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화 〉62화
차은아와 함께 화장실에서 나온 나는 그 앞에 서 있는 지배인과 직원을 보고 흠칫했다.
안에서 나는 소리가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을 만큼 방음처리가 잘 된 화장실이었지만, 방금 그 안에서 한 행동이 있기 때문에 겸연쩍어진 것이다.
차은아도 나처럼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죄송합니다.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네요."
"아니요, 괜찮습니다. 그보다......"
지배인이 심각한 얼굴로 목소리를 낮추더니 말했다.
"혹시 저분을 알고 계십니까?"
지배인이 가리킨 곳에는 이쪽으로 등을 돌리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그는 일부러 이쪽에 얼굴을 들키려고 하지 않는 것처럼 상체를 수그린 채였다.
그런 탓에 나는 상대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었다.
다만 집중을 했더니 그에게서 감지되는 마나, 즉 그가 헌터라는 것을 알 수 있을 뿐이었다.
"얼굴이 보이지 않아서 모르겠네요. 왜 그러시죠?"
"저분이 헌터님이 계신 화장실로 들어가려고 했습니다. 귀를 대고 안의 소리를 듣는 것을 봤는데 좀....."
손님과 관련된 일이라서 말을 조심하는 지배인이었지만 나는 그가 하고 싶어 하는 말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뜨끔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게 얼굴을 보지 않으려고 하면서 등을 돌리고 있는 남자가 누군지 모르겠지만,좋은 의도로 그런 행동을 했다고는 여길 수 없었다.
지배인과 대화를 나눈 것은 은밀하게 이루어진 일이고, 화장실은 레스토랑 한쪽에 치우쳐 있었기 때문에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이쪽을 보고 있지 않은 한 전체 사정을 알 수 없었다.
어쩌면 그는 내가 화장실에 들어가기 전부터 내쪽을 보고 있었던 게 아닐까?
내가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코리아헌터즈>뿐이었다.
그것 말고는 지난 15년간 활동하면서 누군가의 원한을 산 기억이 없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니까 문득 저 뒷모습이 누군가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누구라고 특정 지을 수가 없었다.
그 일로 나를 조롱하기 위에 파티 사무실에 찾아온 헌터들이 많이 있었고, 그들 말고도 그런 의도를 가지고 접근할 수 있는 사람들은많이 있으니까.
'......진짜 귀찮네.'
그리고 조심해야겠다.
역시 <코리아헌터즈> 파급력이 강한 언론사이다.
내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그리고 나와 어떤 안 좋은 사연이 있었든지 간에 일단은 행동을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분위기를 보아하니 크게 별다른 일이 있지는않은 모양이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상황을 잘 수습했습니다."
나는 수수께끼의 남자에 대한 관심을 접고 지배인에게 말했다.
지배인은 어쩐지 나에 대한 신뢰감이 엄청 강해서, 내가 안에서 차은아와 섹스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하지만 함께 서 있는 직원의 표정은 야릇했다.
"저희들은 이만 가봐야겠네요. 술이 약한데 너무 많이 마신 것 같아요."
"네, 오늘 들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중에도 꼭 한번 함께 와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지배인이나와 차은아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네, 그럴게요."
처음에 의심했던 것이 미안할 정도로 이 레스토랑의 지배인은 좋은 사람이었다.
이렇게 정직한 태도를 가진 사람이 노력으로 이 만한 성공을 거두었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다.
나는 더이상 그런 세계에 속하지 않았다는 것에 씁쓸함을 느끼면서, 또 그렇지 않은 세상에서 내가 앞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을 생각하며 조금은 복잡한 기분을 느꼈다.
계산을 한 뒤 차은아와 함께 레스토랑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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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은아와 나는 레스토랑과 가까운 편의점으로 가서 온장고 안에 덥혀진 캔커피를 사 마셨다.
아이템을 또 하나 소비하는 게 술을 깨는 확실한 방법이겠지만, 나는 왠지 이렇게 하고 싶었다.
차은아도 대단히 만족한 표정이었다.
그녀는 따뜻한 캔커피를 두 손으로 감싸 쥐고 미소를 띠었다.
"예상했던 대로 파티장님은 대단히 자상하신 분이세요. 파티장님이 운영하는 파티에 들어가게 돼서 정말 행운입니다."
그녀는 나와 화장실에서 섹스한 일을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역시 그런 걸 신경 쓰는 것은 나뿐이란 말인가?
이렇게 약간 부자연스러운 상황은 시스템이 만들어낸 결과가 아닐까 싶었다.
만약 그렇다면 나는 더더욱 사소한 일에 신경 쓸 필요가 없으리라.
따뜻한 커피로 정신을 차린 뒤에 나는 차은아를 택시에 태워 보냈다.
"조심히 들어가요. 파티원 모집이 끝나면 다시 연락 드릴게요."
"네, 기다리겠습니다~"
차은아를 보내고 나서 나는 몸을 돌렸다.
그리고 문득 싸한 느낌을 받았다.
등급이 낮다고 하더라도 나도 어디까지나 헌터이다.
게다가 등급이 낮기 때문에 더 감각이 예리한 측면이 있었다.
