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9화 〉돌아갈 시간이에용
붉은 머리의 여자아이가 내 몸 위에서 춤을 추듯 허리를 움직이고 있다.
“하아….”
그 움직임은 역시나 조금 서툴러 때로는 조금 힘겹게 삐걱거리지만, 그녀 자신의 붉은 머리카락처럼 정열적이어서 나는….
“흐읏….”
깊은 숨결, 따스하고 촉촉한 환경.
성적흥분으로 나온 퀴퀴한 공기.
호흡하기가 조금 어려울 정도지만, 그래도 좋았다.
이대로 영원히 너를 느낄 수 있다면….
“아용아…나….”
“조, 좋다. 이 몸도…흣!”
마침내 다시 올라오는 사정감.
그녀의 움직임에 맞춰 허리를 조금 들어 올림과 동시에 골반을 잡은 손을 내려, 여태까지 중에서 가장 깊게 그 속을 맛본다.
아용이는 이에 조금 놀라 “하악!” …하며 몸을 조금 떨었지만, 이어 그 모습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요염하고 성숙한 표정으로 나의 어리광을 받아주며, 질내를 쪼여왔다.
“읏…!”
“음…앗…. …하아. …하아.”
길고 긴 사정 시간 동한 자신의 허리를 꺾어 절정을 맛보던 아용이는 게슴츠레 감긴 눈으로 나의 배 위로 넘어져 왔다.
살로 살을 때리는 ‘철퍼덕’ 소리를 내며, 마치 방전된 것처럼 쓰러진 아용이의 몸은 내가 여태까지 그녀를 안았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만지면 부서질 듯 작고 여려서….
끌어안고 싶어도 끌어안기가 겁이 날 정도라….
“다….”
“다?”
“저, 정사가 끝났으면 당장…안아주지 않고 뭐 하는가…이…바, 바보 같은 계약자야. 그, 그대의 세계에서도 사, 상식이거느…을….”
“….”
나는 아용이에게 그렇게 혼나고 나서야 허공에서 움찔거리던 팔을 조용히 그녀의 작은 몸 위로 겹쳐 두는 것이었다.
조금 걱정될 정도로 뜨거운 몸이었다.
“괜찮아?”
“…이, 인제 와서?”
아용이는 조금힘들어 보이는 표정으로 ‘씨익’ 웃고는 마치 햇볕에 녹아드는 고양이처럼 자신의 길쭉한 귀를 나의 가슴에 대어왔다.
“괜찮다 말고…. 지금 이 몸은 평생 이렇게 좋았던 적이 없을 만큼 아주 좋을 정도이다. 이 몸의 반쪽이여….”
“…부끄러워.”
이제는 내 얼굴이 더 뜨거울지도.
“이, 이 몸도 부끄러움을 참고하였거늘….”
뾰족한 귀를 단풍처럼 붉게 물들이고는 위아래로 쫑긋거리는 아용이를 보니 확실히 조금 미안하다 싶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조금 더 내 심장과 그녀의 심장을 가까이하고 싶어서 그녀의 몸을 위쪽으로 당겼다.
“앗…그그러며언….”
동시에 그녀의 몸속에서 빠지는 나의 남성.
“새, 새어 나오는…흐읏….”
정말 나의 것인지 그녀의 것인지 모르겠을 정도로 긴 시간 동안 그녀의 안에 숨어 있던 나의 남성이 그녀의 안에서 빠져나옴과 동시에.
몇 차례의 걸친 정사 동안 그녀의 안에 꾹꾹 담아둔 나의 씨앗도 마치 샴페인의 마개를 뽑은 듯 빠져나와 나의 허벅지를 뜨뜻미지근하게 적셨다.
“흐…흐읏….”
그러한 변화로 신음하는 아용이는 그 표정만큼은 보여줄 수 없다는 듯.
내 어깨 위에 고개를 묻고는 다시 몸을 작게 떨었다.
“흐으…겨, 겨우 한차례 갚아 줬는데…이런….”
“앞으로 계속 갚아 주면 되잖아….”
“….”
용기를 내어 한 말에 아용이는 고개를 들고 나를 보았다.
붉은 속눈썹. 붉은 머리카락. 잘 만든 서양 인형 같은 외모. 이상적인 나의 소녀.
“하하….”
그녀는 조금 허탈하게 웃으며 다시 내 어깨 위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대여…그대는 정말 이걸로 괜찮은 건가? 이 몸은…우리는 다음으로 넘긴…아직 안 끝난 이야기가 많지 않은가.”
“….”
속삭이듯. 귀가에 꽂히는 말.
말보다 확실한 피를 주며, 기억을 주며, 감정을 주며, 너에게 대답을 주었다고 생각했는데.
하여간, 이 작고 의외로 소심한 자기혐오 아가씨는 말로 하여 귀에 담아주지 않으면 안심을 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말해주지.
