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화 〉58화
여자들이 화장실에 가면 남자보다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리고 아마 얼굴이 붉어진 자신을 확인하고 화장을 고치는 시간이 필요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너무 늦어졌다.
10분이 훌쩍 지나 15분이 될 정도였다.
나는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고, 때마침 요의가 느껴져 몸을 일으켰다.
용변을 보고 난 뒤에 여자직원에게 차은아가 어떤 상황인지 확인해 달라고 하면 될 것이었다.
그렇게 걸음을 옮긴 나는 여자 화장실과 남자 화장실의 갈림길 앞에서 뜻밖의 메시지를 맞닥뜨렸다.
[차은아는 지금 당신에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응?”
이게 대관절 무슨 뜻이지?
나는 와인을 마셔서 몽롱한 기분으로눈앞에 나타나 메시지를 해석해야 했다.
"......"
나는 차은아가 들어가서 여태 아직 나오고 있지 않은 여자 화장실 쪽을 바라보았다.
메시지를 해석하자니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은 아무래도 섹스할 준비가 되었다는 뜻 같았다.
그건 말고는 해석할 여지가 없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이런 타이밍에 이 소식을 알린 것일까?
이것이 기계적으로 나타나는 메시지라면 그냥 넘기겠지만 그런 것도 아니기 때문에 나는 신기하게 여겼다.
그때 이쪽을 향해 지배인이라는 남자가 걸어왔다.
나는 지배인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조금 당황했다.
뭔가 타이밍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차은아가 화장실에 있는 상태에서 왜 그녀가 나에게 마음을 전달할 준비가 되어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행동에 나설 필요성이 있다고도 생각했다.
물론 그 행동이라는 것이 공중도덕에 위배되는 것이긴 하지만, 더구나 이런 고급식당의 화장실에서 할 만한 행동은 더더욱 아니라는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식사는 잘 하셨습니까?"
"네, 음식이 아주 맛있던데요."
나는 약간 얼굴을 찡그리고 대답했다.
여전히 어떤 의도로 그가 나에게 팬이라고 했는지 확신할 수 없다.
내가 일반인에게 얼굴을 알린 것은 그 굴욕적인 인터뷰 영상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직원에게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헌터님의 팬입니다."
"아, 네."
그의 의도를 모르므로 나는 애매하게 대답했다.
"저는 헌터님이 사람들에게 부당하게 공격을 당했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어려운 환경에서 노력을 통해 여기까지 왔기 때문에 헌터님의 마음을 잘 압니다."
나는 이야기의 방향이 조금 내가 예상했던 것과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
"사람들은 헌터님이 돈 때문에 무리했다고 함부로 말하지만, 헌터님은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자신의 운명을 바꿔보려고 하셨던 것 아닙니까?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저는 세상에 결코 많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진지한 표정의 지배인이 말을 이었다.
"저는 앞으로도 언제나 헌터님을 응원하겠습니다. 그리고 헌터님은 다른 헌터들이 절대 이루지 못한 것을 이루실거라고 확신합니다."
그가 지배인이라는 지위에 어울리지 않게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손님으로 오셨는데 이런 말씀을 드려서.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혹시 오늘 식사가 만족스러우셨다면 앞으로도 종종 들러 주십시오. 최선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지배인이 허리를 숙였다.
나는 깊은 오해가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지배인은 내 인터뷰 동영상을 보고 자신을 거기에 대입한 것이었다.
힘든 환경에서 열심히 노력해서 큰 식당의 지배인까지 되었다.
그리고 그는 헌터라고 해서 다를 것은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주어진 게 적다면 그만큼 노력해서 목표를 이루면 되는 것이라고.
하지만 그는 잘못 알고 있었다.
일반인의 세계에서는 열심히 노력하면 어느 정도 계급이 바꿀 기회가 주어지지만, 헌터의 세계는 아니다.
흙수저는 아무리 노력해도 언제까지나 흙수저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나는 그의 마음이 고마웠다.
"감사합니다. 주신 와인은 고맙게 마시겠습니다."
"아닙니다. 오히려 저희 식당에 와 주셔서 제가 감사합니다."
나는 뿌듯한 얼굴로 떠나가려는 지배인을 다시 불렀다.
"저."
"네? 더 필요한 게 있으십니까?"
"제 일행이 화장실에 들어가서 아직 나오지 않고 있는데, 좀 걱정이 되거든요."
“아, 그러시군요! 그 아름다운 일행분 말씀이시죠?"
나는 사실 여직원에게 화장실 안에서 차은아가 뭘 하고 있는지 확인해 달라고 부탁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돌아온 지배인의 반응은 내 예상과 많이 달랐다.
"일행분도 헌터 맞으시죠? 저는 일반인과 헌터의 몸이 다르다고 알고 있습니다. 지금 화장실 안에 다른 손님은 안 계시니까 직접 들어가셔서 확인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더니 직원 한 명을 불러서 뭐라고 지시했다.
