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화 〉연금술사의 의뢰에용
“다시 한번 말해줄래요?”
“응? 내 뇌가 공방에 있다는 거?”
그 가벼운 태도에 나는 다시 한번 경악했다.
잘못 들은 게 아니었구나….
“지금 여기서 말하는 뇌가 그 제가 생각하는 그 뇌 맞아요?”
“그게 아니면 지금 내가 왜 골 아프게 자기 머리를 툭툭 치며 설명하고 있겠어? 정말 대화하면 할수록 둔한 건지 유연한 건지 알 수 없는 친구네?”
“….”
아니. 그렇게 당연하다는 듯 말해봐야.
정상인 감성으로 누가 뇌라는 말을 듣고 바로 그렇습니까 하냐고.
“응? 왜 그런 눈으로 봐 친구? 안이 텅 비어있을까 봐? 그렇지 않아요. 대략 1,456g짜리 핑크빛 쭈그리는 확실히 이안에 들어가 있으니…. 상황이 상황인지라 보여줄 수는 없지만!”
“음….”
꼭 상황이 좋다면 열어 보여줘도 문제 될 것이 없다는 말투여, 얼굴을 찡그리고 말았다.
“그럼, 거기 있는 뇌가 부서지면 죽는 거예요?”
“아, 꼭 그런 건 아니고. 내 원래 뇌는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친구. 혹시 마도학에 관한 어느 정도 지식이?”
“전혀요.”
“흠. 그러면 좀 간단히 설명하자면….”
그녀는 다시금 의자에 다가와 혼이 빠져나간 듯. 등받이에 머리를 붙이고 늘어진 어린 달시의 두 손을 잡고 끌어 올렸다.
“끙차!”
머리는 그대로 축 늘어진 채. 그녀의 손이 흔드는 대로 흔들리는 육체.
그다지 아름다워 보이는 광경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이런 거야.”
그녀는 그리 말하며 바닥에 앉아, 마치 인형을 가지고 놀 듯 자신의 어린 육체를 다리 위에 앉혀놓고는 두 손으로 머리를 잡아끌어 올렸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마치 어린 동생 서울 구경이라도 시켜 주는 모습이었지만, 죽은 눈으로 머리 양쪽을 잡혀 벌려진 입에서 침이 뚝뚝 흐르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제는 그냥 호러가 따로 없다.
그야말로 꿈에 나올까 두려울 정도로.
오늘 잠은 다 잤군.
밤에는 작아용이라도 끌어안고 자야겠다.
“평소에는 신체적인 부분의 최소한만 가능할 정도로 활성화되어 있지만, 특정 신호를 주면….”
아마도 표정으로 그대로 드러났을 나의 그 시선은 전혀 관심이 없는지.
그녀는 작은 머리를 부여잡고 좌우로 흔들어가며 설명을 이어 나갔다.
…그녀의 입에서나온 설명은 빈말로도 전혀 간단하지 않았다.
“…이해했어?”
한차례 이어진 설명에 나는 머리를 부여잡고 중얼거렸다.
“클라우드…?”
“응? 클, 뭐?”
“아뇨. 그러니까…”
듣고 또 반복해서 듣다 보니. 핵심은 알겠는데.
이를 이쪽세상 식으로 말하려니 또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음….”
나는 복잡한 머리를 최대한 정리하여 천천히 말을 내뱉었다.
“대충 정리하면 지금도 본래의 뇌와 항시 연결되어 같이 기록해 나가고 있다는 거죠?”
“응. 맞아.”
“그리고 육체를 갈아탈 때는 본래의 뇌가 기억하는 현 육체의…그동안 저장된 기억을 그대로 다시 다른 육체에 쏴주는 거고요?”
“오 맞아! 맞아! 대충 그렇게 이해하면 돼!”
달시가 작은 머리를 잡고 있던 손을 놓고 연신 손뼉을 치며 말했다.
“와! 친구 너 정말 이해가 빠른걸?”
