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61화 〉또 다시 떠날 시간이에용 (161/190)



〈 161화 〉또 다시 떠날 시간이에용

“기사님? 이건 그런  아니고요….”
“…그러시겠지요.”
“윽….”

싸늘한 대답이 비수처럼 날아와 꽂혔다.
그 친절하던 기사님이, 처음 만나 경계하실 때처럼….
아니. 그 이상의 싸늘한 표정으로 말씀하시니 등골이 다 얼어붙을 지경이었다.

좀 억울…할 건 없지만, 사실이고….

이 세상에 일부다처제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돈이 많은 부호나 귀족들을 사이에서도 그다지 흔치 않은 일인 걸 생각하면, 기사님의 이러한 반응은 당연하다 싶었다.
보통의 경우. 그러한 쪽에 관한 가치관은 본래 세계의 그것과 다름이 없었기에….
당당히 두 여자와 함께하고 있는 나는 이 세상의 기준으로도 상당히 쓰레기인 셈이었다.

“무, 뭐…. 자, 잘은 모르겠지만 일단 상황이 그렇게 됐으니. 저 혼자 밖에 나갔다 오겠습니다. 레이디도 같이 나가기로 했는데…. 죄송합니다만 말 좀…전해주실 수 있나요?”
“자용님…당신 설마…레이디 양도?”
“아닙니다! 그건 진짜 아닙니다!”

아무래도 지금의 기사님이 그녀의 방에 접근하는 걸 허락할 것 같지 않아 조심스럽게 말씀드려드렸다니 기사님의 눈동자가 기다렸다는  가늘게 변하여, 나는 기겁에 가깝게 그녀의 생각을 부정하였다.

“그러면 방금까지는…오해의 여지 없이 제 생각이 맞다는 이야기고요?”
“그건….”
“…그건?”
“….”

할 말이 없어 침묵하고 말았다.
당연하게도 조금 꿈틀한 기사님의 눈매는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자용님. 저도 자용님이 참 매력적인 분이라 생각을 하고는 있지만, 그래도 설마 어느 한쪽을 속이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피스님을 속여서 그런 짓이나 그런 짓을 한다거나….”

마침내 입을  기사님의 목소리는 검을 차고 계셨더라면 당장에라도 뽑았을 법한 음산함 마저 감돌고 있었다.

“미, 믿어 주실지 모르겠으나, 걱정하시는 그런  절대 아닙니다.”
“…본인의 양심에 맹세하고 말입니까?”
“네. 제 심장을 걸고요.”

할 수 있는 한의 진심을 담은 즉답.
잠시 작은 침묵이 흐르고….

“하아….”

마침내 눈에 들어간 힘을 풀며 작게 한숨을  기사님은 다시금 힘없이 입을 여셨다.

“제가 여러분에 사생활에 관여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성직에 몸을 담은 자로서…아니. 여러분의 일행으로서 말씀을 안 드릴 수는 없겠네요. 로덴도 그렇지만, 렐카 또한 그렇게까지 개방적인 나라는 아니랍니다. 그러니 이런 이른 시간부터 너무 그런…아시겠지요?”
“아, 네. 물론이지요. 당연히 조심하고 말고요.”
“좋습니다. …그리고 이는 당신의 친구로서의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그러한 관계는 죄가 아니나, 그렇다고 환영받는 일도 아니니. 이후에는 조심하는 편이 좋을 겁니다.”
“네, 네…그것도 조심하겠습니다.”
“…주제넘은 말씀 죄송하군요.”
“아뇨 아닙니다.”

한마디로 자신에게 들킨 것처럼 들키지 말고 조심해달라는 이야기였다.

나와 아용이, 그리고 필라피스 모두 어디를 가나 튀는 외모였으니 그녀의 그러한 걱정도 당연하리라.

“…하아. 나의 순수한 피스님이….”
“…나의?”
“에흠. …실례. 아무것도 아닙니다.”

