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화 〉8화
나는 새로 얻은 능력이 어떤 영향력을 발휘하는지 확인했다.
그렇다면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당장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움직여야 한다.
시스템이 친절하게 뭘 해야 할지도 알려주었으니까.
‘2억 원을 모아서 파티 사무소를 차려야지!’
이미 한 번 해보았으니 절차는 다 알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등록 취소를 하지 않았더라면 좋았겠지만, 인생이 이런 식으로 풀릴지 누가 알았겠는가?
늦은 시간이었으므로 나는 내일부터 활동을 개시하기로 했다.
이미 계획은 머릿속에 있었다.
#
- 태웅아!
박동오는 내 전화를 받자마자 놀라서 소리쳤다.
“야, 귀 떨어지겠다. 살살 말해.”
“나 안 그래도 오늘은 네 집에 가보려고 했어. 연락도 안 받고 전화기도 꺼져 있어서, 혹시 네가......”
“무슨 일이 있어도 나쁜 마음은 안 먹을 거니까 걱정하지 마.”
그것은 거짓말이었다. 사실 내 인생은 끝났다고 생각하고 극단적인 쪽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마음에 걸려서 그렇지.
“그래도 목소리가 좋아서 다행이다.이제 괜찮은 거지?”
“괜찮을 리가 있냐?”
“하긴...... 그래도 어쩌겠냐. 사람이 죽을 수는 없는 거잖아. 다시 차근차근하면 너한테도 기회가 올 거야. 응?”
“맞아. 기회가 왔지.”
“응? 설마 로또라도 당첨됐냐? 어쩐지 네 목소리가 이렇게 밝을 수가 없지!”
“로또에 당첨됐다고도 볼 수 있는데, 돈이 생기지는 않았어. 그보다 너한테 부탁할 게 있는데......”
박동오는 헌터 관리소에서 일하는 공무원이었다.
나랑 동갑인데 파티 운영을 하는 동안 관리소를 오가며 친해졌다.
마음이 잘 맞고, 여러 가지로 편의를 많이 봐 줬던 친구였다.
물론 나도 늘 받기만 한 건 아니었지만.
내 얘길 들은 박동오가 크게 놀랐다.
“뭐? 너 진심이야?”
나는 D급 게이트에 혼자 들어갈 테니 허가를 내려달라고 했다.
내가 비록 C급 헌터이기는 하지만 게이트의 등급은 파티를 결성해서 들어갔을 경우 공략이 가능하느냐 여부로 정해지기 때문에, C급인 내가 D급 게이트에 혼자 들어가는 것은 자살행위였다.
“진심이지, 그럼.”
물론 나는 소환할 수 있는 네 명의 여자가 있지만, 그녀들은 이 세상의 실존하는 인물이 아니었다.
신분도 특정할 수 없는 여자들과 파티에 들어간다고 할 수는 없는 것.
“야, 너 설마......”
“자살 같은 거 안 한다고 했잖아. 미쳤냐? 이 좋은 세상을 하직하게?”
“그래도......”
결국 박동오는 허가를 내주었다. 자기 권한으로 그 정도는 할 수 있는 직위에 있었기 때문에.
하지만 녀석은 내가 게이트에 들어가 자살을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어서 D급이 아닌 E급으로 허가를 내줬다.
‘자식이 사람을 못 믿고 말이야.’
하지만 한편으로는 고맙기도 했다. 나를이처럼 걱정해주는 친구가 있는데 절망 속에서 허우적대던 어제의 내가 한심하기도 하고.
‘고맙다, 동오야. 생각대로 잘되면 소고기 사마.’
최대한 빨리 들어갈 수 있는 데로 잡아달라고 했더니, 오늘 마침 한곳이 예약취소 됐다고 했다.
마침 거리도 멀지 않았다.
나는 밥을 든든하게 먹고 나서 즉시 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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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왔군.’
늘 오던 게이트였지만 오늘은 느낌이 전혀 달랐다.
D급 게이트에 들어가지 못한 것은 아쉬웠지만, 사실 그것은 욕심이기도 했다.
아직 실전에서 카드소환 능력을 사용해보지 않은 상태에서, 만에 하나 일이 잘못되면 그야말로 큰일 나는 거니까.
머리를 좀 식히고 생각해보니 E급 게이트에 들어가게 된 것이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오늘 공략이 잘 되면 이것을 기반으로 계속 박동오한테 스케줄을 잡아달라고 할 수 있으니까.
‘오케이, 가자.’
나는 게이트로 들어갔다.
이곳의 배경은 음산한 숲이었다.
여기서 상대하게 될 몬스터는 들개형인 페푸스였다.
개체 하나하나의 전투력은 지구의 들개와 크게 다르지 않다. 대신 엄청 공격적이고, 물리면 즉시 중독증상이 일어났다.
‘또 조심해야 할 게 놈들은 늘 무리 지어 다닌다는 거지.’
그래도 무작위로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은그 무리에 리더가 있어서였다. 페푸스킹이라고 불리는 상위개체.
일반 페푸스가 F급이고, 이 페푸스킹이 E급이었다.
