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7화 〉17화 (17/92)



〈 17화 〉17화

“으음......”

내가 눈을 뜬 곳은 파티 사무실이었다.
깨어난  깜짝 놀랐다.


‘왜 여기서 잤지?’

그것도 소파에서 편하게 누워 잔 것도 아니고, 책상에 엎드려 잠이 들었다.
입가에 침을 닦고 주변을 둘러보는데 가까운 곳에 술병이 보였다.
소주병.
3분의 1쯤 남아 있고 잔이 없는 걸 보니 병나발을 불었나 보다.

빈 소주병은 테이블 쪽에 몇 병  있었다.

명색이 헌터이다보니 숙취는 많지 않은 편이었다.
다만 빠르게 현실감각이 돌아왔다.

“와, 씨발!”


나는 내 앞에 펼쳐진 노트북 화면을 보았다.
절전모드에 들어갔다가 내가 움직이면서 다시 켜진모니터 화면에서 헌터 관리소 홈페이지가 나타났다.


하나씩 기억이 나기 시작했다.


나는 싸한 기분으로 어제 관리소에 보낸 메일을 확인했다.

‘파티명 온리갓.’


온리갓은 씨발,  마이 갓이다.


‘이게 다가 아닌 것 같은데?’

나는 <코리아헌터즈> 사이트로 들어갔다.
이곳에는 어제 사무실로 온 이수연 기자의 인터뷰 동영상이 바로 올라와 있었다.


조회 수가......

“실화냐?”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조회 수가 자그마치 12만이었다.
영상을 찍고 가서 바로 업로드하지는 않았을 테니, 짧은 시간에 엄청난 조회 수를 기록한 것이었다.
이 추세는 당분간 계속될 테니 조회 수는 기록적으로 올라갈 확률이 높았다.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로 화제를 모을 영상인가?’


그렇지.
나는 내 불안감의 진짜 이유를 떠올렸다.

그리고 댓글 화면으로 들어갔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쓴 댓글이 베스트 댓글로 올라있었다.
대댓글이 5천 개나 달려 있다.

“아아......”

술기운이 남은 것도 아닌데 머리가 띵했다.

‘잘 살아보려고 했는데 시작부터 왜 이리 꼬이냐?’


살다 보면 이동구나이수연 같은 빌런은 수시로 만나게 마련인데.
거기 발끈해서 너무 크게 반응한 게 아닌가 싶었다.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내가 댓글을 확인했다.


- 그래, 비웃을 거면 마음껏 비웃어라. 나는 X밥이었지만 영원히X밥으로 남지는 않을 거다. 내가 새로 만든 파티 이름은 온리갓이다. 온리갓. 나는 이 바닥의 유일한 신이 되어 너희들을 굽어볼 것이다. 선견지명이 있는 자들은 모두 내 밑으로 모여라. 늦게 모이면 광명의 겻불도 쬘  없을것이다. 지금 비웃는 너희들 모두 나를 경외할 날이 올 것이다. 곧! 온리갓 포에버!!

‘아, 씨발......’

나이 39살 먹고 이게 뭔 짓이냐?


욱하는마음에 파티명을 온리갓으로정하고 관리소에 메일을 보냈다.
그러고 나서 <코리아헌터즈>에 접속했는데, 내 인터뷰 영상이 올라가 있었다.
거기 달린 댓글들은 가관이었다.

- ㅋㅋㅋ 아재 멀쩡하게 생겨가지고 왜 그래?
- 저거 겉은 멀쩡해도 속은 썩었을 거야. 파티 해체되고얼마나 속이 상했을까. 이해는 하지만 몸 함부로 굴리는 건 아니지.
- 탈퇴한 파티원들이 호박씨 깐 거 보고 싶으면  동영상 클릭해라. -->
-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네. 가끔 머리 식히러 핫바지들 인터뷰 동영상 보는 것도 쏠쏠하다니까?