기사님은 어쩐지 비틀거리는 듯한 태도로 말씀을 계속 이어가셨다.

“하여튼 일행 중 성녀 전하와 관련된 분이 없음은 알고 있겠습니다. 저는 이만 방에 들어가서 쉬도록 하지요. 아, 물론. 레이디양에게 전해달라고 하던 말씀은 전해드리고요.”
“네…알겠습니다. 쉬, 쉬세요.”
“예….”

기사님은 축 늘어진 고개를 끄덕이며 뒤로 가 걷다가 다시금 뒤를 돌아 “하아….” 하고 깊게 한숨을 쉬고는 방에 들어가셨다.

 여동생처럼 귀여워해 주셨으니. 이해는 간다만….

“음….”

왠지 모르게 차오르는 살짝 죄송스러운 감정에 잠시 멈칫한 나는, 이내 주린 배를 긁적이며 다시금 주방으로 내려갔다.
우리 몫의 생선 요리는 그대로 남아있었다.



식사와 간단한 샤워를 마친 후.

“야, 야만인!”
“어?”

그대로 숙소를 나선 나는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돌렸다.

“…아, 안녕?”

건물과 건물의 사이의 작은 골목 틈.
분홍 머리의 견습 수녀, 레이디 필드가 다시금 하얀 원피스와 모자를 더한 모습으로 그곳에  있었다.

“레, 레이디? 너 거기서 뭐 해?”

으슥한 좁은 골목에서 기다리는 하얀 옷을 입은 소녀라….

여름 특유의 습함 때문일까?
상당히 묘한 열기라 생각하며, 나는 그녀의 인사에대답하였다.

“왜, 왜 그렇게 놀라는데…?”
“아니.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을  해서….”

혹시 기사님이 말씀을 전해주시지 않았던 것일까? …싶어 말을 흐리니, 레이디는 “이, 이야기는 제대로 들었어….” 하고 말을 이어 나갔다.

“그게…그 높으신 분은 나랑 별로 상관없잖아? 거기다가 애초에 나, 나는 네가 아니라 아, 아용…씨의 초대를 받은 거니까.”

레이디는 살며시 떨리는 손가락으로  가방을 가리키며 그렇게 말했다.

“명확히 표현하면 그렇긴 하지만….”
“왜, 왜? 부, 불만이라도…있어? 흑…. 서, 설마 너도 내가 싫은 거야?”
“아니. 딱히 그런 건 아닌데….”

조금 전 필라피스에게 거절당한 것이 그다지도 충격이었을까?
당장이라도 울  같은 얼굴로 그렇게 말하니, 이를 어찌하랴….

“킁. …훌쩍. 그, 그럼…같이 가자?”
“….”

레이디는 오른손으로 흐른 눈물을 닦으며 자신의 왼손을 나에게 내밀어 보였다.

“으흑…주인니임….”
“피, 피스야?”

그녀가 건네온 손을 어색하게나마 잡으려 하던 그때였다.

“으흑….”

소리가 들리는 방향인 위쪽으로 고개를 올리니, 얌전히 자기 방으로 돌아간  알았던 필라피스가 여관 창가에서 위험할 정도로 몸을 쭉 내밀며 말하고 있었다.

“흑…역시 이 몸도 같이….”
“….”

이쪽은 이쪽대로 이미 눈물을 주룩주룩 쏟아내기 시작해, 주체를 못 하는 느낌이다.
아차…. 원래부터 혼자 두면 끙끙 앓는 아이였는데….

“역시 이 몸도 지금 당장 내려갈 테니까!”
“…그러면 여기서 기다릴까?”
“응! 주인님 너무 좋은 거다!”
“응…은 무슨 응이니….”

그 순간 몸을  필라피스의 뒤쪽에서 또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딘지 나른하면서도 평소와 다르게 힘을 쥐어짜 내는 듯한 목소리….

“이데노아?”
“후우…. 그, 그래.”
“좀 힘들어 보인다?”
“지금 이 아이를 막고 있는 게 누구라고 생각해?”

