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화 〉2화
마지막 남아 있던 두 명이 나가자 파티를 유지하고 있을 동력이 사라졌다.
사실 이미 몇 년 전에 그만두었어야 했는지 모른다.
내 성장 속도가 형편없다는 걸 알면서도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하고 끝까지 미련을 가졌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나는 내 사냥 리딩 능력에 자신감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제 다 끝났다.
더 이상 미련만으로 버틸 수있는 시기는 지나갔다.
나는 사무실 비품 및 장비를 처분하기시작했다.
원래 수요가 많은 물품들이니만큼 정리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것들을 전부 처분하고 내게 떨어진 돈은 8천만 원이었다.
각성하고 5년 동안 여러 파티를 전전하며 경험을 쌓고, 그 뒤로 팀을 꾸려 10년간 유지한 끝에 남은 것이 단돈 8천만 원.
내 청춘을 오롯이 바친 대가라고 하기에는 너무 초라했다.
‘이제 뭘 해야 하나......’
고민해봤자 내가 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철들고 나서 한 일이 헌터 일밖에 없으니 다시 어떤 파티라도 들어가서 일을 해야겠지.
하지만 나이 39살의, 쓸데없이 경력만 많은 C급 서포터를 어떤 파티가 받아줄지 의심스러웠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사실 염두에 두고 있는 또 다른 선택지도 있었다. 그것은 전자보다훨씬 위험하고 도박에 가까운 발상이었다.
술에 취한 밤에 잠깐 떠올린 생각이었지만, 술이 깨고 나서도 도무지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인생을 리셋하는 것.
인생을 리셋한다는 건 솔직히 좀 오버스러운 표현이고, 더 정확히 말하면 헌터 능력을 다시 갈아엎는 것이었다.
이는 말 그대로 도박이었다.
전혀 효과가 없을 확률도 50%다.
직업 변환석은 5천만 원을 호가하는 아이템이었다.
평소 빠듯하게 파티를 운영하던 입장에서는 사려고 엄두도 낼 수 없는 물건이었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살 수 있다.
사무실을 정리하고 얻은 8천만 원이 있으니까.
그중 5천만 원을 써버리면 남는 돈이 얼마 안 되지만, 어차피 새 파티에 들어가서 일을 하게 되면 돈 몇천만 원은 큰 의미가 없게 된다.
‘위험하지만......’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내 클래스인 C종 서포터가 수요가 거의 없는 클래스이기 때문이었다.
내 주 스킬은 ‘텔레파시’이다. 그 능력으로 파티원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사냥을 리드해왔다.
애초에 C종 서포터라는 게 A종인 전투 지원, B종 버프 및 대상 디버프에 속하지 않는 나머지 클래스를 통칭하는 것이었다.
한 마디로 가장 쓸모없는 직업이라는 뜻이다.
등급이 S급, A급에, 괜찮은 스킬도 한두 개 장착했다면 내로라하는 리더가 될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아니다.
더구나 다른 파티장의 팀에 들어가면 잘났다고 지휘 같은 것을 할 수 없을 것이었다.
나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5천만 원은 함부로 모험을 걸기에는 많은 돈이었다.
하지만 결국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제 와서 내가 물불 가리게 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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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댁에 돌아가셔서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시면 됩니다.”
나는 헌터 전문병원의 의사에게 그런 말을 들었다.
의사라고는 하지만 이 사람 역시 헌터였다. 다만 사냥 능력이 없고 아이템을 다루는 데 특출난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차라리 이런 각성자들이 나 같은 떨거지들보다 수입이 높다.
그런 의사 같지 않은 의사가 5천만 원이나 지불한 변환석을 내 머리에 얹고 그렇게 말했다.
약 일 분이나 있었을까? 물론 무언가가 스며드는 느낌이 들기도 했고, 처음에 빛을 발하던 변환석도 거무튀튀하게 변했다.
“언제쯤 결과가 나올까요?”
“보통 반나절이면 몸이 변한 게 느껴지실 겁니다. 자세한 것은 관리소에 가서 검사를 받아보시면 알겠죠.”
“만약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으면요?”
“음...... 그러면 변환석이 효과가 없었던 거죠.”
정말 무책임한 말이었다.
물론 이 의사는 죄가 없다. 원래 헌터 아이템이라는 것이 그런 식이니까.
이런 것도 돈 많은 각성자들은 펑펑 써대서 원하는 쪽으로 클래스를 바꾸곤 했지만.
