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화 〉7화
내 앞에서 검을 휘두른 세린이 본체와 같은 능력을 가졌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렇다면 계속 소환을 유지하고 있을 필요가 없었다.
내 명령을 그대로 수행하는예쁜 여자가 있다는 것은, 남자인 내게 어두운 욕망을 불러일으켰지만, 나에게도 지키고 싶은 마지노선이 있었다.
게다가 내 일차적인 관심사는 세린과 꽁냥거리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내가 얻은 능력의 가능성을 맛보았다.
그것으로 할 수 있는 일을 거라고 예상되는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을 스쳐갔다.
이것은 그야말로 내가 원하는 것을 전부 이룰 수 있는 능력이었다.
‘아, 젠장!’
빨리 내일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심장이 벌렁거렸다.
나타났을 때처럼 세린은 빛줄기와 함께 사라졌다.
기본 메뉴 중에 내가 확인하지 않은 것은 이제 딱 하나 남았다.
‘특별 상점’.
여기까지 왔으면 내게 일어난 변화가 흡사 게임과 같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게임의 개념으로 생각했을 때 ‘상점’이라면 아이템을 살 수 있는 시스템이다.
나는 그곳에서 무기와 방어구를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어 가슴이 두근거렸다.
벅찬 가슴으로 메뉴를 터치했다.
[보유 중인 매력 포인트는 ‘4’입니다.]
[유저는 새 카드를 획득할 때마다 추가 포인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오......”
메시지를 이해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내 포인트가 4라는 것은 네 장의 카드를 얻었기 때문인 것 같다. 앞으로도 새 카드를 얻으면 계속 포인트가 늘어날 것이고.
‘좋구나.’
덱을 채울수록 추가로 포인트까지 얻는다면 정말 좋은 일이었다.
메시지가 사라진 뒤에는 상점의 물품들이 보였다.
그런데......
‘뭐야, 이게.’
나는 상점을 채우고 있는 아이템들을 보고 몸이 굳었다.
[자라나라 머리머리 용액]
[뱃살 쏙 다이어트 보조제]
[정말로 키가 커지는 깔창]
[기적의 구강청결제]
......
상점 안에 있는 물품들의 이름이 범상치 않았다.
원래 게임 속 상점이라면무기나 방어구를팔아야 정상 아닌가? 포션이라든가 해독제 같은 걸 팔아야 하는 거 아니야?
나는 어이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포인트 이름이 ‘매력 포인트’였지.
애초에 ‘특별 상점’이라는 이름도 심상치 않은 느낌을 주었다.
그러자 중요한 사실 하나가 생각났다.
내가 외쳤던 두 번째 소원.
‘모든 여자들이 나를좋아하게 만드는 거다!’
다시 생각하니 창피했다.
인생의 목표를 정하라고 했더니 여자들의 인기나 바라고 있다니.
하지만 진심이었다.
물론 일차적으로 나를 절망하게 하고 나락에 빠뜨린 헌터계에서 보란 듯이 성공하고 싶다는 것이 첫 번째목표였지만, 그에 못지않게 후회스러운 것은 파티를 운영하는 동안 연애 한 번 해보지 못했다는 거니까.
“......”
상황을 이해하고 났더니 상점에 있는 아이템들이 다르게 보였다.
‘이거 전부 다......’
엄청 좋은 거잖아!
자라나라 머리머리 용액?
뱃살 쏙 다이어트 보조제?
게다가 키를 크게 만드는 깔창이라니!
씨발, 졸라 좋잖아!
관점을 바꾸었더니 그깟 무기, 방어구보다 훨씬 좋은 것들이 상점 안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솔직히 무기, 방어구, 포션 같은 것들은 현실에서도 구할 수 있다.
하지만 발모제라든가 키가 크게 하는 깔창이라든가 하는 것들은 절대로 구할 수가 없는 것들이었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마찬가지.
물론 방법을 찾자고 한다면 있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집에서 편하게 포인트를 소모해 구입하지는 못할 것이었다.
‘어디보자...... 4포인트라고 했지?’
내가 가진 포인트는 4였다.
나는 아이템 아래에 표시된 가격을 보았다.
‘......생각보다 안 비싸네.’
물론 목록의 뒤에 있는 아이템일수록 가격이 높았다.
하지만 몇 가지는당장도 살 수 있었다.
‘효과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목록에서 가장 눈여겨보고 있던 아이템을 사기로 했다.
‘자라나라 머리머리 용액’!
파티를 운영한다는 것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일이다. 지금보다 젊었을 때는 원형탈모쯤은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나중에 파티 운영이 나아지고 스트레스 받을 일이 줄어들면 머리카락 정도는 다시 날 거라고 믿었으니까.
하지만 결코 탈모가 나을 일은 없었다.
