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화 〉초록빛 대난투 - (2)
“엇, 고마워!”
에필리아가 꺼내 보인 자루 안에는 깻잎과 비슷하게 생긴 잎사귀들이 가득했다.
이건 분명 녀석들이 말했던 최음초가 분명했다.
애초에 엘프들을 위해 특별히 샐러드를 준비해 놓으라고 했었는데, 녀석들은 마음대로 최음초를 섞어 준비했던 모양이다. 그 덕분에 아침부터 비정상적인 섹스를 달리게 됐었다.
“주인님, 그게 뭔데 그렇게 숨기듯 챙겨가?”
“아무것도 아니야! 그보다 너희들은 식사했어?”
“음… 주인님 일어나면 같이 먹으려고 기다리고 있었지.”
에르딘이 지금껏 보여준 적 없는 미소를 지어 보인다.
“그, 그래? 너희들의 식사를 좀 봐도 괜찮을까?”
“네? 퀘넬님께선 채소들을 별로 안 좋아하시지 않나요?”
“하핫… 그래도 가끔씩 먹어주긴 해야지. 잠시만 볼게.”
나는 에필리아가 들고 있던 그릇을 들어 내용물들을 확인했다.
정말로 풀떼기를 씹어먹으려고 한 게 아니었다. 혹시나 또 최음초를 샐러드에 섞어 놓진 않을까 하는 불안감 때문에서였다.
ㅡ우적 우적
나는 자연스러워 보이기 위해 양상추 몇 개를 집어 들어 입에 넣었다. 그러면서 그녀들의 식사 내용물을 확인했다. 그 결과 다행스럽게도 최음초로 보이는 것은 없었다.
식사를 준비한 티키라는 녀석이 개념은 있었는지, 전투를 앞두고 음식에 최음초를 섞는 기행을 부리진 않은 모양이다.
“하하, 이만하면 됐어. 어서 식사하고 슬슬 준비하자.”
“맞다, 그러고 보니 대체 오늘 일정이 어떻게 되는 거야? 아까 아침에 엄청 길게 연설을 하던데?”
맞다. 그러고 보니 둘에겐 아직 계획을 알려주지 않았었다.
원래라면 아침 일과를 끝내고 돌아와 둘에게도 앞으로의 계획을 알려줬어야 하는 건데. 예정에도 없던 격한 섹스를 해버려서 말할 타이밍을 놓쳤었다.
“곧 완전한 밤이 되면 맨드레이크들을 치러 갈 거야. 너희들도 같이 간다.”
“뭐, 뭣?!”
“그게 정말인가요. 퀘넬님? 그리고 내일 아침에 출발하는 게 아니었나요?”
둘은 예상하지 못한 시간대라는 듯 놀란 반응이었다.
“응. 들어보니 맨드레이크들은 밤에 활동이 거의 멈춘다면서? 그때를 노려서 오히려 먼저 치고 들어가는 거야.”
“그, 그치만 위험하지 않을까요오…….”
“그래. 녀석들의 숫자를 완벽하게 파악한 것도 아닐 텐데, 무리하게 깊이 들어갔다가 봉변이라도 당하면 어쩌려고?”
겁쟁이들 같으니.
“이미 어제부터 정찰을 보내서 대략적인 수와 위치를 다 파악해 뒀어. 걱정하지마.”
“그런데 우리들이 가도 괜찮은 걸까? 트롤녀석들이 불신할텐데…….”
“그러게요……. 그리고 저희가 간다 해도 큰 도움이 될 지…….”
“걱정 참 많네. 너희들은 내 뒤에만 잘 붙어있어. 다 계획이 있으니까.”
나는 자신만만하게 어깨를 으쓱였다.
다 준비된 계획이 있었기에 걱정할 건 없었다.
“정말이야, 주인님? 이런 모습 적응 안 되는데?”
“내 모습이 뭘?”
“분명히 처음 봤을 땐 무식하고 덩치만 거대한 머맨 같은 모습이었는데, 지금 다시 보니까 꽤 듬직하고 믿음직스럽달까?”
