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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2화 〉또 다시 떠날 시간이에용 (162/190)



〈 162화 〉또 다시 떠날 시간이에용

“또 만났네? 금방 만날 거라 생각은 했지만…마을에 모험가는 둘인데 대장간은 하나니, 예상보다도 빨리 만나게 되는군.”

흑발의 붉은 눈. 뾰족한 귀를 가진 늘씬하고 날카로운 이미지의 여성.
모험가, 알데나는 그리 말하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누, 누구?”
“어머? 자세히 보니 그때  여자아이잖아? 다친 데는 없고?”
“네? …저, 정말 누구세요?”

등 뒤에서 살며시 묻던 레이디는 자신에게 살갑게 대하는 알데나를 보며 나의 옷깃을 쥐어 잡으며 등 뒤로 숨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비록 그녀가 퀘스트에서  도움을 주기는 했으나, 그녀가 도움을 주는 내내 레이디 필드는 기적을 너무 사용한 대가로 기절해 잠을 자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왜 우리 도와주고 검을 주고 갔다던….”
“아….”

슬슬 기겁하기 시작하는 레이디에게 작게 속삭여 말해주자, 레이디는 그제야 표정을 조금 풀고는 나의 옆구리 사이로 슬쩍 고개를 내밀었으나….

“왁!”
“꺄, 꺄악! 어…어, 엇!”

소리 없이 다가와 얼굴을 마주하고 인사한 알데나를 보고 놀라 뒷걸음질 치다 그대로 넘어 질뻔하였다.

“…너무 놀란다.”
“으…. 하지만….”
“이렇게 놀랐는데. 당신도 장난 그만 치시고요.”
“하하하. 미안. 왠지 놀리고 싶어져서.”
“으으….”

넘어지기 전에 손을 잡아끌자, 다시금 내 허리에 붙어 말하는 레이디를 대신하여 여전히 장난기 가득한 얼굴을 하는 알데나에게 말했더니.
그녀는 자신의 길고 윤기 넘치는 뒷머리를 쓸어내리고는  발자국 떨어져 웃어 보였다.

“시, 실례했습니다. 이야기는 들었어요. 가, 감사합니다. 이전은….”
“하하, 별말씀을…. 마무리는 다 그가 한걸. 나는 조금 시간을 단축해줬을 뿐이고….”
“아뇨. 체력이 한계였으니까. 알데나씨가  도와주셨다면 모르는 거였죠.”
“핫…!”
“…응?”

그렇게 가벼운 인사를 주고받고 있을 때였다.

“아, 알데나라고…? 알데나? 그, 유명한 여명검?”

등 뒤에서 얌전히 이야기를 듣던 레이디가 그녀의 이름에 반응하여 거의 비명을 지르듯 고개를 올린 것이었다.

“오…그쪽 아가씨는 날 알고 있나?”
“모, 모르는 게 바보죠!”
“…그렇다는데?”
“….”

알데나가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만, 나는 여전히전혀 짐작 가는 것이 없었다.
죽어 딱딱해지기 시작한 트롤의 목을 보이지 않는 속도로 베어 떨어트린 실력….
분명 엄청난 사람이라고는 생각했으나, 레이디가 알고 있을 정도라니….

‘내 이름을 듣고도 놀라지 않는 모험가는 오래간만이어서.’

이전 그녀가그렇게 말했을 때는 그냥 농담인가 싶었는데, 아무래도 정말 대단한 사람인 모양이다.

“…잘 아는 사람이야?”
“뭐? 오히려 나, 나는 몰라도 넌 알아야 하는 거 아냐?”

그래도 뭔가 저 싱긋거리는 표정을 보고 있자니.
본인한테 묻기는 싫어서 고개를 돌려 속삭이듯 레이디에게 묻자, 그녀는 정말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세계에 7명밖에 없는 S등급 모험가 아냐! 관련 책이나 동화도 여러 권 나오고 그녀를 소재로노래하지 않아본 음유시인이 없을 정도로 유우~명한! 모험가라고!”
“…에, 에스 클래스?”
“에흠! …이것  부끄럽군. 별것도 아닌데 말이야.”
“….”

