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화 〉10화
3주가 지났다.
나는 그간 정말로 빡세게 게이트 공략을 했다.
그런데도 몸은 크게 힘들지 않았다.
잠자는 동안에도 내일 게이트 들어갈 생각에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으니까.
모든 게 잘 되고 있다. 계획대로 되고 있다는 것이 너무 즐거웠다.
이런 기분은 파티를 운영할 때는 거의 느껴보지 못한 것이었다.
하지만......
‘1억이라고······?’
물론 3주간 번 돈치고는 엄청나게 많은 돈이었다. 어떤 C급 헌터가 단 3주 만에 이렇게 돈을 벌 수 있겠는가?
기네스에 등재될 정도의 기록이었지만 나는 만족할 수 없었다.
‘일주일 동안 어떻게 1억을 마련하냐?’
정확히 말하면 7천만 원이다. 원래 있던 저축이 있으니까.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느 정도 여유 자금이 있어야 2억이라는 큰돈을 투자할 수 있는 법이다.
이 난관을 돌파할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바로 C급 게이트에 들어가는 것.
하지만 지금 카드 구성으로는 C급 게이트 공략이 절대 불가능했다.
그동안 얻은 포인트로 열심히 스탯을 상승시켰지만, 그래도 아직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았다.
여기서말하는 근본적인 변화란 바로 등급 상승.
카드 개념으로 말하면 일성이 이성이 되는 것이었다.
내가 이제까지 상승시킨 카드 능력치는 다음과 같았다.
<세린>
근력 15/ 민첩 10/ 건강 10/ 지능 5/ 지혜 5/ 매력 8
<칸나>
근력 10/ 민첩 15/ 건강 10/ 지능 3/ 지혜 3/ 매력 8
<세라>
근력 5/ 민첩 5/ 건강 10/ 지능 12/ 지혜 10/ 매력 6
<엘린>
근력 4/ 민첩 5/ 건강 10/ 지능 10/ 지혜 12/ 매력 6
전부 각자 클래스 특성에 맞추어서 능력을 상승시킨 것이다. 매력은 당장 어디에 쓸모가 있는지 확실하지 않아서 하나도 올리지 않았다. 이 여자들은 지금 그대로도 충분히 매력적이기도 하고.
‘애초에 능력이 워낙 똥이었던 건가?’
이만큼 스탯을 올려놓았는데도 등급이 오르지 않았다는 것은 기존 능력치가 아주 낮았다는 것을 의미했다.
하기야 이 여자들은 고블린과의 전투에서 엄청나게 헤맸었다.
다른 건 몰라도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은 기정사실이었다.
등급이 오르지 않는 이상 C급 게이트에들어가는 것은 무리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바로 카드 숫자를 늘리는 것.
이게 어떻게 해야 가능한 일인지 도무지 모르겠지만.
#
칸나는 요즘 멍하게 시간을 보낼 때가 많았다. 그녀가이렇게 된 계기는 바로 던전에서 정체불명의 남자를 보고 난 다음이었다.
이 세계에서 남자들은 숫자가 무척 적다.
과거에 출현한 대마물들이 남자들만 집중적으로 잡아먹어서 그렇게 되었다고 하는데, 그 과거가 너무 오래전이다 보니 전혀 실감을 느낄 수 없었다.
그냥 그렇다고 하니 그렇게 믿는 수밖에.
그 소수의 남자를 상위 클래스 길드가 차지하고 있었다.
그 길드에 속한 여자들은 남자들이 원하는 것을 다 줄 수 있으니까.
대다수의 이곳 여자들에게 남자란 환상 속의 존재나 다름없었다.
‘듣던 것과 너무 달랐단 말이지······.’
자신이 들어왔던 남자는 연약하고, 자기 치장을 좋아하며, 여자들에게 무척 도도하고 까다롭게 군다고 했었다.
하지만 던전에서 갑자기 출현했던 남자는 그런 이미지와 전혀 달랐다.
