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화 〉63화
그는 완전히 망한 줄 알았던 내가, 더구나 며칠 전에 <코리아 헌터즈>에 융단폭격을 당한 내가 당당하게 미녀가 함께 고급 레스토랑 온 것을 보고 이상하게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사람이 짧은 시간이렇게 바뀐 것에는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겠지.
이동구의 사고방식으로는 그 방법이라는 게 불법적인 것 말고는 없다고 생각했으리라.
물론 그것이 자연스러운 사고이기는 했다.
"그래."
나는 웃음을 흘렸다.
"나도 혼자 즐기기에 부담스러웠는데 잘됐네. 같이 하자."
"아!"
이동구가 표정을 바꾸고 벌쭉 웃었다.
"그래요, 형님! 이렇게 하니까 얼마나 좋아요? 제가 형님 볼 때마다 얼마나 답답했는지 아세요?"
그가 마치 친한 형을 대하는 것처럼 내 등을 툭툭 쳤다.
누가 보면 그가 형이라고 생각할 만한 장면이었다.
"우리 조용한데 가서얘기해 봐요. 완전히 망했던 형님이 이렇게 된 거보니까 진짜 대단한 거 맞죠? 역시 그런 건 혼자 감당할 깜냥이 안 되시잖아요? 제가 부담을 나눠 드릴 테니까 같이 해요."
그는 완전히 흥이 올랐다.
역시 본인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라면 합법, 불법을 따지지 않는다.
오히려 이익을 얻을 기회가 왔다는 것에 굉장히 즐거워하는 이동구였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남이 들으면 안 돼. 조용한 데로 가자."
생각하는 바가 있어서 이렇게 말을 해보았다.
"그런 거라면 제가 아주 좋은 곳을 알고 있죠."
역시나, 이동구가 씩 입꼬리를 올리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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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줄 알았다.
이동구가 나를 데리고온 곳은 소위 '쓰레기 게이트(Garbage gate)'. 다른 말로 '버려진(Abandoned gate)' 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몬스터가 형성되지 않는, 기능을 상실한 게이트.
이런 것들은 따로 행정기관이 관리하했지만, 아예 기록에서 지워져서 헌터들에게 악용되는 경우도 많이 있었다.
말하자면 은밀한 거래를 하는 경우, 남들 눈에 띄지 않고 어떤 일을 처리해야 할 경우.
당연히 이런 게이트가 사용되는 목적은 99%는 불법적인 이유였다.
나도 이것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다.
여기에 대한 일은 헌터계에서 상식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다만 나는불법적인 일에 전혀 관심이 없었으므로 나와 다른 세계의 이야기거니 하고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래서 웬만한 헌터들이라면 이런저런 이유로 한두 군데 알고 있다는 ‘쓰레기 게이트’에 대해서도 전혀 알고 있지 않았다.
이동구라면 적어도 한 군데는 알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
예상대로 그는 은밀하게 이야기를 나누자면서 나를 이곳에데리고 왔다.
이동구가 나를 데리고 들어간 곳은 한적한 곳에 있는 컨테이너였다.
컨테이너는 어디까지나 페이크일 뿐이고,그 안에 들어가자 작은 게이트가 있었다.
어딘가에 전화해서 나눈 대화를 듣자니, 이용요금이 설정된 게이트인 모양이었다.
아는 헌터들끼리 장소를 공유하고, 이용 시간을 정해 금액을 지불하는 것이다.
나는 내가 전혀 몰랐던 것을 알게 되어 호기심이 생겼다.
15년간 활동하면서 어쩌면 모두가 알고 있던 것을 이제야 알다니.
그게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내가 지나칠 만큼 정석대로 살아왔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 순간이기도 했다.
이동구가 통화를 끝내자, 어떤 메커니즘인지는 모르겠지만 게이트가 열렸다.
"자, 들어가시죠."
그는 먼저 들어가라는 듯 모션을 취해보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예의 발라 보이는 그런동작조차도 가소로워 보였다.
'쓰레기 게이트'는 이름 그대로 안이 너저분했다.
게다가 공기마저 좋지 않았다.
몬스터가 살기를 포기한 곳이니까 당연히 헌터도 오래 있을 만한 장소가 아니다.
이동구가 코를 틀어막고 말했다.
"보셨죠? 오래 있을 만한 데가 아니니까 빨리 얘기 끝내죠. 그리고 제가 살 테니까나가서 술 한잔해요, 형님."
"그래."
이동구의 말에 대답한 나는 몸을 쪼그렸다.
그리고 바닥에 흙을 한 움큼 집어들어서, 내가 뭘 하나 멍청하게 바라보고 있던 이동구에게 냅다 집어 던졌다.
팍!
"윽!"
정상적으로 맞붙으면 내가 불리하다.
비록 짧은 시간 경험치를 많이 얻었다고는 하지만, 나는 구체적으로 등급이 오른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나는 서포터 클래스이고 이동구는 근접딜러이다.
일 대 일로 싸우면 누가 유리할지 뻔한 일이었다.
그래서 다소 비겁하다고 할수 있지만, 나는 바닥에 흙을 이동구의 눈에 뿌리는 방법을 택했다.
게이트 안에서는 생과사가 갈리는 장면이 항상 펼쳐지기 때문에 사실 이런 것은 비겁한 축에도 들지 않았다.
오히려 당한 쪽이 바보다.
나는 그대로 이동구에게 달려들어서 그에게 주먹질을 했다.
퍽, 퍽, 퍽,
주먹에 마나가 실리는 것이 확실하게 느껴졌다.
