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화 〉3화 (3/92)



〈 3화 〉3화

‘여긴 어디지?’


잠에서 깨어보니 전혀 모르는 장소에  있었다. 만약 이것이 영화나 드라마였다면 꿈인지 확인하기 위해 볼을 꼬집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상황이 절대로 꿈이 아니라는 것을.


눈앞에는 빨려들 것처럼 일렁이는 구멍이 있고, 뒤에서는 정체불명의 소리가 들리고 있다.
패닉에 휩싸여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에,나는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가라앉았다.

그 이유를 찾자면  가지밖에 없었다.
깨어나기 전에 나는 이미 거의 삶을 포기했으니까.

노트를 들여다보면서 깨달았다.
 삶과 열정은 대부분 그 안에 있었다는 것을.
앞으로 다시 팀을 만들어 사냥을 리딩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사는 것이 아니었다.


혹자는 살아만 있다면 어떻게든 되는 거라고, 인생에서 굴곡은  찾아오는 거라고 수 있지만, 헌터로 15년을 지낸 나는 알고 있었다.
앞으로 내 인생에 역전은 절대 찾아오지 않을 거라는 것을.


내 헌터로서 한계는 여기까지이고, 나는 다시 팀을 만들어 이끌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대로 되라 하는 마음이 생겼다.

‘여길 통과한다면......’


나는 눈앞에 구멍에 손을 대 보았다.
그러자손목까지  잠겨 들어갔다.
이로써 예상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이 구멍을 통과하면 현실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돌아간다고?’


나는 그 사실에 거부감을 느꼈다.
돌아가 봤자 내 인생에 좋은 것은 하나도 없으니까.


뒤를 돌아보았다.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흡사 두 무리가 싸움을 벌이는 것과 같았다.
게이트에 많이 들어가 보았으니 알고 있다.
저 소리가 몬스터를 사냥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것을.


내 호기심은 자연스럽게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향했다.

몸을 돌리자그게 신호라도 된 듯, 전면에 있던 구멍이 스르륵 사라졌다.
약간 놀랐지만 두렵지는 않았다.
돌아가도 그만, 못 돌아가도 그만이다.


나는 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복장은 트레이닝복에 신발도 신고 있지 않아서 바닥의 차가움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길은 일방으로 있어서 헤맬 것도 없었다.


길이 끝나는 곳에 공간이 확 넓어졌다.
 눈에 비치는 장면은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두 진영이 나누어져 싸움을 벌이고 있었던 것.
하지만 그것은내가 알고 있는 헌터와 몬스터의 싸움이 아니었다.
마치 이것은......


‘판타지 게임?’


중세풍 판타지의 전투 신을 옮겨 놓은 듯한 장면이 눈앞에 있었다.
검사와 마법사, 그리고 무투가가  무리의 고블린과 싸우고 있다.


‘이게 뭐야......’

이상한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었지만, 갑자기 머리가 아파 왔다.
아무리 그래도 이것은 너무 나갔다는 생각이 들어서.

“......”

그래도 버릇은 어쩔 수가 없었다.
나는 원래 전투에 관심이 많다. 그랬으니까 사냥을 리딩하는 것에 그렇게 목을 맸었지.
그게 즐겁지 않았다면 지금의 낙차 큰 좌절감도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한 오 분쯤보았을까?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일반적으로 인간이 감정을 이입하는대상은 몬스터가 아닌 같은 인간 쪽이다.
네 명으로 이루어진 파티는 전투를 못 해도 너무 못했다.
손발이 안 맞는 것은 둘째치고, 아까운 스킬을 아무렇게나 남발했다.


그런데도 전력이 비등비등하게 유지되는 이유는 고블린들이 너무 약해서였다.
성인의 절반만 한 키에 키르륵대며 침을 질질 흘리는 마물은 보기에도 무척 흉측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큰 감흥은 없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내 직업은 헌터이다.
몬스터를 보는일에는 이골이 났다. 당장 이놈들이 눈앞에서 산산이 해체되어 피와 살점이 튄다고 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것이다.


그때였다.
고블린  한 마리가 나를 발견한 것은.

“킥! 키룩! 키루루룩!”


‘내가 보이기는 하는 모양이구나.’


하도 상식과 동떨어진 곳에 와 있다 보니 마치 영화를 보는 기분이었는데.
고블린의 반응으로 보아 놈들도 나를 인지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놈이 손가락질을 하며 날뛰자 다른 고블린들도 나를 보았다.

“키륵! 키루룩!”


손에 몽둥이며 녹슨 칼 같은 것들을 쥔 놈들이 줄줄이 내 쪽으로 달려왔다.

“어?”

왜 나한테 오냐?
니들이 싸워야 할 대상은 내가 아닐 텐데.


마물들이 이렇게 나오자 놈들과 싸우고 있던 인간들도 나를 인지했다.

“......남자?”

나를 맨 먼저 발견한 마법사가 그런 말을 내뱉었다.
지금 상황에 내 성별이 중요한가?
그러고 보니 이 마법사는 여자였다. 마법사뿐만이 아니라 검사, 무투가, 힐러마저 여자다.
아까는 그냥 전투하는 장면만 보느라 의식하지 못했는데.


게다가 용모들도 하나같이 예뻤다.
마법사와 힐러는 로브를 쓰고 있었지만, 검사와 무투가는 꽤 노출이 많은 옷을 입고 있었다.
싸움꾼인 그녀들의 몸은 탄탄한 근육으로 덮여 있었다.
검사는 흰 피부에 불륨감 있는 몸매를 가졌으며, 무투가는 까무잡잡한 피부에 날씬한 몸매를 자랑했다.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닌데......’