첫인상이 도대체 어땠길래 나를 이렇게 과소평가하고 있단 말인가?
이래봬도 무려 석사 과정을 밟고 있던 나를 말이다.
“그런가? 나도 사실 지금 너희들 모습이 처음하고는 많이 다르다고 느껴.”
“으음? 첫인상이 어땠는데?”
“에필리아는 숫기 없는 응석받이, 에르딘 넌 폭력적인 이종족 혐오자.”
“…….”
나도 느낀 감정을 있는 그대로 말한 것뿐인데 에르딘의 얼굴에 음영이 드리워진다.
“하, 하지만 지금은 다들 인식이 많이 바뀌었지. 에필리아 너는 생각보다 자신감이 넘치고 나와 에르딘 사이를 잘 중재해주는 없어선 안될 존재. 에르딘 넌 생각보다 섬세하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속 깊은 인물이라고 인식이 바뀐 지 오래야. 하하하……!”
나의 구구절절한 부연설명에 그녀의 심기가 다시 편해졌는지 본래의 표정으로 돌아왔다.
괜한 말하지 말고 밥이나 먹자.
“그래. 처음엔 내가 너무하긴 했지. 그래도 지금은 네가 내 주인님이라는 게 나쁘진 않아.”
“으음……? 너 뭐 잘못 먹었냐?”
“아, 진짜! 좋은 말을 해줘도 왜 난리야!”
“에르딘님, 진정하세요오…….”
유독 속마음을 꺼내는 걸 쑥스러워 하는 그녀였다.
뭐, 나도 에리카 앞에선 제대로 말도 못했었지.
그렇게 소란스런 식사를 이어가고 있었을 때 문밖에 인기척이 났다.
“누구냐?”
“치프인 츄럴. 모든 준비가 끝난 츄럴.”
때가 되었다.
나는 치프의 말을 듣고 식사를 마쳤다.
아직 몸이 완벽하게 회복된 것은 아니었지만, 이만하면 충분했다.
“주인님 있잖아, 정말 여기서 트롤왕으로 눌러 살 생각은 아니지?”
“응? 그건 무슨 말이냐?”
“요즘 들어 트롤들하고 체력단련 하는 걸 너무 즐기는 것 같아서… 안 그래 에필리아?”
“맞아요. 저희 성에 있을 땐 못 보던 행복한 표정을 매일 짓고 계세요.”
그거야 그땐 강제적으로 감금 생활을 하게 됐었으니 당연하지!
“걱정하지마. 원래의 목적을 잊은 건 아니니까. 이제 곧 목적을 향해 나아가야지.”
“그런 거지? 역시 내 주인님 믿고 있었다니까?”
ㅡ저벅 저벅
그녀들과 얘기하며 취락 밖으로 걸어나가자 수많은 트롤 전사들이 집결해 있었다.
녀석들은 허술하지만 나름 완전무장을 하고 있었으며, 몇몇은 내가 가르쳐 준 스쿼트 동작을 반복하며 몸을 풀고 있었다.
내가 지시한대로 후방 대열엔 수많은 트롤전사들이 대열을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전방에는 붉은 피부의 도룡뇽인 살라만더에 올라타고 있는 녀석들이 대기했다.
살라만더의 양 옆엔 기다란 횃불이 꽂혀 있어 어두운 밤을 밝히고 있었다.
수많은 초록색 몸뚱이의 녀석들은 눈빛이 사뭇 진지했다.
나름 종족의 존폐가 달린 전투였기에 분위기가 꽤나 무거웠다.
나는 그들에게 마지막으로 사기들 북돋아 줄 생각으로 단상으로 향했다.
“저, 저기 츄럴왕이시여…….”
“음? 너는?”
수많은 군대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는 나무 단상에 올라왔을 때 말소리가 들려왔다.
“제 이름은 티키인 츄러얼…….”
“뭐, 뭣?”
그녀는 우락부락한 가슴골이 다 내비치는 얇은 천 쪼가리를 몸에 두르고 있었다.
나름 쓸데없이 치장을 한 것이겠지.
