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화 〉72화
다만 그녀의 애인이 좀 문제였다.
그녀는 B급 헌터이고, 이 자료에 따르면 양성애자에 상당한 성 도착자였다.
한 마디로 김수연은 애인 간수가 제대로 안 돼서 마음고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헌터가 일반인과 교제하는 것은 그리 흔한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B급 헌터 정도면 아쉬울 것이 없으니 더욱 그러했다.
‘뻔하지.’
자료를 다 읽지는 않았지만 나는 이 여자 헌터가 김수연과 사귀는 이유가 뻔하다고 생각했다.
<코리아헌터즈> 기자를 통해서 얻을 이익이 있기 때문이었다.
비록 김수연이 회사 안에서 직급이 높지 않다고 해도, 대한민국 최대 헌터 언론기관의 기자라는 점이 충분한 이용가치가 있었다.
그 증거로 나 같은 밑바닥 헌터 하나 전국적인 웃음거리로 만든 것은 일도 아니었지 않은가?
김수연이 아무리 잘난 척을 해도 결국은 이꼴인 것이다.
이 비정한 세계에서는 서로 이용하고 이용 당하는 것이일상사였다.
‘내가 할 일은......’
대충 계획이 섰다.
김수연을 보내버리기 위해서는 그녀가 옴짝달싹할 수 없을 만한 협박거리를 만들어야 했다.
그걸 손에 쥐고 있어야 불합리한 일을 당해도 김수연이 함부로 내게 반격할 생각을 하지 못할 테니까.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김수연의 여자친구라는 헌터를 상대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등급이 신경 쓰였다.
물론 나는 ‘카드 소환’ 능력이 있다는 점에서 여타 C급 헌터와 완전히 다르지만, 그 능력은 아무 때에나 발휘할 수 없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었다.
더구나 나는 전투능력이 거의 없는 서포터 클래스였다.
이동구와 게이트 안에서 일 대 일 싸움이 벌어졌을 때도, 그의 동선을 전부 예측하면서도 제대로 반격하지 못했다.
하물며 등급이 하나 더 높은 헌터를 상대로는 더 힘들 게 뻔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이 울렸다.
“앗, 깜짝이야!”
발신자의 이름을 본 나는 더 놀랐다.
공교롭게도 전화를 걸어온 사람이 바로 김수연이었던것이다.
‘왜지......?’
혹시 내가 자기 정보를 손에 넣었다는 것을 알아내기라도 한 것일까?
나는 의심 가득한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 조태웅 씨? 나 누군지 알죠?
여전히 예의 없고 안하무인격인 말투였다.
“물론이죠. 무슨 일로 이 시간에 연락을......”
- 이 시간? 조태웅 씨 자고 있었어요? 전화하기에 늦은 시간도 아닌데, 지금 나 면박 주는 거예요? 말투가 너무도 당당한 것을 보니 오히려 의심이 갔다.
혹시 나에 대해 또 뭐라도 쥐고 있는 게 아닐까?
- 혹시 오늘 이동구 씨 만나지 않았어요?
뜨끔했다.
이 여자가 어떻게 내가 이동구를 만난 걸 알고 있지?
그래도 사실대로 대답할 필요는 없었다.
“......안 만났는데요.”
-흐음, 근데 이 자식은 왜 전화를 안 받아? 알았어요.
김수연은 혼자 중얼거리더니 전화를 틱 끊어버렸다.
“씨발년이......”
나는 욱 하는 기분으로 핸드폰을 노려보았다.
역시 안 되겠다.
이년한테는 뜨거운 맛을 보여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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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를 하고 났더니 김수연이 어떤 여자였는지 새삼 떠올랐다.
‘개년이......’
이 여자의 마수에 걸려 얼마나 많은 헌터들이 인생을 종쳤을지 생각하니 어이가 없었다.
김수연은 헌터도 아니고, 그저 일개 언론사의 기자일 뿐이었다.
게다가 <코리아헌터즈>에서도 쓰고 버리는 가치 없는 말 정도로 인식하고 있고.
이런 여자에게 수모를 당하고 마음고생을 한 것을 생각하니 울화가 치밀었다.
만약 내가 새로운 능력을 얻어 재차 각성하지 않았더라면 아무런 힘도 못 써보고 이 여자에게 당하고 말았을 것이다.
나는 문자로 받은 소스를 활용해 김수연에게 복수할 계획을 실행하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받은 소스를 기반으로 하자면 김수연을 끝장내기 위해서 그녀의 여자친구를 건드릴 필요가 있었다.
B급 헌터에 양성애자.
성 도착자라서 김수연이 고생을 하고 있다는.
그녀에게 접근하는 데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은 역시 그녀가 나보다 등급이 높다는 점이었다.
함부로 접근했다가는 되레 내가 당하는 수가 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니 문득 한 가지가 떠올랐다.
‘내가 무슨 고민을 하고 있는 거야?’
나는 쉽게 등급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이전에 엘린의 정수를 흡수하면서 생각했었지 않은가?
이제 정수를 하나만 더 흡수하면 등급이 오를 수 있을 것 같다고.
나는 오늘 차은아와 만나서 섹스했고, 그것을 계기로 세린의 호감도도 백 퍼센트가 되었을 것이었다.
즉, 그녀는 내게 정수를 전달할 준비가 되었다는 것.
나는 이세계에 갔을 때 만난 그녀의 모습을 떠올렸다.
‘예쁘지.’
그녀는 다른 이세계 여자들과는 다른 매력이 있었다.
외모나 성격에서 성숙함이 물씬 풍긴다.
