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화 〉26화
아쉽지만 차은아와는 식사를 같이 할 수 없게 되었다.
이것은 내 계획에서 어긋난 일이었지만 어쩌면 다행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왜냐면 차은아와 차은미가 자매인 이상 이 둘을 한꺼번에 공략하려고 하면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으니까.
한국의 보편적인 정서상 자매가 한 남자와 같은 침대에서 섹스를 한다는 것은 받아들여지기 힘든 일이다.
물론 그것은 한국뿐만이 아니라 세계적인 정서로도 그렇겠지만.
아무튼 아무리 시스템상으로 호감도가 높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일 수밖에 없었다.
‘이건 미연시 게임이 아닌데……’
나는 나도 모르게 파티원을 구하는 일을 섹스 대상을 구하는 것과혼동하기 시작한 자신을 속으로 탓했다.
뭐, 내가 연동된 시스템이 단지 헌터 능력만 신장시키고 파티를 키우는 데만 국한되지 않고, 내가 여자들한테 인기 있는 인생을 살게 한다는 목적도 함께 부여된 만큼 크게 틀린 생각이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암무튼 미연시적인 관점에서 자매인 두 명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 대상이 한 명으로 좁혀졌다는 것은 그리 나쁜 일이 아닐지 몰랐다.
오히려 긍정적인 신호일지도.
게다가 차은미는 나와 식사하는 것을 전혀 거북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굉장히 원하는 얼굴이었다.
이런 것은 일반적인 여자애의 반응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오늘 처음 만난, 그것도 파티장과 파티원이라는 그리 편하다고만은 할 수 없는 입장 차이니까.
더구나 나이 차가 까마득하게 나는데, 이렇게 단둘이 식사하는 것을 반길 수는 없는 것이었다.
나는 생각난 김에 그녀들과 심리적인 거리감을 줄이기 위해서 제안했다.
“사실 두 분 전에 먼저 가입이 확정된 사람이 한 명 있거든요. 그애랑 제가 친해져서 오빠 동생 사이가 되어버렸어요. 물론 공적으로는 파티장이라고 하는 게 맞겠지만 우리끼리 있을 때는 편하게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하거든요. 그게 편안한 분위기에서 파티가 오래 지속되게 하는 비결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내 경력이 길다는 것이 이런 멘트를 들먹일 때는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사실 파티장과 파티원들의 관계가 지나치게 가까우면 오히려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았다.
당연히 트러블이 잦아지고, 파티원이 파티장 알기를 우습게 알아버리니까.
하지만 새로 시작되는 인생에서는 그런 패러다임이 모두 소용 없었다.
‘호감도’라는 깡패 시스템이 있으니까.
“아, 그러면……”
자매가 서로 얼굴을 마주보았다.
“괜찮을까요? 저희는 좋은데……”
차은아가 망설이면서 말을 했다.
“괜찮아요. 편한 게 제일이니까. 한 사람한테만 오빠라고 부르라고 하는 건 조금 그렇잖아요. 이왕이면 호칭은 통일하는 게 좋죠.”
나는 내가 하는 말이상식에 부합하는지 여부를 신경 쓰지 않고 그렇게 밀어부쳤다.
오빠 소리를 듣는 것은 남자 입장에서는 결코 나쁜 일이아니다.
오히려 이렇게 예쁜 여자들이 오빠라고 불러 준다면 정말 기분이 좋을 것이다.
“그러면……”
차은아가 목소리를 낮추더니 부끄러운 기색으로 말했다.
“오…...빠.”
아마도 그녀에게는 친오빠가 없는 모양이었다.
주위에 그렇게 부를 수 있는 남자가 많지 않은 듯도 하고.
어쩌면 쉬운 이 호칭을 이토록 어렵게 생각하다니.
물론 그런 점이 참을 수 없을 만큼 사랑스럽기는 하지만.
“오빠.”
반면 차은미는 쉽게 이 호칭을 사용했다.
뭔가 차은미와는 성격이나 타입에서 확연한차이가 나는 듯하다.
차은미의 오빠 멘트는 참으로 마음을 간지럽게 했다.
아름다운 두 자매에게오빠 소리를 듣는 것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기분 좋은 일이었다.
“그러면 아쉽지만……”
나는 차은아를 보면서 말했다.
“죄송해요. 취소할 수 없는 일정이라서요……”
“괜찮아요. 오늘만 날이 아니잖아요. 앞으로 쭉 같이 볼 건데, 식사 같은 건 언제든 할 수 있죠.”
내 말이위로가 되었는지 차은아가 아쉬운표정을 지우고 미소 지었다.
“네, 맞아요. 앞으로 식사할 기회는 많이 있겠죠.”
“은아 씨는 지금 보내드리는 걸로 하고 은미 씨는 저랑 가시죠. 혹시 뭘 좋아하세요?’
“저는……”
차은미가검지를 입술 아래에 대고 고민했다.
“오늘은 분식이 먹고 싶기는 한데……”
‘와……’
정말 소박하구나.
보통 파티를 운영할때 파티장이 회식을 하자고 하면 고급스러운 메뉴 이름들이 줄줄이 나오기 마련인데.
실수입은 따라가지 못하는데 헌터라고 눈만 높아져서 그런 식으로 나오곤 했다.