원형탈모뿐 아니라 나중에는 정수리가 조금씩 훤해지고 M자형 탈모까지 진행되고 있었다.
모발 이식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던 상황.
아이템을 터치하자 정보가 나타났다.
<자라나라 머리머리 용액>
효과 : 용액을도포한 곳에 새 머리카락 500모가 자라난다.
“좋았어!”
나는 2포인트의 가격이 붙어 있는 ‘자라나라 머리머리 용액’을 샀다.
남은 2포인트로는 ‘뱃살 쏙 다이어트 보조제’를 샀다.
파티 운영에 대한 일에 골머리를 썩이며 하루하루를 지내다 보니 폭식하는 습관이 생겼다.
야금야금 찐 살은 지난 10년간 30킬로그램에 달했다.
C종 서포터도 헌터는 헌터이기 때문에 몸매 보정 효과로 전체적인 밸런스가 나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일반적인 기준으로는 그저 ‘근돼’일 뿐이었다.
이 아이템의 정보는 다음과 같았다.
<뱃살 쏙 다이어트 보조제>
효과 : 알약을 삼키면 10초 뒤 5킬로그램의 지방이 빠진다.
“오케이!”
상점은 마치 자판기처럼 포인트를 사용하자마자 아이템을 토해냈다.
두 개의 아이템은 모두 작았다.
세린이 소환된 것을 보고 난다음부터는이 시스템에 대한 의심이 완전히 사라졌다.
따라서 아이템의 용량이 생각보다 작다는 것 정도는 전혀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내 집에 전신거울 따위는 없었기 때문에 나는 욕실로 갔다.
그곳 거울 앞에 서자 39세의 근돼, 머리카락이 듬성듬성 빠지고 있는 인생 낙오자가 서 있었다.
이런 나를 보고 이계의 여자들이 보인 반응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일단 ‘자라나라 머리머리 용액’을 사용하기로했다.
따로 사용법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떻게 사용하는지 알아내는 것은 아주 쉬웠다.
작은 용기의 뚜껑을 열자 스포이드가 딸려 나왔다.
나는 왼손에 든 작은 거울로 정수리를 비추면서 오른손으로는 용액을 도포했다.
가장 머리카락이 적어서 고민하고 있던 부위.
평소에는 다른 부위의 머리카락으로 감추고 있었지만, 들추어 보니 심장이 철렁할 만큼 머리카락이 비어 있었다.
용액을 떨어뜨렸을 때는 별 느낌이 없었다.
약간 차가운 정도?
적어도 화학적으로 강한 성분을 품고 있어서 인체에 유해한 영향을 끼칠 정도는 아니었다.
나는 용기에 들어있는 용액을 전부 같은 부위에 도포했다.
시원한 느낌이 두피를 콕콕 찔렀다.
그리고 잠시 후,
쑤욱-
효과음을 낸다면 그런 소리가 날 것 같았다.
내가 보는 앞에서 용액을 도포한 부위가 머리카락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머리카락은 금세 자라나서 다른 머리카락과 같은 길이가 되었다.
조심조심 만져보았지만, 전처럼 가늘고 위태로운 느낌이 전혀 없었다. 세게 잡아당겨도 절대로 뽑히지 않을 것 같다.
물론 시험해보지는 않을 거지만.
‘죽여주네......’
머리카락 500모면 당장 전체 모발이 풍성해질 만큼 결정적인 변화를 주지 않았지만, 그보다는 희망을 얻었다는 것이 더 의미 있었다.
이런 식으로 채워가다 보면 나는 곧 머리카락 때문에 고민할 일은 없어질 테니까.
다음에는 ‘뱃살 쏙 다이어트 보조제’를 사용했다.
이 아이템을 사용하는 법은 ‘자라나라 머리머리 용액’보다 더 쉬웠다.
작은 플라스틱병에 알약 하나만 들어있었으니까.
나는 물도 마시지 않고 그것을 꿀떡 삼켰다.
‘진짜 10초 만에 살이 빠진다고?’
나는 거울 앞에서 셔츠를 들추었다.
흉물스러운 뱃살이 드러난다.
5킬로그램이면 결정적인 변화를 주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 아이템은 지방만 빠지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당장 눈앞에서 5킬로그램의 지방이 빠지는 것인데, 그걸 몰라볼 정도로 내 눈썰미가 나쁘지는 않았다.
물론 이 정도 빠졌다고 당장 복근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얼굴도 조금이지만 날렵해진 것 같았다.
‘죽인다!’
다이어트야 보조제 없이도 할 수 있는 거지만, 알약만 삼켜도 5킬로그램이 빠지는데, 힘들게 식단조절을 하고 운동을 해야 하는 일반적인 다이어트와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오늘 겪은 변화는 편린에 불과하다.
나는 거울을 보면서, 나이 39살에 찾아온 행운에 부르르 전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