지시의 내용은 수리 중이라고 쓰인 간판을 여자 화장실 앞에 갖다 놓는 것이었다.
'아, 상황이 이렇게 되다니......'
정말로 공교롭게 그지없었다.
마치 짜 맞춘 각본 같다.
나는 사실 상상하고 있었다.
메시지를 보고 여자 화장실로 들어가 차은아와 그렇고 그런 짓을 하는 장면을.
그것은 그야말로 야동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장면이었지만, 메시지가 나타나는 타이밍도 그렇고, 지금 분위기상으로 절대로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렇게 지배인까지 도움을 주고 나서다니.
이런 식이라면 정말 시도해 봐도 되는 것 아니겠는가?
물론 화장실에서 차은아가 어떤 상태에 있는지 아직 모른다.
상황을 확인하고 나서 결정해도 되겠지.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지배인은정말로 별일 아니라는 듯 웃으면서 말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어, 나는 어쩔 수 없이(?) 여자 화장실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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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구는 처음에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그놈이 이 식당이 오다니.
<코리아 헌터즈>에서 한 인터뷰 때문에 어딘가에 처박혀 전전긍긍하고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저렇게 눈이 부신 미녀와 함께 이렇게 비싼 식당에 오리라고는.
그는 사실 일행이 따로 있었다.
조태웅이 데리고 온 여자 만큼은 절대로 아니지만, 나름대로 예쁜 여자 헌터과 함께 여기 왔었던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생각했던 대로 분위기가 흐르지 않아 할 수 없이 여자를먼저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그가 계속 자리에 앉아있는 것은 조태웅에 행동이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저렇게 예쁜 여자랑 같이 있다니.'
그는 원래 파티를 나온 뒤에 조태웅 따위 별로 의식하지 않았다.
보고 있으면 짜증이 나는, 노력으로 어떻게든 되리라고 생각하는 멍청한 놈일 뿐이라고 생각했었다.
원래는 적당히 경험만 쌓고 나올 예정이었던 파티에서 생각보다 오래 머물고 말았다.
그리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은 파티장이 생각보다 유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는 언제나 파티에서 활동할 때 자기보다 등급이 낮은 파티장을 무시했다.
그게 꽤나 큰 쾌감을 주는 일이라서 이번에도 똑같이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런 자신이라도 도저히 이해가 안 갈 만큼 헌신적으로 일을 하고, 등급 대비 실력마저 뛰어난 사람에게 똑같이 행동할 수 없었다.
그러고 싶어도 기회가 나지 않았다.
그런 점이 더 큰 짜증을 불러일으켰다.
때마침 <코리아헌터즈>에서 조태웅에 대해서 언급할 일이 있어서 속에 있던 마음을 표현했다.
물론 더 과감하게 할수 있었지만, 자신들도 이제 막 파티를 시작한 입장이라서, 굳이 인터뷰에서나쁜 인상을 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조태웅에 대해 더 큰 악감정을 갖게 된 사건이 일어났다.
그는 항상 미녀 헌터들을 노리고 있었는데, 그중에서 가장 신경 쓰고 있는 여자가 이연화였다.
그녀는 헌터가 되지 않았더라면 당연히 연예인이 되었어야한다고 여겨질 정도로, 연예인이 되어서도 독보적인 미모로주목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될 만큼 아름다웠다.
그래서 프리로 있는 그녀를 자신이 새로 만든 파티에 영입하려고 공을 들였다.
물론 그녀의 실력이 탐나서가 아니라 그녀를 공략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하나둘 숫자를 늘려나가고 있는 섹스한 여자 헌터들의 목록에 그녀의 이름을 추가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녀라면 남은 인생 계속 반추할 수 있을 만큼 큰 트로피가 될 수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이연화는 매몰차게 자신의 제안을 거절했다.
조태웅이 만든, 이름마저 부끄럽기 짝이 없는, 거지 같은 파티에 들어가겠다고 하면서.
'변태 같은 년.'
그는 그런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된다면 그런 일을 한 상대가 변태인 것이다.
겉으로는 아름다운 외모를 하고 있지만 속은 그렇지 않은 경우도 허다하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늘 믿을 수 없는 장면을 또 한 번 목도하고 말았다.
이연화와 견줄 수 있을 만한, 보기 드문 미모를 가진 여자 헌터를 데리고 조태웅이 자기가 있던 식당에 나타난 것이다.
여자 쪽이 너무 아름다운 나머지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손님들도 전부 그쪽을 의식했다.
그는 조태웅이 데리고 온 여자가 헌터라는 것을 즉시 알아보았다.
헌터라면 다른 헌터에 마나를 어느 정도는 감지할 수 있기 때문에.
'이게 대체 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