‘분식이라니……’
차은미의 입에서 이 멘트가 나왔다는 것은 그녀의 헌터 경험, 나아가서는 사회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오빠라고 부르라고 한 마당에 그런 것을 따질 생각은 전혀 없었다.
사실 나도 분식을 싫어하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파티장 입장에서 새로 영입한 파티원과 처음 식사를 하는 건데 떡볶이랑 오뎅만 먹기는 좀 곤란하지.
“제가 피자 잘하는 가게 아는데 같이 가실래요? 거기 사이드 메뉴로 튀김이 있으니까 그것도 같이 먹으면 되지 않을까요?”
내 제안에 차은미가 양 손을 번쩍 들었다.
“네! 좋아요!”
이게 애니메이션이었으면 아마도 그녀 입가에서 침이 흘러내리는 것을 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정도로 차은미는 흥분한 감정을 드러냈다.
배가 많이 고픈 모양이었다.
“너 파티장님한테 너무 무례하게 굴면 안 된다?”
“파티장님이 아니지, 언니~ 오빠라고 부르라고 하셨잖아.”
“아, 그렇지?”
차은아는나를 멍하게 보더니 한 가지 제안을 했다.
“파티장 님도 저희한테 말 편하게 하세요. 저희만 오빠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응, 알았어. 그리고 걱정하지 마. 딱 보기에도 은미는 예의 발라 보이는데, 뭘.”
“그쵸? 그쵸?”
이런 반응이 참으로 어린아이 같다만.
어쨌든 귀여우니 됐다.
귀엽고 성인이면 깡패지.
차은아가 먼저 사무실에서 나간 뒤에 차은미와 나도 몸을 일으켰다.
전에 운영했던 파티 사무실과 이 사무실의 거리가 멀지 않은 탓에 나는 이 근처 맛집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차은미에게 가자고 한 피자집 또한 내 단골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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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웅이 왔니? 너 오랜만이다.”
피자집 주인이 내게 반갑게 인사했다.
이 피자집에 다니기 시작한 지도 어언 10년이 넘었다.
처음에는 작은 가게로 시작했지만 점점 맛있다는 소문이 나서 가게를 확장한 나머지 지금은 직원을 다섯 명이나 두고 있었다.
나는 이 가게의 성장을 쭉 가까이에서 지켜 본 셈이었다.
주인은 환갑을 목전에 둔 아저씨였고 나와는 하도 얼굴을 자주 본 나머지 꽤나 친해진 상태였다.
이 피자집은 나날이 성장을 했지만 내 파티는 완전 내리막길을 걸은 셈이었다.
“왜 이렇게 오랜만에 왔어?”
주인은 내게 처한 자세한 사정을 모르고 있었다.
내가 한 차례 파티 사무실을 폐업했다가 최근에 다시 열었다는 사실을.
나는 그 사이 그야말로 천국과 지옥을 오갔지만, 사실 기간으로 따지면 얼마 되지 않는다.
모든 일이 불과 한두 달 사이에 일어난 일들이었다.
“제가 사실 파티 운영이 어려워서 한 번 폐업했었거든요. 최근에 다시 사무실을 얻어서 오픈했어요.”
“아~~ 그래? 그러니까사무실 옮겼다는 말이지?”
피자집 주인은 대수롭지 않게 말을 했다.
하기야 따지고 보면 그 말이 틀리지 않았다.
한두 달 간격을 두고 파티사무실을 닫았다가 다시 연 것으로 볼 수도 있었다.
물론 파티 이름이 바뀌고 멤버도 싹 바뀔 예정이지만, 그런 일은 어찌 보면 이 바닥에서는 흔한 일이었다.
나 역시 지난 15년 동안 파티를 운영하며 숱하게 멤버가 바뀌었으니까.
바뀌지 않은 사람은 오로지 파티장인 나 하나뿐이었다.
‘그렇구나……’
나는 이런 식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가볍고 모든 게 쉬워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왠지 이곳에 오기를 잘한 것 같다.
“야~ 너 드디어 데이트 하는 거냐? 나 너 여자랑 단둘이 오는 거 처음 보는데?”
눈치 없는피자집 주인 아저씨가 메뉴판을 가져다주면서 그렇게 말했다.
겉으로 보기에도 나이 차이가 많아 보일 텐데.
당연히 이런 말은 차은미에게 실례였다.
“그건 그렇고 너 다이어트 했냐? 사람이 확 바뀌었네. 살 빠지니까 훨씬 젊어보인다야.”
아, 그런가?
나는 단순히 차은미와 내가 무척나이 차이가 많이 나고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삼촌 조카 사이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피자집 주인의 말을 듣고 보니 그 사이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주인은 내가 살을 빼서 젊어 보인다고만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나는 실제로 머리숱도 늘렸다.
아이템을 써서 지방을 크게 감소시켰고 거기 더불어 지난 한 달간 빡세게 게이트를 돈 덕분에 추가로 살이 더 빠졌다.
게다가 오늘은 차림새도 그럴 듯하지 않은가?
나는 조금은 자신감을 가져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어디까지나 오늘 목적은 단순한 식사에만 국한하지 않았다.
차은미 쪽을 보자 흥얼거리면서 메뉴판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 귀엽다.
‘이애랑 섹스할 수 있다면……’
바지 속의 자지가 자연스럽게 발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