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75화 〉성화국이에용 (175/190)



〈 175화 〉성화국이에용

“넌….”
“….”

추위에 쓰러진 내 눈앞에 나타난 것은 마치 얼음을 조각해 만든 듯한 소녀였다.

투명한순백의 머리카락은 밤하늘에 별빛이 스며들 때마다 연한 쪽빛을 슬쩍 비추었으며, 창백하다 못해 투명한 피부는 시퍼런 핏줄이 그대로 드러나 보는 내가 다 시릴 정도였고.

차가운 무표정과 일말의 감정조차 느껴지지 않는 하늘색 눈동자는 그저 마주 보기만 해도 심장이 얼어붙을 것 같아, 무심코 눈을 돌려서 피하고 싶었을 정도였지만….

“….”

그 작고 여려 보이는 몸은 눈을 돌린 사이에 산산이 부서져 그대로 영영 사라질 것만 같은 위태롭고 애틋한 느낌이 들어서….

나는 도저히 눈을 떼려야 뗄  없는 심정으로 그녀를 계속해 바라보게 되는 것이었다.

“….”

그런 내 생각을 아는 것인지 모르는 것인지.
눈앞의 소녀는 그 특유의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무표정으로 잠시 날 내려다보더니.

“….”

이내 말없이 무릎을 구부리고 쭈그려 앉아 조금  가까이에서 나의 눈을 마주해 오기 시작했다.

“….”

호흡과 시간마저 얼어붙은  같은 찰나의 정적.

“너, 너는….”
“….”

더 힘들어지기 전에 어떠한 말이라도 해야겠다는 심정이 된 나는 갈라져 흐른 혈액이 딱지처럼 얼어붙은 입술을 억지로 움직이며 목소리를 내었다.

“요, 용?”

이곳은 용의 어머니가 보여주는 꿈속.
용이거나 용과 깊게 관련이 있는 자만이 올 수 있는 곳인 만큼.
뻔하디뻔한 질문이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리 물을 수밖에 없었다.

“….”

왜냐하면,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이 투명한 존재는 용이라기에는 그 투명함처럼 너무나도 흐릿한 존재감을 보이었기 때문이었다.

눈에는 보이는지만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 허상 같다고 해야 할까?

꿈속인 점을 고려해도 지금까지 꿈속에서 만났던 용들과는 너무나도 다른 느낌의 존재처럼 느껴진다.

그것도 자신의 의도적으로 숨겨 감추고 있는 느낌이 아닌, 꺼지기 직전의 촛불처럼 바람 불면 사라질 듯한 정말 위태로운 느낌처럼.
마치 죽은 자를 앞에 두고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 정도로 말이다.

“사, 살아…있는 용, 맞지?”
“….”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어이없는 질문이었으나 눈앞의 소녀는 조용히 고개를 저어, 나의 그러한 느낌이 단순한 착각이 아님을 알려주었다.

“그, 그럼…유, 령…이라도 된, 다는…뜻?”

순간 혹시 정말 내가 추위로 죽어가는 중이라 그녀를 만난 것일까 싶어 심장이 덜컥거렸으나….

“….”

그녀는 이 또한 마찬가지로 고개를 저어 부정하며, 나에게 안심 아닌 안심을 시켜주었다.

“그럼….”

살아있는 것도 죽은 것도 아니라고?

“…이긴, 한…거지?”

혀가 얼어 ‘용’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으나, 여태까지의 질문으로 내가 하려는 말을 잘 파악해 낸 것인지.
차가운 얼음으로 만들어진 듯한 소녀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대로 머리를 살짝 숙여, 자신의 머리 위를 보여왔다.

“….”

확실히 그녀의 쪽빛이 감도는 하얀 머리 위에는 새싹처럼 작게 솟아나 안쪽으로 조금 말리기 시작한, 손 한 뺨 정도 될법한 작은 뿔이 보였다.

하지만  뿔은 이렇게 올려다보면 어두운 밤하늘에 박힌 별빛이 고스란히 비추어 보일 정도로 투명하게 푸른색이어서, 얼핏 보기에는 두피를 뚫고 자라난 뿔인지 아니면 정말 얼음이 붙은 것인지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뿔?”
“….”

나도 모르게 내뱉은 말이었다만, 자신의 뿔에 큰 자부심이라도 있는 것인지.
그녀는 여전히 일말의 감정조차 느껴지지 않는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의 뿔을 들이밀어 왔다.

“….”
“아, 아니. 알, 알겠….”

미안해. 알겠으니까. 훌륭한 뿔 맞으니까.
그만 좀 가까이해라. 그러다가 눈 찔리겠네.

“….”

이번에도 어째 의미가 전해졌는지.
다시금 고개를 들어 보이며 자신의 뿔을 쓰다듬는 소녀.

“….”

의외로 얼굴에 감정이 드러나지않는 만큼 행동으로 보여주는 타입인가?

“읏….”

나는 계속해 어쩐지 신비한 느낌이 드는 그녀를 바라보다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올라온 한기에 다시금 벌벌 떨며 몸을 웅크렸다.