“혹시 지금 좀 모자른 취급하고 있지 않나요?”
“아냐! 정말 칭찬하고 있는 거야! 그 많은 이론과 기술의 조화를 이렇게 간단하게 생략하다니! 정말 대─단해!”
“….”
하여튼 다 덜어내고 중요한 것만 말하자면, 그녀가 취한 방식은 네트워크 서버를 이용한 현대의 저장 방식과 닮아 있었다. 육체에 담긴 기억이 본래의 뇌와 함께 저장되어 다른 육체로 옮겨 갈 때 그 기억을 고스란히 옮겨 가는 것이다.
“….”
다만 남은 육체가 이렇게 아무런 의식도 없는 걸 보면 혼선을 피하려고 과정 중에 저장된 데이터의 ‘삭제’가 들어가는 것 같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불사치고는 좀….”
“그러니까 미완성에 과정이라고 했잖아. 아! 그래도 친구가 말이 통해서 다행이야! 보통 이런 말 하면 학회에서도 괴물 취급당하다 마녀 몰이 당해서 화형당하거든!”
“….”
어째 말투가 마치 당해본 적 있는 듯한 말투였다.
아니. 생각 말아야지. 그보다 궁금한 건….
“…근데 왜 저한테?”
“그야 보통은 아닌 것 같아서! 친구도 그렇지만, 주로 우리 친구의 여자친구들이…. 전에 봤던 그 파란 아이 수인이 아니지? 그리고 축제 때 보았던 그 붉은 아이도.”
“….”
“누구에게도 말할 생각 없어 같이 비밀 공유하는 비밀 친구 사이니까. 어때? 친구?”
그녀가 손을 내밀었다.
이번에는 잡지 않는다.
“…확신이 있는 거예요? 정말 수인일지도 모르잖아요.”
“물론. 없지!”
달시는 뭐가 그리 좋은지 깔깔거리며 말을 이어갔다.
“그렇지 않아도 입막음용으로 생각해둔 것도 있지.”
“불안해서 그런데 진짜 저나 제 친구들로 뭘 하거나 할 생각은….”
“아니. 그럴 리가! 모두에게 친절한 달시 막시인걸? 나는 내 몸으로밖에 실험 안 해!”
그녀가 자신 무릎에 널브러진 어린 육체의 손목을 흔들며 말했다.
“그 옛날에 친한 상인이 협상이 안 되면 뇌물로 건네보라 했지. 조용히 내 일을 해결하는 걸 도와주면 친구한테는 특별히 몸을 하나 줄게.”
“네? 몸요?”
“친구가 안고 있는 것도 괜찮고 아니면 원하는 나이 때로 새로 만드는 것도 좋고.”
하나…준다고?
나는 찝찝함을 곱씹으며 시선을 내렸다.
본인 보는 앞에서 바닥에 두기는 그래서 계속 안고는 있지만….
마치 시체처럼 달시의 육체 중 하나가 축 늘어져 있어 기분이 나쁠 뿐이었다.
“어때 괜찮지? 나라서 하는 말은 아니고 제법 미형이기도 하고? 반응이 좀 심심하긴 하겠지만 마음대로 주무를 수도 있고? 지금은 힘들지만, 이번 일이 끝나면 간단한 명령 정도는 듣게 조정해 줄 수도 있어!”
“…전처럼이요?”
“그래. 기억나지?”
달시는 첫날 고장 난 축음기처럼 같은 말을 반복하던 자신의 작은 육체를 흔들며, 말했다.
“아니. 그건 좀….”
“에이~. 그러지 말고 잘 생각….”
“…해보라니까?”
무릎 위에 있던 어린아이가 끊어진 말을 이어가며 바닥으로 쓰러진 여성의 품에서 일어나왔다.
“봐봐. 내 몸이라서 그런 건 아닌데. 솔직히 제법 괜찮다고 생각하거든?”
그녀는 그리 말하며 손을 뻗어와 내 품에 있는 여성의, 젖가슴을 쥐어 잡으며 말했다.
