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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3화 〉[외전] 창천과 성염과 하수도의 흡혈귀에용 (123/190)



〈 123화 〉[외전] 창천과 성염과 하수도의 흡혈귀에용

“윽….”
“냄새나는 거다….”
“….”

말린 꽃으로 속을 채운 마스크를 쓰고 있음에도 썩은 폐수에서 올라오는 역한 냄새를 모두 커버해주진 못했다.

“으…. 냄새…. 좁은 곳…. 머리가….”
“괘, 괜찮아요?”
“어질어질한 거다아….”

그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상태인 것은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맨손으로 투척함 검을 막으며 든든한 활약을 보여주었던 피스였다.

“….”

중앙에 하수가 흐르는 좁은 길목. 일렬로 이동하는 일행 중에서 피스의 바로 뒤쪽이자 일행 중 가장 후위를 맡은 제인은 등 밑에 촉촉한 땀방울이 맺혀 흐를 정도로 땀을 뻘뻘 흘리며, 척 보기에도 위험하게 비틀거리는 그녀를 보며 생각했다.

‘…이거 안 되겠는데?’

이대로 끌고 가기에는 너무나도 위태로워 보였다.
시작부터 일행의, 그것도 자신의 여동생인 레이디를 구해준….
이미 충분하고도 넘치는 활약을 한 그녀.

마음 같아서는 이대로 돌아가  수 있게끔 말을 해주고 싶었지만, 이미 상당히 내부로 들어와 있는 상태였기에 제인은 쉽사리 말을 건네지 못하고 딱딱한 이만 씹어야 했다.

‘홀로 돌려보는 것도 걱정이지만, 언제 어디서 적이 나올지도 모르니….’

그렇다고 4명밖에 안 되는 일행을 반으로 쪼갤 수도없다.

이를 어쩔까….

잠시 고민하던 그때였다.

“피, 피스…씨?”
“응?”
“이걸 잡으세요.”
“이, 이건?”
“제 지팡이에요.”
“…지팡이? 밝은 거 달려 있던 거다?”
“아, 랜턴이라면 앞에 계시는 기사님이 들어주셨어요. 냄새는 어쩔 수 없지만, 좁은 곳이 힘드신 거면, 눈을 감고 제 지팡이를 따라 걸으시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해서요. 조금만 가면 더 넓은 길이 나올 거라고 했으니까 그때까지만 이렇게 걷자고요.”
“고, 고마운 거다.”
“별말씀을요. 오히려 제가 감사하죠. 아까 구해주셨잖아요.”
“으으…. 핑크 인간!”
“저기…기왕이면 레이디라 불러주시면….”
“피잉크으~! 인가아안~!”
“흑…. 그냥 그렇게 불러주세요.”
“….”

뭐야 괜한 걱정이었나?

‘그것도 레이디가….’

본래 아이라고 부를 나이는 아니긴 했지만, 막내 여동생이다 보니 언제나 아이처럼 느껴지던 녀석이 요즘 들어 부쩍 의젓하고 기특한 짓을 자주 보여주고 있었다.
마치 최근에 있었던 무슨 일에 영향이라도 받은 것처럼 말이다.

“어라? 시기가? 설마…. 그 빈대 녀석은 아니겠지?”
“응?”
“아니. 아무것도 아냐. 그보다 당신 눈을 감으니 어때?  괜찮아?”
“응! 조금은 나아진 거다!”
“그거 다행이군. 동생이 말한 것처럼 이대로 쭉 가면  넓은 길이 나오니. 조금만 참도록 해.”

아직 평소보다 낮은 톤이었지만, 그래도 활기차게 대답하는 그녀를 보니 안심이 되었다.

“응?”
“흐음….”
“응? 거긴 왜 그래 기사님? 앞에 무슨 일이 있어?”
“예. 조금….”

갑작스럽게 멈춘 선봉. 금발의 여기사는 그렇게 말을 흐리며 등 뒤의 레이디에게 다시 랜턴을 건네주며 말했다.

