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화 〉29화
그렇게 살았던 것도 다 나를위해서 그랬던 것인데, 결국은 스스로를 함정에 빠뜨리는 결과만 낳고 말았다.
“무슨 생각 하세요?”
이연화가 운전을 하면서 그렇게 물었다.
“예전 일.”
“예전 일이요?”
“실패담 같은 거. 새로 만든 파티는 절대 실패하지 말아야 한다 이런 생각.”
“아……. 저기.”
이연화가 뭔가 생각났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게다가 굉장히 말을 꺼내기 어려워한다는 느낌이었다.
“할 말 있어?”
“그...... 파티 이름 말인데요.”
“응. 온리갓.”
입에 담고 나니 새삼 부끄러운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예전처럼 이불을 걷어차고 싶어질 정도는 아니다.
이유는 아마도 차은미가 나와 대화하면서 이 이름을 여러 번 입에 담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녀는 파티 이름에 대해 딱히 불만이나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없었으니까.
되레 마음에 들어하는 것같은 느낌이었다.
소파에서 섹스하면서 그녀가“온리갓에 들어가길 정말 잘했어요!” 하고 소리친 일이 생각나 입가에 저절로 웃음이 머금어졌다.
“그, 혹시 바꿀 생각은 없으신지…….”
“없어.”
“아…….”
나는 어제 일을 생각하느라 이연화의 실망하는 표정을 보지 못했다.
온리갓, 온리갓,
여러 번 말하다 보니 입에 붙는 느낌이다.
애초에 이보다 더 부끄러운 이름을 가진 파티나 길드 명은 얼마든지 있었다.
숫자 자체가 어마어마하게 많으니까, 새로운 이름 찾는 것이 더 힘들 정도였다.
어쩌면 ‘온리갓’이라는 이름이 이미 사용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이 운이 좋았을지도.
물론 사용 중인 이름이었다면 다른 이름을 고민했을 것이고, 그랬다면 아마 덜 부끄러운 이름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것도 아닌가…….’
파티 이름을 정했을 때의 상황을 돌이켜보니 꼭 그런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때 술에 취해있었고, 감정적으로도 격해져 있었으니까.
어쩌면 온리갓이 선방이었을지도.
“괜찮아, 온리갓도. 자주 말하다 보면 익숙해진다니까?”
내가 계속 온리갓, 온리갓 하고 말하자 이연화의 얼굴이 점점 더 빨개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건 그렇고,
나는 자연스럽게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훈련실에 가자고 했기 때문에 이연화는 오늘 편한 복장으로 나왔다.
하지만 그 편한 복장이라는 것이 내 기준에서는 무척 섹시했다.
이연화 하면 가장 장점이랄 수 있는 부분이 바로 몸매 아니겠는가?
타이트한 레깅스 스타일의 하의와 가슴이 부각되는 상의는 남자의 자지를 불끈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었다.
본인은 얼마만큼 의식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차 안이라서 그렇지 거리를 걷기라도 했으면 남자들의 음흉한 시선을 한껏 모았을 것이 분명했다.
“왜 갑자기 훈련실에 가자고 하신 건지 물어도 될까요?”
“훈련실에는 훈련하러 가는 거지, 다른 이유가 있겠어?”
“물론 그건 그렇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훈련을 목적으로 하시는 건지 모르겠어서요. 혹시 파티 활동을 개시하기 전에 전술적 합을 맞추기 위해서인가요?”
“아니, 그것보다...... 너 아직 스킬 가진 거 없지?”
“네……. 죄송합니다.”
“아니, 경력이 짧으면 스킬이 없는 거야 흔한 일이니까 나한테 사과할 필요 없어. 다 알고 뽑은 건데, 뭘.”
이연화의 잠재력은 A였다.
당장 스킬 한두 개 있고 없고는 전혀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뜻.
하지만 본인은 이 사실을 모르니 당연히 주눅 들 수밖에 없었다.
“내 눈에는 보이거든.”
“네?”
밑도 끝도 없이 꺼낸 내 말에 이연화가 놀랐다.
“너는 당장 계발할 수 있는 스킬이 있어. 그걸 해보려고 훈련실에 가자고 한 거야.”
“아……. 저 때문인가요?”
이연화는 생각지도 못했다는 표정이었다.
“당연하지. 나는 어차피 훈련실에서 경험치를 쌓을 수 없는 타입이야. 가능이야 하겠지만 효율이 낮다는 뜻이지.”
“네…….”
보통은 의아해해야 한다.
당장 계발할 수 있는 스킬이 있는 것 같다와 같은 말은 사기꾼들이나 입에 담는 거니까.
더구나 막 가입한 파티 파티장이 이런 말을 하면 일단 의심하고 볼 일이었다.
하지만 이연화는전혀 그런 기색이 없었다.
되레 오늘 훈련실에 가자고 한 것이 자기 때문이라는 것에 기뻐하는 모습이었다.
“오빠가 저를 위해 일부러 시간을 내주셨다니 기뻐요.”
나도 어차피 할 일이 없었으니까 겸사겸사 떠올린 일이었는데 이렇게 말을 하니 부끄러웠다.
‘뭐.’
실제로 이연화가 스킬을 얻게 된다면 확실히 그것은 그녀 입장에서 고마워할 일이기는 했다.