현재 자신의 얼굴보다도 큰 젖가슴을 희롱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뭔가….
“기본적인 건 하게끔 조정하고 거기에 간단한 명령도 듣게 조정하면웬만한 노예보다도 나을걸?”
그녀는 그리 말하며, 그녀는 지금의 자신이 아닌. 스스로의 가슴을 힘껏 움켜잡는다.
가해진 힘에 살이 삐져나오듯 갑작스러운 압력에 놀라 튀어나오려는 가슴살이 옷맵시 너머로도 보이는 것 같았다.
“아니면 정~불만이면 조금 귀찮긴 해도 친구가 원하는 대로 튜닝도 가능해! 이건 정말 비밀 친구 혜택 같은 거지!”
“워, 원하는 대로요?”
“그래. 얼굴도 몸의 체형도…예를 들면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그 푸른 머리 아이를 전에 봤던 그 붉은 아이처럼 작게 해줄 수 있어. 아니면 그와 반대로 그 붉은 아이의 모습에서 가슴만 크게 하거나 더 성숙해 보이도록 ‘디자인’ 해줄 수도 있고.”
“….”
다시 한번 시선을 내렸다.
영혼 없이 눈을 떠 허공을 바라보는 그 고기 인형의 얼굴이 일순, 내가 아는 누군가와 겹쳐 보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
의식은 없이 새근새근 느껴지는 숨소리.
피부로 느껴지는 여체의 따스함.
“원하는대로 사용하고 특별한 취미에 이용해도 별 탈 없고 질리면 쓰다 버려도 아무런 문제도 없지. 정 귀찮으면 가게에 두었다가 원할 때만 데려가도 괜찮고…. 아예 그런 공간까지 만들어줄까? 친구랑은 인연이 오래갈 것도 같은데.”
“아니. 저는 그런 건 좀…것보다 괜찮아요? 당신 육체잖아요.”
“뭐 중요한 건 정신이 아니겠어? 적어도 내가 추구하는 불사는 그런 거니까.”
“….”
이질적이다. 그녀는 마치 용처럼.
아니. 용보다도 인간성이 떨어지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하, 하여튼 필요 없어요. 할 테니까 보수나 제대로 주세요.”
“그래?”
“…이 모든 게 딱 1실버면 엄청나게 서비스해 주는 건데 말이야.”
다시금 쓰러진 작은 육체와 내 품 안에서 눈을 뜬 여성.
“아, 됐으니까. 사람들도 기다리니 준비가 다 됐으면 어서 일어….”
“저어…실례합니…다?”
그리고 그때였다.
문 쪽에 달린 작은 종이 울려 퍼지며, 내가 익히 들었던 나긋한 목소리가 음습한 공간 속으로 스며들어 온 것은.
“…어?”
“자, 자용씨?”
“오? 어서 오세요…는 친구랑 아는 사이인가 봐?”
세 목소리가 겹친다.
“자용씨. 지금 이 상황은 대체….”
기다리다 지친, 혹은 내가 걱정된 탈리아 씨가 문을 열어 점내를 확인해본 것이었다.
…확실히 대화에 너무 시간이 끌리긴 했지.
하지만 그렇다고 탈리아씨가 이 타이밍에 문을 열다니….
이건 너무 지지리도 재수 없는 것이 아닌가?
“음? 아, 그런 건가?”
“으이차!”
“꺅? 사, 사람이?”
다시 한번 팔 안에서 묵직해지는 기분과 함께 눈앞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던 커다란 달시가 기합 소리를 내며 일어났다.
“저, 저기 당신은…자용씨한테 안겨있는 분이랑 같은…? 아니. 다른가? 어?”
“아~. 그러니까…. 여자친구 씨?”
“여, 여자 친…?”
보기 드물게 당황하는 탈리아씨.
달시는 가볍게 웃으며 그녀에게 다가가 말했다.
