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화 〉77화
김소희가 오는 동안 나는 커피숍에 들어가서 라떼를 마셨다.
의도한건 아니었는데 저절로 컨테이너 안에서 불법 조직의 남자가 타주었던 라떼가 생각났다.
“비교가 안 되네.”
그때 마셨던 라떼의 맛과 평범한 커피 체인점의 라떼 맛은 그야말로 천양지차였다.
게이트 안에서 재배되는 커피 콩이라고 하던데, 그래서 더 헌터 입맛에 잘 맞는 걸까?
나는 그에게 받았던 커피를 내려서 마셔보면 어떨까 싶어서 내친 김에 커피숍에서 커피 내리는 도구 몇 가지를 샀다.
“나, 참.”
왠지 멋쩍은 생각이 들어서 헛웃음을 짓는데 바지 안의 핸드폰이 울렸다.
박동오에게 걸려온 전화였다.
- 야! 너 왜 안 오냐?
“일부러 그런 거야.”
- 뭐?
“내가 보니까 그 여사장 너한테 관심있는 것 같던데. 너 쌓인 것도 많을거 아니야. 천천히 들어갈테니까 둘이서 잘 해봐.”
- 헉! 너 진짜!
박동오는 감격한 목소리로 말했다.
- 오늘 같은 날에도 내 걱정을 해주다니 너는 진짜 내 친구다. 친구야, 우리 영원하자.
“응, 그래. 아무튼 천천히 들어갈게, 걱정하지 말고 마시고 있어라.”
- 오냐! 고맙다!
전화기 안에서 “무슨 일이에요~” 하는 여사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대충 둘러댔으니 한 동안 박동오는 나를 찾지 않을 것이었다.
커피 한 잔을 다 마시지 못하고 창 밖을 보고 있었는데, 택시 한 대가 서더니 그 안에서 귀여운 여자애 한 명이 내렸다.
오늘도 역시나 화려한 차림새였다.
화려하게 염색한 단벌머리에귀와 코에 피어싱을 하고 있다.
펑버짐한 자켓과 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나는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그 안에 얼마나 멋진 불륨감이 숨어있는지 알고 있었다.
나는 가게 밖으로 나가 그녀를 불렀다.
“소희야!”
“파티장님!”
정말로 나를 본 게 기쁘다는 듯이 활짝 웃는 그녀였다.
“잘 잤어?”
“네, 꿀잠잤어요. 이틀 간은 더 안 자도 될 정도로요.”
정말 극단적이구나.
뭐, 그녀가 잠자는 루틴을 어떻게 하든 내가 상관할 부분은 아니었다.
“저한테 시킬 일이라는 게......”
“일단 들어가서 얘기하자.”
길거리에 서서 나눌 만한 이야기가 아니었으므로 나는방금 나왔던 커피숍으로 그녀를 다시 데리고 들어갔다.
어떻게 말을 해야 하나 조금 고민이 되었는데, 그냥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코리아헌터즈>라는 이름이 나오자마자 김소희가 격분했다.
“그 개자식들!”
커피숍 점장과 직원이 깜짝 놀라 이쪽을 바라보기에 내가 멋쩍게 웃으면서 고개를 숙였다.
나는 어젯밤에 내가 겪은 일을 대충 각색하여 들려주었다.
당연히 이동구를 데리고 이세계에 간 일은 말하지 않았다.
“아, 정말요? 진짜 그런 사람들이 있었군요!”
김소희는 ‘쓰레기 게이트’나 불법 조직에 대해서는 처음 듣는다는 표정이었다.
그녀의 성격을 아는 만큼 거짓 반응은 아닐 터였다.
정말로 보기와는 다른 애이다.
“한 번 들어가보고 싶네요!”
동시에 호기심도 강한 그녀였다.
“어쨌든 그쪽에서 받은 자료가 있거든.”
“잘하셨어요! 사실 저 집에서 그 동영상 스무 번은 봤거든요. 댓글도 다 읽었어요. 제 속이 얼마나 부글부글 끓던지.”
“뭐?”
나도 한번밖에 보지 않은 인터뷰 영상을 그렇게 많이 봤다고?
거기다 댓글까지 다 읽었다니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난감했다.
아이돌을 좋아하는 열성팬이 이런 식일까?
가수가 굳이 찾아보지 않는 댓글까지 싹 찾아 읽고 대신 싸워주는.
아무튼 이 말은 좀 섬뜩한 구석이 있기는 해도 김소희가 이 일을 맡을 적임자라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했다.
레즈비언 바에 있는 것이 나를 인터뷰한 김수연의 여자친구이고, 그녀를 이용하면 김수연에게 타격을 입힐 수 있다는 말을 하자 화색을 띠고 말했다.
“알겠습니다! 제가 할게요!”
“뭘 할 건데?”
나도 아직 구체적인 계획이 없는데, 김소희의 반응을 보자니 신기했다.
“그런 거야 척하면 척이죠!”
김소희는 자켓 지퍼를 내리더니 그 안에 받쳐 입은 나시를 내보였다.
가슴쪽이 움푹 파인, 겉으로 드러냈다가는 당장 시선을 모을 수밖에 없을 옷이었다.
거기다가 믿기 힘들 정도의 볼륨감은......
어제 그녀와 침대에서 나눴던 정겨운 시간이 생각나 스르륵 자지가 발기했다.
어쨌든 나는 김소희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즉시 이해했다.