쏴아─

착각일까? 귓가에 울리는 차디찬 파도 소리와 함께 몸 어딘가에서 얼어붙은 살이 ‘쩌억─’ 하고 갈라지며 깨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는  같았다.

“추, 워….”

진짜 이대로 얼어 죽는 건가?
더는 고통조차 느껴지지 않는 감각 속에서 억눌러 놨던 두려움이 다시금 고개를 들어 올리려 하고 있을 때였다.

“….”

눈앞의 소녀가 자신의 오른손을 허공에 ‘움찔’하고 떨고는 자신의 왼손을 들어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툭툭─

오른손가락의 검지를 들어 자신의 펼친 왼손바닥에 위에 툭툭 건드려보는 소녀.

“….”

나의 시선이 자연스레 그 손바닥 위로 이동하자, 그녀는 여전히 무표정한 시선을 나에게로 고정하며 자신의 검지를 손바닥 위에서 빙글빙글 돌려 보인다.
마치 무언가 전하고 싶은 것이 있는 것처럼.

“….”

아, 혹시 그런 뜻인가?

마침내 그녀가 하고자 하는 말을 이해한 나는 움직일 때마다 묘한 소리를 나기 시작한 손을 억지로 움직여, 그녀의 앞에 펼쳐 보였다.

“….”

마침내 다시금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
여전히 말도 없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무표정이었지만, 그 모습은 어쩐지 모르게 웃는 것처럼도 느껴졌다.

“….”

이제 뭘 하나 했더니.
그녀는 잠시 일어나 주변을 살피고는 어디론가 뛰어가기 시작했다.

“….”

설마 이대로 버려진  아니겠지?

아주 잠깐이지만, 그런 생각이 스칠 정도로의 시간은 지나고.
마침내 다시 모습을 드러낸 그녀는 아까처럼 똑같이 내 앞에 무릎을 굽히고 앉아서는 내 눈에 자신이 가져온 물건을 자랑스럽게 보였다.

“…가지?”
“….”

다시 한번 큰 끄덕거림.

이제까지 중에 제일 큰 끄덕임이었다.

“하, 지만….”

정말 어디에나 있을 법해 보이는 초라해 보이는 나뭇가지로밖에 보이지 않는데?
모래와 바다, 그리고 약간의 커다란 자줏빛 수정밖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저런  찾아온 것이 대단하긴 한데…대체 저걸로 뭘 어쩌려는 것일까?

“….”

가득한 걱정과 약간의 기대로 그녀의 다음 행동을 주의 깊게 바라보니, 그녀는 놀랍게도 그 막대기를 높이 들어 나의 손바닥에 내리고는 무언가를 적어주기 시작한 것이었다.

혹시  공간을 탈출할 방법, 아니 적어도 추위를 해결할 방법을 알려주려는것일까?

“미, 안한…데. 나, 글, 자…몰라.”
“….”

 말에 그전까지 열심히도 손바닥을 긁던 나뭇가지를 멈춘 그녀는 다시금 조심스레 나에게 시선을 맞추어 왔다.

“….”
“…미안.”

여전히 보이지 않는 표정이지만 어쩐지 뭐라 하는지는 알 것 같아 일단 사과했다.

어쩌겠는가? 마을에 있을 때도 계속해 사부 밑에서 배우느냐 바빴던 것을….

돈을 아끼기 위해서라면 머리를 써야 한다는 생각은 계속해 가지고 있었지만, 목숨을 아끼기 위해서는 몸 단련부터 신경 쓰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는데.
이번 기회로 글을 빠르게 습득할 필요성을 조금 더 느끼기는 했다.

“….”

답답해진 상황에 나뭇가지 끝을 살짝 물고 고민하던 그녀는 잠시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마침내 무엇인가를 발견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이내 입에 문 나뭇가지를 떼어 작게 입을 벌렸다.

“…?”

놀란 건가?
여전히 표정은 얼어붙은 듯 그대로였지만, 행동으로 흔들리는 감정을 드러낸 그녀는 조심스럽게 떨리는 나뭇가지를 나의 목 아래로 찔러 넣어, 그 속에 있던 무언가를 끄집어내었다.

“그, 건….”

체인으로 만든 목걸이.
그 안에 걸린 것은 여행에 출발하기 전부터 품에 지니고 있던 아용이의 뿔 조각이었다.

“아….”
“….”

어이없을 정도로 간단하고도 빠르게 목걸이를 끊어  조각을 허공에 들어 보이는 그녀.

“…서, 설마?”

처음부터 이걸 노린 것일까?

이전부터 아용이의  조각을 노리는 용이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듣기로는 녹색과 적색의 용으로 두 마리가 함께 다니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

그들에게 협력하는 또 다른 용이 있었던 것일까?

그전까지 보았던 용들을 성격을 생각해 그럴 가능성조차 생각지 않았던 문제였다.
…하물며 꿈속에서의 습격이라니?

“윽….”