그런 이유로 친동생인 세라뿐만 아니라 다른 여자들도 그녀를 리더처럼 인식하고 따르고 있었다.
‘허벅지가......’
나는 세린의 하얗고 건강한 허벅지를 떠올렸다.
각선 하면 칸나의 것이 일품이지만, 그녀의 다리와 세린의 다리는 각자 다른 매력이 있었다.
칸나는 마음 먹고 조임을 당했다가는 목이 부러질 것 같은 근육질의 탄탄한 매력이 있다고 하면, 세린의 허벅지는 하얗고 부드럽다.
세라와 엘린의 가느다란 다리와는 당연히 큰 차이가 있다.
나는 방금 김수연과 통화하고 나빠진 기분이 세린을 떠올림으로써 즉시 바뀌는 것을 느꼈다.
지체할 것 없이 그녀를 소환하기로 했다.
스킬을 발동하자 방 안에 굵은 빛줄기가 떨어졌다.
소환되는 대상이 누구인지 알아서인지 그 빛줄기가 다른 때보다 더 박력 있게 느껴졌다.
빛 속에서 방금 실체를 보아서 더 익숙한 여자의 모습이 나타났다.
허리에 커다란 검집을 찬 세린이 긴 금발을 늘어뜨리고 모습을 보였다.
평소에 그녀를 볼 때는 믿음직스러운 소환대상이라는 느낌이었지만, 오늘은 불러낸 목적이 다른 만큼 전혀 다른 기분이었다.
‘섹시하다.’
그녀를 보는 것만으로 바지 속이 부풀었다.
세린은 진지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오늘은 저 혼자인가요?”
엘린이 그랬던 것처럼 이곳이 게이트 안이 아니라는 것도 이상하게 여겨지는 모양이었다.
“응. 오늘따라 더 예쁘네, 세린.”
“아......”
세린은 내게 뜻밖의 말을 듣고 얼굴을 붉혔다.
피부가 하얀 터라 얼굴이 붉어진 게 더티가 난다.
대쪽 같은 이미지의 여자인지라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평소의 모습과 더욱 대비가 되었다.
그런 부분이 또 남자의 가슴에 불을 지핀다.
“오늘 그건 필요 없을 것 같네.”
나는 그녀가 허리에 찬 검집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렇습니까?”
세린은 궁금한 얼굴이면서도 순순히 검집을 푼 뒤에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엘린은 한 번 믿은 사람은 끝까지 믿는다는 느낌으로 의심 없이내 말을 따른다고 하면 세린은 규율에 따라 움직이는 엄격한 느낌을 주었다.
그녀에게 규율이란 물론 내 말에 따르는 것이었다.
검을 떼어 놓고 나자 훨씬 여성스러운 분위기를 풍기게 된 세린이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하면 됩니까?”
“이쪽으로와.”
나는 그녀 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차은아는 비록 세린과 연동이 된 현실의 여자였지만, 세린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단순히 입고 있는 의상과 피부, 머리카락 색깔이 다르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신체적 특징과 클래스의 유사함을 제외하면 성격이나 분위기에 큰 차이가 있다.
이것은 내게도 무척 좋은 일이었다.
왜냐면 이왕 섹스를 할 수 있는 거라면 다양한 타입의 많은 여자들과 하는 것이 좋으니까.
세린은 뚜벅뚜벅 내게로 걸어왔다.
그녀는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장화처럼 생긴 신발을 신고 있었다.
카드로 소환한 아바타들의 공통점이라고 하면 불러낼 때마다 마치 샤워를 하고 나타난 것처럼 깨끗한 모습이라는 것이었다.
그런 점은어떤 의미에서 게임 속 캐릭터를 떠올리게 했다.
게임에서도 전투를 하면 캐릭터들의 의상이나 몸이 더러워지는 연출이 있지만, 그렇다고 샤워를 하거나 몸을 씻는 연출은 별로 없으니까.
그런 것을 거치지 않아도 다음 장면에서는 다시 깨끗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한 마디로 세린은 신발을 신고 있었지만, 그것 때문에 방이 더러워질 염려는 없었다.
신발도 검을 해제시켰을 때처럼 지금은 필요 없다고 말을 해서 벗길 수 있었지만, 나는 왠지 그것을 그냥 신겨 두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세라는 하얀색 스타킹을 신겨서, 그리고 엘린은 귀여운 맨발을 만지작대며 즐겼지만, 세린은 다른 매력을 지닌 여자인 만큼 장화 모양을 신을 신긴채로 섹스하는 게 더 자극적일 것 같다고 생각한 것이다.
뭐랄까?
단순히 ‘아름다움’에 대해서만 논하자면 세린은 이세계 여자들 중 가장 뛰어났다.
최근에 합류한 여자들은 아직 많이 본 것이 아니라서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 어렵기는 하지만, 객관적인 아름다움의 기준에서 세린은 으뜸이라고 할 만했다.
밝은 색의 긴 금발.
푸르고 깊은 눈동자.
새하얗고 티 없는 피부.
170cm 중반은 되어 보이는 커다란 키에 상당한 볼륨감.
이세계가 여자들만 살면서 몬스터와 전투를 벌이는 척박한 곳이 아니었다면, 현실에서는 응당 모델이나 배우를 해야 할 미모였다.
보는 남자마다 당장 심멎을 하게 만드는 압도적인 아우라가 있다.
그런 여자가 나와 거리가 가까워졌다는 것만으로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고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이, 이 정도 거리면 됩니까?”
세린은 나와 세 발짝쯤 떨어진 거리에 서서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