등급이 낮으면 던전에서 위험한 상황을 많이 겪게 마련이고, 더구나 나처럼 맨 뒤에서 지휘를 해야 하는 입장이라면 더 신경이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다.
예민한 내 감각이 무언가를 포착했다.
나는 그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고개 하나가 빼꼼히 나와 있다가 재빨리 숨는 것이 보였다.
너무 빠른 행동이라서 얼굴을 확인하지 못했다.
하지만 한가지,지금껏 미행당하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대체 누구야?'
나는 가슴 속에 한가득 의심을 품고서 남자가 몸을 숨긴 곳을 노려보았다.
다시 슬그머니 나오려던 고개가 내가 계속 자기 쪽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쑥 들어갔다.
순간적으로 나는 이미 내가 예전의 나와 다르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짧은 기간 많은 게이트 공략을 하고, 정기를 세 개나 흡수해서 꽤 강해짐을 느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나는 예전에는 가지고 있지 않았던, 그리고 가지고 있더라도 제대로 활용할 수 없었던 스킬들이 있었다.
'전장을 아우르는 눈.'
이 스킬은 비단 게이트 안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스킬을 사용해서 특정 공간을3차원화 한 뒤에 다른 각도에서 남자가 몸을 숨긴 곳을 바라보았다.
대번에 확인할 수 있었다.
나를 미행한 남자가 이동구라는 사실을.
아마도 레스토랑에서 나와 차은미가 들어가 있는 화장실에 들어오려고 했던 것도 이놈이겠지.
얼굴이 절로 찡그려졌다.
'이놈이 왜 나를 미행하는 거지?'
오래 생각할 것도 없었다.
아마도 꼬투리를 잡으려는 거겠지.
나는 그가 파티에 머물러 있는 동안, 놈이 얼마나 파티의 분위기를 망쳤는지 떠올렸다.
무슨 짓을 저질러도 나이 많은 사람으로서, 그리고 파티장으로서 크게 사건을 비화하지 않고 그를 돌봐주었다.
그때의 일에 대해서는 한치의 부끄러움 없이 떳떳했다.
나를 통해 이동구는 성장했다.
그 보답을 이런 식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가 인터뷰를 하면서 이유 없이 나를 깎아내리는 모습을 보았다.
이쯤 되면 확실하다고 여길 수밖에 없었다.
그의 인격은 비뚤어져 있다.
그것은 아무리 교정하려고 해도 고쳐지지 않았다.
적어도 나는할 수 없다.
나는 또 다른 스킬을 사용했다.
'텔레파시.'
모퉁이에 숨어서 내가 발길을 돌리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이동구에게 말을 걸었다.
"넌 줄 아니까 나와."
깜짝 놀란 이동구가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살폈다.
"나 텔레파시 능력 있는 거 몰라? 넌 줄 아니까 나오라고."
이렇게까지 말을 하자 이동구가 “쳇” 하고 얼굴을 찡그리더니 모퉁이에서 걸어 나왔다.
이미 들킨 이상 신경 쓸 게 사라졌다는 듯 당당하게 내 쪽으로 걸어왔다.
"오랜만입니다."
"그래, 오랜만이네."
인사를 나누었지만 전혀 반갑지 않았다.
이동구도 내가 반가운 표정이 아니었다.
우리는 2m가량 거리를 벌리고 서로의 얼굴을 싸늘하게 바라보았다.
"잘 지냈냐?"
"네, 아시잖아요. 저 새로 파티 만들었어요. 항상 <코리아 헌터즈> 사이트에 들어가는 분이니까 아시지 않아요? 나 거기서 인터뷰도 했는데.”
이동국 아 풋, 하고 웃음을 터뜨리더니 말을 이었다.
"늘 거기 들어가서 파티 순위 확인하고 그랬잖아요. 그딴 것도 파티라고, 순위 맨 끝에서 달랑거리는 거 보는 게 그렇게 좋았어요?"
조롱하는 이동구를 보면서도 내 마음은 차분했다.
오히려 그런 그가 가소롭게 느껴졌다.
이렇게 스스로 내 앞에 나타나는 준 것이 고맙게 느껴질 정도다.
"잘 지내는 것 같아서 다행이네. 근데, 나 왜 따라 왔냐?"
이동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도 감이 있다면 이전에 나와 지금의 내가 다르다는 것을 알 것이다.
아니, 감정이 앞서는 녀석이라면 그런 부분들을 놓치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오랜만에 봤으니까 인사나 하려고 그랬죠. 그런데......"
이동국가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미인이랑 화장실에서 빠구리도 치고...... 많이 달라지셨네요, 파트장님."
빠구리라......
이동구다운 저렴한 표현이었다.
역시나 그는 나와 차은미를 식당에 있을 때부터 눈여겨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멋대로 내가 여자 화장실에 들어가 그녀와 섹스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사실이지만.
"그게 부러워서 날 따라 왔냐?"
"하하하!"
허공을 향해 웃음을 터뜨린 이동구가 거리를 좁혔다.
내 귀에 얼굴을 붙이고 말했다.
"좋은 거 있으면 같이 공유합시다. 지금 파트장님 사정 뻔히 아는데 갑자기 사람이 이렇게 달라진 것은 이상하잖아요? 같이 하자고요,그거~"
"음......"
나는 이동국가 무슨 착각을 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