대강 이런 댓글들이 있었고, 내가 댓글을 단 뒤에 그 대댓글들은 조롱의 강도가 훨씬 세졌다.


- ㅋㅋㅋㅋㅋ 나 오늘 일년치 웃을 거  웃는다. ㅋㅋㅋㅋㅋ
- 온리갓. 우와, 아재 머리에서 나온 것치고는 참신하네. ㅋㅋㅋㅋ
- 신이시여! 경배하나이다! ㅋㅋㅋㅋ
-수능 합격하게 해주세요.
- 여자친구 생기게 해주세요. 아멘
- 나는 로또!
- 왜 사냐, 인간아. 오늘이라도 한강에 뛰어들어라.


‘이 새끼들이......’

원래 나는 어제 일이 생각나 몹시 부끄러웠었다.
재빨리 관리소에 연락해서 파티 이름 정정 신청을 할 생각이었고.
하지만 여기 적힌 대댓글들을 보자니 열이 뻗쳤다.
이왕 이렇게  거 갈 때까지 가보자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자는 박동오.

“여보세요?”
- 야, 너 괜찮냐?
“뭐가?”
 그 인터뷰 영상 봤다. 지금 우리 사무실에도 그 얘기로 난리가 아니야.
“......”
- 진짜 파티 이름 그걸로 할 거냐? 온리갓?
“하아......”
- 잘 생각해. 나도 인터뷰 영상 보니까 화나더라. 여자 거기 갈 때부터 마음먹고 간 거야. 이 바닥에서 이런 일 비일비재하니까 금방 잊혀질 거야. 파티명 무난한 걸로 바꾸고그냥 조용히 사냥 다니면 돼.
“아니.”
응?
“안 바꿔. 여기서 물러나면 안 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 그게  소리야?
“어차피 나는 한 번 죽었었어. 다시 사는 인생은 갈 때까지 가 볼 거다.”
- 야, 태웅아.
“잘됐지, 뭐. 어차피 곧 유명해질 거였으니까 미리 유명세 좀 치른다고 생각하지 뭐.”
-음......


박동오는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 네 말이 맞아. 요즘 세상에는 헌터들 네임 밸류도 중요하니까. 미리 얻어맞는다고 생각하고, 앞으로 잘나가면 되지 뭐. 멋있다, 조태웅! 역시 내 친구다!

위로할 때는오히려세게 나가고 싶었는데, 막상 격려를 받자 불안해졌다.
진짜 나 이대로 괜찮은 걸까?

그때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수십 개의 새로 온 메일.
모두 파티 사무소 쪽으로 온 것이었다.
메일함을 열어본 나는 짜르르 전율을 느꼈다.
그것들 대부분이 파티원 모집에 응모해온 것이었으니까.

“동오야, 내가 나중에 연락할게. 지금 확인할   있어서.”
- 응~ 알았다. 파이팅! 힘내라,  친구!

‘진짜 세상일 어디로 튈지 모르겠네.’

만약 어제 인터뷰를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그게 화제가 되지 않았다면, 이렇게 많은 응모 메일을 받을  있었을까?
나는 부끄러움과 분노 같은 감정을 제쳐두고 메일을 하나씩확인하기 시작했다.


#


“하하하하하!!”

이동구는 배꼽이 빠져라 웃어댔다.

“이 새끼, 이거 실화냐?”


그가 보고 있는 것은 <코리아헌터즈>에 올라온  인터뷰 영상이었다.
어찌나 화제가 됐는지 24시간도  되었음에도 조회 수가 15만에 달했다.

“진짜 순진한 줄은 알았지만. 어휴, 쯧쯧.”


