 있으셨나요?”

정확히 왜인인지는 모르고 내심 그렇구나 싶었던 것뿐이다.

“뭐 사부님이 그렇게 연기를 잘하시는 편은 아니잖아요.”
“그건 그렇지요. 아가씨는 전투 빼고는 아무것도 소질이 없으시니.”

마리안은 시원하게 인정하며 말했다.

“왜 이런 숙제를 주셨는지 물어봐도 괜찮을까요?”
“도련님이 일주일 만에 식비로 2실버를 드셨다니까요?”
“….”
“그런 표정 마세요. 농담이니까.”

“식비 자체는 사실이지만….” 마리안은 그런 말을 하며 손을 가면 가까이하고는 마치 ‘키득키득’ 웃는 듯한 동작을 취했지만, 웃음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여전히 기묘한 사람이었다.

“사실. 묻고 싶은 건 저예요.”
“네?”
“스승이라 불리기 싫어하며 일부러 도련님을 옆에 두려는 아가씨. 그런 아가씨를 억지로라도 따르려는 도련님…누가 봐도 기묘하고 안쓰러워 보이는 관계잖아요? 굳이 거금을 들여서 이런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나요?”
“그건….”

나야 이득이 많아 그런 것이지만, 유르겐…사부는 달랐다.

말은 그러려니, 풀어진 것처럼 보여도 여전히 계속해서 의심하고 있을 테니까.
그녀를 끔찍이도 아끼는 마리안의 측면에서 보면 확실히 왜 유지하는지 모를 기형적인 관계이긴 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유르겐사부가 자신의 속내를 누군가에게 터놓을 성격도 아니고….

“사부는  모르겠지만, 저는 이렇게라도 붙어 있는 게 좋으니까요. B급 모험자에게 배울 기회가 흔치는 않잖아요? 실제로 상당히 유익하기도 하고요.”
“….”

내 말에 마리안씨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확실히 그렇겠네요.”

마치 기계 같은 끄덕임이었다.

“제발 그뿐이었으면 좋겠어요.”

가면 아래서 흘러나오는 목소리가 조금 음산하게 느껴졌다.

“서로를 위해서도요.”
“….”

 무감정한 목소리 속에 담긴 것은 확실한 경고였다.

…또?

최근 들어 뭔 경고를 이렇게 많이 받는 건지.
이 정도면 정말 내가 문제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며 말을 고르고 있을 때였다.

“그건 우리 쪽에서할 말 같은데?”
“당신은…?”
“보호자. 인간. 말하는 걸 들어보니 보호자끼리 대화가 필요할  같다만?”

잠시 이어진, 답답한 정적을 깨는 것은 언제나 그렇듯 귀에 익은 당당함이다.

“누가 누구를 보호…아니. 넌 또 언제 나왔어?”
“방금.”

최근 삼킨 마나석으로 컨디션이 꽤 좋아진 탓일까?
그렇게 말한 아용이는 참으로 오래간만에 자신만 믿으라는 듯 이죽거리는 표정을 보이며 자신만만해했지만….

“불안한데?”
“….”

나는 그 많은 일을 겪고도…아니. 그러한 일을 겪었기에 여전히.
녀석이 이런 표정 지을 때마다 든든함보다는 불안함이 먼저 드는 것이었다.

아니. 그렇다고 그렇게 노려보진 말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