나는 이제라도 반항해보기 위해 몸을 움직이려 해보지만 차갑게 굳은 몸은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었을 뿐, 제대로 움직이지조차 않았다.

“아….”

그뿐일까? 어쩐지 호흡이 더욱 힘들어져서….
용의 육을 취한 몸으로도 이 이상 버티는 것은 한계라는 것을 알  있을 만큼 상황이 나빠져 가고 있는 것이었다.

“너….”
“….”

조각을 뺏긴 나에게 더 이상의 가치를 두지는 않는 것인지.
시선은 계속해 조각에 집중하여 하늘 높이 올려 보이던 녀석은 마침내 결심한  고개를 끄덕이어 조심스레 조각을 움켜잡더니.

“….”

뿔 조각을 움켜잡은 손으로부터 뭔지 모를 푸르고도 하얀빛을 내뿜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부오오─

은은한 별빛만이 가득하던 몽환룡의 세계를 대낮처럼 밝게 비출 정도로도 눈이 부신 빛을….

“…너?”
“….”
“대체….”

마침내 빛이 꺼지고 그녀의 손에서 흘러나오듯 떨어진 목걸이에 매달린 검은 조각은 그녀의 색이 조금 들어간 어두운 군청색을 하고 있었다.

“….”

그녀는 계속해 말없이 그것을 쳐다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나의 옆으로 걸어오고는 자신의 하얀 발을나의 배 아래로 밀어 넣어 왔다.

“윽…으아악!”

 순간. 정확히 그녀의 발등이 닿은 그 위치에서 살아있는 상태로 창자가 썩어들어가는 듯한 극심한 고통이 느껴졌다.

“아아악!”

목구멍이 갈라져 얼어 붙어가는 것도 신경 쓰지 않고 비명을 토해낼 만큼 상상을 초월한 고통.

“….”

그녀는 황급히 발을 들어 나의 몸을 뒤집어 보였다.

“하아…. 하아….”

 전부터도 있었던 호흡에 의한 통증이 이제는 정말 숨을 쉴 때마다 뱃속에 믹서기를 넣는 것처럼 심해졌다.

“끄으….”

그럼에도나는 멈출 수 없는 신음을 흘리며 최대한 몸을 움직여 나의 배를 보았다.

“으…탓, 어? …열?”

아니. 이 또한 냉기에 의한 것이었다.
일순 열상이라 생각한 것은 마치 드라이아이스에 연기가 일렁이듯  배 위로 끔찍할 정도로 많은 연기가 뿜어져 나왔기 때문이었다.

“….”

자신이 한 일을 여전히 일말의 감정조차 느껴지지 않는 표정으로 말없이 내려다보는 그녀.
자세히 손에 들고 있던 부분과 잠시 물고 있던 나뭇가지의 끝은 모두 얼어붙어 연기가 일렁이고 있었다.

“끄으….”

저래서 나뭇가지를 찾아왔던 건가?
그렇다면 왜 인제 와서…뿔 조각을 찾아 목표를 채운 뒤에 나를 없애기 위해?

“하읏….”
“….”

아니. 잘 모르겠지만…그건 아닌가?

녀석은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나를 보며, 계속해 나의 곁에 앉아 있던 것처럼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여전히 무감정한 눈동자지만, 세게 쥔 주먹은 어쩐지 이제 하려는 행위를 조금 망설이고 있는 것처럼도 답답하게 보여서….

“…해.”
“….”
“…여, 여기까지…끄읏…해, 놓고…뭘…망, 설여?”
“….”

나도 모르게 이 지옥 같은 고통을 선사해준 그녀의 등을 떠밀게끔 해주는 것이었다.

“….”

잠시 주먹을 쥐며 나와  빈 시선을 맞추던 그녀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신이 손에 쥔, 색 바랜 아용이의 뿔 조각을 보여왔다.

그리고는이내 그 조각을 엄지와 검지 사이에 끼어 날카롭게 잡아 들더니….

“….”
“앗, 으읏….”

마침내 손을 움직여,  조각을 나의 가슴에 박아, 밀어 넣어 오는 것이었다.
마치 땅에 씨앗을 심듯 넣듯. 그렇게….

“끄아아!”

살을 찢는 감각과 함께 뱃가죽을 단숨에 얼어붙게 한 고통이 가슴 안쪽부터 밀려온다.

“….”

그리고 ‘으직’ 하고 잠시 가슴 쪽에서 무언가 깨지는 듯한 소리가 나기 시작하더니 끔찍이도 계속되던 고통이 멈추어 몸이 점점 편안해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아니. 그뿐일까? 어쩐지 숨을 쉬기도 점점 편해져서….

“하아….”

오래간만에 편안히 느껴지는 호흡을 즐기며 크게 심호흡하던 나는 눈을 깜빡이기 위해 눈을 감고, 다시 뜸과 동시에….

“후우…어?”

침대 위에서 깨어났다.

“….”

계속해 꿈속에서보았던, 얼음으로 만들어진 듯한 소녀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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