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화 〉71화
“이 경우에는 이야기가 아주 쉬워집니다. 마침 김수연 기자를 대상으로 한 의뢰가 더 있거든요. 헌터님이 의뢰하시기 전에 그녀를 끝장내달라는 의뢰가 들어왔었습니다. 제가 말씀드렸다시피 김수연은 이 바닥에서 나름대로 유명하거든요. 그녀가 회사에 한 공헌도에 비해 아직도 직급이 낮은 것은 그런 이유입니다. 회사 쪽에서도 그렇게 원한을 많이 사는 기자는 골칫거리거든요. 이용할 만큼 이용한 뒤에는 버리는 것이지요.”
“아......”
이러면 안 되는 일이겠지만 나는 순간적으로 김수연에게 동정심이 생겼다.
그쪽 세계나 헌터계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신나게 개인적 욕구를 풀면서 회사에도 인정받고 있다고 생각했겠지만, 결국은 내쳐질 운명이었던 것.
“그렇다면 혹시......”
“맞습니다. 헌터님 전에 김수연과 관련한 의뢰를 한 것은 <코리아헌터즈>입니다. 더 이상은 자세히 말씀 못 드리지만요.”
뭔가 일이 복잡해지는 것 같은 인상이다.
하지만 이런 얘길 들었다고 해서 내 생각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하겠습니다.”
내가조직에서 의뢰하는 일을 하겠다고 하자 남자가 벌쭉 웃음을 지었다.
아니, 웃음을 지은 것처럼 보였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저희 조직과 좋은 관계를 맺으면 헌터님에게도 유리할 것입니다."
나는 일단 하겠다고는 했지만 찜찜한 마음을 아주 버릴 수는 없었기 때문에 그에게 더 자세한 것을 물었다.
"제가 뭘 하면 될까요?"
어떤 일을 해야 5천만 원과 등가 교환이 될까 궁금했다.
"<코리아헌터즈>에서 바라는 것은 김수연을 해고할 핑곗거리입니다. 문제 없이 입을 다물게 만들려면 좀 센 게 필요하겠죠."
나는 적어도 내게 의뢰하려고 하는 게 살인이 아니라 하는 것에서 안도했다.
살인 따위 아주 쉽게 의뢰할 것 같은 분위기였으니까.
"좀 더 구체적으로말씀해주시면 고맙겠는데요."
"소스는 저희 쪽에서 드리겠습니다. 헌터님은 부족한 저희 인력을 대신해서 헌터님이 하실 수 있는 만큼의 일을 해 주시면 됩니다. 이번이 저희의 첫 거래이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헌터 님과 잘 지내고 싶은 마음도 있기 때문에 기본 보수는 저희 쪽에 의뢰하신 비용을 퉁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괜찮으신지요.”
괜찮고 아니고에 대한 판단기준이 내게는 없었다.
남자가 말했다시피 이번이 불법조직과 하는 첫 거래니까.
하지만 살인을 하지 않고 5천만 원을 벌 수 있다고하면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게다가 김수연을 보내는 일은 무엇보다 내가 원하는 일이기도 했으니까.
내 손으로 직접 복수할 수 있다는 점에서, 5천만 원의 가치는 충분한 것 같았다.
“실패하시더라도 뒤처리는 저희가 할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다만 능력을 증명하신다면 저희와 앞으로도 긍정적인 관계를 이어가실 수 있겠죠. 그에 따른 이익은 헌터님이 상상하시는 이상이리라고 감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네......”
“저희 대화는 이쯤에서 마무리지으면 될 것 같네요. 귀가길을 막아서 죄송합니다. 라떼는 입에 맞으셨는지요.”
“네, 맛있었습니다.”
“커피는 뭐니 뭐니 해도 원두가 좋아야 맛이 있지요. 선물이라고 하기엔 뭐합니다만 이렇게 가입해주신 걸 감사하는 의미로 커피 원두를 좀 드리겠습니다. 시중에서는 구하기 어렵고, 구한다고 해도 터무니없을 만큼 비싼 가격이지요. 그도 그럴 수밖에 게이트 안에서 길러진 거니까요.”
“네? 게이트 안에서커피가 재배된다고요?”
“하하하. 헌터님은 알아야 할 게 아직도 많으신 것 같습니다. 그런 것까지 전부 포함해서 저희와 거래하게 되신 게 헌터님에게는 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
게이트 안에서 키운 커피 원두로 내린 커피를 함부로 마셔도 되는 걸까?
물론 괜찮으니까 재배하는 거겠지만.
딱히 남자가 나를 죽일 이유도 없으니 독을 마시게 했을 거라고 여겨지지도 않았다.
“노파심에 말씀드립니다만 이 커피는 헌터만 마실 수 있습니다. 원기 회복에 도움이 된다고 하지만, 그것까지는 아닌 것 같고 그냥 맛 좋은 커피를 마시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 정도겠지요.”
남자는 인벤토리를 열어서 1Kg쯤 되어보이는 원두를 내게 건넸다.
집에 커피메이커도 없는데.
이참에 사무실에라도 한 대 놓는 게 좋을 것 같기도 했다.
앞으로의 포부를 생각하면 손님에게 인스턴트 커피를 주는 것도 좀 아니지.
아닌 게 아니라 귀한 원두를 사용했다는 말을 들어서인지 어째 커피의 향이 다르게 느껴졌다.