물론 약간 차가워 보이기는 했지만, 자신들을 무시해서 그렇다고 느낄 수는 없었다.
오히려 고블린들을 상대하며 난처해 하고 있던 자신들을 도와주었다.
그의 지령이 없었다면 얼마나 더 오래 시간을 끌었을지 장담할 수 없다.
그리고 고블린들이 그렇게약한 놈들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도 엄청 늦어졌겠지.
“칸나, 나 요즘 힘이 세진 것 같은데.”
그녀와 함께 있던 엘린이 그렇게 말했다.
말만 하는 게 아니라 집 안에 있는 테이블을 번쩍 들어 보이기까지 했다.
“그게 무슨 대수라고? 그거 엄청 가벼운 건데?”
“너한테나 그렇지! 이 힘만 무식하게 센 무투가야!”
“하아아······.”
엘린이 발끈하여 무식하다는 말을 했지만, 칸나는 거기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사실 자신이 무식하다는 건 이미 알고 있는사실이기도 하고.
‘요즘 좀 머리가 잘 돌아가는 것 같기는 하지만.’
힘에는 자신 없어 하던 엘린이 변화를 느낀 것처럼 요즘 자신도 생각을 할 때 머리가 예전보다 잘 돌아간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
큰 차이는 아니라서 무시하고 있었지만, 분명히 그런 변화가 있기는 한 것 같았다.
더구나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컨디션이 무척 좋았다.
그 시작점을 돌이켜보면 아무래도······.
“던전에 다녀온 다음 같아!”
엘린이 말했다.
“그때 고블린 사냥을 하고 온 뒤로 힘이 세졌어!”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응. 역시 사냥이 우리를 성장시킨 거야!”
“난 좀 다르다고 생각하는데······.”
“뭐가 다른데?”
“그 남자······.”
“설마 남자를 만나서 힘이 세졌다고 하고 싶은 거야? 네가 밝히는 줄은 알았지만 그 정도인지는 몰랐다, 칸나.”
“아니, 내 말은!”
남자를 제대로 만나본 적이 있어야 밝히고 말고 판단할 여지가 있는 것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칸나는 요즘 똑똑해졌다.
“음······. 그래도 네 말은 일리가 있어.”
힘자랑을 하던 엘린이 의자에 앉았다.
“한 번 사냥으로 힘이 세졌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거든. 원래 성장이라는 것은 매우 더디게 나타나는 현상인데.”
“그렇지? 그 남자랑 뭔가 관계가 있다니까?”
“그러면 뭐해. 다시 만나지 못하는데.”
던전에서 정체불명의 남자를 만난 지 3주가량이 지났다.
혹시 몰라 여기저기서 정보를 얻으려고 해보았지만, 남자에 대해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오히려 망상 속의 존재라고 핀잔만 들었다.
“우리 던전 가볼래?”
“던전?”
“그곳에서 만났었으니까 거기 가면 다시 만날 가능성이 있지않을까? 아무래도 그 가능성은 아주 희박할 것 같지만.”
“그래!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칸나는 자신이 조금 똑똑해지기는 했지만, 아직 멀었다는 것을 느꼈다.
“이제 우리도 슬슬 2차 사냥을 갈 때가 됐으니까 말이지. 세린과 세라한테 말해볼게. 언제 갈까?”
“내일 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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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린과 세라에게 물어본다던 엘린은 좋은 소식을 갖고 오지 않았다.
“집에 일이 있어서 못 나온대.”
“진짜?”
“그러면 모레는?”
“앞으로 일주일은 던전에 못 들어간다나 봐.”
“하아아······.”
칸나는 좀이 쑤셨다. 생각 같아서는 혼자서라도 던전에 뛰어들고 싶은데!
하지만 지난번에 고블린에게 곤란을 겪었던 걸 떠올려보면 썩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한숨 쉬지 마.내가 누구니? 방법을 찾아냈지.”
“방법?”
“응. 같이 사냥 갈 두 명을 구했어.”
“진짜? 그게 누구야?”
“제시와 리카.”