15년이나 연애를 못 하다 보니 이런 긴박한 순간에도 여자들 외모에 눈이 먼저 갔다.
애초에 여기가 어딘지, 이 여자들이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남자다! 남자가 여기 왜 들어왔지?”
“길을 잘못 들었나? 옷도 너무 얇아 보이는데?”
“엘린, 너는 이 와중에도 남자 몸을 보고 있는 거야?”
“아니, 나, 나는 그냥 저분이 위, 위험해 보여서......”

그녀들의 대화 또한 얼빠진 것이었다.
내 복장이 단출하다고 해도 누군가를 부끄럽게 만들 차림은 아니었다.

“젠장! 남자를 지켜라!”
“칸나, 또 혼자만 남자한테 잘 보이려고 그러지!”
“시, 시끄러워! 헛소리하지 말고 고블린이나 잡아!”


여자들은 잽싸게 달려와서 내 앞에 늘어섰다.


‘야, 니들 너무 가깝잖아.’

지켜준다고 한 건 고마운 일이지만 이렇게 가까이에  명이나 옹기종기 모일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너무 비효율적이잖아!

내가 말했다.


“거기 검사님.”
“네?”

금발의 글래머 여자가 깜짝 놀라고개를 돌렸다.
왠지 모르겠지만 얼굴이 빨갰다.

“저 보지 말고요. 앞 보세요, 앞!”
“아, 네!”
“고블린은 기술이 없어요. 아시죠?”

조금 지켜본 결과 고블린에게는 싸우는 기술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
몸집만 초등학생만 한 게 아니라 싸우는모습도 어설프기 짝이 없다.

“검사님은 경계심이 너무많아요. 하나나 둘 정도는 괜찮아요. 검사님이 우월한 신장으로 밀어붙이면 쉽게 제압할 수 있을 겁니다.”
“아...... 네!”
“힐러님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죠?”
“네! 세린을 보호해야죠.”
“공격을 당하는 것 같으면 즉시 힐을 날려주세요. 저 고블린들에게 당해봤자 죽지는 않겠지만, 누구든 아픈 건 싫잖아요?”
“네! 저도 아픈 건 싫습니다!”

체구도 그렇고, 목소리도 그렇고 하얀 로브를 입은 힐러는 귀여웠다.


“저는 어떻게 할까요? 남자님!”


남자님은 또 뭐냐? 무투가가 그렇게 묻길래 내가 대답했다.

“무투가님은 다리가 길잖아요. 발차기를 하면 고블린의 리치가 닿지 않을 겁니다. 그냥 뻥, 뻥 걷어차 버리세요.”
“아......”
“저는요?”

보라색 로브를 입은 마법사도 체구가 작았다. 이쪽은 힐러와 다른 개성으로 귀여웠다.

“마법사님의 주특기는 파이어볼이죠?”
“네! 어떻게 아셨어요?”
“봤으니까 알죠. 마법사님은 검사님과 무투가님이 다 커버하지 못하는 고블린들에게 파이어볼을 날리세요. 그러면 놈들이 꼼짝도 못 할 겁니다.”
“네!”

내가 말해준 내용은 아주 기본적인 것이었다.
비록 고블린을 상대로 싸워 본 적은 없지만, 싸움을 지켜보고 있자니 RPG 게임을 하는 감각으로 분석할 수 있었다.


이쪽으로 닥쳐온 고블린들과 2차 접전이 펼쳐졌다.


네 명은 내가 일러준 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애초에 어려운 지령도 아니니 수행하기 어렵지 않으리라.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그림이 펼쳐졌다.

“와!  고블린들 진짜 약해!”
“발로 차니까 뻥,  날아가네?  발차기가 이렇게 위력적이었나?”
“오오! 제 파이어볼은 최강이에요!”

힐러만이 별로 할 일이 없었다.
애초에 두 무리 간의 기량 차이가 너무 컸으니까.
게임으로 치면 이런 전투에 포션을 쓰는 것은 낭비였다.

포션......
왠지 이 아가씨들이라면 주머니에 한두 개씩 가지고 있을  같기도 하다.

“키룩!”
“키르르륵!”


싸움이 끝났다.
내 앞에 네 명이나 되는 여자들이 가로막고 있어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더 이상 고블린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을 보아 그것을 알  있었다.


“아......”


자기칼에 숨통이 끊어진 고블린을 내려다보며 검사가 감탄사를 토했다.
뒷말이 생략되었지만 나는 그녀가 하고 싶은 말, 그리고 나머지 세 여자가 말하고 싶은 것을   같았다.


‘이렇게 쉬운 왜 우리가 잡고 고생했던 거지?’


처음에는 답답하기 짝이 없었지만, 나는 그녀들이 보였던 효과 없는 움직임을 이해할수 있을 것도 같았다.
합을 맞춰본 지가 오래되지 않았다면, 그리고 전투 경험이 적다면 누구나 헤맬 수 있는 것이다.
이럴 때 중요한 것은 알맞은 지령을 내려 줄 리더였다.


‘기분 좋네......’

어쨌거나 이것도 전투를 리딩하는 일이었다.
뜻하지 않은 곳에서 엄청난 해방감을 느꼈다.


여자들이 모두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들의 눈에 동경과 감탄이 어려 있어서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세린의 호감도가 상승했습니다!]
[세라의 호감도가 상승했습니다!]
[칸나의 호감도가 상승했습니다!]
[엘린의 호감도가 상승했습니다!]


“응?”

[소환카드(세린)을 얻었습니다!]
[소환카드(세라)을 얻었습니다!]
[소환카드(칸나)을 얻었습니다!]
[소환카드(엘린)을 얻었습니다!]

‘이건 또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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