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89화 〉경매에용 (189/190)



〈 189화 〉경매에용

“샤미아.”
“내 이름…아, 유수프 때문인가?”

‘역시 벌을 더 줘야겠어.’

혼자 그렇게 중얼거린 샤미아는 제스처를취해, 자신의 카드 패를 늘렸다.

“흠….”

숫자가 23을 초과했다.
받기 전에는  낮은 패라 버스트 할 확률이 상당히 낮아 보였음에도 말이다.

“운은 별로 좋지 않은가 봐?”
“예정된 결과지. 길목을 걷다 검은 고양이가튀어나왔을 정도니, 이번 판은 받지 않아도 지지 않았겠어?”

담담하게 ‘널 봐서 재수가 없으니  꺼져 줄래?’라는 뜻을 보니 내보인 샤미아를 보니, 이 자리가 내 자리이긴 한가보다.

“그런 사소한 거까지 신경 쓰는 사람은 도박판에서 못 벌어 먹고산다던데.”
“흥.”

가볍게 코웃음 친 샤미아는 취한 기색 하나 없이 커다란 얼음 조각이 들어간 술잔을 기울이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러면 너는 따려고 왔나 보지?”
“아니. 사실 나도 잃으려고 왔어. 재수 없는 동전 하나가 지갑 속을 굴러다녀서.”
“아, 그러신가?”

카드를 다 섞은 딜러가 우리 앞에 패를 나눠 주었다.

나는 추가, 샤미아는 그대로 계속 진행하여 둘 다 딜러에게서 조금씩 뜯어내는 데 성공하였다.

다시 섞이는 카드 패.

“대충 만날 것 같다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말이야.”
“그쪽 부하는 꼭 보자고 말하던걸?”
“그럼 녀석을 보러  건가? 환성의 커플이군. 꼭 다시 만나게 해주고 싶어.”

이번 판은 그녀와 나 모두 크게 잃었다.
놀아주는솜씨가 대단한 딜러였다.

다음에는 따게 해주려나?

“흐음….”

흥미로워하는 나와 반대로 샤미아는 여전히작게 하품하며, 카드 패가 돌아가는 걸 지루한 시선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그럼…놀려고 온 건 아닌 거 같고 단순히 설인을 팔려고 온 것도 아닌 거 같은데….”

샤미아는 자신의 진한 구릿빛 몸에 짝 달라붙는 검은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파는 물건을 집적 소개할 생각이 아니라면, 틀림없는 참가자겠지.

“오늘 경매에 노리는  있나 봐?”
“그렇다만?”

정확히 오늘을 강조해 말했건만, 샤미아는 쉽게도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물건이 겹칠  없다는 자신감인가?

어쩌면 나 따위는 방해되지 않는다 생각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것도 아니면 차라리내 손에 넘어가는 게 뺏기 쉽다고 생각하거나….

“…꼭 원하는 걸 구했으면 좋겠다고.”
“그거 고맙군.”

샤미아와 내가 다시 한번 판돈을 잃었다.

따고 잃고 잃고 다시 살짝 따고.

슬슬 마지막으로 하고 일어날까?

“그건 그렇고….”

나는 남은 금액을 전부걸며 말을 이었다.

“당신들 혹시 용병이야?”
“…음? 무슨 뜻이지?”
“아니 호위대상이 있어 보이길래. 조금 있으면 경매가 시작하는데, 나도 용병이 필요해질지 모르잖아.”

뻔뻔함을 가장해 묻자, 샤미아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서라, 만약 내가 용병이라도 네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닐 테니.”
“대단한 자신감이네.”

그러니까 용병이 아니시다?
전문 호위? 이번 일만 특별히 하는 건가?

패가 들어오지만, 난 이를보지도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확실히 꽤 높은 귀족처럼 보이긴 하더라.”
“놈들은 우리 일족을 고용한 게 아니야. 단지 함께 협력하고 있을 뿐이다.”
“협력하고 있다고?”

그 하얀 부녀를 놈들이라 부른 건가?
거기다 ‘일족’이라는 건 또 무슨 뜻이지?

내 물음에 샤미아는 코웃음을 치며, 내 얼굴을 보았다.

“아무리 유도하려고 해봤자, 이 이상은 안 줄 거야. 이건 어차피 네가 이해하지 못할 걸 알아서 해준 말일 뿐이니까.”