언제 알아주나 기다렸다는 듯 기침을 해 보이는 알데나.
내가 이리 속물적인 사람이었나 싶지만, 확실한 수치로 말해지니 좀 다르게 보이긴 했다.

“아 펜이랑 잉크 있으면 사인을 해주지.”
“…필요 없어요.”

그래 봐야 사람이 달라진  아니라 시큰둥하게 말했는데.
 뒤에서 다시금 내 옷깃을 당기는 손이 느껴져 돌아보니 눈을 반짝반짝하게 빛낸 레이디가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나, 난 필요한데…싸인….”
“……대장간에 들어가서 펜  빌려 볼까 하는데, 시간 괜찮으신가요?”
“그럼 그럼 볼 일도 있고…마침 내년에출간한다던 이 몸의 책을 받고 오는 길이니. 아가씨만 좋다면 이곳에 사인해서 선물하지.”
“정말요! 꺅!”
“….”

두 다리를 폴짝폴짝 뛰는 레이디.
순간 ‘아니. 얘가 왜 이렇게 좋아해?’ …생각했지만 별다른 큰 오락거리도 없는 곳에 책으로 몇 권이나 만들어진 영웅이라고 하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어서 오십시오!”
“…어서 오시게.”

그대로 바로 대장간에 들어가자 작은 건물치고는 장인 냄새가 풀풀 넘치는 할아버지와 그 제자 둘이 상반된 분위기로 우리를 맞아 주었다.
나는 일단 조심스럽게 펜과 잉크를 빌려, 레이디에게 전해주고는 신나서 사인을 주고받는 둘을 놔두고 가져온 단검과 한 손 검을 꺼내어 내밀어 보였다.

“피가 묻고 비를 잔뜩 맞았는데, 관리를 못 해서요. 기왕 이니 전체적으로 정비도 좀 받을까 해서 왔습니다. 부서진 장비를 대신해서 장비도 보고요.”
“음…. 꽤 좋은…장비군. 판매하는 장비는 저기 오른쪽에 있으니  번 둘러보게나. 음? …이 건?”

단검에 이어 한 손 검을 만지던 대장장이가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마침 신경 쓰이던 것인데. 본인이 있는 앞에서 묻기는 좀 그래서 싶어서 참았지만, 지금 슬며시 물어보면….

“설마, 선물의 가치를 물어보는 맛 없는 짓을 하진 않겠지?”
“….”

라고 생각한 것도 잠시. 어느새 사인을 끝내고 다가온 알데나가 그렇게 물었기에 나는 얌전히 장인이 소개해준 진열대로 돌아가 장비들을 둘러 보았다.

“…그대는?”
“아, 저는 손질은 스스로 하는 편이라…숫돌이랑 기름을 보여주시지요. 여기서 가장 비싼 녀석으로.”
“…괜찮은 물건으로 꺼내오리다.”

작은 의자에 앉아 선물 받은 책을 읽기 시작한 레이디를 슬쩍 보며, 이번에 파손된 창을 대신할 무기를 찾는데….
대장장이를 기다리던 알데나가 조심스레  옆으로 다가와 말을 걸었다.

“그래. 창을 보고 있군?”
“원래 창을 쓰니까요.”
“기껏 좋은 검을 줬는데 검술을 배워 보는 게 좋지 않아?”
“…검을 들면  죽기 좋다는 말을 들어서요.”

유르겐 사부에게 정식으로 제자로 들어가던 날.
시험삼아 여러 가지 무기를 쥐어보게 하셨는데. 그중에서 검이 제일 형편없다더라, 말씀하셨던 것이었다.

“확실히 검을 쓰는 게  어설프긴 했지. 버릇도 잘못 들어있고…고치기 힘들긴 하겠다.”
“….”

…근데 왜 검을 보라고 한 거야?
나는 그녀보단 보고 있는 무기들에 집중하여 대충 대답하였다.

“그래서  써야 하는 상황에는 쓰겠지만, 기본적인 상황에서는 사부님 따라 창이 좋을  같아서요.”
“사부? 창을 쓰는?”
“…유르겐 오거히트님 밑에서 창을 배우고 있거든요.”
“유르겐? 그 아이언 베어? 너 그 여자의 제자였어?”
“알고 계세요?”
“알다마다, 실력이나 경력 모두 진작 A급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수준인데. 여러 이유로 계속 B급인 괴짜니까. 특이한 점도 한둘이 아니고…어중간한 A급보다는 유명할걸?”
“….”