시발, 나한테 잘 보이기 위함인가?
티키라고 불리는 암컷 트롤은 내게 다가와 수줍게 작은 호리병을 건네왔다.
“이게 뭐냐?”
“부, 부디 이걸 받아주시는 츄럴…….”
“아니, 이게 뭐냐고?”
“꼭 몸조심하라는 츄럴!”
ㅡ타다닷!
그녀는, 아니 이 트롤 암컷은 내게 호리병을 주더니 얼굴을 붉히곤 후다닥 뒤로 내려가 버렸다.
ㅡ쿠오오오!! 최고 미녀!! 티키가 청혼한 츄럴!!
ㅡ어이어이!! 역시 내츄럴!! 보통 수컷이 아닌 츄럴!!!
ㅡ카잔의 고백을 거부한 미녀츄럴! 내츄럴에겐 반해버린 츄럴?!?!
모두가 보고 있는 단상 위였기에 이 장면을 지켜본 트롤들이 외쳐댔다.
휘파람을 부는 녀석도 있었고,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구르는 녀석도 보였다.
바로 옆에서 이 장면을 지켜본 에필리아와 에르딘은 나를 오묘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설마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이냐는 의미인 것 같았다.
그런데 뭐, 청혼? 호리병 하나 준 게?
“흐웁……. 조용!!!!”
“…….”
내가 마력을 성대에 담아 부르짖자 꽤나 우렁찬 소리가 울려 펴졌다.
마력을 어디에 집중하느냐에 따라 사용법이 무궁무진한 것 같았다.
“오늘 밤! 맨드레이크 토벌에 나선다! 다들 준비된 츄럴?!!”
ㅡ그오오오오오오!!!
녀석들은 대답대신 힘찬 함성으로 답한다.
주위를 자세히 쓱 둘러보자 선봉의 리더로 임명된 치프가 보였다. 그 녀석은 고삐를 당기며 살라만더를 일으켜 세워 선봉대의 사기를 돋우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후방의 지휘를 맡은 카잔 또한 전사들을 바라보며 힘차게 함성을 내질렀다. 녀석이 쇠도끼를 쥔 손을 흔들자 다른 트롤 전사들이 호응해 보였다.
“빼앗긴 우리의 영토를 되찾는 츄러어얼!!”
사실 내 알 바 아닌 영토였지만, 맨드레이크가 엘프의 영토에 들이닥치기 전에 트롤들을 이용해서 쓸어버릴 목적이었다.
“준비된 선봉 츄럴 전사들! 진겨어어억!!!”
쓸모 없는 일장 연설은 집어치우고 이제 돌격할 시간이었다.
ㅡ두두두두두두두!!!
나의 진격 명령에 살라만더를 타고 있는 선봉대는 맹렬한 기세로 달려나갔다.
이틀 밖에 되지 않았지만 나에게 체력단련을 받은 녀석들의 전투력은 이전보다 더욱 상승했을 것이다. 게다가 지금 사기가 한껏 오른 녀석들은 분명히 성공적으로 작전을 수행해낼 것이다.
“새로운 왕, 젊은 츄럴이여 어서 올라 타라.”
“아아, 고맙다.”
단상에 내려오자 다른 녀석들보다 덩치가 큰 살라만더에 올라탄 카잔이 손을 내뻗는다.
내가 그 손을 맞잡자 카잔이 손쉽게 나를 끌어 올린다.
“그런데 저 귀쟁이들도… 아니 두 명의 부인은 왜 데리고 나온 츄럴?”
“같이 전투에 나선다.”
“츄럴?”
그러고 보니 녀석들에겐 두 엘프가 같이 참전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서로 사이가 좋지 않은 두 종족이었기에 굳이 말을 꺼내지 않은 것이다.
그래도 트롤왕인 내가 부인인 그녀들을 데려간다는데 뭐라 하지 못하리라.
“나의 부인들도 훌륭한 전사다. 몸집이 작다고 무시하지 마라.”