그녀는 김수연의 여자친구 박은혜를 자신의 몸으로 유혹하겠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음.”
믿음직스럽다.
나는 박은혜라면 충분히 그 일을 해내고도 남을 거라고 믿었다.
“그래도 조심해.”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약 박은혜가 이쪽의 의도를 알아채기라도 하면 성가신 일이 벌어질 것이었다.
내가 직접 나서는 것도 아니고 김소희를 투입하는 것이라 그럴 가능성이 적다고는 해도 김소희가 워낙 개성이 강한 타입이라 예측이 안 되는 부분도 있었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파티장님.”
싱글벙글 웃는 모습을 보니 절로 정감이 갔다.
“가기 전에 뭐 마실래?”
“아! 그거 파티장님이 드시던 건가요?”
나는 한 모금 마시고 더 입을 대지 않아서 식어버린 라떼 잔을 내려다보았다.
“응.”
“그거...... 안 드실 건가요?”
“그런데?”
“그러면 제가......”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싶었는데 김소희는 내 앞에 놓인 잔을 보면서 꼴깍 침을 삼켰다.
“괜찮아? 내가 마시던 건데.”
“감사합니다!”
김소희는 잔을 가져다가 유심히 테두리를 보았다.
무언가를 찾는 듯하더니 특정 부위에 소중하게 입술을 대고 커피를 홀짝거렸다.
나는 그 부위가 내가 입을 댔던 부위라는 것을 깨닫고 얼굴이 붉어졌다.
‘요망한 것.’
이 정도라면 걱정할 게 없겠다.
나는 일단 박은혜 건은 김소희에게 맡겨두고 박동오에게 돌아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너만 믿을게.”
“네, 맡겨주십시오!”
나는 몸을 일으키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김소희에게 말했다.
“나 B급 됐다.”
“네에~~?!” 김소희는 얼마나 놀랐는지 들고 있던 잔을 놓쳤다.
탁.
하지만 그 잔은 놀랍게도 깨지거나 구르지 않고 그대로 낙하해서 커피가 쏟아지지 않았다.
“축하드려요!”
김소희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나를 와락 껴안았다.
“하하하.”
파티 멤버들이라면 내가 등급이 오른 것을 기뻐해줄 거라고 생각했지만 직접 경험하니 멋쩍은 한편 기분이 참 좋았다.
나를 껴안고 있던 김소희가 골반 부분을 내게 밀착하며 물었다.
“저, 파티장님......”
“응?”
“이거...... 혹시 저 때문에......”
김소희가 자기 몸을 밀착하며 그렇게 물은 것은 내 자지가발기돼 있기 때문이었다.
“아, 이건......”
나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너 때문인 건 맞는데, 이거에 대해서는 나중에 이야기하자.”
“네! 저 이 건 잘 처리하면 상 주셔야 해요!”
김소희는 의욕이 샘솟는 표정을 짓더니 커피숍 밖으로 뛰쳐나갔다.
창 밖에서 손을 흔들면서 얼굴에는 밝은 미소를 한가득 짓고 있었다.
“힐링되네......”
김소희를 부르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하게도 김소희는 아무런 제제를 받지 않고 여성 전용 바에 입성했다.
나는 그것을 지켜보고 나서 커피숍을 나왔다.
김소희가 성과를 거둔다면 나는 당연히 그녀에게 상을 줄 것이었다.
그게 나를 위한 상인지, 김소희를 위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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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주점으로 돌아온 나는 박동오, 여사장과 함께 술을 마셨다.
내가 했던 말 때문에 박동오는 여사장에게 적극적인 대시를 했지만, 그녀는 실상 박동오에게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오히려 내게 은근한 스킨십을 하며 유혹해왔다.
예전의 나, 여자에게 굶주렸던 나라면 그 유혹에 넘어갈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내가 상대하고 있는미녀만도 한가득이다.
당장 김소희만 해도 이 여사장보다 훨씬 젊은 데다 외모 수준도 엄청나게 차이 났다.
굳이헌터와 일반인의 차이를 언급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그렇게 두 시간 정도 기분 좋게 술을 마시고 있을 때였다.
핸드폰이 울려서 꺼내 보았더니 김소희가 문자를 보냈다.
그녀는 ‘성공!’이라는 단어와 함께 몇 장의 사진을 첨부했다.
그 사진들을 본 내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미안한데, 나 그만 가 봐야겠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박동오와 여사장이 동시에 놀라며 말했다.
“뭐? 이제 시작인데 어딜 가?”
“그래요~ 곧 있으면 우리 애들 출근할 거니까 같이 놀아요~~”
나는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어 박동오에게 주었다.
“돈 걱정하지 말고 오늘은 마음껏회포를 풀어라. 나 진짜 급한 일이 있어서 그래.”
“뭐? 그래도 야! 너 때문에 나온 건데!”
“진짜 미안하다.미안해~”
나는 박동오에게 거듭 사과하며 주점을 나왔다.
그나저나 두 시간 만에 성공하다니.
김소희가 보낸 사진에는 호텔 방이 찍혀 있었다.
그녀는 박은혜의 헌터 자격증을 비추며 그 앞에서 브이자를 그린 채였다.
‘진짜 유능하네.’
나는 김소희가 알려준 호텔로 갔다.
김소희가 알려준 호텔 객실로 올라간 나는 그 앞에 서서 생각했다.
‘괜찮을까?’