사부…. 사부보고 괴짜라 하는데, 차마 반박할  없는 못난 제자를 용서하세요.

“아~. 그렇구나. 그 여자의…응? 잠깐…. 그러면 너 지금 로덴에 사는 거 아냐? 성도에 사는데 진짜 날 몰랐다고? 그게 말이 돼?”
“뭐 제가 로덴까지 올라온 건 비교적 최근이라….”
“그, 그렇단 말이지…. 흠….”

상당히 자존심 상한 듯한 표정을 짓던 알데나가 잠시 멈칫하더니, 웃음기를 지으며 다시금 입을 열었다.

“로덴에서 필라피스 섬으로  모험가라 그렇다면 너도 혹시 렐카로?”
“네? 알데나 씨도요?”
“뭐 이 시기에 굳이 여기까지 찾아온 로덴 출신이라면 뻔하지. 그렇군. 너도…말이지.”
“엣….”

알데나는 잠시 손을 올려 나의 턱을 잡았다.

“눈…피하지 마.”

순간 키스를 하려는 것인가? 생각할 정도로 가까이 얼굴을 들이미는 알데나.
붉은 눈동자와 마주한 나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쥐어 잡듯 숨을 멈추었다.

“흠….”

살며시 느껴지는 숨결.
가까이서  알데나는 정말 예리하게 벼루어진 칼날처럼 날카로운 인상을  미인이었다.
치켜 올라간 눈매, 피를 한 방울 떨어트린 것처럼 붉게 물들어진 눈동자.
귀가 뾰족하게 올라간 요정 특유의 티끌 하나 보이지 않는 하얀 피부까지….

“저, 저기요?”
“음…역시 닮았단 말이지.”

당황스러움에 속삭이자, 알데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긴장에 달싹 떨리기 시작하는 나의 턱을 놓고 말했다.

“닮다…?”
“너랑 나 말이야.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이 세상  누구도 나와 비슷한 존재는 없을 텐데…. 그것도 남자라….”
“….”

묘한 말투였다.

“…재미있어.”
“앗…!”

알데나가 자신의 그 눈동자와도 같은 혀를 날름거리던 순간이었다.
등 뒤에서 조용히 책을 읽고 있던 레이디의 목소리가 장인들이 쇠를 때리는 소리보다도 날카롭게울려 퍼진 것은….

“두, 둘이 대체….”
“어머?”
“으, 으읏….”

눈을 질끔 감고 결심한  고개를 끄덕인 레이디는 성큼성큼 우리 쪽으로 걸어와, 나와 알데나 사이에 서더니.
이내 자신이 받은 그녀의 책을  손으로 올리며 입을 열었다.

“사인까지 받아놓고 이, 이런 말씀 드리기 죄송하지만…이건 돌려드리는 게 맞을 것 같아요.”
“….”

알데나는 레이디가 자신의 앞에 내민 책을 보고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가볍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렇군. 팬이 하나 줄어들다니 아쉽게 됐어….”

말을 끝내고 책을 받아든 알데나는 허리를 약간 숙여 자신의 키보다 낮은 레이디와 눈을 맞춰 준 후, 본인이 건네주었던 책을 받아들여  가방에 도로 넣었다.

“여기 가지고 왔소이다. 다른 도시에서 가져온 고급품이니 까다로운 여행객님 눈에도 맞을 것이오.”
“음, 생각보다도 훌륭하군요. 이걸로 다섯 개.”
“다섯 개나?”
“춤을 좀 거칠게 추는 편이라…혹시 없나요?”
“아니. …더 꺼내오리다.”
“아, 자용?”
“응?”

번쩍이는 금화를 내려놓으며 대장장이가 다시금 창고로 간 것을 확인한 알데나는 다시금 우리를 보더니 슬며시 웃으며 내 이름을 불렀다.

“지금 어디 묵고 있어?”
“우리? 지금 ‘술 취한 인어’라는 여관에서…흡!”

갑자기 올라온 작은 손이 내 입을 막았다.