‘진짜 되는지 한번보자고.’
진짜 되면 대박이다.
#
“시간은 얼마나 이용하실 건가요?”
직원의 물음에 나는 고심했다.
“일단 2시간 해주세요. 연장도 가능하죠?”
“물론입니다. 몬스터 없이 스킬 훈련만 하신다고 하셨죠? 요금은 시간당 30만 원, 총 60만 원입니다.”
씨발.
진짜 비싸네.
잘나가는 클랜이나 길드, 그리고 소수의 파티는 헌터를 모집할 때 훈련실 이용을 조건으로 걸기도 한다.
자기 소유의 건물 내에 훈련실이 마련된 경우도있지만, 그런 경우는 극소수에 불과하고, 대개 조건은 정해진 시간만큼 훈련실 비용을 지원한다는 식이었다.
당연히 그런 계약 조건을 가진 클랜, 길드, 파티는 특정 훈련실과 계약이 되어 있고.
나도 혹시나 해서 알아본 적이 있는데, 비용이 감당이 안될 것같아서 포기했다.
애초에 소규모 파티에서 계약 조건에 훈련실 이용비 지원을 집어넣는 것은 오버이기도 했고.
그리고 지금 들은 금액은 그때보다 약 두 배 가량 치솟은 금액이었다.
이해는 한다.
당연히 시간이 흐른 만큼 훈련실에 적용된 기술 수준도 올라갔을 것이고, 헌터들 간의 경쟁이 치열해지면 수요가 늘어난 것도 비용 상승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그래도 너무 비싸잖아.’
게다가 연장했을 때 비용이 할인되는 것도 없었다.
기껏 따라오는 서비스는 음료 무료 제공이 전부였다.
“제가 내겠습니다.”
내가 잠시 썩은 표정을 짓고 있자 이연화가 나서며 말했다.
“아니야. 내가 내야지.”
“제 훈련 목적으로 온 것인데요. 파티장님께 부담을 드릴 수는 없습니다.”
평소처럼 오빠라고 부르지 않고 ‘파티장’이라고 불린 시점에 내게는 팍 책임감이 솟구쳤다.
물론 이연화가 그런 의도를 담아 말한 것은 아니겠지만.
따지고 보면 나름대로 스펙이 좋은 파티원을 영입했음에도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훈련실 이용 요금 정도는 당연히 내가 내야 했다.
이연화의 성장은 곧 파티의 성장을 뜻하니까.
게다가 우리는 시스템으로 묶인 만큼 끝까지 같이 갈 확률이높았다.
이런 일에 돈을 아낀다는 것은 포부가 있는 파티장이 할 일이 아니었다.
나는 이연화가 더 나서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지갑을 꺼냈다.
카드로 계산하고 더 이상 썩은 표정도 짓지 않았다.
“가자.”
“네......”
이연화는 못내 마음에 걸리는 표정이었지만, 그녀도 너무 순진한 것이다.
갑자기 불러내서 훈련실에 가자고 했으면 자기가 요금을 내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물론 그녀가 나를 생각하고 대하는 감성은 단순히 소속 파티장을 대하는 것이아닐 것이다.
그 이상으로 생각하니까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것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은 나와 섹스까지 했으면서도 딱히 소유욕이 있어보이지는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새로 영입할 파티원들이 여자라는 것을 들어도 그런 내색은 비치지 않았다.
‘이유가 있는 것 같은데.’
따지고 이연화와 연동된 이세계의 여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들은 종종 내게 노골적인 호감을 드러냈지만, 혼자서 나를 독점하려는 듯한 기색은 없었다.
‘그쪽 세계의 사정과연관이 있는 거겠지.’
나는 그것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볼 필요성을 느꼈다.
아마도 이세계 쪽의 사정이 그쪽의 인물과 연동이 된 이연화에게도 영향을 미친 게 아닐까 싶었다.
‘어쨌든.’
나는직원의 안내를 받아 이연화와 함께 훈련실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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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네.”
뭐라고 할까?
대단찮은 느낌은받을 수 없는 공간이었다, 훈련실은.
단지 직원이 따라와서 가동시킨 기계, 마치 에어컨처럼 생긴 기계가 작동된 뒤에는 이전과 다른 분위기가 감지되기는 했다.
“환경이 완전히 바뀌기까지는 30분 정도 걸립니다.”
그러면 요금도 30분 뒤부터 계산해서 받든지!
뭔가 헌터들을 대상으로 영업을 해서 그런지 몰라도 받는 돈의 수준에 비해서 서비스의 질이 참 낮았다.
이러는 데도 수요가 계속 있으니까 배짱을 부리는 것을터다.
그리고 훈련실을 자주 이용하는 헌터들은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거나, 성장에 목을 매는 타입일 테니 그런 건 신경도 쓰지 않을 게 분명했다.
에어컨처럼 생긴 기계가 컨버터, 마나 생성기 역할을 하는 것 같았다.
뭔가 이전에 내가 알아봤을 때와 좀 많이 바뀌기는 했다.
그때는 훈련실 자체가 특수 소재를 사용해서 건축되는 방식이었는데.
어쨌든 직원의 말대로 기계가 작동된 뒤부터 공기가 천천히 바뀌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