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화 〉68화
“여자들은 어떻게 되는 거야? 그 안에서 생활이 되긴 해?”
“물론 정신은 정상적인 범주를 벗어나게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빨리 죽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그 안의 생활이 어떤 것인지 모르지만, 적어도 몬스터들에 의해 여자들이 죽임을 당하지는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해가 되는 일이기도 했다.
왜냐면 거기 있는 몬스터들도 마찬가지로 인간 여자의 맛을 보았으니까.
날이면 날마다 불어나는 여자의 숫자가 아닐진대, 당연히 살려두고 싶겠지.
“그곳에 오래 머물면 기이한 각성 효과를 얻어 강해지기도 한다고 하는데 그것은 조작된 풍문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몬스터 중에 그런 변종이 가끔출현한다는 것입니다. 놈들은 자주 생겨나지 않지만, 한 마리라도 출현하면 큰 문제가 됩니다.”
나는 세린에게 들은 이 말이 일리가 있다고 느꼈다.
왜냐면 나도 호감도가 높은 이세계 여자들로부터 ‘정수’를 흡수하고 있으니까.
이게 어떻게 연결되느냐 하는 당연히 내 이해범주를 벗어나는 일이지만, 어쨌든 여자들과의 교접을 통해 몬스터가강해진다고 하면......
나는 유쾌하지 못한 상상에 얼굴을 찌푸렸다.
무엇보다 이세계 여자들을 통해 강해지고 있는 내가 몬스터와 겹쳐지는 상상이기 때문이다.
나는 ‘카드소환’ 능력으로 아바타를 통해 정수를 이어받고 있어서 분명 그 메커니즘에는 차이가 있지만.
그런 대화를 하면서 이동한 끝에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나는 이동 중에 느꼈던 불쾌한 감각이 이곳에 와서 정점에 달한 것을 느꼈다.
기분 나쁘다, 이곳은.
더구나 남자로서 더 위험한 기분이 들었다.
발이라도 삐끗해서 여기 떨어진다면, 악몽이 현실이 되어버릴 듯한 기분이 든다.
당연히 그것은 기분으로 끝나지 않겠지.
칸나와 세린도 불편한 기색을 띠고 있었다.
한 마디로 작업을 빨리 끝내고 돌아가는 게 좋을 거라는 뜻.
“빨리 하자.”
“네!”
금단의 영역에 이른 여자들과 몬스터들이 있는 곳은 통로가 두 개 있었다.
직접 통하기는 하지만 철저하게 그 길이 통제된 길이 하나 있고, 낙차가 높은 곳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구멍이 하나 있었다.
갈 데까지 간 여자들은 자신의 운명을 이 구멍에 투신함으로써 금단에 맡긴다.
한 마디로 여기서 떨어진다고 해도 죽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일반인이라면 모르겠지만, 이곳 여자들은 현실의 헌터처럼 대몬스터 전투능력이 웬만큼 있으니까.
구멍에 이르자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불쾌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자위에 미친 백수 남자 백 명이 한 방에 틀어박혀 한 달 내내 야동만 보면서 딸딸이를 치면 이런 냄새가 나지 않을까 싶었다.
그것으로도 부족한 역한 냄새가 풍겼다.
“우웩!”
같은 기분인지 칸나도 헛구역질을 했다.
내 개인적인 문제 때문에 칸나와 세린을 여기 오게 한 것이 미안했다.
이동구는 완전히 기절해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가 깨어나서 반항하지 않는다는 것은 일이 쉽게 진행될 수 있는 요소였으므로 나쁘지 않았다.
아래의 풍경은 무척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다.
나는 오히려 그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절대로 보고 싶지 않으니까, 그런 금단의 풍경은.
다만 구렁이 수십 마리가 스멀거리는 것 같은 소리는 우리가 구멍에 가까워지자 잦아들었다.
귀를 쫑긋 세우고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걸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느낌이 든다는 것 자체가 심히 거북했다.
“남자님.”
칸나가 구역질을 참는 것 같은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던져.”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칸나는 검은 천에 싸인 이동구를 구멍 아래로 집어던졌다.
한 치 망설임도 없는 행동이었고, 나는 추락하는 이동구를 향해 시선을 주었다.
낙하중에 천이 벗겨졌고, 정수리로부터 흘러내린 피가 얼굴을 덮고 있는 이동구가 눈을 뜨는 것이 보였다.
나와 눈이 마주친 상태에서 냅다 소리를 지른다.
“야! 너!!”
그는 자기가 금단의 구멍에 떨어지고 있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 후의 상황이 어떻게 되었느냐 하는 것은 이동구가 완전히 어둠에 삼켜져버렸기 때문에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예의 구렁이 수십마리가 움직이는 듯한 그 기분나쁜 움직임이 재개되었고, 좀전보다 더 활발해졌다는 것이 느껴질 뿐이었다.
거기에 따라서 역한 냄새가 한층 강하게 확 올라왔고, 끔찍한 목소리들도 들려왔다.
“여, 여자다......”
“새 거다......”
“아, 아니! 이건.......”
“남자!”
“남자다, 남자!!”
“뭐야, 니들! 씨발! 니들뭐냐고!”
마지막에 절규하듯 들린 것은 이동구의 목소리였다.