“나는….”
“…응?”
…그렇게 생각하며, 그녀의 귓가에 입을 열어 속삭이려던 순간이었다.
‘찌직─’ 소리를 내며 우리를 감싸고 있던 고기의 벽이 갈라지기 시작한 것은….
“앗….”
“뭐야…?”
“시, 시간이다.”
아용이의 그 말….
마치 이제 일어날 시간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알의 껍데기가 갈라지듯 깨져, 마침내 따사로운 햇볕을 허락하는 마는 고기의 천장을 보며 나는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대 설마 우는가?”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꿈틀꿈틀─움찔움찔─
마치 다음에 또 보자는 듯 움찔거리는 고기의 바닥을 느끼며 씁쓸함을 느낀 것은 사실이었다.
“괜찮다. 원래 돌아갈 곳으로 돌아올 준비를 하는 것뿐이니….”
아용이는 그리 말하며, 고개를 다시금 눕혀 나의 목에 파고들었다.
그 행동이 더 자고 싶다고 애교 부리는 고양이 같아.
나는 손가락을 넣어 그녀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려 주었다.
“…말하려던 건 집에 가서 마저 해줄게….”
“좋다. 그러기로 하지. 그때까지는…아주 조금만 더 쉬어도 괜찮겠지.”
알은 새에게 있어 하나의 세계라고 하던가….
나는 종말을 고하는 세계에서 사랑스러운 연인과 마지막을 보내는 것처럼.
말라비틀어지듯 갈라지고 무너져가는 벽과 천장을 보며, 다시 힘을 주어 아용이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눈을 감고…뜬다.
앞으로 일어날 일도 모른 채.
“….”
“….”
차라리 그것이 정말 세상의 종말이었으면 인상적인 마무리이지 않았을까?
“….”
“어머 어머….”
“하아…. 아이들을 다 보내서 다행이군. …지독해.”
평소와 다른표정으로 침묵하며 경멸하는 표정을 보이는 필라피스와 얼굴을 가리는 척하며 핥는듯 끈적한 시선을 보내오는 프레이야, 그리고 한숨을 쉰 후 진심으로 경멸하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는 이데노아.
…이 셋과 마주하느니 말이다.
“…그, 그대여 거기 들려서는 안 될 목소리가 들리고 있는 것 같다만?”
“그래. 네가 생각하는 거 맞으니까. 계속 얼굴 가리고 있…아! 뿌, 뿔 아프니까. 그렇다고 그 정도로…파고들려고 하진 말고.”
“꼬리 다 보이는데요~?”
“제, 젠장 저 망할 닭털 년이 왜 여길….”
“예? 뭐라고요? 이전에는 발정이 난 뭐에 닭장 냄새나는 뭐라고 하지 않았나? 지금 보니…어머나? 누가~아? 발정이~? 났을 까아~?”
“….”
내 품에서 부들부들 떨던 아용이는 마치 불판에 익은 것처럼 붉게 물들인 몸으로 일어나 외쳤다.
“그래! 나 떡 쳤다! 어쩔래!”
“어머? 누가 뭐래요? 왜 성질이야? 떡 친 사람이 성낸다더니 딱 그 짝이군요!”
“그딴 말이 어디 있어 이 미친년아!”
여전히 가랑이 사이로 나의 정액을 흘리는 아용이의 성난 목소리가 조용한 숲에 퍼져 나갔다.
“사내용 옷은 없다만…이거라도 두르고 있을래?”
“고, 고마워. 금방 돌려줄….”
“아니. 태우도록 해. …필요 없고 흥미도 없으니까.”
“그, 그래도….”
“자용씨! 자용씨! 그거 억지로 돌려줘도 성희롱이에요.”
“응….”
나는이데노아가 벗어준 겉옷을 치마처럼 둘렀다.
“원래 옷은요? 벗고 온 것도 아니잖아요?”
“그게…아용이가 치료하려고 바로 먹어서….”
그녀의살을 씹어 본 기억을 되살리며 말했다.
아니. 잠깐 그러면 사부가 준 팔 갑옷이랑 기타 등등도 다 날아간 건가?
“그건 비싸니까…쩝쩝. 벗겨서…꿀꺽. 아래 두었다.”
고개를 돌리자 대충 생각하는 것이 보인다는 듯 아용이가 말했다.
“…근데 그거 꼭 그렇게 뜯어 먹어야 해?”
“그렇다. 꿀꺽. 이 몸에서 자라나온 거니 평소처럼 한두 입에 꿀꺽할 수 없어서 불편하긴 하다만….”
아용이는 그리 말하며 열심히 고기를 뜯었다.
자기가 방금 한 말처럼 자기 몸에서 나온 고기.
…즉, 우리가 방금까지 들어있었던 고기의 벽을 말이다.
