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32화 〉새로운 퀘스트에용 (132/190)



〈 132화 〉새로운 퀘스트에용

“싫어! 싫은 거다!”

우리가 어디로 향하는지 알게 된 필라피스는 그대로  손으로 나무를 잡고 버텼다.

“배는 싫은 거다! 차라리 헤엄쳐 가는 거다!”
“거길 어떻게 헤엄치려고! 너는 가능해도 나는 못 해!”
“그래도 싫은  싫은 거다!”
“아니. 그니까 나 혼자 갈 테니까 집 지키라고! 내 손목은 왜 잡는 거야!”

길고 유연한 푸른 꼬리는 내 손목에 감아둔 채 말이다.

“주인님이 이 몸을 두고 가는 것도 싫은 거다! 데리고 가라는 거다! 책임지라는 거다!”
“아오! 네가 안 가겠다며!”

뭐 사실 필라피스를 두고 간다는 선택지는 처음부터 생각하지 않았다.
딜탱도 다 되는 말 잘 듣는 슈퍼 어태커를 두고 갈 리가 없지 않은가.
뭐. 가끔 조금…귀찮긴 하지만, 그녀가 갖춘 능력에 비하면 전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만.

“아니. 피스야. 일단 이것 좀 놔 봐!”
“그래놓고 버리고 갈 거 다 아는 거다!”

이렇게 붙잡으며 드러눕는 경우는 또 처음이라 심하게 당혹스러웠다.
마치  잘 듣는 아이가 처음으로 백화점에 가서 물건 사달라고 떼쓰는 것을 보는 듯한 심정이 이러할까….

솔직히 뿌리치면 확 뿌리칠 수도 있을  같지만, 말랑말랑한 꼬리로 붙잡고 있어서 확 뿌리쳤다가는 말짱한 꼬리뼈 나갈까 두렵다.

“피스야…. 너 나 못 믿어?”
“주인님은  다리 부러진  몸도 그냥 버리고 갔으면서 지금 믿길 바라는  너무 양심 없는 거 아닌 거다?”
“그건…그렇긴 한가…?”

아무리 내 업보라지만, 저것만 나오면 할 말이 없네.

“저 트라키아인이 두 다리가 부러진 여자애를 버리고 갔다나 봐요.”
“와…너무 야만적이다. 무서워….”
“듣기로는 여자가 임신해서 버렸다던데?”
“아니. 뭐? 여자애를 임신시켜놓고 따라오지 못하게 두 다리를 박살 냈다고?”
“정말 무지막지한 인간이로군!”
“제가 들었는데. 여자애가 분명 주인님이라고….”
“조교한 노예가 임신했는데  다리를부러트려서 버린 걸 다시 찾아와서 쫓아내는 중이라고?”

피스가 쩌렁쩌렁하게 말한 덕에 근처에 사람들이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억울했다. 잘못은 다 악신 프레이야한테 있는데….

“이번에는 두 다리 멀쩡하니까 절대 못 버리고 가는 거다! 지금 배부르니까 주인님이 혓바닥으로 핥은 빵도 안 먹을 거다!”
“야야 누가 널 버, 버리고 간다…아니. 그건 또 갑자기 왜 나와! 이, 일단 시끄러우니까 목소리 좀 제발 낮춰!”

필라피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계속해 나무를 끌어안을 뿐이었다.
이걸 어쩐다….

“야. 피스야 우리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어. 진짜 배 좀 있으면 떠난다니까? …그래! 돈가스! 돈가스 사줄 테니까! 여, 여기 사탕도 있어!”
“도, 돈가스? 사탕? 달고…맛있는 거? 아, 아니. 그래도  되는 거다!”
“아니. 너 애초에 배를 왜 그렇게 싫어하는 건데? 뭐 타다가 폭풍우라도 만났어?”
“배, 배는 시끄럽고! 물고기도 다 도망가게 하고…. 조금만 위로 올라가면 가끔 커다란 꼬챙이도 날리기 때문에 싫은 거다! 마음 같아서는 보이는 족족 바다에서 쫓아내고 싶었던 거다!”
“….”