“응? 오해하지 마. 보시다시피 세 자매끼리 장난치다가 걸려 넘어져서 그 와중에 한 명이라도 저 친구가 구해 보인 거니.”
“그, 그런 건가요?”
“자 악수하자! 악수.”
“네, 네?”
천성이 선인이라 그런지.
탈리아씨는 그녀가 갑작스럽게 내민 손에 수상쩍어하면서도 그 손을 쉽게 잡고 말았다.
“근데 나 말이야. 그렇게 내 동생이랑 닮아 보여?”
“네? 그, 그렇네요.”
“신경 쓰여?”
“아니요? 응? 호, 혹시 신경 써야 하는 건가요?”
“아냐. 아냐. 그걸로 괜찮아.”
달시는 탈리아씨와 악수를 유지하며 뒤를 돌아 ‘찡긋’ 웃어 보였다.
원래는 저렇게 작동했어야 하는 건가.
효과 한 번 확실한 물건이었다.
“흐암? 인…간? 끄, 끝난 거다?”
“뭔 끝이야. 이제 시작인데 어서 안으로 들어와.”
“안으로 들어가도 되는 거다?”
다시 벽에 누워 낮잠을 취하던 필라피스를 깨워 안으로 데려오자.
막 탈리아씨와 함께 쓰러진 자신의 몸을 들어 나르던 달시가 우리를 반겼다.
“오. 이쁜이 안녕?”
“응? 이상한 인간도 안녕인 거다!”
“꺅! 달시씨! 갑자기 놓아버리면 어떻게요!”
“괜찮아. 괜찮아.”
“아니…. 쿵 소리가 들렸는데…호, 혹시 머리를 다친 건….”
“아, 내 동생 튼튼하거든. 그러니까 괜찮아. 자, 악수! 악수! 괜찮지?”
“네? 어라? 괘, 괜찮나?”
내가 저리 당할 뻔했다는 상상을 하니 좀소름 돋는 군.
…저거 부작용 있는 건 아니겠지?
편한 건 알겠지만, 탈리아씨한테 쓰는 것도 그만하게 해야지.
“안녕. 다시 한번 만나고 싶었어.”
“응? 이 몸을 말하는 거다?”
“그럼 그럼!”
그렇게 말하고 쓰러진 자신의 두 몸을 질질 끌어 대충 바닥에 눕혀둔 달시는 필라피스에게 다가와 못다 한 인사를 건네려 했지만….
“응? 인간?”
묘한 흥분이 느껴지는 몸짓과 태도에 불안해진 내가 필라피스와 그녀 사이를 막아섰다.
웬만하면 그녀는 용과는 접촉을 못 하게 하는 것이 좋을지도….
“친구! 역시 수인 아니지. 이 푸른 아이?”
“아뇨. 수인인데요. 피스?”
“그, 그런 거다! 이 몸은 수…인? …인거다!”
달시는 그런 우리의 태도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여전히 새로운 장난감을 발견한 아이처럼 신이 난 모습이었다.
“그럼 머리카락 하나만 뽑아가도 괜찮아?”
“다른 사람으로는 연구 안 한다면서요?”
“아이, 참! 피가 보기 싫은 거지 자발적으로 제공되는 신체 정보는 환영인걸…!”
“하지 마세요.”
“그러면 저기 수녀님이라도….”
“저분은 더 안 돼요. 그냥 제 머리카락으로 참으시던가.”
저 말을 들으니 괜히 더 불안해.
그리 생각하고 말한 것이었지만….
“응? 그것도 나쁘지 않은데…좋아. 당분간 그걸로 참을게! 대신 가기 전에 머리카락 두 가닥은 주고 가야 해?”
바로 이렇게 웃으며 받는 걸 보니.
처음부터 이렇게 유도당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르기 없기야!”
그녀는 그리 말하며 싱긋 웃고는 우리를 데리고 자신의 공방으로 안내하는 것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녀의 공방과 이어진 가게 아래의 지하 창고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