계속해서 몸을 ‘끄응!’ 내밀던 필라피스는 뒤에 있는…아마도 사슴뿔을 가졌을 초록의 용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이데노아 언니!  몸이 잘  생각했던 거다! 괜찮으니까. 놔주시는 거다!”
“아, 안 돼….  그렇게 약해질까  나보고 잡아달라고 한 거잖, 읏…니….”
“그, 그건 잠시 잘못 생각한 거다! 역시  몸은 괜찮으니까! 이 몸이 주인님을 지키고 말 테니까!”
“기억 못 하나 본데…. 네가 직접 그런  해도  가게 막아달라고 부탁해왔단다.”
“으으…. 싫어! 싫은 거다!”
“그…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윽…. 허, 헛…소리할 생각하지 말고 넌 어서 가기나, 해!”
“….”

평소와 다르게 상당히 다급해 보이는 이데노아의 목소리.

“…어?”
“쉿…조, 조용히 해….”

…이에 결심한 듯.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아직도 눈물을 글썽이며 애매하게 뻗었던 나의 손을  잡아챈 소녀, 레이디 필드였다.

“피, 피스씨한테 나랑 있는 모습 들키고 싶지 않잖아?”
“…뭐?”
“피, 피스씨가 내려오면…나, 나는 이대로 확 오, 옷을 벗어 버릴 거니까.”
“아, 아니.  그게 무슨….”

작게나마 속삭이는 소리로 농담이 아니라는 듯.
레이드는 내 손을 쥔 손과 반대쪽 손을 자신의 어깨끈에 올려 슬쩍 내려 보였다.

“….”

두근두근─

문득 크게 두근거리는 두 개의 심장 소리가 이 작은 비밀을 숨긴 골목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다.

“….”

레이디의 홍조가 점점 아래까지 퍼져나가  손에 의해 그대로 드러난 자신의 어깨까지 붉게 물들였지만, 그녀는 이에 멈추지 않고 다시금 결심한 듯.
마른 침을 삼키며 반대쪽 어깨끈에도 자신의 손가락을 걸어 보였다.

“드, 들키고 싶지 않으면 이대로 조용히 따라와. 다, 다 벗어 버리기 전에…흐읏….”
“거 힘들면….”
“아무 말도 하지 마….”

본인이 말하고도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히며 귀엽게 협박하는 레이디는 이내 조용히  손을 끌어 나를 작은 골목 안으로 이끄는 것이었다.






정신을 차리니 어느새 작은 골목을 지나, 건물의 뒤편의 큰길로 나와 있었다.

“으….”

레이디는 방금의 행동이 상당히 부끄러웠던 것인지 자신이 내렸던 어깨끈을 올리고는 그대로 주저앉아 “끄으….” 하고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
“…흑. 그렇게 보지 말고 자, 잠깐만 기다려.”

고개를 들고 그리 말하는 레이디의 의견에 따라 잠시 그녀의 손을 잡은  거리를 둘러보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나는 다시금 자신의 무릎에 얼굴을 파묻은 레이디를 보았다.

“….”

태양 때문일까?
윈피스 밖으로 드러난 그녀의 등이 아용이의 머리카락만큼이나 붉었기에 나는 조금 자리를 움직여 태양을 등지고 섰다.

“….”

시선이 느껴져 아래쪽을 보았더니, 작은 그늘 속에서 고개를 올린 레이디가 고개를 들어내 얼굴을 보고 있었다.

“…바보.”
“내가 뭐 했다고?”
“어휴…. 그걸 모르니까 바보인 거야.”

레이디는 “후….” 하고 작게 한숨을 쉬더니 이내 남은 한 손으로 자신의 뺨을 약하게 툭툭 때리고는 여전히 쥐고 있는 내 손을 끌어당기듯 힘을 줘, 자신의 작은 몸을 일으켜 세웠다.