그는 조태웅의 파티에 속해있던시간이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기대치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것을 배웠다.
처음에는 C급 헌터라고, 마음대로 휘두를  있을  알고 들어간 파티였는데, 파티장인 조태웅이라는 헌터가 가진 지식과 노하우는 상상했던 이상으로 넓고 깊었다.
이런 식으로도 게이트를 공략할 수 있구나 하고 생각했던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파티원들도 모두 파티장을 존경하고 있어서 마음대로 굴 수가 없었다.
몇 번 선동해보려고 해보았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항상 싸할 뿐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파티 안에 있을 딴지를 많이 걸었다.
헌터에게는 등급이 깡패라는 말이 있으니까.
아무리 자신이 개념 없는 언행을 하더라도 C급 파티장이 자신에게 뭐랄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조태웅은 거기 굴하지 않았다. 분배에 있어서는 분명히 많은 부분을 양보해주었지만, 전술쪽으로는 절대 양보하지 않았던 것.
더 분한 것은 항상 그의 말이 옳았다는 사실이었다.

‘새끼가 융통성 없이......’

자신의 면을 조금만 세워주었더라도 분탕질을 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조태웅은 여전히 모를 것이 분명하다.
파티원들이 하나둘 떨어져 나간게 자신이 내부에서 조금씩 작업한 결과였다는 것을.
이유는 딱히 없었다.
단지 조태웅이 보기 싫었으니까.
C급인 주제에 답 없이 열심히 사는 것을 보니 괜히 괴롭혀주고 싶었다.
자신의 인생관과는 너무 다른 삶을 살고 있었으니까.
그게 옳지 않다고 대놓고 말할 수 없으니 눈으로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이렇게 망가진 걸 보니 마음이 짠하네.’


“그래도 코인은 얻어타야지.”

조회 수가 이렇게 많이 나온다는 것은 어쨌거나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여기 숟가락만 얹으면 크게 관심을  수 있다.


그는 크크거리면서 댓글을 달았다.

- 형님, 저 <<슈퍼스타즈>> 이동구입니다. 여전히 열심히 하시는 모습 보니까 제 가슴이 다 뭉클하네요ㅠㅠ 온리갓 파이팅입니다.

“하하하하하!! 온리갓이 뭐냐, 온리갓이.”

이동구는 수시로 이 영상을 체크하면서 어그로를 끌고 관심을 가져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눈앞으로 지나가는 한 사람이 있었다.
인간 같지 않은 몸매와 포스를 지닌 한 여자.
자기뿐만 아니라 주위의 모든남자들이 그녀에게 시선을 주고 있었다.


이동구는 선글라스를 쓰고 타고 있던 포르쉐에서 내렸다.


“김연화 씨!”

여자가 고개를 돌렸다.
이동구는 순간 심장이 멎는 듯했다.


‘어떻게 된 게 봐도 봐도 예쁘냐?’


김연화는 이동구를 보자마자 미간을 찡그렸다.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나요? 저는 그쪽 파티에 들어갈 생각 없어요.”
“아니, 오늘은 그 말씀 드리러 온  아닙니다. 아직 식사 전이시죠? 제가 식사 대접할 테니 함께 가시죠.”

이동구는 새로 뽑은 포르쉐를 툭툭 치면서 말했다.
하지만 김연화는 자동차로는 시선도 주지 않았다.


“저 밥 먹었어요. 그리고 저 들어갈 파티 정했으니까 더는 찾아오거나 연락하지 마세요.”
“네? 그게 어딥니까?”

김연화는 살짝 부끄러워하면서 대답했다.


“오, 온리갓...... 파티예요.”
“온리갓?”

이동구는 화들짝 놀랐다.

“온리갓. 진짜 그 온리갓 말이에요? 조태웅  꼰대새끼가운영하는?”

돌연 김연화의 표정이 굳었다.
성큼성큼 이동구에게 다가오더니 말했다.

“누구더러 꼰대라는 거예요? 그분 이름 함부로 입에 올리지 마세요.”
“네?!”

김연화는 등을 돌리더니 찬바람을 씽씽 날리며 가버렸다.
이동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뭐야, 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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