“정말 안 도와줘도 괜찮아? 너 지금 손도….”
“아, 괜찮다. 그리고금방 자란다니…꿀꺽…까. 이걸 다 먹으면 천천히 체력을 회복시킬 거다. 나보다 그대가 위험할 수 있으니 쉬고 있도록.”
“그래. 근데….”
꿈틀꿈틀 기어 다니며, 씩씩하게 벽과 바닥을 뜯어먹는 아용이를 두고 나는 다시금 고개를 돌려 아래쪽을 보았다.
“…근데 넌 뭐하니?”
아래쪽에서는 평소와 다른 기운을 풍기며, 침묵하는 푸르름의 용.
필라피스가 있었기 때문이다.
“….”
그렇게 침묵하는 녀석이 풍기는 분위기는…뭐라고 해야 하지?
평소에 느끼는 이미지가 시골에서 보는 사람만 보면 꼬리가 떨어져 나가라 흔드는 강아지 갔다면…지금은 그래도 모르는 사람을 보면 짖는 훈련 잘 된 진돗개 같은 이미지?
“…그냥.”
“그냥…?”
“다…나은 건가 해서….”
“아. 그렇구나….”
…하여튼 이러한 느낌으로 계속해서 아래쪽에 시선을 두는 녀석을 옆에 두자니.
관심이 없는 것은 알아도 나도 모르게 하반신을 쭈뼛쭈뼛하게 되는 느낌이었다.
“…상처 진짜 괜찮아?”
“응? 어. 멀쩡해. 봐봐. 아용이가 잘 고쳐줬잖아.”
“응….”
녀석은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올려 마치 용접한 것처럼 살이 붙어서 아문 내 상처에 만졌다.
차가운 두 손가락의 느낌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느껴졌다.
어쩐지 묘한 책임을 느끼고 있는 모양이군.
뭐 상황이 상황인지라 책임을 느끼지 말라고해도 힘들겠지만, 결과적으로 이렇게 된 걸 보면 역시 그 순간 그렇게 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위험하긴 했지만 나는 확실히 나았고 이 녀석이 괜찮았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었으니까.
“인간….”
“응?”
“미안해….”
“….”
“내가…약해서….”
“아이고….”
결국, 나와버린 말. 고여버린 눈물에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던 나는 필라피스의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녀석은 내 손이 닿자 움찔하고 머리를 살짝 떨었지만, 이내 나의 손길을 받아드리며 침묵했다.
“….”
나는 천천히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생각했다.
조금 분위기가 달라지긴 해도 필라피스는 역시 필라피스라고.
“이번에도 정말 잘 길들이셨군요.”
“…설마 이제 와 돌려달라고 말할 건 아니지? 육아 포기자 주제.”
“물론이지요.”
그리 말하며 웃는 것은 여신…아닌 악신인 프레이야였다.
그러고 보니 녀석을 만나면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았더랬다.
강제로 하늘에서 떨어트리고 동생 같던 아이를 차가운 골목에 변태가 꼬일 때까지 방치하고…그리고….
많아서…다음에 만나면 분명 울게 해줄 거라…생각을….
“어라?”
“응? 이봐. 괜찮아?”
“…인간?”
“아니. 괜찮아…. 그냥 잠깐 빈혈이….”
뭔가 이상하다. 나는 뒤를 보았다.
어느새 고기에 벽을 다 먹은 아용이는 바닥에 누워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아용…?”
나는 그녀를 향해 가기 위해 일어나다 비틀거리며 쓰러졌다.
“…인간!”
“자용씨?”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리고 모에서 점점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의식이…나는….
◆
“…이게 갑자기 어떻게 된 거지?”
쓰러진 아용과 자용을 번갈아 보던 이데노아가 말했다.
목소리는 무심하지만, 그녀 또한 내심 당황한 듯.
짙은 두 눈동자는 평소보다도 커져 있었지만, 크게 당황할 수는 없었다.
“인간? 인간! 눈떠. 인간!”
필라피스가 숨이 넘어갈 정도로 패닉에 가까운 상태였기 때문이다.
“필라피스. 진정해.”
“인간! 인가안!”
이데노아는 그녀를 다독이면서도 어쩔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자신을 대신하여 죽을 뻔했던 남자가 다 나았다고 하자마자 갑자기 기절해버리면 누가 놀라지 않겠는가.
“하지만 언니! 인간이…!”
‘물론. 그렇다 쳐도 너무 놀라는 것 같기는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며, 이데노아가 다시 필라피스의 어깨를 다독이려던 순간이었다.
그녀 또한 경악할만한 말이 그녀의 입에서 나온 것은….
“인간이…숨을!”
“뭐?”
그녀는 남자의 얼굴에 귀를 가까이했다.
“이건….”
그리고 필라피스의 말이 진실임을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