“레이디 양. 잠시 부탁드리겠습니다. 좁은 길이니 앞으로 나오지 마시고요.”
“네….”

여기사는 그리 말하며 어둠 속에서 허리춤에 찬 검을 뽑아 들었다.
적당히 길이의 롱소드가 랜턴에서 나온 빛으로조금이나마 푸른 빛을 띠고 있었다.

“후….”
“…응?”

레이디는 그녀의 시야가 가려지지 않을까 생각하여 랜턴을 조금 높이 들었다.

“저, 저건!”

그러자 밝게 뻗어 나온 빛이 앞에서 느린 속도로 걸어 나오는 무언가를 비추었다.

크르르─

사람의 형체를 한…사람이 아닌 무언가를.

“볼리도라님. 저에게 힘을….”

기사는 짧은 기도문을 속삭이며, 자신의 믿는 신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화륵─

그러자 칼끝에서 밝은 빛이 일렁이더니…. 순식간에…마치 기름이라도 두른 듯 검날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어, 언니? …저건?”
“보면 몰라? 신성술이잖아.”
“신성…기적이라고? 저게? 카, 칼에 불이 붙었는데?”

레이디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말했다.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상식적으로 어떤 종교를 믿던 신성술은 본질은 빛과 벼락의 힘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근데 불타는 검이라니? 저건 마치….

“마법 같아! 멋지다!”

지금도 천천히 흐느적거리며 다가오는 괴물도 잊고 레이디는 눈을 반짝이며 자리에서 방방 뛰었다.

“서, 성화교의 기적은  저런 거야? 불을 믿는 종교라서?”
“아니. 그런 건 아니고…아. 우리 기사님 혼자서 괜찮나?”
“네. 겨우 4체라…충분합니다.”
“그래. 우리 기사님이 괜찮다니까 이어 말하자면…. 저것도 아무나 하는 건 아니고 신성술…특히나 재능이 있고 신앙이 강한 몇몇이 저렇게 깨우친다고 하더라고.”
“그럼 후천적으로 배울 수 있는 거야? 아무나?”
“아무나…? 너 내 말 들었냐?”
“물론! 하지만 신앙의 깊음이란 추상적이기 때문에 구애받지 않아도 된다고 스승님도 그러셨는걸.”
“…그 아줌마는 대체 수습 수녀한테 무슨 말을 한 거야?”
“그러니까 나도 하려면 할 수 있을거라고 잘 들어? 스승님이 설명하신 신성력과 신앙의 관계란….”

레이디가 자신의 신앙심과 신성술에 대한 열변을 토하는 사이.
불타는 검을 들고 앞으로 나간 기사는 매우 쉽게 다가오는 비틀거리는 자들의 사지를 분해해가며 흐르는 물속에 가라앉혔다.

“알겠어. 알겠으니까. 너 노력은 나중에 하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고 일단 가자. 기사님도 끝났네.”
“아무것도 안 보이는 거다…아직 많이 남은 거다?”
“아…. 미, 미안해요! 진짜 조금 남았으니까요. 조금만 힘내요!”

레이디는 화들짝 놀라며 불타는 검을 들고 나간 여기사의 등을 바짝 쫓았다.

“흠….”
“저기…기사님?”
“아, 죄송. 잠시 이들을 보고 있었습니다.”

레이디의 목소리에 불타는 검을 몇 번 털어 불을 완전히 끈 후.
칼집에 넣은 기사는 그리 중얼거리며 말을 이어 나갔다.

“그냥 우연히 굴러오거나 저주받은 좀비일 가능성도 있었는데…. 시체 상태를 보니. 되다 만 자들이 맞는 것 같습니다.”
“응? 그거랑 그거랑은 뭔가 다른 거다?”
“아, 인체의 별다른 변화가 없는 좀비나 구울 과는 다르게 귀가뾰족하거든요.”

피스의 질문에 기사는 방긋 웃으며 대답해주었다.

“그…되다가 말았다는 건?”