헌터라서 쓸데없이 청력이 좋은 게 마이너스로 작용하는 순간이었다.
아래에서는 마치 축제라도 벌어진것처럼 격렬한 움직임이 일었다.
역시, 여자들도 몬스터들도 마나를 지닌 존재들이라서 그것이 한꺼번에 기뻐하면서 움직이자 엄청난 에너지가 뿜어졌다.
그 대상은 바로 방금 구멍에 떨어진 남자, 이동구였다.
“여긴 여자들과 몬스터들만 있는 곳이지?”
“네......”
“여기 남자가 떨어지면......”
나는 이동구의 미래를 생각하고 씁쓸해졌다.
‘그러게 왜 그랬냐, 동구야.’
뭐, 죽지는 않는다고 하니까.
차라리 빨리 죽는 편이 나을 것 같기는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여기 떨어진 이동구를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리라는 것을.
물론 마지막에 ‘쓰레기 게이트’에 들어가 행적이 끊기기는 했지만, 그게 이동구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는 아닐 것이다.
‘쓰레기 게이트’를 관리하는 것도 일종의 사업이니까.
그런 일을 하는 이들이 허술하게 그 일을 할 리가 없었다.
“가자.”
나는 칸나와 세린에게 빨리 이곳에서 떠나자고 종용했다.
#
[‘버려진 게이트(Abandoned gate)’와 연결된 통로가 생성되었습니다. 당신은 앞으로 10분 이내에 그곳을 통과해 현실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용무를 마치고 나오자 메시지가 나타났다. 이것은 칸나와 세린이 볼 수 없는 것이기도 했다.
그녀들이 있는 곳에서 보란 듯이 통로가 나타나지 않은 것은 그녀들로 하여금 필요 이상의 호기심을 자아내지 않는다는 점에서 좋다고 할까?
만약 칸나가 통로를 보게 된다면 왠지 하루 종일 그곳을 서성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10분밖에 없으니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나는 시스템 능력을 통해 어디에 통로가 생겼는지 알 수 있었다.
“나는 이제 가야겠다.”
“아아...... 진짜 가셔야 하나요?”
“응, 미안.”
이세계에 와서 여자들을 대하는 것은 몇 번 되지 않지만 아바타는 숱하게 소환해서 만났으므로 본체들을 대할 때에도 자연스러웠다.
“다음에는 또 언제 오시나요?”
안타까운 표정으로 나를 보는 칸나 뒤에서 세린 또한 기대감이 어린 얼굴로 내 대답을 기다렸다.
하지만 나도 다음번에 언제 이곳에 오게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
물론 방법은 알았다.
‘쓰레기 게이트’를 통하면 여기 올 수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하지만 그것도 두 번째 퀘스트인 파티원 모집이 끝난 뒤에나 생각할 문제였다.
“금방 다시 만나게 될 거야.”
“아!”
“......”
내가 눈길로 배웅하자 눈치 빠른 세린이 칸나를 잡아끌었다.
“우리는 돌아가자.”
나는 멀어지는 두 여자의 멋진 뒤태를 바라보았다.
자꾸 미련이 남는 얼굴로 뒤돌아보는 칸나와 달리 세린은 앞만 보면서 걸어갔다.
이세계에 오는 것은 적어도 근시일 내가 아니겠지만, 나는 그녀만큼은 금방 보게 되리라고 생각했다.
비록 본체가 아닌 아바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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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로를 통과해 다시 현실로 돌아왔을 개 그 장소는 역시나 ‘쓰레기 게이트’ 안이었다.
그리고 나는 흠칫 놀라야 했다.
왜냐면 이 안에 누가 있다는 것을 알았으므로.
나는 ‘쓰레기 게이트’가 어떤 메커니즘으로 작동하는지 자세히 알지 못했다.
불법적인 영역이라 과거에는 관심조차 갖지 않았다.
다만 이미 몬스터가 출현하지 않는, 기능을 상실한 게이트이니만큼 일반적인 게이트와 차이가 클 것이라는 감각만 있었다.
그런 차이 중에는 안에서 헌터가 나오지 않더라도 다른 헌터가 추가로 입장할 수 있다는 것도 포함되는 모양이었다.
다행이라면 내가 나타난 곳과 이 안에 들어온 누군가가 서성이고 있는 장소가 꽤 거리가 있다는 것이었다.
덕분에 먼저 상대를 발견한 것은 나였다.
나는 등뒤로 통로가 사라지는 것을 확인하고 그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그는 바깥으로 나가는 문 가까이에 있었으므로 그에게 들키지 않고 여길 나가는 방법은 없었다.
거리를 좁힐수록 확연히 느껴졌다.
상대가 강한 헌터라는 것을.
‘B...... 아니, A급은 되는 것 같다.’
아마도 상대는 게이트를 관리하는 조직에 속한 자일 것이다.
까만 선글라스를 쓰고, 얼굴은 마스크로 가리고 있었다.
옷이 두툼한 것은 비록 일상복을 위해 걸치기는 했지만, 안에 헌터 장비를 받쳐 입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내 기척을 느끼고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섬뜩한 느낌이 심장을 찔렀다.
당연히 반가운 상황이 전혀 아니다.
나는 여차하면 아바타를 전부 소환할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