공기에서 느껴지는 불쾌한 감각이 한층 커졌다.
먼 곳의 나무 사이에서 번뜩이며 이곳을 노려보고 있는 노란 눈알들이 보였다.
“캬우우우웅~~”
정찰 임무를 맡았던 놈이 목소리를 높게 울렸다.
놈이 울음소리를 내는 타이밍이 평소보다 훨씬 빠른 것으로 보아 나를 아주 우습게 여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몬스터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아무리 C급 헌터라지만 공격 스킬 하나 없는 C종 서포터니까.
약 100미터쯤 떨어진 곳에 덩치 큰 몬스터 한 마리가 나타났다.
페푸스킹.
거만하게 이쪽을 노려보는 놈 주위로 일반형 페푸스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하나, 둘.....
전부 아홉 마리였다.
페푸스킹까지 하면 열 마리.
평소 사냥하던 것보다 숫자가 많았다.
그 말은 즉 소환카드 능력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으면 나는 꼼짝없이 죽은 목숨이라는 뜻이다.
나는 카드소환 스킬을 사용했다.
집에서 보았던 대로 커다란 홀로그램판이 나타났다.
그곳에는 네 장의 카드가 뒤집혀 있었다.
나는 먼저 세린을 소환했다.
번쩍!
빛줄기와 함께 나타난 그녀의 발은 땅에 붙어 있지 않았다. 묘한 상태에서 메시지가 나타났다.
[초기 위치를 지정하십시오.]
마치 턴제 시뮬레이션 게임처럼 바닥에 선이 그어졌다.
다만 위치가 위치인지라 정확하게 싸움터를 보고 선택하기가 어렵다는 애로사항이 있었다.
‘아, 그렇지!’
나는 새로 얻은 또 다른 스킬인 ‘전장을 아우르는눈’을 떠올렸다.
그 스킬을 사용하자마자 더 높은 위치에서 전체 진영을 볼 수 있었다.
내 마음먹은 대로 시야의 높이와 각도까지 조절할 수 있다.
특정 위치를 줌인할 수 있는 것은 덤.
그야말로 ‘카드소환’과 찰떡궁합인 스킬이었다.
나는 검사인 세린을 우측 전방에 위치시켰다.
그 상태에서 나머지 세 명의 여자들도 소환했다.
번쩍! 번쩍! 번쩍!
이들의 위치는 각각 칸나가 좌전방, 세라 우하방, 엘린 좌하방으로 정했다.
세린과 칸나는 거의 붙어 있을 정도로 가깝게 두었고, 엘린의 위치가 세라보다 다섯 발짝 정도 앞서게 해두었다.
공격 마법을 써야 하는 그녀로서는 몬스터들과 거리가 너무 멀면 불리할 테니까.
반면 힐러인 세라의 스킬은 같은 편에게만 사용할 것이니 다소 거리가 멀어도 상관없었다.
나는 ‘텔레파시’로 명령을 내렸다.
- 세린과 칸나는 전방을 확실하게 막아! 엘린은 우회하는 놈들에게 파이어볼을 먹이고! 세라는 뭘 해야 하는지 알지?
- 네!언니랑 친구들이 다치지 않게 확실히 보호할게요!
전투가 개시되었다.
“커헝!”
두 마리의 들개형 몬스터가 달려들었다.
놈들은 세린과 칸나가 각각 한 마리씩 맡았다.
- 머리통을 노리면 돼! 쓰러진 뒤에는 복부를 공격해라!
- 네!
-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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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예상대로 이계의 여자들로 이루어진 파티는 E급 게이트에 들어와 몬스터들을 쉽게 제압할 정도의 실력이 있었다.
빡세게 하면 D급도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박동오가 허가를 내주지 않았으니 어쩔 수 없다.
이제 남은 것은 페푸스킹 한 마리밖에 없었다.
나는 마지막 명령을 내렸다.
- 엘린! 파이어볼!
- 네엡!
퍼엉!-
엘린의 스태프 끝에서 쏘아져 나간 불덩어리가 이미 여러 차례 공격을 당해 몸뚱이가 너덜너덜한 페푸스킹의 콧잔등을 때렸다.
“커허엉!-”
구슬픈 비명을 남기고 놈이 죽었다.
‘이제 결정석만 회수하면 되는구나.’
그 일은 세린과 칸나에게 맡기기로 했다. 아무래도 세라와 엘린은 몸집이 작고 나이도 어려서 몬스터 사체 가르는 일을 시키기가 좀 그랬다.
내가 텔레파시로 요령을 알려주자 세린과 칸나가 2인 1조로 결정석을 회수했다.
세린이 사체를 가르고 칸나가 결정석을 꺼낸다.
[전투에서 승리했습니다.]
[스탯 포인트 2를 얻었습니다.]
응?
스탯 포인트?
[스탯 포인트로는 소환카드를 업그레이드할 수 있습니다.]
“아, 그렇구나!”
인생이 바뀌고 처음으로 치른 게이트 전투는 이렇게 깔끔하게 마무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