필라피스가 어떻게 좋아할 수 있겠냐는 식으로 답했다.

그러니까 직접 타본  아니고 용으로 살 시절 당한 게 많아 싫다는 뜻이었다.

아마 프레이야가 거두기 전 자급자족하던 시절을 말하는 거겠지?
매일 같이 바닷속을 누비며, 인간에게 들키지 않고 살려고 고생한 트라우마야 이해하는 부분이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골드 단위의 일이자 아용이의 뿔이 걸린 일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특히나 골드가 관련된 일을.

“피스야. 진짜 가야 해. 우리 이러다가 늦게 생겼어….”
“으으….”

내가 성녀님께 받은 표를 내밀며 사정사정하자 마음 약해진 녀석이 잠시 이쪽을 보며 끙끙 앓는 소리를 내었다.
저렇게 고민하는 걸 보면 뭔가 2%만 채워지면 충분히 넘어 오지 않을까…싶던 참이었다.

“으, 응?”
“응?  왜 그래. 갑자기?”
“주인님…. 그, 그  좀 잠깐 볼 수 있는 거다?”
“응? 사, 상관은 없는데. 너 그거 찢어봤자 5장 중 한 장이라  가는 거 아니다?”
“아, 알았다는 거다. 그 부분은 걱정하지 말라는 거다.”

녀석은  손목에 감긴 꼬리는 풀지 않았지만, 매달렸던 나무에서는 떨어져 두 손으로 표를 받아 내용을 읽기 시작했다.

“음….”

그냥 평범한 티켓인지 알았는데 뭐라도 쓰여 있었던 것일까?
필라피스는 잠시 팔짱을 끼며, 고민하듯 신음하더니….

“좋은…거다.”

마치 수줍게 속삭이듯, 그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좋다니?”
“여행…좋은 거다. 배…주인님이랑 같이 타겠다는 거다.”
“어…그, 그래….”

나는 얼떨결이 대답했다.
필라피스의 말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포기나 마지못해서 하는 어쩔  없음이 아닌. 좀  감정적인 무언가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응? 평소처럼 준비는 필요 없는 거다?”
“뭐…준비할 시간도 없고 필요도 없을  같긴 하네. 애초에 직행이 없어서 갈아타려고 가는 마을이니까. 필요한 것도 다 그 마을에서 사면 되지 않을까? …아마도?”

나는 모호한 태도로 말했다. 애초에 내가 배를 타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굳이 필요한  생각하자면, 본래의 세상에서 간단한 여행 준비하듯 간단하게 씻을 것과 약간의 비상식량 정도겠지만, 그런 건 언제나 준비가 돼 있는 것이었다.
굳이 걸리는 걸 뽑자면….

“인간 언니님한테 말은? 또 혼나기 싫은 거다!”
“그래. 그게 문제인데….”

그 또한 어쩔 수 없었다.
탈리아씨는 상당히 바쁘셔서 아마 오늘 내로는 뵐  없을 것 같다고 말씀을 하셨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나도 일을 하러  거라 며칠 못 뵐  있다고 미리 말씀은 드려놨으니까. 일단 다음 마을에서 도착해서 편지라도 붙이면 되겠지. 뭐.”

피스뿐만 아니고 아용이도 글을  줄 아니까. 가서 하자고 하면 그다지 어렵지는 않으리라.
언제 도착할지가 문제지….

역시 가장 좋은 방법은 교회에 가서 메시지라도 남기는 건데….

지금 항구까지 뛰어야  정도로 시간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항구에서 멀리 떨어진 교회를 찍었다 다시 가는 건 날아간다고 해도 시간이 부족할  같았다.

“좀 비싸게 붙이더라도 빨리 배송되게 해달라고 해야지 뭐….”
“으…이,  몸 때문에? 미안하게 된 거다….”