그래도 등급이나 성장 속도 같은 것은 바뀌지 않기 때문에 보통 등급이 낮은 헌터는 변환석을 사용하지 않았다.
단순히 돈 낭비가 될 확률이 너무 높았으니까.
“......알겠습니다.”
더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나는 의사에게 말하고 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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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그리고 다음 날까지 나는 내게 찾아온 어떤 변화를 느껴보려고 애썼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어차피 도박이라고 생각하고 한 일이었지만, 막상 일이 이렇게 되자 머릿속이 하얘졌다.
5천만 원이라는 돈은 있을 때와 없을 때의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어쨌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불안감을 안고 헌터 관리소를 찾아갔다. 검사는 받아봐야 정확한 사실을 알 수 있을 테니까.
“C종 서포터, 스킬은 ‘텔레파시’ 하나 있으시고요. 지난번 검사 때와 달라진 거 없으십니다.”
검사원은 쉽게 이야기했다.
내 억장이 무너지는 것도 모르고.
‘씨발.’
인생이 한번 어긋나기 시작하니까 진짜 막장까지 치달았다.
‘씨발......’
집에 돌아온나는 멍하게 침대에 누워 시간을 보냈다.
배는 꼬르륵 소리를 내며 음식을 넣어달라고 했지만, 밥을 먹을 생각이 없었다.
그저 지난 세월이 머릿속을 스쳐 갈 뿐이었다.
처음 5년은 나름대로 재미있었다. 내 팀을 운영하며 좋은 사람도 많이 만났다.
하지만 다음 5년은 파티를 유지하기 위해 버둥대며 시간을 보냈다.
그 기간에는 즐거움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하루하루 살이 마르고, 걷잡을 수 없이 빨리 지나가 버린 느낌이었다.
침대에 누워 있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자는 어머니였다.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신호가 끊기길 기다렸더니 문자 메시지가 왔다.
- 아들, 밥은 잘 먹고 다니지? 요즘도 많이 바쁜가 보구나. 언제 시간 나면 이야기해. 엄마가 반찬 싸 들고 한번 찾아갈게.
“씨발......”
내 청춘, 내 인생이 사라졌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각성 따위 하지 않는 게 좋았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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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이 지났다. 그 시간 동안 나는 거의 침대에 누워서 지냈다.
가끔 일어나서 파티멤버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 메일을 보내보았지만,아무 데서도 답장이 오지 않았다.
나는 점점 나락에 떨어지는 기분을 느꼈다.
도저히 우울함을 견딜 수 없어 눈에 보이는 노트 한 권을 집어 들었다.
그안에는 빼곡히 몬스터 정보가 적혀 있었다.
어디가 약점이고, 어떻게 공략해야 효과적으로 사냥할 수 있는지.
그런 고민을 15년 동안 계속해왔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공략법을 연구하는 게 좋아서 노트 필기를 한 게 수십 권은 되었다.
그리고 그것들을 전부 다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지난 시절의 내 열정을 보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었다.
나는 먹먹한 기분을 누르고 한 장 한 장 내가 했던 필기들을 보았다.
처음에는 잠깐 보고 말 생각이었지만, 어느새 몇 시간이 지났고, 나는 노트를 펼친 채로 잠이 들었다.
어떤 꿈을 꾸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내용을 알 수 없는 뒤죽박죽인 꿈을.
그리고 몸이 뜨거워진 기분을 느끼기도 했다.
그게 몸살 때문인지, 아니면 개꿈을 꾼 것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눈을 감은 채로 계속 침대에서 뒤척였다.
바닥이 몹시 딱딱하고 차가운 기분이 느껴졌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퍼뜩, 눈이 떠졌다.
먼저 깨달은 사실은 이곳이 내 방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나는 딱딱한 돌바닥 위에 누워 있었다.
몸을 일으키고 보니 좌우가 모두 벽이었다.
한쪽으로는 길게 길이 나 있었고, 또 한쪽은......
‘뭐지?’
나는 눈앞에서 일렁이는 둥그런 구멍을 보고 신기한 기분을 느꼈다.
마치 블랙홀처럼 물결치는 커다란 공동(空洞).
그것으로 손을 뻗었을 때, 뒤에서 어떤 소리가 들려왔다.
챙, 챙,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
펑, 펑, 하고뭔가가 터지는 소리와, 화르륵 불이 쏘아지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나는 소리가 들리는 등 뒤와 일렁이는 빛을 토해내고 있는 구멍, 양쪽을 번갈아 보았다.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