솔직히 이런 식으로 싸우는 것은 내 방식이 아니다.
그리고 내가 유리하게 취할 수 있는 전략도 아니었다.
다만 한 번은 이렇게 두들기고 싶었다.
이동구를.
꼭 그가 아니더라도 나를 속였던 <코리아 헌터즈>에, 속아 넘어간 나를 조롱했던 많은 인간들에 대한 분노가 있었다.
주먹질을 하면서 그런 분노들이 자연스럽게 살아났다.
퍽퍽퍽퍽!
한동안 정신없이 두들겨 맞던 이동구가 한 차례 크게 팔을 떨쳤다.
"이 씨발새끼가!"
그가 내게 발길질을 했다.
나는 예상하고 있었으므로 뒤로 물러나 그 공격을 피했다.
"뭐 하는 거야! 씨발, 너 혼자 해 처먹으려는 거지!"
이런 상황이 되었으면서도 그가 생각하는 방식은 내 예상과 달랐다.
그는 여전히 내가 불법적이고, 이익이 되는 어떤 것에 개입하고 있고 그것을 자기와 나누기 싫어서 이런 행동을 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이 씨발새끼가, 네가 나한테 상대 안 된다는 거 몰라? 씨발놈이 꼭 얻어맞아야 정신 차리지?"
이동구가 내가 달려들었다.
나는 그를 두들기면서 깨달았다.
내 클래스가 비록 딜러는 아니지만, 이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신체 능력이 너무나도 크게차이 났다.
주먹에 마나가 제대로 실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 증거로 이동구는 지금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있었다.
얻어맞은 데가 아프다는 듯 배를 감싸 쥐고 있기도 하다.
그가 허공에 손을 뻗더니 무언가를 꺼냈다.
그것은 그가 게이트 안에서 사용하는 무기였다.
기본적으로 창 모양을 하고 있고 날 부분이 낫처럼 휘어져 있다.
그 부분에서 번쩍번쩍 빛이 나면서 마나가 발현되었다.
이동구의 딜 능력은 괜찮은 편이었다.
나도 그가 사냥에 공헌하는 정도를 고려하지 않았다면 그를 파티에서 쫓아내는 것을 생각했을지 모른다.
이동구는 잠재력이 있는 헌터였고, 헌터를 성장시키고 파티를 운영하는 데 관심이 많은 나는 그런 그를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인격이 다소 삐뚤어져 있더라도 그를 성장시키면 파티에 도움이 되는 거니까.
내 지도를 받으면서, 이동구의 딜 능력은 세련되어졌다.
그걸 스스로도 깨닫고, 운영이 기울어진 틈에 얼굴도 보이지 않고 나가 버린 것이다.
그가 나를 향해서 낫을 휘둘렀다.
휙, 휙,
나는 그것들을 피할 수 있었다.
왜냐면 나는 그가 게이트에서 몬스터와 싸우는 것을 숱하게 보았으니까.
진지하게 그를 성장 시키려고 했다.
따라서 그가 공격하는 패턴 같은 것은 전부 내 머릿속에 들어 있었다.
이동구는 숨을 헐떡거리면서 연신 낫을 휘둘렀다.
그래도 공격이 하나도 내게 닿지 않았다.
"씨발놈이, 피하기만 존나 잘하네!"
하지만 나도 한계를 느꼈다.
그의 공격을 피할 수는 있어도, 반격하기는 어렵다.
이것은 지금 내가 가진 한계이기도 했다.
그리고 앞으로 개선되어야 할 한계인 것도 명확하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나는 이동구처럼 직접 싸울 필요가 없었다.
나는 '카드 소환' 능력을 발동했다.
내가 불러낸 것은 칸나였다.
한줄기 굵은 빛과 함께 나타난 그녀가 눈이 시뻘게져서 나를 공격하고 있는 이동구를 발견했다.
놀란 그녀의 휘둥그레졌다.
"남자님!"
그녀는 뭐라고 지시를 내리기도 전에 이동구에게 달려들었다.
유연하게 허공으로 몸을 띄우더니 기다랗고 탄탄한 다리가 멋들어지게 회전했다.
‘스피닝-킥!’
쾅!!!
정수리에 칸나의 뒤꿈치가 꽂힌 이동구는 상대가 누구인지 확인도 못하고 곧바로 기절해버렸다.
“이 남자는 누구인가요?”
칸나는 바닥에 완전히 뻗은 이동구를 보면서물었다.
“개새끼.”
“네?”
칸나는 이동구를 빤히 바라보더니 궁금한 얼굴을 했다.
“사람......인 것 같은데요?”
역시 현실과 이세계의 언어 습관에는 내가 아직 인지하지 못한 차이가 있는 걸까?
“개처럼 나쁜 놈이라고.”
“개는......”
칸나는 우물쭈물 하면서 덧붙였다.
“귀여운 걸요.”
“아, 그래.”
나는 픽 웃고 말았다.
“맞아. 개는 귀엽지.”
귀여운 개를 이동구 같은 놈에게 비교하다니개에게 실례다.
“그나저나......”
나는 기절한이동구를 보면서 생각했다.
“처리를 어떻게 한다지?”
어떻게든 이동구를 손봐 줘야겠다고 생각했고, 이런 전개가 될 것이라고도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이 뒤의 처리를 어떻게 할지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고민하는 나를 보고 칸나가 말했다.
“혹시 이 남자를 어떻게 처리할지 생각하시는 거라면......”
그녀가 웃으면서말했다.
“이 남자가 정말 나쁜 인간이라면 보내는데 적당한 장소가 있습니다.”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