조금 전 소동을 떠올린 걸까?
필라피스는 꼬리를  내리며 정말로 미안한 듯이 말했다.

“에이. 겨우   썼다고…. 그런 거 아냐.”

진심이었다. 애초에 이건 티켓팅을 너무 하드하게 잡아둔 성녀가 문제…나아가 이 모든  계획한 프레이야와 이데노아가 문제 아닌가.

“진짜인 거다?”
“물론이지.”
“히, 흐헤헤─”

여전히 축 늘어진 필라피스를 괜찮다는 의미로 가볍게 쓰다듬자, 녀석은 오전처럼 내 손에 제 머리를 들이밀며 비벼왔다.
딱딱한 뿔 사이로  손바닥을 밀어내듯 꾹꾹 눌리는 피스의 머리와 솜처럼 푹신푹신한 하늘색 머리카락의 감촉이참 좋았다. 묘한 중독성이 느껴질 정도로.

그렇게 피스를 만지작거리며 얼마나 걸었을까.
슬슬 코끝에서 부둣가 특유의 비릿한 향이 느껴져서 고개를 돌려보니. 뱃사람들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짐을 나르거나 물고기를 받는 등의 모습들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오! 주인님! 주인님! 저거! 저거 보는 거다!”

말로는 선박을 싫어한다던 필라피스는 막상 바닷가 근처에 오자 흥을 주체할 수가 없는지 서 있는 자세로 캥거루처럼 방방 뛰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역시 어느 세상이나 소풍도 제일가기 싫다던 애가 막상 가면 제일  즐기고 노는 법이지.

“저기! 바다! 바다!”
“응. 그렇…야. 천천히 뛰어! 다칠라.”
“응! 조심하겠는 거다!”

이렇게 좋아할  알았으면 진작 데려올  그랬나.

생각해 보면 필라피스가 드넓은 창공만큼이나 물을 좋아한다는 건 진작 알고 있었는데.
한 번도 데려와 주지 않았으니…그동안 너무 무심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멀긴 하지만, 걸어서 충분히 올 수 있는 장소인데 말이다.

“주인님도 어서 오는 거다!”

이번 여행을 마치고 나면 적어 일주일에 한 번은 데리고 나와주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며, 나는 조용히 필라피스의 뒤를 따라 걸었다.

“응? 주인님 저기! 이데노아 언니인 거다! 여기 무슨 일인 거다?”

아, 그러고 보니 같이 간다고 말을 안 했나?

갑작스레 무언가를 발견한 필라피스가 깜짝 놀란 듯한 목소리로 물어서 고개를 돌려보니, 부둣가 외각의 한 작은 식당에서 간단한 간식과 차를 주문해 놓고 책을 읽고 있는 커다란 녹용이 눈에 들어왔다.

“….”

역시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볼 만큼 톡 튀는 머리와 뿔 덕분일까?
그녀 또한 인식 저하의 반지를 차고 있음에도 꽤 힐끗거리며 웅성거리는 주변인들이 보인다.

그럼 저게 다 보이는 사람들이야?

참 효과가 좋은 반지였지만, 이처럼 거의 무작위에 가깝게 뿔과 꼬리가 보이는 사람과 보이지 않는 사람을 구별할  없다는  심각한 단점이기도 했다.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지만 말이다.

“언니!”
“응?  필라피스….”

우리를 발견한 이데노아는  보기에도 딱딱한, 갈색의 양장본 형식으로 제본된 두꺼운 책을 덮고서 차를  번 홀짝이며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데노아 언니! 여기서 뭐 하는 거다? 주인님이 계속 찾고 있던 거다!”
“아,   들었니? 아까 만나서 너희를 기다리고 있던 참인데. 이번에 함께 가려고 말이야.”
“진짜?”
“응. 나도 너희가 가는 목적지에 볼일이 있거든. …아직 여유 있잖아? 괜찮으면 앉아서 이것 좀 먹어 주지 않을래? 시켜놓고보니…내가 먹기에는 너무 달아서 말이야.”