마치 표범 머리카락과 눈동자.

피부는 좀 라틴계에 가깝긴 하지만, 그래도 머리카락 색과 눈동자가 같으니 친근감이 느껴질 만도 한데….

이 사람은 정말 아무리 보고 있어도 정이 안 가는 느낌이었다.

“나는 일과 목적이 관련이 없다면, 되도록 살생은 피하는 주의거든.”
“그렇게 안 보이는데?”
“그런가?”

내 말에 샤미아는 웃으며 손에 든 술잔을 흔들어 넘기고는 말했다.

“하지만 그렇단 말이지. 물론 냄새를 맡고 모여드는 귀찮은 쥐는 예외지만 말이야.”
“….”
“부디 자유롭게 파고들길 기대할게.”
“매우 아쉽게도  그다지 호기심이 많은 타입은 아니라서.”
“거짓말.”

나는 샤미아의 속삭임을 들으며,  장 더 받았다.

“축하합니다.”

갑작스레 말을 건넨 딜러의 말에 패를 보니, 숫자 합은 21도아닌 23.

아직 뭐라 부르는지 모르겠지만, 이세계첫 블랙잭인 셈이었다.



“운이 좋았군.”

다 잃고 나오려고 했는데 결과적으로는 30실버 더 벌어 나온 셈이 됐다.

“세탁기를 이 정도로 돌렸으니 이제 내 돈이라고 해도 괜찮겠지?”

거의 밑바닥까지 내려쳤다가 다시 오른 돈이니 이제 안심하고 가져도 되겠다 싶었다.

“….”

사리아나도 그렇다 해주지 않는가.

“좋아 그러면 주머니를 채워야지.”

다시 환전해 온 금화 위로 가볍게 입을 맞추며 주머니에 넣어두었다.

“다신 싸우지 말자. 지갑아.”

카지노에 대한 흥미도 식었고 내 돈으로 불확실한 도박 따위를 하고 싶진 않았다.

“자용님. 끝나셨나요?”
“네 뷔네씨도요?”
“네 저도 직원들 오기 전에 슬슬 끝내려고요.”

툭툭 하고 두드려지는 핸드백이 꽤나 묵직해 보였다.

“자용님은 많이 따셨나요?”
“뷔네씨 앞에서 자랑할 만한 금액은 아니지만요. 완전 타짜시던데요? 자주 오시나요?”
“하하, 자주까진 아니고…거기다 오늘은 운이 좀 좋았을 뿐이에요.”

그런  치고는 자리에 앉으실 때부터 딜러 아저씨가 울상이던데….

“아, 저기 있다.”

일행과 떨어진 자리로 돌아오자, 평소와 다르게 제법 점잖게 간식을 먹는 필라피스의 모습이 보였다.

“전보단 조금 덜 흘리는구나, 천천히…그래 잘하고 있어.”
“먹는 동안 계속 그렇게 옆에서 중얼거린 거야? 먹다 체하겠다.”
“주인님!”

이데노아의 말에 따라 간식을 조용히 잘라 삼키던 피스가일어나 내게 안겨 왔다.

“잠깐 얼굴은 비비지 마렴. 화장 다 번지잖니.”
“우엥.주인님…이데 언니가 오늘따라 더 깐깐한 거다!”
“경매는 시작도 안 했는데 엉망인 꼴로 돌아가고 싶은 건 아니겠지?”

얘는 이럴 때마다 모두의 언니가 아니고 모두의 사슴 엄마 같다.

“….”

생각이라도 읽힌 것일까?
이데노아가 나를 노려보는 게 심상찮아 보여서 먼저 지갑을 들어 올렸다.

“더 먹고 싶은 거 없어? 내가 계산할게.”
“설마 딴 건가? 무슨 수를  거지?”
“아무 짓도 그냥 운이지.”
“주인님 운빨에? 말도 안 되는 거다!”
“정말 흥미롭군. 그 머리로 카드 카운팅을 한 것도 아닐 텐데….”
“….”

나를 향한 믿음과 신뢰가 너무나도 아프다.




경매는 지하층에서 시작된다고 한다.

“상층은 바로 위 카지노를제외하면 전부 창고라 보시면 돼요.”
“그렇군요.”

꽤 높은 건물이었는데.
그 위가 전부 창고였다니….