레이디가 이어서 질문하였고 이번에는 뒤쪽에 있던 제인이 그에 대답해주었다.

“흡혈귀의 권속 말이야. 실패작들이란 얘기지.”
“아….”
“아는 무슨  공부  해?”
“그, 그건 여기서만 쓰는 말이잖아! 권속이면 권속이지 그런 말장난 책에는 안 쓰여 있다고!”
“뭐 그렇긴 하겠지.”
“우 씨! 언니 일부러 그런 거지!”

‘이래서 실전이 중요하지. 암.’

제인은 그리 생각하며 기사에게 말했다.

“그럼, 여기 있는 게 확실하군?”
“네. 정황상 그럴 것 같네요.”

기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말을 긍정해주었다.
수로의 물에 빠진 되다만 자들의 시체는 흐르는 물에 떠 빠른 속도로 사라져 갔다.



“후~. 으으…부부부.”

필라피스는 마치 물에 빠졌다 나온 큰 강아지처럼 몸을 부르르 떨며, 자신의 흐르는 땀을 날려 보내고 있었다.

“좀…괜찮으세요?”
“응! 조금  답답해진 거다! 고마운 거다! 핑크 인간!”
“벼, 별말씀을요. 근데 전 레이디인데….”

수로의 물이 모였다 빠지는 중앙 부.
조금 숨통이 트일 만큼 넓어진 공간에서 잠깐 투구를 벗은 제인은 심각한 얼굴로 주변을 훑었다.

“제인씨. 뭐 문제라도 있으신가요?”
“아니. 암만 생각해도 놈이 왜 수로를 거점으로 삼았는지 이해할  없어서.”
“도망칠 공간이 많아서 그런  아닐까요?”
“아니. 아까 도면을 자세히 봤는데. 우리가 온 입구 말고 대부분 장소는 흐르는 물이 일정 시간마다 흘러와 잠기더군. 시간에 따라 다른 건 이상적인 탈출로가 아니잖아? 그리고 이런 곳에 숨느니 차라리 빈민가 아무 건물에나 처박히는 게 찾기 어려웠을걸? 매료 같은 세뇌 기술이 없는 놈도 아니고.”
“흠….  사실 흡혈귀가 지하수로로 숨어든  자체가 이상하긴하지요. 흡혈귀는 흐르는 물에 본능적인 거부감을 가지고 있잖아요?”
“…그렇지. 그것도 굳이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종교 도시 로덴의 하수 처리장에 숨었다는 게 말이  돼. 솔직히 조금 전까지는 아예 허탕이거나, 뭔가 다른 존재를 흡혈귀로 착각하지 않았나 싶었거든.”
“준비는 열심히 하셨잖아요.”
“그야 이렇게 될 수도 있었으니까…다만 진짜 벌어지고 나니 뭔가 찜찜하군.”
“….”

여기사는 잠시 생각을 하다 입을 열었다.

“의식 때문이 아닐까요?”
“…의식? 아, 그러고 보니 그 흡혈귀가 묘한 짓을 했다고 했던가?”
“네. 저를 아사시켜 죽이려 하기도 했고. 스켈레톤이나 리치를 방치시키고는 홀연히 떠났으니까요.”
“놈이 군대를 일부 데리고 간 거 아니었어?”
“조금 더  숲에서 발견된 스켈레톤 무리는 유일 광명교 성기사들이 파견되어 전멸시켰다고 해요. 흡혈귀는 여전히 발견하지 못했고요. 그렇게 완전히 사라진  알았지요.”
“…최근까지는 말이지.”

기사는 사뭇 진지한 얼굴로 다시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기사님 생각으로는 그렇게 군대를 꼬라박고 뻘짓하고 여기에 숨어들고…이 모든 이상한 행동이 전부….”
“네. 일종의 의식에 연속이 아닌가 하는 거죠.”
“그런 의식은 들어 본 적도 없는데….”
“스켈레톤을 다루며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흡혈귀는 들어보셨고요?”
“…따끔한 지적이군.”