“제시? 리카?”
“너는 잘 모를 거야. 나도 최근에 알게 된 애들인데 던전 경험이 꽤 많아. 우리 사정을 이야기했더니 같이 가준다고 하더라.”
“잘됐네!”
“응. 내일 던전에 가자, 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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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나는 제시야.”
“나는 리카야.”
임시로 파티에 들어온 두명은 각각 쌍검을 다루는 검사와 드워프였다.
경험이 꽤 많다는 말답게 두 명에게서는 듬직한 기운이 풍겼다.
특히 등에 두 개의 검을 매고 있는 제시는 상당히 강해 보였다.
“나는 칸나야. 두 사람은 경험이 많다고 들었어. 고블린이랑은 많이 싸워봤니?”
“당연하지.우리가 늘 사냥하는 게 고블린인데.”
“와, 정말 듬직하구나.”
그렇다고 해도 이 근방 던전에는 주로 고블린밖에 나오지 않았다. 게다가 자신들 같은 초보에게는 더 높은 등급의 몬스터가 나오는 던전에 들어갈 자격이 없었다.
“그러면 지체하지 말고 가자!”
“너 정말 적극적이구나. 고블린 사냥하는 걸 좋아하니?”
“음······. 뭐,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칸나는 그것이 정체불명의 남자를 만나기 위함이라고는 말할 수 없었다.
여러 번 정보를 얻으려고 해본 결과 입을 다물고 있는 게 최선이라는 것을 배웠으니까.
세린과 세라가 빠진 4인 파티는 예전에 들어갔었던 고블린 던전으로 갔다.
예상대로 일 층부터 고블린 떼가 나타났다.
놈들을 사냥하면서 칸나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나 강해졌어······.’
힘이 세졌다는 엘린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효과는 자신만 누리고 있지 않았다.
펑!- 펑!-
“이것 봐! 칸나! 내 파이어볼 강해지지 않았니?”
“진짜야, 끝내준다.”
두 사람이 기대 이상의 능력을선보이자 제시와 리카도 칭찬했다.
“너희들 생각보다 강한데?”
“던전에 들어간 게 한 번밖에안 된다는 걸 믿을 수 없어. 그냥 재능이 뛰어난 거 아닐까?”
칸나와 엘린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
그녀들은 깨닫고 있었다. 이것이 단지 재능이 뛰어나서 생긴 변화가 아니라는 사실을.
던전에 다시 들어오기 전에는 의심뿐이었지만, 이제는 확신할 수 있었다.
자신들을 성장시킨 것은 그 남자가 맞았다!
“앗!”
가장 앞에서 걸어가던 제시가 문득 큰소리를 냈다.
“왜 그래?”
칸나가 궁금했지만, 제시를 놀라게 한 것의 정체는 오래지 않아 드러났다.
“케르르륵-”
이제까지 보던 평범한 고블린과는 전혀 다른 몬스터가 나타난 것이다.
덩치가 세 배는 크고, 풍기는 마기도 장난이 아니었다.
“이,이거 설마······.”
“맞아! 홉고블린이야!”
네 명의 여자는 절망했다.
설마 이 던전에 홉고블린이 나올 줄이야!
그런 말은 한 번도 듣지 못했는데!
고블린을 상대하기는 쉽지만, 홉고블린은 격이 다른 몬스터다.
“케륵!”
“케르르륵!”
후퇴해야겠다고 생각한 네 명이 뒷걸음질을 쳤을 때, 문득 길이 막혔음을 깨달았다.
어느 정도 지능을 가진 고블린들이 바위를 옮겨서 퇴로를 막아버린 것이었다.
애초에 이곳은 함정으로 만들어진 특수한 공간이라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여기서 이렇게······.’
“허무하게 죽는 걸까?”
칸나가 그렇게 생각했을 때였다.
갑자기 벽 한쪽이 이지러지더니 일렁이는 구멍이 생겨났다.
잠시 후, 그 구멍에서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아!”
그렇다.
그는 지난번에 보았던 그 남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