“아, 생각해보니 경매면 노예도 출품되나요?”
“네? 혹시 노예에 관심있으신가요?”
“아뇨. 좀 개인적인 성향으로 불편해서요.”
“아….”

뷔네가 입을 가리시며 신음했다.
아마 내가 정확히 노예 출신일 것까지 예상하는  아니겠지만,  검은 머리를 보고 그렇다 할 추측은 쉽게 할 수 있으리라.

“걱정하지 마세요. 확실히 렐카도 그러한 곳이 없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이곳에서는 그런 거래는 이루어지지 않으니까요.”
“그렇군요.”

솔직히 조금 안심했다.
그러한 트라우마는 점점 잊히는 중이지만, 그래도 불편한 꼴은 보기는 싫었으니까.

“…확인했습니다. 여기 번호표 받으시고요. 입장하시면 됩니다.”
“네 감사합니다.”
“와…엄청 어두운 거다!”

엄중한 분위기에 VIP 위주로 운영하는 듯했지만, 이 또한 뷔네씨가 사전 작업을 진행해주신 덕분에 손쉽게 입장이 가능했다.

근데 이거 뷔네씨 없었으면 시간도 못 맞추고 입장도 못 했던 거 아냐?

“광명교 성녀의 서신이 와서 처리하기가 쉬웠답니다. 제가 한  정말 서류작업뿐이에요.”

그녀는 겸손히 이렇게 말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알아본 바로는 해당 물품은 아마 다섯 번째에서 여섯 번째쯤에 나올 거에요.”
“상당히 애매한 타이밍이네요.”
“사실 그다지 기대받는 품목은 아니거든요. 아무래도 확연하게 부러진 흔적이 보이는 조각이다 보니.”
“….”

우리 아용이의 조각이 기대받지 못하는 품목이라 하니 뭔가 좀 섭섭한 맘도 들었지만, 덕분에 경쟁자가 적으니 오히려 좋아해야 하는 일이었다.

나만 가치를 알고 있으면 되는 거지 뭐….

“좌석은 여기서부터 여기입니다.”
“네 감사…어라? 뷔네씨는 어디 가시나요?”
“뒤쪽에 성녀 전하도 와계시거든요. 아무래도 자리를 지키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아, 그렇군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아뇨.  역시 즐거웠답니다. 그럼 나중에 다시….”
“네 그때 뵙죠.”

자리까지 안내해준 뷔네는 그렇게 뒤쪽의 한층 어두운 공간 속으로 사라졌다.

“좀긴장되는데?”
“긴장할 게  있어? 그냥 쇼핑하러 왔다고 생각하도록 해.”

그나마 익숙해 보이는 이데노아라도 옆에 있어 다행이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처음 소개해드릴 물건은 광명교 여신 프레이야의 검이라 알려진….”

제법 정숙한 분위기에서 마침내 사회자가 나와 경매를 진행했다.

“가짜군.”
“….”

이데노아가 경매에 출품된 프레이야 관련 굿즈를 볼 때마다 중얼거리긴 했어도 제법 괜찮고 다양한 물건들이 출품되는 경매였다.

“3골드 70실버 나왔습니다! …네 낙찰입니다!”

너무 ‘억!’ 소리 나오는 경매도 아니었고.

“그 인간도 말했잖아. 첫날은 인기가 별로 없다고.”
“아용이의 뿔은 인기 없는 날의 인기 없는 상품이라는 건가….”

어쩐지 빈자리가 제법 있더라니….
역시 좋아해야 할 일이겠지만, 마음이 복잡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자, 다음 물건! 고대의 의식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검은 보석입니다! 조사 결과 미약한 마력의 파동도 확인되었다고 하여….”
“…미약?”
“인간의 기술로는 측정하기가 어려웠겠지. 팔불출  좀 그만하고 경매에나 집중해줄래?”

이데노아는 그리 말하면서 연신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아무래도  자리에 자신의 동족이 있을지 찾는 듯한 눈치였고 필라피스 또한 사전 이데노아가 부탁한 대로 귀를 쫑긋 세우며, 빠르게 강습하는 적이 없는지 경계해주었다.

“15실버로 시작하겠습니다. 16실버! 18! 30! 방금 60실버 나왔고요!”

나는 웃고 있었다.