“그런 것인가. 훌륭한 트롤왕에 걸맞는 여전사 부인이라니 부러운 츄럴.”
“어서 올라타. 딱히 안장은 없지만 뒤에 있는 밧줄을 붙잡으면 괜찮을 거야.”
그녀들은 말없이 살라만더의 등위에 가볍게 뛰어올라 착지했다. 자신들도 참전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전투를 할 것인지 도저히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꽉 붙잡아. 말보다는 느리겠지만 짐이 많아서 꽤 흔들릴 수도 있어.”
“주인님이나 걱정하셔.”
“그래. 그리고 아래쪽 상자엔 병장기도 여분으로 실려있는데 네가 쓸 활도 넣어 뒀어.”
“뭘 그렇게까지…….”
“나중에 반드시 쓸 일이 있을 거야. 활도 횃불을 붙일 수 있도록 앞쪽에 기름을 묻힌 천을 달아놨으니까 꼭 확인해봐.”
“알겠어. 꽤나 준비가 철저하네.”
ㅡ저벅 저벅
고삐를 쥐고 있는 카잔이 발꿈치로 살라만더의 허리춤을 한번 차더니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퀘넬님, 저는 뭘 하면 될까요? 작전 같은 건 아무것도 알려주시지 않으셨는데…….”
에르딘은 꽤나 담담한 모습이었지만 에필리아는 걱정이 가득한 눈동자였다.
“걱정할 것 없어. 너는 내 뒤만 잘 따라오면 돼.”
“아, 알겠어요. 그런데 뒤에 실린 이 수많은 상자들에 모두 무기들이 실려있는 건가요?”
에필리아는 살라만더의 등뒤에 잔뜩 실려있는 상자에 묶인 밧줄을 꽉 잡으며 물었다.
“아니, 하나 빼곤 나머지는 다 화약더미야.”
“화약이요?”
“그래, 그때 전투에서 봤던 불길의 정체.”
말 그대로였다. 지금 이 살라만더에 실려있는 상자엔 화약더미가 한 가득 실려있었다.
트롤들의 취락 뒤에 있는 동굴에서 되는대로 화약을 긁어보아 실어둔 것이다.
“무슨 목적으로……? 아!”
화약이라고 말하자마자 어디에 사용할지 감을 잡았는지 에르딘이 탄성을 지른다.
“뻔하잖아? 이걸로 녀석들을 불태울 거야. 아무튼 꽉 잡아! 선봉대를 따라갈 거니까.”
내가 카잔에게 신호를 보내자 더욱 거세게 발꿈치를 내리쳤다.
ㅡ타닷, 탓!!
그러자 우리가 타고 있는 살라만더는 유연한 발 놀림으로 속도를 높였다.
그래도 탑승 인원과 물자가 가득 실려있었기에 속도는 그렇게 빠르지 않았다.
“츄럴… 내츄럴이여, 나도 궁금한 게 있다.”
“뭔데?”
행군으로 이동을 시작한 후방부대를 지나치자 이번엔 카잔이 입을 열었다.
“그… 아까 티키에게 청혼을 받은 것이 진짜인 츄럴……?”
새끼, 티키에게 구애를 했다가 차인 게 진짠가??
“그건 모르겠고, 이걸 주던데?”
차마 받고서 처리하지 못한 작은 호리병을 보여줬다.
들고 있기 불편해 버릴까 고민하던 찰나였다.
“크윽, 이건 역시…….”
“뭔데? 뭔지 알아?”
카잔은 인상을 찌푸리며 모두 두 동강 난 엄니를 떨어대며 말을 이었다.
“내가 그녀에게 준 맨드레이크의 채즙인 츄럴.”
“나와 싸울 때 복용했던 약물?”
“맞다, 강한 츄럴 전사들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귀한 물건인 츄럴.”
“먹으면 일시적으로 몸의 근육을 키워주는 거 맞지?”
“츄럴, 그렇다! 대체 내가 준 것을 왜 이걸 내츄럴에게…….”
암컷에게 구애를 한답시고 선물을 한다는 게 스테로이드라니…….
이 새끼 병신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