마시다보면 더 중독성이 있을 것 같기도 했다.
뭐, 해본 적은 없지만 마약 같은 정도의 중독성은 아닌 것 같지만.
“소스는 나중에 따로 보내드리겠습니다.”
남자가 말한 소스란 김소연을 보내버릴 정보에 대한 것이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러면, 살펴가십시오.”
남자는 몸을 일으켜서 거구를 꾸벅 숙여 인사했다.
솔직히 B급 헌터에게 이런 친절한 대우를 받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불법적인 일에 가담하고 있는 헌터에게 등급이 따로 의미가 있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어쨌든 그것은 단순히 기분이 좋다기보다는 여러 모로 찜찜한 기분을 자아냈다.
뭐, 그만큼 내 인생이 달라졌다는 거겠지.
백 퍼센트 좋은 일들만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내 욕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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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집에 돌아온 나는 피로함에 침대에 드러누웠다.
차은아와 만나 섹스했을 때까지는 아주 좋은 하루로 마무리지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 뒤 이동구와 있었던 일이 문제였다.
놈을 처리하느라 이세계에 다녀왔고, 정체 모를 조직의 의뢰를 받아들이고 말았다.
그때는 분위기에 휘말려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지만, 집에 와서 생각하니 아무래도 찜찜했다.
이래도 되는 걸까?
새로운 능력을 얻어 긍정적인 미래를 꿈꿀 때 당연히 이런 것은 계산에 들어있지 않았다.
그런 복잡한 마음으로 침대에서 드러누워 천장을 보고 있을 때였다.
핸드폰이 문자수신음으로 울렸다.
여자들 중 한 명이 보낸 문자가 아닐까 생각하고 핸드폰을 들여다보자 화면에 적힌 발신자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
모르는 정도가 아니라 익숙하지 않은 번호 형식이 띄워져 있었다.
숫자 몇 개와 *,#이 조합된 것이었는데, 보통 때라면 그냥 스팸 문자겠거니 생각하고 차단했을 것이다.
하지만 방금 겪은 일이 있는 만큼 수신된 문자를 마냥 무시할 수 없었다.
내용을 열어보자 역시나, 이것은 스팸 문자가 아니었다.
- 연락이 늦어서 죄송합니다. 의뢰 드린 건에 대한 소스를 첨부 파일로 보내드립니다. 기한은 넉넉히 잡고 있지만 빨리 해결해주신다고 해서 나쁠 것이 없음을 첨언드립니다. 편안한 밤 보내시길 바랍니다 ^^
“씨발.”
마지막에 적힌 눈웃음 이모티콘이 섬뜩했다.
늘상 보던 것과 느낌이 다르다고 할까?
저절로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쓰고 있는 남자가 생각났다.
얼굴을 본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왠지 그 남자의 웃는 이미지가 절로 그려진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어쨌거나 그와 만나서 대화를 나누었던 순간만큼은 불쾌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하지만 원래 불법거래의 현장이 대놓고 불유쾌한 분위기를 풍기는 건 아닐테니까.
이번이 첫 대면이기는 하지만, 나는 편안한 분위기의 이면에 가려진 어두운 세계를 접한 같아 가슴이 서늘해졌다.
‘이세계에서 그런 것까지 보고 왔는데, 뭘.’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마음을 다잡았다.
지금쯤 이동구는 끔찍한 일을 겪고 있을 것이다.
아무리 여자 헌터를 밝히는 그라고 해도, 그리고 이세계 여자들이 기본적으로 아름답고, 헌터라고 보아도 크게 다르지 않은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것은 절대로 좋은 경험이 아닐 터였다.
게다가 왠지 안 좋은 대답을 듣게 될 것 같아서 세린에게 묻지 않았는데, 이동구의 성경험대상은 비단 성욕이 도를 넘은 여자들만이 아닐 것이다.
아마 몬스터도......
“으으으~~”
나는 끔찍한 생각에 도리질을 쳤다.
역시 이동구의 입장을 생각하면 내가 처한 상황 같은 것은 어린애 장난 같았다.
이동구를 실종시킨 장본인으로서 그 일에 대해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도 좋았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이미 강을 건넜고 돌아갈 배도 없는데 생각해봤자 헛일이었다.
나는 남자가 문자메시지 첨부파일로 보낸 소스를 화면에 띄워보았다.
“음......”
내용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다만 예상보다 너무 흥미로워서 나도 모르게 집중해서 보았다.
‘이것 봐라......?’
남자가 보낸 파일은 김수연을 보내버리기 위한 자료였다.
그가 했던 말마따나 필요한 소스를 제공하고 나는 행동만 하면 되도록 되어있었다.
내가 어떻게 행동할지에 대해 어느 정도 유동성이 있기는 했지만, 결국 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꺼림칙하지만......’
김수연을 상대로불법적인 일을 한다는 것은 별로 걸릴 것이 없었다.
반대로 복수할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이 무척 만족스러웠다.
다만 이 소스를 제공한 조직의 존재가 여전히 투명하지 않았고, 그 조직의 의뢰로 이 일을 한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을 뿐이었다.
첨부파일의 내용을 요약하면 이러했다.
김수연은 동성애자이다.
물론 그것 자체가 흠이 되지는 않는다.
해고 사유가 안 되는 것도 당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