“아, 거기? 옛날에 왔을 때 묵었던 기억이 있군. …나름 좋은 곳이지. 그래…알겠어. 아, 잔돈은 필요 없어요.”

대장장이가 가져온 손질 도구 세트를 받아든 알데나는 가게의 출구로 걸음을 옮기며 말을 이어 나갔다.

“초대할 테니…또 보자고.”
“…초대라고요?”

평소와는 조금 다른 인사.
이에 그저 싱긋 웃으며 반응한 알데나는 대답하지 않고 바람처럼 사라졌다.

“…대체 뭐지?”
“으….”
“레이디?”
“사, 사인 아까워….”
“…”

뒤이어 들려오는 작은 신음에 고개를 내려보니, 레이디가 어깨를 부르르 떨며 자신의 치기를 후회하고 있었다.

“…너, 너 확실히 말해. 제인 언니랑은 끝난 거야?”
“아니. 전에 말했듯이 우린 딱히 뭘 시작도 한 적 이 없….”
“…그래.”

대답을 들은 레이디는 짧게 대답하고는 무언가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고개를 내렸다.

“아, 금방 떠나야한다고…? 진작 말하지. 내 바로 해드리리다.”

이 가게는 검을 주로 하는 가게라 딱히  눈에 들만 한 무기는 없었기에 나는 추가금을 내어 바로 정비해준 무기를 받아 들고 여전히 아무 말 없이 내 옷자락만 잡고 선 레이디와 함께 가게를 나왔다.

“다시 여관으로 돌아갈까?”

무기를 받고 오늘 새로운 상품이 들어온다던 마도구점에 들렸으나, 모종의 이유로 배달이 늦어져 기존과 같은 상품만 있는 마도구점에서 나오니 정오가 딱 지나가는 듯 햇볕이 쨍쨍해져 있었다.
그 성녀 전하가 볼 일을 마친지는 모르겠으나, 이제 곧 배가 항구에 들어올지도 모른다 생각하여 레이디에게 말하자, 종일 돌아다니며 햇볕을  레이디가 어질어질한 표정으로 “…응.”하고 짧게 대답했다.

“더우면 말을 하지….”
“그, 그치만….”

자세히 보니 땀이 상당했다.
말을  해서 그렇지 대장간의 열기로도 상당히 땀을 흘렸을 것이다.
나는 첫날에 필라피스에게 그러했듯.
수분 보충과 손부채질을 해주며, 비틀거리기 시작한 레이디를 데리고 여관으로 돌아왔다.

“…응? 저…이, 이건?”
“아…. 마, 마침 돌아오셨군요. 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자용님…. 레이디양….”

여관으로 도착하자 맞아 준 건 짐을 챙겨 들고 밖으로 나와 있는 기사님이었다.
어딘지 상당히 지쳐 보이는 표정이다. 그새 항구에 다시 다녀오신 걸까?

“무슨 일이에요? 벌써 짐을  빼시고? 배가 일찍 도착했나요?”

필라피스와 이데노아에게 적당히 아슬아슬하게 돌다 오란 말을 들었지만, 그래도 이동 시간은 생각하며 걸었을 터였다.
예정보다 빠르게 짐이 밖으로 나와 있는 상태에 혼란스러워 질문하자, 기사님은 상당히 피곤해 보이는 표정으로 입을 여셨다.

“…렐카로 가는 티켓은 취소하고 오는 길입니다.”
“그게 무슨….”
“서, 성녀 전하 명이십니다.”
“서, 성녀님요? 렐카의?”

그렇게 피하라던 렐카의 성녀를 말하는 것인가? …싶어 되묻자, 기사님은 자신도 이 상황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으로 입을 여셨다.

“렐카에 들어오고 싶으면 저희 모두 성녀 전하의 배로 오르라는 명이 떨어졌습니다. 아니면 모두 입국 거절해버리겠다고….”
“…네?”
“저도 무슨 영문인지 몰라 명을 전하러 온 자에게 물었더니, 배에 오르신 성녀님의 친구분이 ‘태워달라’ …부탁하셨다더군요.”
“….”
“응? 그 표정은 두 분 혹시 집히시는  있으십니까?”
“그게….”

있었다.

‘초대할 테니…또 보자고.’

우연인지는 몰라도, 마침 누군가의 초대를 받고 오는 길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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