철컥.

제인은 다시금 투구를 착용했다.
머릿속은 아직 이해할 수 없는 일들로 복잡하지만, 굳이 신경 써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어이 거기 아가씨들!”
“응? 아 가는 거야?”
“지금 가고 있는 거다!”

고민할 필요 없이. 놈을 잡아 족치면 다 알게 될 것들이니까.






“음흠흠~흐흠!”

수로의 물이 모이는 중앙부의 위쪽.
계단을 통해 가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탁 트인 넓은 공간이라 하기는 어려웠지만, 좁은 공간을 싫어하는 필라피스는 이번에는 이점이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는 듯.
콧노래까지 불러가며 경쾌한 발걸음으로 계단을 걸어나갔다.

“저기…괜찮으세요?”
“으흐흥~흐~음?”
“아, 아니. 좁은 곳 싫다고 하셔서 걱정했거든요. 지금은  봐도 기분이 매우 좋아 보시지만….”
“아하! 지금은 괜찮은 거다!”

필라피스는 두 다리로 깡충깡충 뛰며, 계단을 두 계단씩…무려 세 번이나 성큼성큼 뛰어올라 계단 옆쪽의 공간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렇게 좀만 가면 확 트인 공간이 옆에서 보이는 거다!”
“아…. 작은 공간이라도 틈이 있으면 밖으로 이어진 틈이 있으면 되는 거였구나?”
“웅! 그리고 이 소리!”
“소리…?”
“계속 이렇게 물소리가 들리는 거다!”
“아…뭐, 그건 그야 수로…니까요?”
“물소리는 좋은 거다아….”

그렇게 좋은 걸까?
물이라고 해도 하수도의 냄새 나는 물인데….
레이디는 그렇게 말하는 대신, 기분이 좋아 보이는 필라피스를 따라 귀 옆에 손바닥을 펼쳐 보이며, 귀를 기울이기는 시늉을 했다.

쏴아아─

마치 폭포수 같은 소리.
버려지는 폐수가 흘러가는 것임은 알고. 이렇게 흉내를 내는 지금도 몸에 냄새가 배는 것 같아 찝찝하지만, 확실히…나쁘진 않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뭐 시체 냄새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

하지만 이렇게 나쁜 기분이 들지 않는 가장 큰 원인은 역시 눈앞에 있는 푸른 소녀일 것이라고 레이디는 생각했다.

“코는 아직도 아프지만, 익숙해졌고…. 이제 기분 최고인 거다!”

 팔을 동시에벌려 그렇게 말하는 필라피스를 보며, 이렇게 보기만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은 처음이라고 레이디는 생각하였다.
덕분에 자연스레 그녀와 좀 더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 마음은 간절했으나….

“저, 저기….”
“응?”
“아, 아니…그 기적이 필요하신가…해서.”
“응? 이 몸한테는 안 걸리는  아니었던 거다?”
“아하~아, 하하하…. 그, 그랬었지요~. 나도 참 깜빡….”

매일 같이 공동묘지를 다닌 탓에 스무 살이 가까워질 때까지 변변찮은 동성 친구 한  만들어 본 적 없는 그녀에게는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었다.

“…너 대체 뭐하냐?”
“으악! 언니! 가, 갑자기 다가오지 말라고! 놀랐잖아.”
“아니. 뒤에서 보고 있으려니 속이 터져서 그랬지.”
“나, 남이사!”
“대충은 알고는 있었는데…. 레이디…너 혹시 친구 없니?”
“뭐뭐뭐, 뭐라는 거야! 친구! 와, 완전 많아! 나! 그그그, 그리고 언니도 친구없으면서!”
“….”
“….”
“너….”
“언니 바보!”

괜히 빽! 성질내고는 앞서나간 필라피스와 여기사를 따라 후다닥 달려가는 레이디.

“그래. 내가 죄가 크다 커….”

그런 레이디의 등을 보며 제인은 씁쓸히 계단을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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