여유 자금이 골드 단위다 보니 가벼운 풋 돈으로 달려드는 경쟁자들은 치와와 정도로 보일 정도였다.

“1골드 30실버! 더 없으신가요?”

슬슬 시들해진 레이스.
마침내 차례가 되었다는 생각에 가볍게 손을 올리려던 때였다.

“사, 삼골드!  골드나왔습니다!”
“응?”

갑작스레  배로 점프한 금액에 놀라 옆을 보니 희미한 불빛 아래서 이제  들었던 손을 내린 샤미아가 웃고 있었다.

“….”

갑작스러운 두 배 선언.
장난으로 손을 담갔다고 보기에는 어려운 상황이다.

저 녀석도 아용이의 뿔을 노린다고?

“3골드!  없으신가요? 앗…3골드 40실버 나왔습니다.”

나는 그런 샤미아를 의식하며 가볍게 번호표를 올렸다.
기다렸다는 듯 저쪽도 나를 발견해온다.

“8골드.”

다시 한번 두 배로 오른 가격에 일순 어두운 경매장 내부가 술렁였다.

“8골드라니….”

내가 순식간에 초과해버린 예산 금액에 당혹해하고 있을 때였다.

“…16골드.”
“이데노아?”

바로 다시 두 배를 부르며, 받아친 것은 조용히 이 상황을 지켜보던 이데노아였다.

“이, 이십! 앗 이십 삼! 이십 오! 네 삼십 나왔습니다!”

뭔가 묘한 냄새를 맡은 듯 몇몇 사람들이 다시금 참여하긴 했지만, 25골드가 넘어가는 순간부터는 다시금 그녀들의 1:1 승부가 되었다.

“사, 사십…아니 80 골드! 80골드 나왔습니다. 여러분! 앗 다시 82골드!”

다만 그것도 이 정도 수준까지.

계속해 가격을 뻥튀기시키던 샤미야의 표정은 여유로웠지만, 이데노아의 표정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내 돈  재산을 더하면….”
“이미 포함 시켜서 생각 중이야.”
“84 골드! 네 바로 85 골드!”

80골드라니….
거짓말 안 보태고 저 정도면 평생 놀고먹겠다 싶은 금액이다.

“120골드.”

샤미아의 담담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백, 백 삼십…사 골드.”

마침내 전 재산에 도달하고 만듯한 이데노아가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150골드.”

그리고 샤미아는 이를 우습게 넘기며, 자신의 금액에 쐐기를 박았다.

“…좆됐네.”
“이, 인간 주제….”

패배한 이데노아가 고개를 떨구었다.
며칠간의 여정이 모두 헛수고로 끝이 난 것이었다.

“네, 네에! 배, 백오십 골드가 나왔습니다! 더 없으신가요? …역시 없으시겠지요? 그럼 백 오십 골드에 낙찰….”

순식간에 불어난 어마무시한 가격에 당황한 사회자가 정신을 차리며, 그렇게 마무리 지으려 할 때였다.

“오 백.”
“네, 네? 잠…바, 방금 뭐라고…?”

너무나도 담백한 그 말이 저 멀리 가장뒷자리에서 흘러나온 것은….

“음? 안 들렸나? 저기 뷔네에~? 아무래도  님의 목소리가 좀 작은 모양이야 좀 대신 말해줄래?”
“예. 성녀 전하”

붉은 천막 안에서 들려오는 가벼운 대화 소리, 커튼을 살짝 열고 앞으로 나온 뷔네가 우리와 함께했던 것과 전혀 다르지 않은 차분한 태도로 나와 입을 열었다.

“성녀 전하께서 오 백 골드라 하셨습니다.”
“아…그, 그게…호, 혹시 더 있으신가요?”

장내는 침묵했다.
그 샤미아 조차도 깜짝 놀란 얼굴로 엉덩이까지 떨어트리며 뒤를 보았을 정도였다.

“…그, 그럼 거, 검은 보석은…오, 오백 골드로 낙찰! 낙찰입니다!”

세 번의 망치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여전히 장내는 사람이라도 죽은 것처럼 숙연했다.

“음하하, 핫! 좋아! 아~주 좋아! 뷔네에~이제 대충 포장해서 집에 가자!”
“네 전하.”

 사태를 만든 단 한 마리의…심홍색 용을 제외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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