툭툭─

주름진 자신의 옷을 손으로 털어 쓸어내린 레이디는 이어 슥─ 하고 옷가지를 둘러보더니 “…괜찮지?” 하고 의견을 구해왔다.

“….”

이에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여 보인다.
솔직히 뭐가 괜찮은 건지는 모르겠다만…. 일단 그녀가 웃어주니 그걸로 됐다 싶었다.

“그럼…어디 갈 거야?”
“…넌 어디 가고 싶은데?”

꼭 들려야 할 곳은 마도구 상점과 대장간이지만, 배 시간도 남았고 아직 섬에 내려오지도 않은 성녀가 돌아갈 때까지 홀로 돌아다니다 오겠다는 이야기였으니 시간은 넉넉할 것 같았다.

“세, 세련된 곳?”
“….”
“여, 역시 야만인이 그, 그런 곳을 알 리가 없겠지?”
“…너도 그런데 가본 적 없어서 그러는 거잖아.”
“윽….”

역시 자신도 이건 아니다 생각했는지 움찔 몸을 튕기는 레이디를 보며 나는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일단 대장간에 맡겨놔야 하는 물건이 있으니까. 혹시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천천히 고민해 봐. 이야기는 걸으면서 하면 되고 물어보고 싶은 것도 많은 거 아냐.”
“으, 응….”

그렇게 고개를 끄덕이는 레이디는 결국 한참이나 침묵한 채, 말을 걸어오지 않았다.

“그, 그래서…작, 아용…씨는 진짜야?”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마침내 저 멀리서 철을 때리는 망치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자 그녀는 조용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응.”

틀림없이 물어보리라 생각했기에 그다지 어렵지 않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다음 질문.

“그, 그럼 네 심장은…?”
“반반.”

정확히 어디까지 얘기했는지 모르겠으나, 심장과 관련된 부분은 이야기했다 했으니.
알고 있는 것을 확답받기 위해 질문하는 것이라 생각하며, 정답을 표시해주는 기분으로 대답을 이어 나간다.

“그, 그렇구나….”
“좀 그렇지 않아?”
“뭐, 뭐가?”
“아니. 평범한 인간이 아니니까. 수녀님 측면에서 보면 좀 그렇지 않을까? …해서.”

레이디는 그 말에 조금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올려보더니 이내 세차게 고개를 흔들고는 나의 등짝을 ‘짝!’ 소리가 나도록 때리며 말을 이었다.

“배에서 네가 과거를 말했을 때도 말한 거지만, 그렇다고 갑자기 네가 나쁜 사람으로 보이진 않아. 그냥 아직도 비밀을 숨기고 있다는 게 조금 서운했던 거뿐이지.”
“그건….”
“물론. 이해는 해. 쉽게 이야기할 만한 일은 아니니까.”
“….”

태연하게 이해해주는 레이디는 이따금 나보다도 훨씬 어른스럽게 느껴지고는 한다.

“그래서 아용…씨랑은 어떤 관계야?”
“영혼의 계약자.”
“….”
“왜?”
“그냥 징그러운 소리를 잘도 하는구나 싶어서…그것도 둘이 똑같이.”
“….”

내 반응에 레이디는 ‘키득키득’ 웃으며 말을 이어 나갔다.

“기적으로 도와주지 못하는  그 부작용? 그러면 피스씨도 아용씨랑 같은 거야?”
“부작용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손등을 보았다.필라피스와 계약하여 새겨진 붉은 문장을.

“…대충은 맞아.”
“여, 역시 그래서 둘이 붙어 있던 거구나…어, 어쩔 수 없이….”

응? 그건 딱히 아닌데?
뭔가 다른 오해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여 어떻게 말할지 고민하던 차였다.

“…음? 자용?”
“응? 당신은….”
“또 만났네?”

대장간 앞에 서 있던 뾰족한 귀를 가진 흑발 적안의 여성.
여명검, 알데나와 마주하게 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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