그렇게 말하며 이데노아가 권유해준 간식은 크림과 과일이 잔뜩 올라간 케이크 비슷한 음식이었는데. 말하는 것과는 다르게 단 한 입도 먹지 않았는지, 흔적 없이 말끔한 간식 옆에는 새것처럼 깨끗한 포크가 놓여 있었다.

“와!  먹겠다는 거다!”
“먹기 전에 감사 인사하고.”
“응! 감사한 거다!”
“아…그래도 그냥 먹으면 목이 마르겠네. 차도 한 잔 주문하고 오렴. 네 인간의 것도 해서.”
“응! 알겠다는 거다!”

이데노아는 자리에서 일어나는 피스를 보며 짧게 미소를 그렸다.
저런 미소도 보이는구나. …생각하게 될 만큼 인자해 보이는 미소를.

“좋은 기회니까. 말해두기로 할까.”
“응? 뭘.”
“저 아이 말이야.”

나에게 구리 동전 몇 개를 받아든 피스가 자리에서 일어나 가게 안으로 들어가는 걸 확인한 이데노아는 다시금 차를 한  마시고는 말을 이어나갔다.

“지금 저 아이는 너에게 종속이 되어있지만, 전에 말했듯이…그건 너를 살리기 위한 결정이었어.”
“그래. 그렇게 말했었지.”
“그러니까. 그녀를 대할 때는 항상 그 의미를 생각해 주길 원해.”

그것은 그녀 나름의 애절한 부탁이었고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필요가 없는 말이었으니까.

“말  해도 알고 있다는 표정이군. …그래도 해야 했어. 실제로 알고만 있는 거랑 누군가한테 듣는 거랑은 차이가 있잖니?”
“그 책에서 나온 말이야?”

나는 그녀가 조금 전까지 읽고 있던 책을 보며 말했다.
그러한 말을 하는 그녀의 손이 그 책 위로 올라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세히 보니…상당히 오래된 책이었다.

“글쎄. 어떨까….”

이데노아는  말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다만 책 위에서 손을 내리며 말을 이었을 뿐.

“예전에 너희와 같은 계약을 맺은 사람과 용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보았어. …여기까지 말하면 예상 할 수 있듯. 좋은 끝은 아니었지. 그 계약 방식 자체가 용들 사이에서 잊혀질 만큼 말이야.”

그녀는 그 기억이 씁쓸한 듯이 찻잔의 위를 훑듯 손가락을 움직였다.

“…인간. 언젠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나는 네가 상당히 마음에 들어. 너를 둘러싼 환경을 제외하고 너 개인만을 생각하면 말이야. 이렇게 인간에게 흥미를 느껴본 적이 처음일 정도로.”

그것은 꿈속에서 들었던 말의 연장이었다.
…이후에 나올 말은 상당히 달랐지만 말이다.

“…하지만 만약 네가 저 아이의 눈에서 또 눈물을 흐르게 하면, 그때는 내 모든 것을 걸고 네 목을 떨구려 노력해 보일 거야. 성공해봐야 세상이 멸망하고, 높은 확률로 내 목만 떨어지고 끝나겠지만 말이지.”

짙은 녹색의 눈동자에는 흔들림 없는 결심이 엿보였다.

“난….”

나도 뭐라도 말해줘야 할까 고민하며 입을 열려던 순간이었다.

“이, 이데노아님? 엇, 자용님도?”

우리의 뒤에서 익숙하리만치 친근한 목소리가 다가온 것은….

“기, 기사님?”
“다행입니다! 이대로 인사도 못 드리고 이 도시를 떠나나 했습니다만….”

그 익숙한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아침에 보았던 붉은 수녀복을 입은 금발의 여기사님이 그리 말씀하시며 미소를 짓고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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